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장에서는 바울이 로마 교회를 방문하려고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바울은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복음 안에서 항상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로마 교회를 방문하기 위해서 언제 좋을지를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구하고 있습니다.
로마 교회에 대한 바울의 방문 목적(롬 1:8-12)
8절 프로톤 멘 유카리스토 토 데오 무 디아 이에수 크리스투 휘페르 판톤 휘몬 호티 헤 피스티스 휘몬 카탕겔레타이 엔 홀로 토 코스모
성 경: [롬1:8]
첫째는. - 헬라 원어로 “프로톤 멘”이다. 이 어투는, 논리적으로 “둘째는”이란 말이 아래 있을 것이라고 예상케 한다. 그러나 그것이 없다. 이 말에 대하여 해석이 세 가지가 있다. ⑴ 바울이 감사에 넘침으로 인하여 “둘째로”란 말을 잊었다고 함(B. Weis). ⑵ 이 점에 있어서 바울이 논리적 어투는 차리지 않았으나 문맥은 그대로 나타내었다고 함(Yodet). 곧, 첫째는 감사요, 둘째는 다음절부터 나온 기도라고 하였다. ⑶ “첫째로”란 말은 그저 “무엇보다도 먼저는”이란 의미니, 그 아래 “둘째는”이란 말이 나오리라고 기대할 필요가 없다고 함(Theodore Zahn). 바울은, 그의 저서 살전 5:18에 말하기를 “범사에 감사하라”라고 한 것 같이, 언제나 어쨌든지 먼저 감사의 조건을 찾았다. 감사 제일주의가 있어야 범사에 감사할 수 있다. 바울의 감사 제일주의는 그의 서신마다 나타났다(고전 1:4 ; 고후 1:3 ; 엡 1:3 ; 빌 1:3 ; 골 1:3 ; 살전 1:2 ; 살후 1:3 ; 딤후 1:3 ; 몬 4).
그리스도로 말미암아.....감사함. - 우리가 하나님과 교통 하는 일은, 그 무슨 일이든지 그리스도의 중보역(仲保役)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감사하는 일도 그리스도를 힘입어서만 가능하거든, 하물며 다른 일들에 있어서야 더 말할 것이 무엇이랴. 그리스도를 힘입은 길은 그리스도 신앙이다. 이것이 있는 때엔 죄인도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지만 이것이 없는 때엔 소위 의인(義人)도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 바이스(B. Weiss)는, 이 문구가 다만 그들이 믿어 그리스도인 된 사실에만 국한된 것이고, 그들의 무슨 특별한 선행을 가리킨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와 반면에 고데(F. Godet)는, 이것이 그들의 모범적 덕행을 가리킨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 “너희 믿음”이란 말이 그들의 믿음 생활(믿음과 덕)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바울은, 감사 제목으로서 그들의 신앙생활 전체를 염두에 둔 것이다.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그때 로마는 큰 도시였고 교통의 중심지였으니 만큼, 교회의 일이 각처에 퍼졌을 듯하다. 일설에 의하면, 당시 세계의 모든 사람이 다 같이 로마에 있는 교회의 소문을 듣게 되었다는 말이 아니라고 한다. 그것은, 당시 신자들에게 그 소문이 들린 일을 매우 귀중히 여겨서 그렇게 평가한 표현이다. 곧, 여기저기서 참 신자들이 그들을 알아주어도, 그것은 온 세상이 알아주는 것과 같은 큰 영예(榮譽)라는 것이다(Calvin).
9절 마르튀스 가르 무 에스틴 호 데오스 호 라트류오 엔 토 프뉴마티 무 엔 토 유앙겔리오 투 휘우 아우투 호스 이디알레이프토스 므네이안 휘몬 포이우마이
성 경: [롬1:9]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 - 바울이 하나님을 섬기는 방식은, 복음을 전하는 그것이었다. 이를 보면, 그가 복음 전파를 자기의 출세나 생계나 취미를 위한 것이 아니고 그 소명감(召命感)에 끌려 행하여지는 것이었다. 그의 모든 전도 행위에 있어서, 하나님을 위하는 의식이 그 지배 의식이었다. 여기 “심령”이란 말은 렐라 원어로 “프뉴마”이니, 곧 영을 의미한다. 그러면 내 영(靈)으로 하나님을 섬긴다고 함은 무슨 말인가? 이것은, 인격의 중심으로 하나님께 봉사함을 말함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정신력과 체력(體力)의 전부를 다하여 봉사함을 가리킨다. 크레다너스(Greijdanus).는 말하기를, “이 봉사는, 마음을 드리지 않는 외형적인 것이 아니고 자기 존재의 가장 깊은 부분을 다하여하는 것이다. 곧, 진실하게 온 인격을 기울여하는 봉사이다”라고 하였다.
10절 판토테 에피 톤 프로슈콘 무 데오메노스 에이포스 에데 포테 유오도데소마이 엔 토 델레마티 투 데우 엘데인 프로스 휘마스
성 경: [롬1:10]
하나님의 뜻 안에서. - 이 말에 대하여 어떤 학자는 말하기를, 여기 “하나님의 뜻”이란 말은 종교 윤리적인 하나님의 뜻이라고 한다. 곧, 바울이 로마에 가고자 하되 남이 세운 교회에 간섭하는 잘못이 되지 않는 한, 거기 가기를 원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종교 윤리적인 하나님 뜻을 가리키는 헬라 원어는, 여기 본문처럼 “엔 토 델레마티 투 데우”가 아니고 “카타 토 델레마 투 데우”일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 “하나미의 뜻”이란 것은 섭리적 의지(攝理的意志)를 말함이다. 그가 로마에 가려고 해도 교통 사정으로 길이 막혀서 갈 수 없이 되어 있는데, 앞으로는 그 사정이 섭리적으로 해결되기를 바라는 의미로 이 말을 사용했다.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 여기 “좋은 길 얻기를 구”한다는 말은 헬라 원어로 “유오도데소마이”인데 보통으로 성황(盛況), 혹은 이득(利得)을 의미한다(고전 2:16). 바울의 이 기도는 성취되어, 후에 그가 로마에 가게 되었다.(행 27:1-28:29). 그러나 그로 하여금 거기 가게 한 길은, 얼른 보면 좋은 길이 아니고 이상하게도 소송건에 끌려가게 됨이었다. 그 길은 대단히 위태하여 그가 여러 번 파선 당해 죽을 뻔한 것이다(행 26:32-27:44). 곧 그의 로마행은 육신적으로 괴로운 길이었다. 이것이, 이익을 얻는 길에 대한 바울의 기도 응답이었다. 경건 신자에게 있어서 이익을 얻는 길은 반드시 평안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고 도리어 육신상으로 불행스러운 것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 충성하다가 혹시 고생길에 설 때에도 낙심치 말고 도리어 그것이 유익 있는 오묘한 길인 줄 믿고 기뻐할 것이다.
11절 에피포도 가르 이데인 휘마스 히나 티 메타도 카리스마 휘민 프뉴마티콘 에이스 토 스테리크데나이 휘마스
성 경: [롬1:11]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주어. - 여기 “무슨”이란 말은 헬라 원어로 “티”니, 그것은 아직 받지 않은(그러나 장차 받을) 어떤 신령한 은혜를 염두에 둔 말이다. 바울은 로마에 가는 도상에 오를 때에 반드시 로마의 신자들에게 풍성한 영적 축복이 임할 것을 확신한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나갈 때에 그리스도의 충만한 축복을 가지고 갈 줄을 아노라”라고, 그는 말하였다(15:29). 주의 종이 주님의 지키시는 일에만 순종하며, 언제나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영력(靈力)을 받게 되는 것이다. “신령한 은사”란 것은, 초자연적(超自然的)인 것인데 그것이 물질적 혹은 정신적인 것일 수도 있다. “나눠주어”란 말은 헬라 원어로 “메타도”니, 은혜를 나눠 주는 자 자신도 남들과 함께 그 은혜에 참여함을 가리킨다(Theodore Zahn). 만일 주님의 종을 통하여 교회 중에 하나님의 교훈이 임한다면, 주님의 종 자신도 그 교훈의 심판 아래 서야 된다.
너희를 견고케 함. - 이 말의 헬라 원어를 직역하면 “너희로 견고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곧 바울이 자기 힘으로 그들의 신앙을 굳게 할 수 있다 함이 아니라, 그들의 신앙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굳게 될 것이라고 한다. 신앙을 장성케 하는 이는 오직 하나님뿐이시니(고전 3:5-7), 여기서도 바울은 자기의 할 수 있는 일과 하나님의 하실 일을 구분한다.
12절 투토 데 에스틴 쉼파라클레데나이 엔 휘민 디아 테스 엔 알렐로이스 피스테오스 휘몬 테 카이 에무
성 경: [롬1:12]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 - 이것은 신앙상 위안을 말함이다. 우리의 신앙은 세상에 부딪쳐 끊임없이 피곤해진다. 그러므로 이런 안위는, 우리에게 매일 음식과 같이 계속 공급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 안위는, 염세주의(厭世主義)에서 찾아 만나지는 것이 아니고 오직 주 안에서 성도들의 교통에서 얻을 수 있다. 내 신앙이 피곤해졌을 때에 남의 열심 있는 신앙을 보아서 용기를 얻게 되며, 또 본래 튼튼한 신앙도 다른 사람의 모본을 보고 더욱 힘을 얻는다.
[사도행전 헬라어 성경말씀 강해] 예수님의 승천을 목격한 성도들(행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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