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하나님 말씀

[갈라디아서 5장 설교말씀] 자유와 책임(갈 5:1)

베들레헴 2022. 5. 28.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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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5장에서 바울은 자유자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죄에서 자유하게 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죄인은 죄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원죄를 지은 죄인은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죽은 인생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남으로 인하여 영생을 얻었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대속해 주심으로 말미암아 구원받고 종이 아니라 자유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제부터 예수님 안에서 자유자가 되었다는 것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유와 책임(갈 5:1)

 

사람은 적어도 세 가지 면에서 자유가 있어야만 살 수 있습니다. 첫째는 정치적 자유가 있어야 하고, 둘째는 경제적인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며, 셋째는 영적인 자유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정치. 경제. 종교는 이 세상을 버티고 있는 세 개의 큰 기둥과도 같습니다. 그중에 어느 하나라도 잘못되면 버팀대에 균형이 기울어지기 때문에 위험하게 됩니다.

과거 우리나라가 일본의 강제 점령을 당하여 그들의 통치를 받고 살 때 우리는 자유를 완전히 빼앗겼었습니다. 일제 치하에서 우리가 가장 절실하게 원하던 것은 그 무엇보다도 자유였습니다. 자유의 가치와 그 소중함은 자유를 빼앗겼을 때에 뼈저리게 느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많은 자유가 주어진 때에는 오히려 자유에 대한 고마움과 소중함을 잘 모르고 지냅니다. 본문의 말씀에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다'라고 하였습니. 그리스도는 우리를 자유케 하시는 이이십니다.

첫째로, 그리스도는 우리의 왕으로, 선지자로, 제사장으로서 우리를 자유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는 왕으로서 정치적인 자유를, 선지자로서 경제적인 자유를, 또 제사장으로서 종교적인 자유를 우리에게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신 그리스도께서는 평화로 세상을 다스리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평화의 왕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정치적인 억압과 부 자유속에 있는 백성에게 자유를 주시려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가 이 세상에 오시는 소식은 세상을 참으로 소망스럽게 하는 평화의 소식인 것입니다. 진정한 정치적 자유는 평화로 나라를 다스리는 데서 나올 것입니다.

우리는 나라가 평화롭기를 항상 원합니다. 평화롭게 나라가 다스려지며, 민주화도 사회정의도 평화로운 가운데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리는 우리가 그렇게 바라고 염원하는 통일도 반드시 평화로운 방법으로 이루어 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평화를 깨뜨리는 통일은 오히려 민족을 더욱 분열시킬 것입니다. 한나라에 지도자는 백성을 평화롭게 다스려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제들은 항상 평화를 기원해야 합니다.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빈다'라고 기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평화로운 정치와 평화로운 나라안에서만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평화로운 시대에 사는 백성들은 '땅은 소출을 내고 우리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이 있으니 무엇을 더 바라겠느냐'?라고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백성들이 진정한 자유를 누리고 있기 때문에 만족한다는 뜻입니다. 옛날 세종대왕은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 훌륭한 우리 글인 한글을 창제하고 과학을 발전시켰을 뿐만 아니라 논 밭을 질서 있게 나누어 주어서 농민이 고루 농사짓게 하고 봄이면 양식이 떨어져 굶주리는 백성이 없도록 구호양곡을 마련하였고 양반이라도 자기 종을 함부로 다루지 못하게 하고 사형에 해당하는 재판은 적어도 세 번을 심리하여 억울하게 죽는 사람이 없도록 법률을 마련하였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백성을 모든 면에서 자유케 하고자 선정을 베푼 왕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성경에도 솔로몬 왕은 '평화의 사람'으로, 평화로운 정치를 하였으므로 이스라엘의 황금시대를 이루었습니다. 이러한 평화로운 정치가 만왕의 왕이신 예수께서 원하시는 일이요 또 모든 백성들이 한결같이 바라는 소원입니다. 거기에 국민이 원하는 자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참된 평화가 이루어지도록 기도하여야 하겠습니다. 평화는 평화의 왕이 주실 것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선지자로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신 분이십니다. 는 가난한 자에게 복된 소식을 전하고 포로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시력, 눌린 자에게 해방을 주시며 복되신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오셨다고 하였습니다. 진정한 자유는 정의를 구현할 뿐 아니라 그 정의구현의 방법이 평화스럽고 의로우며 또 이것이 사람들에게 복된 소식이 될 수 있게 합니다.

우리가 '정의'라고 하지만 이 정의가 악용되면 세상은 오히려 더 크게 흔들리고 혼란이 오고 평화가 깨지며 자유를 잃어버리게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자유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자유를 주시려고 가장 위대한 선지자로서의 역할과 사명을 다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선지자로서의 사명을 평화로운 방법으로 수행하셨으며, 인간을 자유케 하기 위한 목적으로 그 사명을 수행하셨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대제사장으로서 백성의 죄와 아픔과 무거운 짐들을 용서하고 위로하고 가볍게 하시는 큰 사제였으며, 인간을 영적으로 자유케 하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 중보자가 되신 제사장이었습니다. 오늘날의 모든 사람들은 누구나 다 용서와 위로와 해방과 영적인 자유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참된 자유는 정치적. 경제적 차원의 자유만을 가지고 얻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자유는 인간의 정신과 영혼이 참으로 해방되고, 죄에서 구원됨으로써 갖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유의 영적인 차원을 무시하게 되면 자유를 위한 투쟁이나 항거는 오히려 더 큰 부자유만 초래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사람은 정신적이고 영적인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종교적인 차원의 자유를 얻어야 됩니다. '주의 영이 계신 곳엔 자유함이 있느니라'(고후 3:17)고 성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자유케 하시고 자유를 구속하는 모든 악마의 본거지를 사람의 마음에서 허물어 버리십니다. 그것이 제사장으로서의 그분의 역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자유케 하십니다. 또한 진정한 자유는 우리를 자유케 하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지게 될 것을 믿습니다.

둘째로, 그리스도는 우리를 자유케 하려고 하실 뿐만 아니라 자유를 주셨습니다. 자유는 그리스도가 주셔야 합니다. 우리가 일제에서 해방된 것도 자유를 위하여 싸운 수많은 애국선열들과 독립운동가들이 있었기 때문임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또 3.1 운동과 같은 전민족적인 항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해방은 하나님이 주신 은총의 사건입니다. 자유를 사랑하고 그처럼 갈망하는 우리 민족의 기도와 절규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이것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유케 하시려는 뜻을 가지셨고 그 뜻을 이루시기 위해 우리에게 자유를 주신 것입니다. 자유는 하나님이 주십니다.

성경의 역사를 보면 하나님은 인간의 자유로운 의지를 가장 값있게 여기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꼭두각시로 만들어 놓으셨다면 무슨 가치가 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부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것도 인간 자신들의 결단과 의지로써 하는 것이 가치 있다고 보셨습니다. 에덴동산의 아담과 이브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될 존재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선악과를 따먹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금지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그들이 그 금단의 열매를 먹는 것을 막지는 아니하셨는가? 그것이 항상 의문점인데 그러나 이 말씀은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나 인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아니하신다는 것을 설명하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자유를 소중히 여기시고 그 자유를 사람에게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 왕 바로의 치하에서 먹고 마시는 것이 그렇게 부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자유가 없는 상태에 그들을 그냥 방치해 두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를 통하여 애굽을 탈출해서 자유를 얻도록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주신 십계명 서문에는 나는 너희들을 애굽 땅 노예의 집, 자유가 없는 땅으로부터 너희를 이끌어 낸 하나님이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자유의 땅으로 이끌어 내어 주신 해방자이시란 말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출애굽을 자기들의 역사에서 길이 기억해야 될 해방절로 지켰고 그 해방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나님은 자유를 주시는 분입니다. 인간도 피조물의 하나이지만 그들이 가장 가치 있는 존재인 까닭은 인간이 가진 '자유' 때문입니다. 자유의 가치를 알 때에 인간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것이요 이 자유라는 가치를 아는 민족이 위대한 민족이 됩니다. 참된 자유가 있는 나라가 좋은 나라요, 앞을 향해 발전하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일본인들은 과거 우리를 자기의 속국으로 만들고 심지어는 우리 민족을 말살해 버리려고까지 하였습니다. 그러기 위하여 그들은 먼저 우리의 자유를 빼앗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민족을 자유케 하시려는 그의 뜻에 따라서 우리에게 해방을 주셨습니다. 신앙이란 것은 언제나 참된 자유의 가치를 알게 하여 줍니다. 거기에 눈뜨게 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 같은 분은 여기에 눈을 떠서 자기 고향을 떠났고 미지의 세계를 향하여 모험을 감행함으로 그의 후손들이 선민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자유를 향한 모험이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자유케 하시고, 자유를 주실뿐만 아니라 광야의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되어 대열의 선두에 서서 자유를 향해 나아가게 하는 분이십니. 하나님은 인간의 자유에 대하여 그만큼 적극적이십니다. 이것을 생각하였을 때에 오늘 우리가 누리는 자유,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자유를 감사해야 하고 소중히 지켜나가야 하겠습니다.

셋째로, 그런데 인간사회에는 이 자유를 지켜 나가지 못하게 만드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있습니다. 외부적으로 자유를 박탈하는 경우도 있고 내부적으로 스스로 자유를 저버리게 하는 일도 있습니다. 갈라디아서에는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라고 하였습니다. 자유가 하나님이 주신 은총이라면,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않는 것은 인간의 책임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해주시는 것이 아니요 인간이 해야 될 일입니다.

자유는 너무도 소중한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중요한 책임이 따릅니다. 책임을 지지 못한다면 그처럼 귀한 자유를 수없이 준다한들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성경에는 자유를 오용하거나 악용하지 말라는 경고가 많습니. 자유에 대한 책임이란 결국 자유를 남용. 악용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의 멍에를 다시 메게 되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쓰게 된 목적과 동기가 바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자유를 잃게 하는 요소는 불신감 위화감 불안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생각이 우리의 마음을 점령하고 그런 요인들이 우리 사회에서 발생할 때에 결국 우리는 다시금 노예의 멍에를 메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불신감은 모든 것을 다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가 정부나 정치를 불신하게 되면 정치의 자유를 상실하게 됩니다. 짙은 불신풍조, 이 불신감은 결국 다시금 종의 멍에를 메게 하는 요인입니다.

불신의 씨를 물론 뿌리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날의 이 불신풍조는 과거에 뿌린 씨를 거두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짓말하고 속이고 한 것에 대한 심판을 지금 우리들은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불신감을 없애는 데에서 진정한 자유를 소유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서로 믿을 수 없고 믿지 않는다면 우리는 참된 자유인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사회적인 차원에서 볼 때 우리 사회는 계층 간의 격차와 그것 때문에 오는 적개심이 얼마나 팽배해 있는지 모릅니다. 여기에는 누가 누구를 위하고 편들어 주고 하는 그런 일보다는 모두에게 다 절제심이 요구된다고 믿습니다. 옛날 이스라엘의 모세는 그가 인도하는 자기의 백성들에게 가장 많은 원망과 불평을 들은 사람입니다. 오랫동안 애굽에서의 종살이에 길들여져 있어서 국가와 민족공동체의 훈련이 부족하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갑자기 자유가 주어졌을 때, 그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지도자를 원망하고 불평하고 서로 질시하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다시금 종의 멍에를 메는 일 밖에 올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 대부분을 광야에서 생을 마치도록 하셨습니다. 절제와 인내, 그것이 그 사람들로 하여금 약속의 땅에 이르게 하였을 것인데, 그들은 노예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가 참된 자유를 얻기 위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절제입니다 절제하지 못하기 때문에 위화감이 생기고 우리는 이로 인해 계층 간. 지역 간의 증오와 적개심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자유를 지키기 위한 우리의 책임은 절제입니. 또 하나의 요인은 불안감입니다. 이 불안은 자유뿐만 아니라 모든 평화를 깨뜨리는 요소입니다. 마음이 불안한 사람이 어떻게 자유인이 되겠습니까? 어떻게 평화를 소유하겠습니까? 불안은 인간에게 있는 깊은 죄 때문에 옵니. 그리스도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하여 자유케 하셨습니다. 정한 자유와 해방은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으로서 완성됩니다.

그러나 자유는 책임이 수반됨으로써 지켜집니다. 자유가 중요한 것만큼 책임도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참된 자유인이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에게 이러한 자유를 주시기를 빕니. 그리고 그 얻은 자유를 굳게 지키고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않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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