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하나님 말씀

[마태복음 산상수훈 예수님 말씀] 긍휼히 여기는 자(마 5:7)

베들레헴 2022. 1. 15.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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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마태복음 5장의 산상수훈 말씀의 팔복 중에서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자신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긍휼을 받는 복을 받게 됩니다. 이제부터 우리가 긍휼을 베풀 수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마 5 : 7)

 

마5: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서    론

Ⅰ. 긍휼히 여김의 뜻

  “긍휼히 여기다”는 말의 비슷한 뜻으로는 자비, 동정,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긍휼히 여긴다는 말은 단순히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 대하여 품는 연민이나 유감을 느끼는 정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서 그 사람의 입장에서 그의 마음으로 느끼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긍휼히 여김을 공감한다는 말로 표현하면 좋을 것입니다. 공감이란 사물을 다른 사람과 함께 경험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을 긍휼히 여긴다는 것은 공감하는 것 즉 그 사람과 함께 경험하고 함께 느끼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장 감동적인 긍휼은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사건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을 잉태했을 때에 요셉은 조용히 이혼을 하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천사가 꿈에 나타나서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한 사실을 요셉에게 전하면서 구약의 말씀을 인용하였습니다. “보라 처녀가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마 1:23)”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하여 육신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우리를 긍휼히 여기신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인간이 당하는 모든 고난을 친히 당하셨기에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고통과 사정을 다 공감하십니다. 그래서 히브리서에는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 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 4:15)”라고 말씀했습니다. 즉 주님께서는 우리와 같은 육신을 입고 인간이 당할 수 있는 모든 시험과 고난을 친히 당하심으로 우리의 모든 연약함을 완전히 공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도 예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신 것처럼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길 줄 아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다른 사람에 대하여 관대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 사람과 같이 생각하고 느끼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실 아무리 엉뚱하게 행동하는 사람도 그의 속에는 그렇게 행동하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터무니없이 의심하고 오해한다면 그는 지금까지 사람에 대한 실망과 상처를 경험한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화를 잘 내고 무례하고 거친 행동을 한다면 그의 마음속에는 어떤 근심이나 걱정이 있기 때문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을 함부로 평가하고 배척하고 비판하기 전에 먼저 그 사람의 마음과 심정 속에 들어가서 그의 입장에서 생각을 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긍휼히 여기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1장에 보면 이스라엘의 최고 종교지도자인 엘리 제사장의 실수가 나옵니다. 한나라고 하는 여인이 자식을 낳지 못해서 많은 괴로움을 당한 나머지 하나님의 전(殿)에 나아가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입술은 움직이지만 속으로 조용히 간절하게 기도하는 그 모습을 엘리 제사장이 보고 술 취해서 횡설수설하는 것으로 오해를 했습니다. 그래서 왜 술 먹고 하나님의 전에 오느냐고 책망했습니다. 그러나 한나는 자신이 술 취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자신의 소원을 간절히 아뢰는 중이라고 설명을 했습니다. 자세히는 소개하고 있지 않지만 엘리는 잘 알아보지도 않고 경솔히 판단하고 행동한 자신이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것은 그 사람의 입장에 같이 서서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멀리 하늘에서만 바라보시는 긍휼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의 모든 고통을 친히 다 당하심으로 공감하시고 위로하시고 구원해 주신 것처럼 우리도 죄와 허물이 있는 사람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서 그들을 용서하고 감싸주어야 할 것입니다. 질병이나 여러 가지 실패로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을 멀리서만 유감으로 생각하지 말고 그들의 입장에서 같이 아픔을 나누고 같이 고통을 이겨나가도록 돕는 긍휼히 여기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Ⅱ. 긍휼히 여기는 자의 복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는데 그 복은 긍휼히 여기는 그 사람이 긍휼히 여김을 받는 것입니다. 그것도 사람에게서 뿐만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도 긍휼히 여김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긍휼히 여김을 받는 것도 행복한 일인데 하나님에게서 긍휼히 여김을 받는 것은 너무도 복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실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을 절대로 필요로 하는 사람들입니다. 죄로 인하여 죽고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우리가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무엇입니까? 오직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을 받는 방법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은혜로 구원해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지옥에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우리가 긍휼히 여김을 받는 방법을 말씀해 주셨는데 그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것입니다. 한 번은 베드로가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형제가 나에게 잘못하면 몇 번을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쯤 하면 되겠습니까?’ 예수님은 ‘일곱 번뿐이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 주라’고 대답해 주시면서 일만 달란트 빚진 자가 탕감을 받았음에도 자기에게 불과 100 데나리온의 빚을 진 동료의 빚을 탕감해 주지 않음으로 자신도 탕감을 받지 못하게 된 사람의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마 18:21-35). 또한 구약에서도 긍휼히 여기는 자의 복을 말씀했습니다. “만일 네가 너희 중에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주린 자에게 네 심정(心情)을 동(動)하며 괴로워하는 자의 마음을 만족케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발하여 네 어두움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사 59:9하-11).

  우리는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이해하려고도 않고 관용하지도 않고 긍휼히 여기지도 않으면서 다른 사람은 나에 대하여 긍휼히 여겨주고 공감해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긍휼히 여김을 받으려면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사람이 되라고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를 가르쳐 주셨는데 기도의 내용에도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마 6:12)”라고 말씀하심으로 긍휼을 받으려면 긍휼을 베풀어야 함을 분명히 밝혀 주셨습니다.

 

결  론

  이 세상에서 어떤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까? 하나님과 사람으로부터 긍휼히 여김을 받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이웃으로부터 관용과 사랑을 받는 그런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복 있는 사람이 되려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먼저 남을 긍휼히 여기고 그 사람의 입장에서 같이 생각하고 이해하고 관용해 주어야 합니다. 이런 복 있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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