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하나님 말씀

[마태복음 헬라어 성경 강해] 마태복음 아브라함 다윗 예수님 족보(마 1:1-2)

베들레헴 2022. 2. 9.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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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장에서는 아브라함과 다윗과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어떻게 오셨는지를 구속사 관점에서 족보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구속사의 출발은 아브라함입니다. 마태는 아브라함과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증거 하기 위해서 다윗 왕을 기록했습니다.

 

마태복음 족보 아브라함 다윗 예수님 족보(마 1:1-2)

 

1절 비블로스 게네세오스 이에수 크리스투 휘우 다비드 휘우 아브라암

성 경: [마1:1]

주제1: [예수의 족보와 탄생 과정]

주제2: [예수의 계보 개관(槪觀)]

󰃨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 복음의 주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유대인의 왕으로 믿고 소개했던 저자 마태는 복음서를 기술하면서 무엇보다 예수께서 혈통적, 법적 자격에 있어서 다윗 왕가의 계승자이심을 먼저 밝히고 있다. 실로 다윗 왕권이 B.C. 586년 예루살렘 함락 이후 근 6세기가 흐르는 동안 거의 단절되다시피 했기 때문에, 이 땅에 오신 예수께서 다윗의 왕권을 이을 자라는 법적 근거, 곧 그분의 정통성(royal legitimacy)을 증명하지 않는 한, 절망 속의 유대인들은 아무도 그를 메시야로 인정하지도 환영하지도 않을 것이다. 더욱이 마태는 혈통과 족보를 중시했던 유대인들에게 예수가 진정 참 이스라엘인이자 다윗 가문의 오실 메시야이심을 확신시켜야만 하는 절대적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본절의 두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첫머리에 기록한 마태의 의도는 분명하다. 그것은 (1) 예수 그리스도께서 언약의 후손이심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당초 유대 백성들과 맺으신 하나님의 언약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되었다(12:1-3;17:7). 그는 자신의 후손을 통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될 것'이라는 약속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있다(22:18;3:16). 또한 하나님은 다윗에게 영원히 그를 버리지 않으시며(89:29), 그의 자손 중 하나를 선택하여 그의 나라를 계승하게 하고 나아가서 그 계승한 왕에 의하여 그 왕위와 나라가 영원토록 견고히 보전되게 할 것이라는 메시야 언약을 주셨다(삼하 7:12-16). 한편 이와 더불어. 선지자 이사야는 '한 아기', 즉 인간으로서 생각지 못할 기이한 칭호(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 등)를 가진 한 아이가 태어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는 계속해서 그 아기가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영원히 공평과 정의로 다스릴 것인데 '여호와의 열심히 이를 이룰 것이라'라고 단정적으로 예언한 바 있다(9:6, 7).

이 예언에 따라 유대인들은 다윗의 자손을 곧 오실 메시야로 더욱 확증 짓게 되었다(Berger). 이는 초대교회 시대로 접어들면서 확정적으로 인정되었다(13:23;1:3;22:16). 여하튼 하나님의 언약이 오랫동안 지연(遲延)되기는 했지만, 이제 예수는 다윗에게 주어진 나라에 대한 약속과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이방의 모든 세계에 대한 축복의 약속의 성취자로서. 다윗의 그루터기에서의 햇순으로 그 뿌리의 새싹으로 돋아나신 것이다(11:1). (2) 예수 그리스도는 절대적 권위를 지니신 이상적 왕이심을 밝히기 위해서이다. 사실 이스라엘의 실질적 시조(始祖)인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버지요, 히브리 신앙 공동체의 창시자이며(12:2;15:6), 다윗은 히브리 왕국의 실제적인 창시자요(삼하 7:12-16) 유대 역사상 가장 모범적이며 위대한 왕이었다. 마태는 바로 그러한 조상들의 혈통을 이은 예수야말로 유대인들이 고대(苦待)하던 절대적 통치자요 진정한 왕, 곧 메시야라는 사실을 주장하고자 했던 것이다(2:30). 이제 다윗의 왕권은 근 66세기 만에 영원히 회복된 것이다. (3)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백성을 대표하는 자임을 밝히기 위해서이다. 즉 마태는 이들 믿음의 조상(15:6;4:3)들이 유대 백성들을 대표하여 불린 바 있듯이(18:18;삼하 7:26) 그리스도는 모든 영적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표하여 하나님께 나아가 구속 사역을 통해 영영한 당신의 나라를 건설하실 분이심을(9:28) 묵시적으로 나타내고자 한 것이다.

󰃨 자손(휘오스). - 이 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할 때 독특하게 사용된 용어로써 단순히 출생의 근원을 밝히는 말(테크논)이 아니라 법적인 측면에서의 정식 후손을 가리킨다. 이 말은 때로 상징적으로 사용되어 '왕권'을 의미하기도 한다.

󰃨 예수 그리스도 - 역사적, 사명적 명칭(예수)과 직능적(職能的) 명칭(그리스도)이 결합된 구세주의 공식적 호칭이다. 이는 '예수야말로 구약 예언에 따라오신 메시야이시다'는 초대교회 성도들의 신앙고백을 담은 명칭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복합 명칭이 복음서에서는 좀처럼 사용되지 않다가(1, 18;16:21;1:1 등에만 사용됨) 변증적, 교리적 입장에서 기술된 서신서들에서 자주 사용된 것은 하나의 특징이라 하겠다. 한편, 여기서 '예수'란 이름은 천사의 수태 고지(受胎告知)때 마리아에게 주어진 이름으로서(21) 구세주의 인류 구속에의 사명이 내포된 이름이다. '그리스도'(*)는 헬라어로서 히브리어의 메시야, 즉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뜻한다. 그런데 복음서에서 '그리스도'란 용어가 자주 사용되지는 않았지만 거의 언제나 '메시야'란 말과 완전히 동일한 의미로 간주되고 있다(16:16). 그런데 구약 성경에서 '메시야'란 말은 어떤 특별한 직무 수행을 위해 기름부음을 받고 임명된 자를 가리키는 데 그렇게 기름부음은 받는 자는 대체로 왕(삼상 16:13)과 제사장(8:12) 그리고 선지자(왕상 19:16;61:1)였으며(그리스도는 이 모든 직무에 임명됨), 드물게는 이스라엘의 조상들(105:15), 이방의 왕 고레스(45:1) 등을 의미하는데도 사용되었다. 여하튼 다윗의 후손에 관한 구약의 예언들(삼상 2:10;삼하 7:12-16;2:2;105:15)의 횟수가 늘어감에 따라 '메시야'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백성을 대표하는 자, 그리고 약속된 종말론적 통치를 이 땅에 소개(introduction)시킬 자를 가리키는 고유 명사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본서는 특별히 예수께서 약속된 메시야적 왕이심을 강조하고 있다(23;2:2, 6;3:17;4:15-17;21:5, 9;22:42, 45;26:64;27:11, 27-37). 더욱이 마태가 1장에서만 '그리스도'라는 단어를 세 번이나 사용한 것은 예수가 구약의 예언에 따라 메시야가 되신 분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밝히고자 한 것이다. 한편 마태복음에서는 약 18회의 '그리스도' 명칭이 등장하는데 본절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이 직분을 나타내는 칭호로서가 아닌 단순한 이름(name)처럼 사용되고 있다. 이는 적어도 예수의 부활을 생동감 있게 체험했던 자들에게는 당연한 현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즉 그들은 그리스도가 구약의 예언에 따라 오실 '그분'만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오셔서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고, 또한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실존적 존재로서 이해했던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예수를 언급할 때 '예수 그리스도', '그리스도 예수' 혹은 '그리스도'로 점점 빈도 높게 사용하였다.

세계(비블로스 게네세오스)'탄생의 기록', '역사의 기록', '족보의 기록'(a record of genealogy, NIV)등의 뜻이다. 한편 이 말이 미치는 범위에 대한 견해는 (1) '족보의 기록'이란 번역을 따를 때 단지 족보 기록(1:1-17)에 국한된 내용에만 관계한다고 볼 수 있다(Calvin, Beza, Bruce). (2) 그리고 '탄생(birth or origin)의 기록'이라는 번역을 따르게 되면 본서의 서론(1:1-2:23) 부분 전체와 관계된 제목이라 할 수 있다(Plummer). (3) 마지막으로 '역사의 기록'이란 번역을 따르게 되면 마태복음 전체, 또는 복음서 전체의 서두와 연관된 서언으로 볼 수 있다(Eulthy, Zigab, Ebrard). 이 같은 표현은 70인 역(LXX)의 창 2:4에서 창조의 대략을 설명할 때(2:4-25)와 창 5:1에서 계속 이어지는 아담 자손의 족보를 열거하는 문두(文頭)에 사용되었다. 한편 '탄생'(*, 게네시스)이란 명사가 18절에 재 언급되기 때문에 1절에 제시된 표제어 형식의 표현은 그 내용 범위가 족보를 소개하는 이상의 포괄적 의미로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명사가 책 한 권내지, 어떤 장문의 문서 전체를 포함하는 표제어로 사용된 적은 한 번도 없다. 따라서 '비블로스 게네세오스'라는 말은 1, 2장을 한 단위로 묶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관련된 기록'으로 본 (2) 번의 주장이 가장 타당한 듯하다. 실로 구약이 세계의 발생 기원에 관한 책(창세기)으로 시작하고 있으나, 신약은 그 세계를 창조하신 성자 하나님의 '탄생 기원에 관한 책'으로 시작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족보의 위대성이 여실히 드러난다.

2절 아브라암 에겐네센 톤 이사아크 이사아크 데 에겐네센 톤 이아코브 이아코브 데 에겐네센 톤 이우단 카이 투스 아델푸스 아우투

성 경: [마1:2]

주제1: [예수의 족보와 탄생 과정]

주제2: [아브라함부터 이새까지의 계보]

󰃨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 예수의 족보는 선민 이스라엘의 합법적 조상이자, 처음으로 메시야 언약을 받았던 아브라함에게서 시작된다(12:3). 그런데 문제는 아브라함의 아들 중 이스마엘이나 기타 자식들(25:1-3)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고 오직 둘째 아들 이삭에게만 관심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언약에 따라 태어난 후손만이 메시야의 혈통을 이을 수 있다는 하나님의 선택적 의지를 반영한다(15:4;17:1-22;21:1-7). 한편 이삭의 출생은 소망이 단절된 죽음의 태()를 열고 출생했다는 점에서(11:11, 12) 사망의 권세를 깨치고 새 생명의 환희를 제공키 위해 탄생하신 예수의 출생을 예표(豫表)하기에 적절하다.

󰃨 낳고(겐나오) - 이를 번역하면 '...의 아버지라'(was the father of, NIV)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단어는 반드시 친자(親子)를 뜻한다기보다 그 혈통에 이어지는 직계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 말은 때로 '...의 조상이다', '...의 조상이 되었다'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본장의 족보 내에서도 이 원리가 적용되고 있다.

󰃨 이삭은...그의 형제를 낳고 - 마태는 이 이름들에서 족보 이상의 것, 즉 선택받은 나라의 역사를 요약하고 있다. 이삭, 야곱, 유다 그리고 다윗과 솔로몬(6)등이 장자 신분이 아닌 동생들로서 그리스도의 조상으로 선택받은 사실은 그리스도의 육적 신분의 탁월성이 아닌 하나님의 구속적 섭리의 독특한 방식, '낮은 자를 높이시고 슬퍼하는 자를 흥기(興起)시키는'(5:11;21:26 ) 하나님의 뜻에서 유래한다. 사실 야곱의 12 아들 중 혈육 상의 장남은 르우벤이었고, 야곱의 애정은 요셉에게로 많이 기울어졌지만, 하나님은 유다 지파를 들어 메시야를 일으키셨다. 실로 하나님의 선택과 그 은총은 인간적 혈통을 초월하여 진행된다(1:13). 특히 야곱의 열 두 아들 중에서 유다만이 족보에 이름이 오른 이유는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할 것'이라는 야곱의 예언(49:10)대로 그에게서 다윗 왕가가 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다와 함께 열 두 형제를 언급한 것은 (1) 12지파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의 전형적 모델이다. 이는 예수께서 12제자를 선택하여 천국 일꾼으로 사용하신 것과도 연관이 있다. (2) 유다에게서 나신 그리스도가 구약의 언약 공동체인 12지파 전체의 진정한 통치자이신 메시야이다. (3) 그리스도 안에서의 축복은 하나님이 당신의 교회로 모으시는 영적 이스라엘(야곱)의 모든 자손들이 공유(共有)할 것임을 나타낸다.

[히브리어 성경말씀 말라기 강해] 제사장들의 타락과 죄악(말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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