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하나님 말씀

[마태복음 성탄절 예수님의 말씀] 나신 이의 이름(마 1:18-25)

베들레헴 2022. 1. 15.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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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장에는 예수님의 탄생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셨습니다. 성령에 잉태하여 오셨기 때문에 죄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몸으로 오셨기 때문에 인성을 가지고 있고 원래 하나님이었기 때문에 신성도 있습니다. 

 

나신 이의 이름(마 1 : 18 - 25)

 

마1:1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마1:19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마1:20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마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마1:22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마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마1:24 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 아내를 데려왔으나

마1:25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서    론

  오늘 우리는 기쁘고 감격스러운 예수님 탄생의 아침을 맞았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성탄의 의미는 퇴색해가고 상업주의의 물결이 성탄의 참 의미를 휩쓸어가고 있습니다. “산타클로스”와 “선물”이라는 이름이 더 많이 들려지고 있습니다. 교인들 마저도 성탄의 진정한 의미를 잊은 채 TV에서 쏟아내는 왜곡된 선전에 미혹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는 다시금 성탄의 주인공인 예수님께로 우리 눈을 돌려야 합니다. 우리를 위해 오신 그분의 이름에 우리의 관심을 두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이 땅에 태어나신 그분의 이름을 다시금 생각코자 합니다.  “그분의 이름은 과연 무엇을 뜻하는가?” 이것이 오늘 우리의 주제입니다.

  성경에서 이름은 그 사람의 인격을 대표합니다. 이와 같이 오늘 나신 예수님의 이름도 그분의 어떠하심을 알려주는 표현입니다. 오늘 성경은 “예수”라는 이름이 하나님의 사자로부터 지어졌음을 말씀합니다. 성탄절을 맞아 오늘 우리는 이 땅에 태어난 이 특별한 아기의 이름을 통해 그분의 어떠하심을 알고자 합니다.

 

Ⅰ. 첫 번째 칭호인 “예수”는 예수님이 죄인의 구원자이심을 알려줍니다.

 “예수”란 이름은 우리의 구원과 관계된 이름입니다. “예수”란 뜻 자체가 “우리를 우리 죄에서 구원하실 분”이란 뜻입니다. 예수님을 잉태한 처녀 마리아는 요셉과 약혼한 관계였습니다. 그런데 처녀 마리아가 잉태케 되었습니다. 성령의 기이한 역사로 임신을 한 것입니다. 마침내 그녀와 정혼한 요셉이 그 사실을 알았습니다. 자기와 정혼한 마리아의 잉태는 요셉을 크게 번민하게 했습니다. 요셉은 어느 날 크게 고민하다 잠들게 되었습니다. 그날 밤에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아들을 낳을 텐데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천사는 그 이름의 뜻이 “구원자”임을 말해주었습니다.

  “예수”는 우리말로 “구원자” “구세주”라는 말입니다. 처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아기는 “예수”였습니다. 그 말은 그분이 “구원자”요 “구세주”였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건지실 구세주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태어날 아기의 이름을 미리 지어주셨는데 그 이름이 “구원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기의 이름을 “예수”라고 하심으로써 그 아기가 인류의 구원자요 구세주이심을 명백히 하셨습니다.

  사실 당시에 예수라는 이름은 흔한 이름 중 하나였습니다. 오늘날 믿음의 가정에서 자기 자녀들의 이름을 “은혜” “은총”이라고 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함을 표현하듯이 당시에도 자기들의 구원을 바라는 마음으로 자녀 이름을 “예수”라 하는 일이 흔히 있었습니다. 부모들은 태어나는 아기에게 “예수”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신앙을 표현했습니다. 구세주의 오심을 간절히 사모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태어나신 아기의 이름은 부모들이 지은 것이 아닙니다. 단지 부모들의 소원을 담은 이름도 아닙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사람에게로 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부모로부터 온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지어주신 이름입니다.

 “예수”라는 이름 자체가 하나님으로부터 왔습니다. 태어나시기 전에 지어진 이름입니다. 그리고 그 이름이 “예수” 즉 “구원자”이십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구원자”란 말입니다. 그러므로 태어나신 아기는 인류의 “구세주”이십니다. “구원자”이십니다. 하나님이 보내주신 유일한 구원자요 하나님께서 명백히 선언하신 구세주이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구세주 예수님”을 여러분의 구주로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한 이름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라는 이름으로 자기의 구세주를 분명히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에게 “예수”는 누구십니까? 여러분과 관계된 이름입니까? 여러분을 구원하신 이름입니까? 오늘 탄생하신 예수님이 바로 여러분 자신의 구주십니다. 하나님께서 그 이름을 “예수”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이름을 “예수”라 하여 이 사실을 명백히 알리셨습니다. 너무나 분명하고 명백한 이름입니다. 이름 자체가 “구원자”“구세주”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여러분 모두가 “예수”라는 이름의 뜻을 다시금 이해하며 믿음의 복된 자리에 굳건히 서시기를 축원합니다.   

Ⅱ. 예수님에 대한 두 번째 칭호인 “임마누엘”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알려줍니다.

  임마누엘이란 이름은 특별히 그분의 특별한 품위를 알려줍니다. 태어나신 아기가 “하나님”이시라는 뜻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임마누엘”이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마태는 예수님의 탄생을 예언의 성취라고 말씀합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마 1:23)”

  예수님의 탄생은 예언된 일이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주전 700여 년 전에 구세주의 탄생을 예언했습니다. 마태는 바로 이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사 7:14)을 인용한 것이었습니다.

  “임마누엘”이란 마태가 설명했듯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사람 중에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사람들 가운데 임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오심은 이 임마누엘의 성취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약속의 성취라는 것입니다. 마침내 예수님이 오심으로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이 이루어진 것이란 말씀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이 말씀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입니다.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임마누엘은 아직 미래의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임마누엘은 이루어졌습니다. 참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탄생으로 성취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탄생을 “임마누엘”이라 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 사건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이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셔서 사람들과 함께 사신 진정한 임마누엘의 사건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하나님의 오심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이 함께 하신 인류 최초의 사건이었습니다. 처녀 마리아의 몸을 통해 종의 형상을 가지시고 죄인의 모양으로 오셨습니다. 이 아기가 하나님이셨습니다. 이 아기가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셨습니다. 처녀 마리아가 나은 아기는 참 하나님이셨습니다. 참으로 기이하고 놀라운 일입니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았습니다. 이 아기가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이 인류와 함께 하신 신비한 탄생이었습니다. 하나님이신 아기는 아기에서 소년으로 소년에서 청년으로 성장해 가셨습니다. 그리고 고난 가운데 사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이 모든 삶과 죽음이 우리의 구원을 위한 일이었습니다. 우리를 죄에서 건지시려고 하나님이 이런 일을 하셨습니다.

  가히 믿어지지 않을 일들입니다. 우리가 무언데 하나님께서 그런 말로 다 할 수 없는 황송스런 일을 행하셨다니 말씀입니다. 참으로 믿기지 않는 일입니다. 그래서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습니다. 믿음 외에는 이것을 믿을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는 믿기 위해 믿어야 합니다. 그저 믿음의 방법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믿음 외에는 어찌할 수 없는 일이 성육신이며 임마누엘의 신비이기 때문입니다. 믿음 외에는 다른 무엇으로도 믿을 수 없는 신비요 경이가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오신 일이기 때문입니다. 임마누엘이란 이름은 신비스러운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결    론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무한한 신비를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임마누엘 예수님”은 기묘이십니다. 그분은 기묘자이십니다. 기이하고 묘하신 분이십니다. 신비에 둘러싸인 분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와 “임마누엘”이란 이름을 아십니까? 오늘 나신 이의 이름의 의미를 아십니까? 그렇다면 이 이름이 여러분과 무슨 관계에 있습니까? 그분이 여러분을 구원하셨습니까? 그 분이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까?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구원자이신 그 분이 여러분의 구원자사며 함께하시는 하나님이십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탄을 맞은 오늘 우리는 이 땅에 태어나신 그 분의 이름을 다시 상기하며 구원자이시며 참하나님이신 그 분 안에서 구원의 기쁨을 나누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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