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하나님 말씀

[누가복음 고난주간 예수님말씀] 예수님의 가상 칠언 말씀(눅 23:23-46)

베들레헴 2022. 4. 6.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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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고난주간을 맞이해서 하나님 앞에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죄인으로서 십자가에 죽어 마땅한 인생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아 십자가에서 순종하심으로 첫 아담이 지은 원죄와 자 범죄를 모두 대속시켜 주셨습니다. 창세전에 선택한 하나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고난당하면서 7가지의 말씀을 당부하셨습니다. 고난주간을 맞이해서 우리가 주님의 가상칠언을 묵상해 보겠습니다.

 

제목: 가상 7(23:23-46)

 

사복음서 중 십자가상에서 하신 일곱 마디 말씀은 복음 중에 복음이요, 피의 설교이다. 이 일곱 말씀은

(1) 용서{forgiveness}

(2) 권위{authority}

(3) 기억{remembrance}

(4) 순종{submission}

(5) 수난{suffering}

(6) 승리{victory}

(7) 확신{confidence}를 나타내고 있다.

이 말씀을 하신 시간은 막15:25의 세시{오전9시}, 33절의 육시{낮12시} 및 구시{오후3시}로, 주님은 십자가상에 여러 시간 달렸는데 처음 세 말씀은 첫 세 시간 동안에 나중 네 말씀은 캄캄한 후 세 시간 동안에 하신 것이다.

캄캄한 죄악 세상 답답한 밤 같은 세상에도 주님은 복된 말씀을 주신 것이다.

 

1. 용서의 십자가{눅23:34}{용서에 대한 기도의 말씀}

1) 원수의 죄를 용서하시고 축복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알 수 있다{마5:39-42,마5:23}.

주님은 산상 수훈에서 악한 자를 대적치 말라하시며,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을 돌려 대며,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주며, 억지로 오리를 가자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시는 교훈을 지금 십자가상에서 실천하고 계신 것이다{마5:23}.

제단에 예물을 드리기 전에 화목할 것과 일곱 번씩 일흔 번까지도 용서하라는{마5:23}. 교훈을 지금 예수님께서는 실천으로 보여주고 계시는 것이다. 우리도 고난주간을 맞이해서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2) 하나님은 주님의 아버지시고 우리의 아버지이심을 알 수 있다{엡3:14-15}.

구약에는 아버지란 말이 없으나 예수님은 아버지라 부르시면서 우리에게도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주기도문을 비롯하여 여러 곳에서 교훈하셨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가 있는데,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놀라운 축복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름은 사랑의 인격적 참여를 말하는 것으로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모시게 될 때 내 모든 문제는 해결되고도 남음이 있다. 구원받은 백성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른다. 예수님을 통해서 양자의 영을 받았고 이제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게 되었다.

 

3) 십자가의 첫 말씀으로 멸망할 수밖에 없는 죄인에게 사죄의 길이 열렸음을 보여준다{사53:5-6}.

주님을 십자가에다가 다는 무리에게 오히려 기도해 주시고 속죄를 빌어 주시는 우리 주님 앞에서 우리의 어떠한 죄악이라도 속죄함 받지 못할 것이 없음을 믿고 어떠한 죄라도 주께 돌아와 회개하기를 바란다.

간음하는 현장에서 잡힌 여인에게 나도 죄를 정죄하지 않으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용서하셨다. 남편 다섯이 있던 사마리아 여인을 용서하여 전도자가 되게 하시며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였다.

 

4) 남의 죄를 용서해 주는 비결을 배운다{마18:21-35, 행7:1-10}

손양원 목사님이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자기의 아들로 삼았다는 사실은 성령의 감동과 감화가 아니면 절대 불가능했을 것이다. 우리 주님은 지금도 우리의 무서운 죄를 용서하시고 축복하신다는 은혜를 깨닫고 우리도 남의 죄를 용서해 주고 축복해야 하겠다.

예수님은 원수까지 용서해 달라고 했다. 우리도 용서하는 사람, 사랑의 사람이 되자.

 

5) 주님은 이방인에게 죽지 않고 바리새인들에게 죽으셨음을 알 수 있다{빌3:18}.

현재도 예수님은 불신자들에게 욕을 당하시거나 해를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외식하는 교인이나 맹물단지 목사와 장로들이나 신 신학자들로부터 더 나아가 신비주의자들에게 계속 해를 받고 계신다.

(빌3:18}{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고 했다.

 

2. 구원의 십자가 (눅23:43}{구원의 약속의 말씀}

1) 십자가는 통일과 분열의 표준이다 {눅23:34-43, 고후2:16}.

천당과 지옥, 영생과 영벌로 분열시키는 십자가의 도이다.

(1) 강도끼리 갈라지고 (2) 주님과도 나뉘었다. 그러나 회개한 강도는 주님을 영접하니 하나가 됐다. 여기서 통일이라 함은 죄악에서 떠나 선과 진리와 하나 된다는 뜻이다.

악한 강도가 깨어지고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었다. 그는 동료 강도에게 화해를 청해보았다. 그러나 그의 태도는 강퍅하여 화목을 배척하고 결국 지옥으로 떨어지고 만다.

 

2) 예수는 죄인의 친구가 되심을 보이셨다{요15:13-17}.

낙원에 들어간 자는 부자, 영웅, 위인, 제왕, 학자가 아니라 살인 강도였다.

인류 중에 가장 불행한 자가 가장 행복한 자가 되었다.

이는 병자에게 의사가 필요한 것같이 죄인에게 구주가 필요한 때문이다. 또 한 예수님이 죄인들의 친구였음을 볼 수 있다.

 

3) 회개한 영혼의 갈 곳이 어디임을 알 수 있고 예수 계신 곳이 천국이라는 영적 진리를 배울 수 있다{마16:16, 행12:17, 요14:1-6}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가느냐 하는 것은 의문 중에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 대한 해답은 사람이 죽으면 육은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데 믿는 자는 천국으로 불신자는 지옥으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또한 죄인 삭개오의 집은 예수가 계시니 천국이요, 제자 베드로는 예수가 없으니 사탄이 되었다{마10:16}. 예수가 함께 하시니 옥중도 낙원이요{행12:7}, 왕궁이라도 예수가 없으니 멸망이다 {행12:23}.

 

4) 인생은 종말을 잘 마쳐야 된다는 교훈이다 {히9:17}.

어떤 사람은 양같이 시작하여 개같이 마치고, 어떤 사람은 개같이 시작해서 양같이 마친다. 우리는 인생의 마무리를 잘 지어야 한다. 그리스도는 죽는 순간까지도 눈에는 죄인을 불쌍히 여기는 눈물과 손에는 자비의 피와 가슴에는 사랑의 불꽃을 안고 구원을 주고 계신다.

5) 회개하면 절망이 없다.

절망에 차 있던 강도일지라도 최후의 순간에 주님의 십자가를 붙잡을 때 주님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이르리라}고 하셨고, 교만을 떨던 주위의 인물들에게는 다시 한번 십자가를 쳐다보게 하셨다.

어떤 죄인이라도 오늘 이 시간에 회개하고 예수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되는 것이다.

 

3. 효도의 십자가(요19:26-27}{효도 애정의 말씀}

1) 불쌍한 어머니를 동정하시어 제자들에게 부탁함{요19:26}.

인간적으로 볼 때 불쌍한 어머니였다.

(1) 동정녀로 잉태,

(2) 베들레헴 말구유 해산

(3) 애굽의 피신.

(4) 과부{가나 혼인잔치}. 그러한 어머니를 위하여 예수님은 효도와 사랑의 애정을 보여 사랑하는 제자에게 그 어머니를 부탁했다.

 

2) 주님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을 실행하셨다.

주님의 사생애 30년 생활은 부모 봉양하고 3년간 공생애 중에도 모친을 염려하셨다. 마지막 십자가 위에서 모친의 여생을 요한에게 부탁하심으로 아들 된 본분을 다하셨다. 효도하면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리라고 하였다.

 

3) 여기서 자녀들은 그와 같이 역경 중에도 전력을 다해서 효도해야 하며 부모를 잘 봉양할 것을 가르친다.

다윗은 어려운 때에 그 부모를 봉양했고{삼상22:3}, 예수님은 제가 아들이라고 하면서 친절과 위로로써 인간적인 사명을 다 하였다.

그는 여기서 어머니에게 죽은 후의 이야기보다도 현재 그녀의 어려운 처지를 돌보며 가정에 잘 모시라고 요한에게 부탁한다. 살아생전 효도와 가정의 중요성도 가르치는 말이다.

 

4) 기독교의 효도는 인본 중심이 아니고 신본 중심이다.

예수님은 자기 친동생들이 있었지만 요한이라는 제자에게 네 어머니라며 맡기셨다. 효도는 혈육을 초월한다는 것이 기독교의 정신이다.

제자 요한은 주님을 사랑함과 충성함에 군사부일체의 정신이 있었 길래 골고다까지 와서 그와 함께 고초와 수치를 나누고 있다.

 

5) 가장 사랑하는 요한에게 주는 마지막 말이요 영광이었다{요19:27}.

그가 주님을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마리아를 의탁받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의 부탁을 받은 것은 주님의 신임이 있다는 뜻이요, 또 주님이 맡길 때는 벌써 축복을 받은 것이다{요19:27}.

그는 예루살렘에서 11년간 봉양하며 살았다고 한다. 또 에베소에서 죽을 때까지 살았다 하기도 한다.

 

4. 고난의 십자가{마27:46} {대속 고뇌의 말씀}

1) 하나님이여 너무 짐이 무겁습니다{히9:11-14}.

세상 죄를 지시고 심판을 받으신 주님은 그 짐이 무거운 것을 인식하셨다.

왜 무거울까요? 그것은 모든 인류의 죄를 지셨기 때문이다 {시22:1}. 예수 그리스도는 선택받은 백성의 죄를 다 지시고 자기가 속죄 제물이 되시어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 영원한 속죄를 이루었다{히9:11-14, 히10:19-20}.

 

2)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할 수 있다{롬8:8}.

하나님이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셨기에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시고 죽기까지 하시면서 자기의 사랑을 우리에게 확증시켜 주셨던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도 우리를 사랑하시므로 자기의 몸을 생축의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던 것이다.

 

3) 죄를 버려야 한다는 진리를 배울 수 있다{롬6:23}.

어찌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죄 때문이다{롬6:23,히9:27-28}. 주님이 세상 죄를 지시고 심판대에서 버림을 받는 시간이다.

이는 주님을 버리지 않으면 우리를 버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버리고 떠나야 한다.

 

4) 주님의 고통의 말씀이요, 인간의 고통 소리이기도 하며, 신앙을 통한 승리이기도 하다.

유명한 처칠 경의 시 한 토막을 소개하면 {피와 눈물과 땀은 인간의 고귀한 세 가지 액체이다. 인간의 위대한 산물은 피와 눈물과 땀의 결정체이다. 피 흘리지 않고 위업이 이루어진 예가 없고, 눈물을 흘리지 않고 값있는 일이 성취된 일이 없으며, 땀 흘리지 않고 대업이 성취된 일이 없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는 이 말씀은 주님의 고통이요, 인간 육신을 입은 인간의 고통의 소리인 동시에 이 고통으로 승리를 나타내는 영광스러운 승리의 소리인 것이다.

 

5) 예수님이 인간 대신 버림받으시는 순간이다.

주님은 유대인이면서 유대인에 버림을 받으시고 제자에게 버림받으시며 은혜를 끼친 자들에게까지도 버림을 받으시는 참으로 어두운 시간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구원의 기초를 보며 사랑에 대한 최상의 모습을 보게 된다.

(버리셨나이까?}라는 말은 인간의 말 가운데 가장 비극적인 어휘 중 하나일 것이다. 친구, 남편, 아내, 부모 등에 버림받는다면 그것이 얼마나 참담한 광경인지 연상케 한다.

더욱이 불행 중 최고의 불행은 창조주 하나님께 버림을 받는 사람이다.

 

5. 생수의 십자가{요19:28} {고통 극치의 말씀}

1) 그것은 육적인 고통이다 {사53:11}.

여기서{목마르다}라고 원망처럼 부르짖고 있다. 이는 성경에 응하려는 고초의 소리이다.

더구나 하늘의 빛을 거두고 악한 사람들이 물 한 방울 주지 않고 신 포도주를 주어 고통을 면하게 해 주려고 했어도 우리 주님은 마시지도 않고 온전하게 고통에 참여하였다.

 

2) 영적인 갈증이다 {눅10:19-31, 고전10:4, 요4:10-16}.

지옥의 고통을 심한 갈증으로 표시했다. 주님은 우리에게 생명수를 주시려고 영적이고 심적인 갈증을 견디어 내신 것이다.

물 한 모금을 못 주겠다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영생 수를 주겠다고 하신 그가 이제 이 영생 수 샘을 터놓고 있는 것이다.

광야에서 반석으로부터 물을 내시고{고전10:4}, 물을 포도주로 변하게 하신 그가 이제 우리의 영적인 기갈을 멈추게 하기 위한 샘터를 열어 놓는 마지막 고통이요, 하나님의 공의의 만족인 것이다. 

 

3) 목마른 인생을 동정하신다{요7:37}.

인생은 심령이 목마르다. 애정이 목마르다. 경제적으로 목마르다. 이렇게 목마른 인생을 위하여 주님이 함께 목말라 주셨다.

사마리아 여인은 목말라 여섯 남편과 살았었지만 만족이 없었고 예수님을 통하여 생수로 만족케 되었다. {요4:1-15}

 

4) 인간의 무정을 탄식하심이다.

물을 달라신 주님께 초를 드렸으니 악한 인간들이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를 향하여 목마르다 하신다. 우리는 초를 드리지 말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생수를 드려야 하겠다.

주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드리는 성도가 되자. 냉수 한 그릇도 그 상을 잃지 않겠다고 하셨다.

 

5) 전 인류의 갈증을 대표하였다.

사람들은 이러한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가진 샘물을 다 파고 있으니

(1) 어떤 사람은 육체적으로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 건강의 샘물을 파고 있으며

(2) 어떤 사람은 지식에 대한 갈증을 해소키 위해 학문의 샘을 파고 있으며

(3) 어떤 사람은 더 잘 살기 위해 부의 샘을 파고 있으며

(4) 많은 사람들은 영원한 삶의 샘을 위해서 종교의 샘을 파고 있다{요7:37-39,요4:14, 렘2:13}.

이런 자에게 종교의 영원한 생수를 주기 위해 주님은 먼저 갈증을 느끼고 계시는 것이다.

 

6. 완성의 십자가{요19:30} {완전 승리의 말씀}

1) 게임이 승리로 끝났다{마11:1}

{다 이루었다}는 말은 마귀와의 싸움에서 승리했다는 말이다.

 

2) 완전히 지불되었다{마7:22}.

예수님이 대속 물로 자기 몸을 드림으로 완전히 우리의 빚을 청산했다는 말이다.

 

3) 예언의 목적이 성취되었다{눅2:39}.

예언하신 메시야가 예언대로 오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이루셨다는 말이다.

 

4) 율법의 완성이다 {엡2:14-15}.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율법을 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완성했다는 말이다.

 

5) 사명에 대한 완성이다 {마20:28}.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죄인을 구원하러 오신 것인데, 십자가를 지심으로 아들로서 메시야로써 구주로써 사명을 완성하셨다는 말이다.

7. 소망의 십자가(요16:30} {만족 영생의 말씀}

1) 영혼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 수 있다{눅12:20}

{마10:28}에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를 두려워하지 말고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하셨다. {눅12장}의 어리석은 부자처럼 영혼의 주인을 모르고 살아갈 때 하나님이 부르시면 준비 없이 가야 하니 어리석은 인생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눅12:1-10}.

 

2) 영 육의 분리를 배울 수 있다.

사람은 죽을 때에 육신은 흙으로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니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예수님은 육체를 받으라 말하지 않고 내 영혼을 받으소서라고 하셨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다시 재림할 때 영 육이 온전히 합하여 완전한 영화의 몸으로 부활할 것이다.

 

3) 우리의 궁극적 목적은 내 아버지께 가는 것이다{요14:1-6}.

천하보다 귀한 것은 생명이다 {마16:26}.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성도는 아버지께로 간다. 예수님은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시어 {요14:6}, 하나님께로 인도하신다. 그러므로 예수님도 아버지도 만날 수 있는 것이다{행4:12}.

 

4) 신자의 임종에 대한 모범을 보이셨다.

그는 죽음을 두려워 아니했다. 그는 성도들이 죽는 것이 아니고 잔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여기서도 태연스럽게 또 부모를 믿는 어린아이 같이 그의 영혼을 하나님께 맡기고 있다{행7:59}.

그의 죽음은 종착역으로 끝나는 비극의 십자가가 아니요, 부활의 소망을 가진 전진의 십자가이다.

 

5) 성경을 이루면서 죽었다{시31:5, 마4:7-10, 골2:15, 고전15:3}

이 말은 다윗의 말에서 인용했는데 {시31:5}, 예수님은 성경대로 시작해서{마4:7-10}, 성경대로 살다가{요2:1-10, 마20:1-31}, 성경대로 죽으시고{고전15:4}, 성경대로 부활 하셨다{골2:15}.

 

결론

골고다의 이적은 십자가의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활의 영광스러운 역사였다.

(1) 세 시간 동안 캄캄함{구속의 값}

(2) 성전 휘장이 찢어짐{구속의 목적}

(3) 지진이 일어남{구속의 권능}

(4) 수건이 개져 있음{구속의 증거}

(5) 무덤이 열리고 살아남{구속의 열매}

(6) 무덤을 봉함{구속의 종국}

(7) 부활 {구속의 승리와 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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