구약성경 하나님 말씀

[하박국 성경 좋은 말씀] 혼란스러운 세상속에서의 성도의 자세(합 1:12-17)

베들레헴 2022. 2. 1.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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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박국 1장에서는 유다 백성의 패역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악이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죄를 짓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박국 선지자에게 응답합니다. 바벨론 민족을 통해서 징계하실 것을 말씀합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놀랍니다. 왜 바벨론 민족을 통해서 유다 백성을 징계하시는지 궁금했습니다. 하나님은 바벨론 민족을 도구로 사용하시고 그들도 멸망시킬 것을 말씀합니다. 성도가 죄를 지으면 세상 사람을 통해서 징계를 하십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님만을 따라야 합니다.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의 성도의 자세(합 1:12-17)

 

우리는 지금 계속해서 하박국서를 상고하고 있습니다. 지난주의 내용을 다시 정리하면서 말씀을 나누기 원합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처해 있던 상황을 우리가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필요가 있습니다. 하박국은 주전 약 600년 전 경에 선지자 예레미야와 함께 활동하던 선지자였습니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악한 왕들이 정권을 잡으면서 유다 나라의 국운은 점점 쇠퇴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여호야김 같은 왕은 예레미야의 예언이 적힌 두루마리를 칼로 조각조각 잘라서 불살라 버리고 거짓 선지자들의 예언을 따르며 의로운 선지자들을 박해하였습니다.

그 당시의 상황을 하박국은 1장에서 여러 가지 단어를 통하여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2절에는 '강포'라는 단어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것은 누군가의 습격을 받을까 봐 길거리나 공원에 마음 놓고 나가지 못하는 사회의 상황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3절에는 '간악'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것은 악인들이 잘되고 형통함을 누리는 것을 말합니다.

 

'패역'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힘없고 가난한 자들이 더 가진 자들과 권세자들에 의해서 착취당하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겁탈'이라는 말이 나오고, 변론과 분쟁이 있다고 말합니다. 어디 가나 입씨름이 있고, 인신공격이 있고, 다툼이 있다고 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4절에 보면, 율법이 해이해져 있고, 공의가 아주 시행되지 못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아주 법이 있기는 있는 마비되었다는 뜻이고, '공의가 굽게 행한다고 했는데'이것은 법이 악용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혼란과 어두움이 하박국 시대의 유대사회에 구석구석 만연되어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것이 비단 하박국 시대의 상황만은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바로 오늘 우리 시대에 있는 일들입니다. 이것을 금방 알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매일 보는 신문을 펼쳐 들면 금방 여기에 나오는 단어들의 내용을 몇 개씩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어떤 분이 말한 대로 현대를 가리켜 더더욱 절대 가지가 점점 땅에 떨어지고 모든 것이 상황적으로 상대적으로 혼란스러워지는 카오스 혼란의 시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옳고 그르며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하고 무엇을 믿고 따라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습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더더욱 고민하는 것은 하나님의 침묵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부르짖습니다. 2절에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 까지니이까 내가 강포를 인하여 외쳐도 주께서 구원치 아니하시나이

주님께서 듣지도 아니하시고 구원하는 행동도 하시지 않는 것 같아서 더욱 답답해하며 갈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간신히 5절부터 보면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런데 그 내용이 오히려 하박국의 갈등을 더욱 증폭시키는 응답일 뿐이었습니다. 그 옆에 있던 악한 이방인들인 갈대아인들을 일으켜서 유다를 치겠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신앙 안에서 하나님을 이해하기가 매우 어렵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못을 조금 범하고 있지만, 어떻게 더욱 악한 백성들을 들어서 이스라엘을 치실수가 있습니까? 하는 항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3절에 보면, 내용은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참아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참아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궤휼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되 잠잠하시나이까 하나님의 처사를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일어나는 일들! 그리고 우리가 신앙의 눈으로 볼 때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 중에 무리 신앙적으로 생각해 봐도 도저히 이해 못 할 일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이럴 때 우리도 하박국 선지자와 같은 심정으로 하나님 앞에 몸부림칠 때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대한민국의 온 국민이 북한을 위하여 소리 높여 기도해 온 지 오래건만 아직도 소식이 없습니까? 우리 가정의 식구들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하건만 오히려 정 반대로 핍박이 심해지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저 사람은 열심히 주님을 섬기며 희생하는데 하는 일이 잘 안 되고 어떤 사람은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며 사는데 왜 모든 일이 너무나 형통하게 잘 됩니까?

 

설상가상으로 하나님께서 갈대인을 일으켜서 이스라엘을 치시겠다고 말씀하시는 내용을 사람들이 믿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합1:5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열국을 보고 또 보고 놀라고 또 놀랄지어다 너희 생전에 내가 한 일을 행할 것이라 혹이 너희에게 고할지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말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타나는 불신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살아야 할 백성들이 정작 하나님이 말씀하시는데도 믿지 않는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런 것을 보는 하박국의 마음은 또한 말할 수 없이 혼란스럽습니.

사실 교회에도 보면 예수 믿는다고 교회에 나오지만 정말 중요한 일이 있으면 믿음이 없는 것이 교인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예배시간에는 믿음이 있는데, 실제적인 삶이나 교회일을 할 때에 정말 믿음이 없는 것을 너무나 뼈저리게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할 뿐 아니라, 교인끼리도 못 믿게 됩니다. 서글픈 현실입니다. 앞에서 일하는 것을 못 믿고 뒤에서 받쳐주는 것을 못 믿습니다. '패역한 세대여! 말세에 믿는 자를 보겠느냐?'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는 하박국 선지자의 마음은 한없이 혼란스럽습니다. 지금의 우리 세대와 같이 적지 않이 구조적으로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갈등하여 정리해 가는 신앙적인 자세가 오늘 우리의 귀감이 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됩니다.

 

1. 우선 그는 주어진 역사와 삶의 정황을 파악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 주는 의미를 깊이 생각하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가 계속하여 말하는 패턴 '어찌하여'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이렇게 일을 하십니까? 하면서 깊이 묻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생각하는 종교입니다. 혼란스러운 와중에서도 이것에 나타내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약1:19에 보면,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이 말씀은 역시 말하기를 더디 하고 생각을 깊게 하라는 말이요 감정을 표현하기 전에 더 깊이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는 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나?를 생각해 보고 하나님께도 물어보고 필요하면 말을 해야 합니다. 특히 교민 사회나 교회를 보면 더욱 이것이 교훈이 됩니다. 정말 말을 더디 해야 합니다. 정말로 말 때문에 상처받고 정말로 말 때문에 하나님의 교회에 영광이 가려지는 일에 대한 심판을 어떻게 감당해될지 모르겠습니다. 생각 없이 던지는 무책임한 말, 또한 그것을 깊이 생각하지 않고 전달하는 말! 신앙적으로 깊이 있게 들어주지 못하는 말! 이 말들 때문에 내가 속한 공동체가 갈라지고, 수많은 날들은 원망과 증오 속에서 서로 등지고 어두움에 그늘 속에 있어야 하는 경험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말을 많이 하는 것보다 말하기 전에 기도하고 말하기 전에 생각하는 훈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2. 하나님과 계속적인 대화가 이 하박국에게 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혼란스럽기 때문에, 갈등이 왔기 때문에 원망 속에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욱 계속해서 하나님과 끈질긴 기도의 대화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하박국'이라는 이름 자체가 씨름하는 자라고 하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이 질문하며 나아와 대화하는 것을 나무라지 아니하십니다. 우리들의 마음속에서 삶의 의문들이 피어날 때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의문이 생길 때 수수께끼 같은 마음에 부담과 아픔이 있을 때, 주 앞에 나아가 질문을 던질 수가 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물어보고 대화하는 것은 귀한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감춘다고 한다면, 하나님은 그 감추는 것까지 아십니. '어찌하여!'라고 말하면서 나아가시면 대화가 됩니다.

 

3. 혼란스러움 속에서 확실한 것들을 붙잡으면서 실마리를 풀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진흙탕길을 걸어가게 될 때, 어떻게 합니까? 조심스럽게 딱딱한 돌이나 마른땅 등을 밟으면서 지나가게 되지 않습니까? 혼란스러움을 풀어 나아가는 길은 확실하고 쉬운 것들부터 생각하면서 나아가면 됩니다. 지금 하박국은 그 혼란스러운 삶의 정황 가운데서도 가장 확실한 하나님의 속성들에 대하여 묵상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1)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12/여호와 하나님, 나의 거룩한 자이시여!

주님은 거룩하신 분이라는 사실은 너무나 확고한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이 가장 확실한 사실을 기초로 해 볼 때 결국 하나님은 거룩하시기에 부정한 일들과 부정한 것들에 대하여 결국은 심판하시리라는 사실을 생각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은 시간의 통제를 받고 계시지 않는 시간의 창조자로서 시간을 다스리는 분이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들은 잠시의 시간 안에서 아주 대단한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영원하신 하나님 편에서 볼 때는 아주 잠깐의 순간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영원하신 계획과 섭리를 통해서 역사하시기 때문에 잠시의 시각으로 보면서 생각하는 일에 대하여 너무 지나친 비중을 두지 말아야 합니다.

3)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12-우리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리이다.

언약의 하나님에 대한 묵상입니다. 다른 것은 다 혼란스럽고 변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의 택한 백성의 결국을 망하지 않게 하시리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변덕을 부리시고 마음대로 횡포하신다고 하면 어떻게 안심하고 그 약속을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

4) 결국 그는 하나님의 존재를 변치 않는 반석과 같은 존재라고 하는 사실로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반석이시여!'

주님은 나의 변치 않으시며, 나의 생각과 삶을 쌓기에 흔들림이 없는 반석이 되십니다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도 그의 삶을 통해 역사하신 하나님의 모습을 그의 시에서 여러 번 반석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혼란스럽고 휘돌아 처가는 세상사 속에서도, 너무나도 파란만장했던 자신의 삶 속에서도, 언제나 바위처럼 묵묵히 변치 않으신 약속으로 자신을 붙잡고 인도하셨던 그 하나님을 향하여 '당신의 나의 반석이십니다.'라고 고백하였던 것입니다.

 

결국 하박국은 이 하나님의 절대적이고 영원한 맥락 안에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결론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은 결국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는 이스라엘을 위하여 진행시키시는 일들이다. 갈대아인들이 쳐들어오는 것도 결국은 하나님이 어떤 목적을 이루시기 위하여 그들을 이용하고 계신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지는 못하지만 우리가 진멸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만은 분명히 안다.'

 

그래서 '반석이시여 주께서 경계하기 위하여 그를(갈대아인들을)세우셨나이다.' 교훈과 깨달음과 잘됨을 주시기 위하여 일으키셨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의 원리로써 우리 믿는 자들 가운데 어려운 일들이 생기고 혼란스러운 문제들이 내 생을 뒤흔들어 놓을 때, 우리는 먼저 확실한 것들부터 정리하면서 나아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온 세상이 뒤집어지고 변한다고 해도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확실하다는 것입니다. 독생자라도 주신 사랑에 변함이 있겠습니까? 우선 그 무엇보다도 나를 향하신 그분의 확고한 사랑을 묵상하면서 혼란스러움을 빠져나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뜻대로 부르신 자들을 결국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실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문제가 있다고 하면 하나님 앞에 나아가 회개할 때 분명히 그것을 위하여 생명까지 주신 이가 반드시 용서하신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전능하신 분으로서 그분이 하시고자 하시는 일이면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우선 확실한 이런 사실들을 밟고 나가면 모든 문제가 잘 풀려나가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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