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하나님 말씀

[아가서 6장 성경 주석강해] 신랑 신부의 사랑의 회복(아 6:1-13)

베들레헴 2024. 3. 16.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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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서 6장 성경 주석강해 설교 말씀은 신랑 신부의 사랑의 회복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부가 신랑을 찾아 나서고 있습니다. 우리도 신랑이신 예수님을 찾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찾지 못하면 인생에서 실패합니다. 우리는 주님을 만나서 영원한 구원을 얻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야 합니다. 아가서는 신랑이신 예수님과 신부인 성도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랑 신부의 사랑의 회복(아 6:1-13)

 

. 그리스도를 만날 장소 6:1-3

(1) 예루살렘의 여자들이 그리스도에 관하여 질문한다(1). 그녀들은 여전히 교회에 대하여 상당히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그녀를 지난번처럼 '여인 중 극이 어여쁜 자야'라고 부른다. 그녀들은 이제 그리스도에 대하여 좀 더 큰 관심을 보여 주고 있다. 너의 사랑하는 자가 어디로 갔는가...우리가 너와 함께 찾으리라. 만일 이 노래를 영적으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이 말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사랑은 경쟁자들에게 질투심을 일으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들은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로 그를 사랑하기를 원한다. 신부는 그에 대해 설명을 하고는 그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다. 그녀의 가슴속에 타오르는 불꽃이 발생했을 때 많은 사람들을 더럽힌다. 따라서 어떤 사람들의 경건한 열심도 '많은 사람들을 격동'시킬지도 모른다(고후 9:2).

(2) 이들의 질문에 대하여 신부가 대답하는 내용이 나온다(2,3). 이제 그녀는 그리스도가 어디에 있는지 확실히 알고 있다(2). "나의 사랑하는 자는 성중의 대로에서 발견할 수 없도다. 왜냐하면 거기는 시끄럽고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라. 그래서 그는 휴식 장소인 '자기 동산으로' 내려갔도다." 우리가 세상의 급격함을 싫어하면 할수록 우리는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더욱더 가져야 한다. 그는 자기 제자들을 동산으로 인도하여 거기서 자신이 사랑하므로 고통받으심에 대하여 증인이 되게 하신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울타리 쳐진 동산, 즉 그가 몸소 가꾼 그의 동산이다. 그리스도를 만나고자 하는 사람들은 그의 동산, 즉 교회에서 그와 만날 것을 기대해도 좋다. 그들은 그가 정하신 규례 안에서, 또한 그의 말씀과 성례식, 그리고 그가 항상, 즉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같이 하실 기도를 통하여 그를 섬겨야 한다.

그리스도가 그의 교회에 오실 때에는 그의 양무리를 먹이시기 위함이다. 그는 다른 목자들과 같이 울타리 없는 평원에서 먹이시는 것이 아니고 그의 동산에서 먹이신다. 그는 그의 친구들을 먹이기 위하여 오시며 또 그들로 인하여 기뻐하신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는 그를 경외하는 사람들을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그는 많은 동산을 갖고 계시다. 즉 각기 다른 크기와 형태를 가진 많은 교회가 있다. 그러나 그들이 일단 그의 것이면 그는 그들 중에 자신을 명백히 나타내시며 그들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신다. 그는 백합화들을 하나하나 따서는 그 앞에 다 모으신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 한꺼번에 추수하실 것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자에게 불친절하게 대했으며 그는 당연히 그녀에게서 떠나갔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실수하거나 그리스도께서 눈살을 찌푸리시는 경우에라도 그리스도와 성도 간에 항상 굳게 유지되어 온 언약을 새로이 할 만한 경우가 발생한 것이다(89:30-35). "나는 내 임무에 부주의하고 게을렀나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해 확신할 수 없을 때라도 믿음으로 그를 따라야만 한다. "내가 전에 받곤 했던 위로를 지금 느끼지는 못하지만 나는 계속해서 그리스도는 내게 속하였고 나도 그에게 속하였다는 사실을 믿고 의지하리이다."

. 그리스도를 다시 찾음 6:4-10

이제 그리스도께서 자비로우시게도 신부에게 돌아오시사 그녀의 모든 불친절했던 것들을 다 용서하시고 잊어 주신 것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그가 그녀에게 매우 부드럽고 공손하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1) 그는 매우 상냥하게 말한다(4). 내 사랑아 너의 어여쁨이 디르사같고. 디르사는 므낫세 지파의 한 성읍으로 그 이름은 "기쁨" 또는 "기쁘게 받아들여짐"을 의미한다. "너는 솔로몬이 아름답게 지은, '조밀한 성읍과 같이 건설된' 예루살렘 같이 아름답구나"(122:3). 예루살렘은 그 안에 가장 아름다운 것들로 채워진 거룩한 성으로서 교회가 그와 비교되는 것은 당연하다. 복음 교회는 '위에 있는 예루살렘'이며(4:26), '하늘의 예루살렘'이다(12:22). 하나님께서는 그 안에 자신의 성소를 두시는데 특별한 의미로는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것은 '예루살렘같이' 곱고 또 그럼으로써 '기치를 벌인 군대같이' 엄위하다.

(2) 그는 비록 잠시 동안 그녀에게서 떠났었지만 여기서 다시 그녀에 대한 사랑을 고백한다(5). 네 눈이 나를 놀래니 돌이켜 나를 보지 마라. 어떤 이들은 이 말을 '나를 향하여 눈을 돌리라'라고 해석한다. "신뢰와 사랑의 눈을 내게 돌리라. 왜냐하면 그것이 나를 고양시켜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를 바라보며 위로함을 기대하라." 우리가 하나님께 자비의 눈길을 우리에게 돌리실 것을 요구할 때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복종의 눈길을 하나님께 돌릴 것을 요구하신다.

(3) 그는 그녀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지난번에 말한 것과(참조. 4:1-3) 거의 똑같이 다시 한 번 더 반복한다. 그녀의 머리털과 이와 뺨에 대하여 다시 말하는데(5-7) 이는 그가 예전에 갖고 있던 것과 똑같은 사랑을 여전히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함이다.

(4) 그는 그녀에게서 다른 사람들의 모든 아름다움과 완전함을 보았다(8,9). 왕후가 육십이요 비빈이 팔십이요 시녀가 무수하되. "왕비는 에스더와 같이 아름다움으로써 왕실의 존엄성에 합당한 여성들이네 모두 60명이나 되고 비빈들은 80명이나 되지만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는 하나' 곧 거룩한 한 사람 뿐이로구나." 그녀는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 뛰어나다.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 살펴보라. 자기를 현명하고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자들의 나라와 법정, 의회를 두루 살펴보아도 그리스도의 교회와 비교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자신의 업적과 아름다운 언어와 활동력으로 인해 존경받는 특별한 사람들이 있기도 하지만 거룩함의 아름다움은 다른 어떤 아름다움보다 뛰어나다. "비록 많은 특별한 교회가 있어 어떤 것은 웅장하고 어떤 것은 그렇지 못하며 어떤 것은 오래되고 어떤 것은 그렇지 못하지만, 그리고 또 많은 성도들이 있어 어떤 이들은 풍성한 은사와 재능을 갖추고 있기도 하지만 이들은 모두 한 가지로 교회를 구성하고 있으며 전체 중의 한 지체일 뿐이라. 그 전체란 곧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니라." 그리스도는 교회의 중심이시다.

(5) 그는 자신뿐 아니라 그녀를 알고 있는 모든 자들에게서 그녀가 얼마나 귀히 여김을 받고 있는지 보여 준다. 그는 그 어미의 외딸이요, 그 낳은 자의 귀중히 여기는 자로구나. 솔로몬이 자신을 '나도 내 어미 보기에 유약한 외아들이었노라'(4:3)라고 말했던 것처럼 그녀도 여기서 유일한 딸로서 사랑스러운 자로 표현되어 있다. 그리스도의 견지에서 세상의 모든 왕국과 그들의 영광은 교회와 비교하여 볼 때 아무것도 아니다. 그녀는 그녀의 동료 모두에게서, 즉 그녀보다 못한 예루살렘의 여자들 뿐만 아니라 왕후와 비빈들에게도 칭송을 받는다. 그들은 그녀를 경쟁자로 질투할만한 충분한 조건을 갖춘 자들이었으나 모두 그녀를 '칭찬'하고 좋게 말한다. 올바른 판단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의 백성들은 가장 뛰어난 사람들이라고(겉으로는 무어라 얘기할지는 몰라도) 마음속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찬사와 호의를 보낼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여호와를 경외하며 영광을 돌리는 자들을 매우 기뻐하시고 그의 지극히 작은 자라도 거스리는 사람을 책망하신다.

(6) 그는 다시 한번 그녀에게 보냈던 찬사를 반복하며 자기고 그것에 동의한다(10). 아침빛같이 뚜렷하고 달같이 아름답고 해 같이 맑고 기치를 벌인 군대같이 엄위한 여자가 누구인가. 이것은 세상에 있는 교회에게와 마음에 은혜를 품고 있는 자들에게 공히 적용되는 질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빛이며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 족장 시대의 교회는 처음 메시야에 대한 약속이 주어졌을 때 아침빛같이 뚜렷하여졌었고 이 어두운 세상에 높은 곳으로부터 오는 봄날이 임하였었다. 유대 교회는 달같이 아름다웠다. 의식법은 완전한 빛이 아니고 반사에 의해서 빛나는 것이다. 그것은 아침이 되지 않았거나 의의 태양이 아직 떠오르지 않았다고 표현될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교회는 해같이 맑으며 흑암 중에 있는 자들에게 굉장한 빛을 비추어 준다. 교회와 성도들의 아름다움은 '기치를 벌인 군대같이' 엄위한 것이다. 이 세상의 교회는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진을 친 것 같은 일종의 군대이다. 그것은 항상 전쟁하는 상태로서 적들의 한가운데서 그들과 끊임없이 싸움을 하도록 되어 있다. 성도들은 이 군대의 병사들이다. 교회는 기치를 갖고 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바로 기치이다(11:12). 그것들은 모두 집합되어서 명령을 따르며 엄격한 훈련을 받는다. 이것이 적들에게는 큰 공포가 된다. 교회는 순전함을 지킬 때 존귀함과 승리를 얻게 된다. '달같이 아름답고 해같이 맑을 때' 그들은 그야말로 위대해지고 감히 넘볼 수 없게 된다.

. 그리스도가 그녀에게서 얻는 큰 즐거움 6:11-13

그리스도께서는 신부에게 돌아와 그간의 불화를 깨끗이 회복하고는 불화했던 시절과 새로 다시 화목케 된 후의 전말을 이야기한다.

(1) 그가 신부된 교회에서 떠나셨을 때조차도 그의 동산에서 눈을 돌리지 아니하시고 계속 돌보셨다(11). 골짜기의 푸른 초목을 보려고...내가 호도 동산으로 내려갔을 때에. 그는 여전히 자신의 소유물에 대해 관심을 두셨다. 그가 시야에서 사라졌을 때에도 그는 동산을 벗어나지 아니하시고 '포도나무가 순이 났는가' 살펴보신 후 순이 빨리 나오도록 하기 위하여 필요한 모든 일을 하셨음에 틀림없다. 또한 그는 '석류나무가 꽃이 피었는가'를 살펴보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영혼에 은혜의 선한 역사가 일어나 거룩한 사랑과 소망이 처음 싹이 트는 것을 보시고는 마치 우리가 봄에 첫 꽃망울을 보고 기뻐하듯 그것들을 매우 기뻐하신다.

(2) 그는 그것에 만족하기를 오랫동안 하시지 않고 교회가 그를 잃고 슬퍼하는 것을 들으시고는 마음이 움직여 갑자기 교회로 되돌아가시려는 강한 충동을 받았다(12). 부지중에 내 마음이 바로 내 귀한 백성의 수레 가운데 이르게 하였구나. "더 이상 떨어져 있을 수가 없어서 방금 내 사랑에게 다시 날아 되돌아오기로 결정하였노라." 이제 신부는 그가 자기의 애통하는 소리를 들으셨고 귀히 여기시는 백성의 수레처럼 되신 것을 깨닫는다. 수레는 그들의 아름다움과 신속함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의 백성들은 자발적으로 행하는 백성이 되어야 한다. 만일 그들이 계속해서 그리스도를 찾고 그를 갈구한다면 비록 그가 떠난 것처럼 보이는 때일지라도 그는 정하신 때에 그들에게 다시 돌아오실 것이다.

(3) 그는 그녀에게 돌아와서, 낙담하여 괴로워하고 있는 그녀도 그에게 돌아오기를 친절하게 권고한다. 그녀는 사랑하는 자가 돌아왔다는 사실로 위로를 얻는다(13). 여기서 교회는 '술람미 여자'로 불리어진다. 이것은 수넴성에 살고 있는 여자를 수넴성 여인으로 부르는 것처럼 그녀가 태어나 살고 있는 '살렘'에서부터 나온 말이다. 하늘나라는 성도들이 태어나 시민권을 얻은 살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돌아오라는 요청을 받는다. 배반한 죄인들을 계속해서 부를 필요가 있는 것처럼('돌아오고 돌아오라' 너는 왜 죽으려 하느냐) 불안한 성도들도 계속해서 불려질 필요가 있다. "돌아오고 돌아오라. 너는 왜 그리 약해져 있는가?" 다시 말하면 "오 나의 영혼아 너는 왜 낙담하느냐?"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녀가 돌아왔을 때 그녀는 얼굴을 보여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우리로 너를 보게 하라. 슬퍼하는 사람처럼 더 이상 얼굴에 수심을 띄우지 말라.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백성이 명랑하고 겸손한 확신을 갖는 것을 기뻐하신다. 따라서 그들을 즐겁게 보이도록 만드신다. 그녀의 얼굴에서 무엇이 보여져야 하느냐에 대하여 짤막한 설명이 나온다. 너희가 어찌하여 마하나임의 춤추는 것을 보는 것처럼 술람미 여자를 보려느냐. 이것은 곧 "술람미 여자에게서 무엇을 보려느냐"라는 질문이고 "마하나님의 춤추는 것을 보는 것처럼"이 그 답이다.

1) 어떤 이들은 그녀가 자신에 대하여 이야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말하기를 "당신은 술람미 여자에게서 무엇을 보려 하시나이까? 볼만한 것은 하나도 없고 단지 마하나임, 다시 말해서 군대가 전쟁을 벌여 피와 학살만 남은 것과 같은 것만을 볼뿐이나이다." 행순하는 자들이 그녀를 상하게 하였었다. 따라서 그녀는 얼굴에 그로 인한 상처를 그냥 가지고 다녀서 흡사 싸우기라도 한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전에 일광에 쬐어서 거무스름하므로 보지 말라고 말했었지만(참조. 1:6) 이제 "나는 피투성이오니 보지 마옵소서"라고 말한다.

2) 다른 이들은 그녀의 사랑하는 자가 그녀를 설명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네게 술람미 여자에게서 무엇을 볼 것인지 얘기하여 주리라. 너는 두 개의 군대 혹은 같은 군대의 두 부대가 선별되어 항오를 짓고 있는 것 같은 장대한 장면을 볼 것이라." 그들은 '기치를 벌인 군대' 일뿐만 아니라 그 위엄이 전보다 갑절로 된 두 군대이다. 그녀는 야곱이 보았던 두 군대, 즉 성도들의 군대와 그 성도들을 수종 하는 천사들의 군대인 마하나임과 같다(32:1,2). 그러므로 교회는 싸워 승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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