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168장 하나님의 나팔소리
<최후의 대심판> 계 20:7-15, 살전 4:16-18
서론 : 본 찬송가의 작시·작곡자는 같은 한 사람으로 미국 뉴욕주 출신의 제임스 밀튼 블랙(J.M. Black 1856-1938)인데, 그는 82세까지 장수하며 1,000여 곡의 찬송을 작시·작곡하였고, 그가 이 찬송을 짓게 된 작은 동기는 37세 되던 해 교회를 가다가 길가에 한 남루한 모습의 15세가량의 소녀를 보고 전도하여 옷을 사 주었더니 열심히 교회 봉사를 하였다. 그러던 어느 주일 밤, 청년회 헌신 예배에 호명을 하는데 공교롭게도 이 소녀가 병으로 결석하여 대답을 못 하였다.
이때 불현듯 "만약 마지막 날 최후 심판 마당에서 생명 책에 내 이름이 없어 부르지 않아 이 소녀처럼 대답을 못 한다면…"하고, 뜨거운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하나님 그 나라에 가서 내 이름이 호명될 때 크게 대답할 수 있도록 하소서"라고 하면서, 이에 맞는 찬송가가 없어서 "내가 쓰고 작곡하리라"라고 집에 돌아와, 곧 시를 쓰고 곡을 붙였는데 15분밖에 안 걸렸다. 지금까지 글자 한 자, 음정 하나 수정한 일이 없이 그대로 불리는 명작 중에 명작 찬송이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살전 4:16-18)고 하여 재림과 심판을 우리에게 경고하신다.
1. 심판은 확실하다.
마태복음 25장의 삼대 비유(열 처녀, 달란트, 양과 영소 나눔)는 모두 심판을 상징하는 비유라고 할 수 있다. 특히 31절에 보면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라고 하였으니 우리는 이를 명심하자.
롬 14:10에도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하였고,
히 9:27에도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하였고,
계 20장 본문 끝에 보면, 크고 흰 보좌 앞에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심판받는 모습이 소개되고 있다.
우리의 공동 신앙고백인 사도신경을 보아도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라고 하여 우리의 신앙 신조 중에 심판이 아주 중요한 위치에 속한다.
기독교뿐 아니라, 일반 다른 종교나 문화사상·철학사상에서도 상선벌악의 원리를 많이 주장하고 있다. 또한, 이는 우리 인간의 도덕성이 실증하는 일반 계시에서도 찾을 수 있는 진리이다. 왜 최후 심판이 반드시 있겠느냐, 또 있을 것인가? 이것은 매우 진진한 연구 과제이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는 이러한 공의가 실현되기 힘들다. 그러나, 인생의 생은 이 세상뿐 아니라, 내세와 그다음 기회가 남아 있다고 본다. 물론, 이 세상에서 범죄 하면 어느 정도 하나님의 형벌이 있다.
가령, 사람이 범죄 하면 제일 먼저 양심의 심판과 형벌이 있고, 또 세상 사람들의 여론의 심판을 받게 되고, 정신적으로 번민과 고통이 자심하니 벌써 수벌 상태다. 또한 국가적으로도 재판을 받아 벌금을 물거나 징역을 살게 마련이다. 그러나, 사실 국법으로 인한 형벌은 극소수이고 또 불공평하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에게 직접 질병과 천변 지변과 전쟁으로, 자손에게 유전으로 할 때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공의는 이 세상에서 완전히 시행하시는 것은 아니다. 대개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도 죄를 심판하신다는 것을 알리리 만큼 잊어버리지 않으리만큼 자주 형벌을 내리시고, 또 내세에 꼭 심판이 있겠다는 것을 알릴 정도로 하시는 것뿐이시다.
2. 최후 심판의 광경은 어떤가?
최후 심판의 광경은 우리가 성경을 통하여 대략 짐작한다. 이 최후 심판은 세계적이요, 일반적이다. 이 뜻은 어느 누구나 이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이다. 무론 대소하고 그 앞에 서지 않을 자는 한 사람도 없다. 천사들 외에는 방청객은 전혀 없고 다 피고의 입장에서 심판을 받을 것이다. 여기에 심판장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이 사실은 우리 성도들에게 얼마나 다행하고 큰 위로가 되는 일인지 알 수 없다. 예수님이야 말로 완전하시고, 공정하시며, 실수가 없으신 심판장이기 때문이시다.
일반 사회의 세상 재판은 죄인이 죄인을 심판하기 때문에 모순이 많다. 거기에는 오판도 있고, 친면 따라 뇌물 수수 관계로 인하여 불의의 판결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사람들이 하는 일은 고의든 불찰이든 잘못이 생기게 마련이다. 대개 지금도 법원에 가보면 담벼락 위에 '저울대'를 아로새긴 것들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기울지 않고 공정하게 법을 운영한다는 상징인 것이다. 공정한 판결이면 왜 불복 상소를 하며, 진정 사태가 벌어지겠는가?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전지전능하시니 참되고 공정한 심판을 하실 것이다. 가장 완전하고 세밀한 재판을 하실 것이다. 사람들이 말로, 행동으로, 생각으로 지은 죄까지라도 다 옳게 판단하신다. 롬 2:16에는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신다고 하였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심판하시는가?
3. 사람이 말한 대로 심판하신다. <약 5:9-10>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자가 문밖에 서 계시니라.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라고 하였다. 유 1:15절에 보면 "이는 뭇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또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라고 하였으니, 죄인들의 강퍅한 말들이 모조리 심판의 조건들이 될 것이다.
또 마 12:36-37에는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라고 하였다. 그런고로 자기 자신의 한 말이 "의롭다, 죄있다"가 스스로 판결이 생겨진다. 사람들마다 말하는 것은 힘도 안 들고, 미천도 안 든다고 생각하여 책임 없이 함부로 하는 폐습이 많다. 그러나, 한 번 입에서 나온 말은 다시 거두어 드릴 수 없고 취소할 수 없다. 그런고로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
옛날에는 한 번 말한 것이 지나가면 그뿐인 줄 알았는데, 근대에는 레코트에 취입을 하거나 녹음테이프기에 수록을 하거나 하면 오래도록 보관된다. 세상 과학의 기계 힘으로도 사람의 말한 것을 보존시키거늘, 하물며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말한 것을 기억하고 계시니 어찌 피할 수 있으랴! 하나님을 모독하고, 주 예수님을 저주하고, 선한 사람들을 음해하고, 악담과 저주와 거짓말, 음담패설, 누추하고, 간사하고, 얄밉고 온갖 더러운 말들의 책임을 반드시 치를 때가 오나니, 곧 심판 때이다.
4. 사람의 행한 대로 심판하신다. <계 2:12>
계 2:18-29에 보면,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한 말씀 중에 이세벨을 용납하여 음행한 자들에게 회개치 아니하면 환란 가운데 던지겠다고 경고하시면서, 사망으로 그의 자녀들을 죽이겠다고 하시고,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시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고 하셨다. 또 롬 14:12에는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 하리라"라고 하였으니, 남들이 고발하여 당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행한 일을 자기가 직접 자백할 수밖에 없다.
계 20:12에 보면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 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라고 하였다. 생명 책에는 오기가 없으리니 이야말로 공정 무사하다. 하나님의 영안은 살피시지 못함이 없으니 홀로 행한 일이나, 어두운 밤에 행한 일이나, 밀실에서 한 일까지 다 아신다. 세상에서도 무허가 행위, 밀수출입, 암거래까지 다 살펴서 적발되고 드러나는 판인데, 어찌 하나님의 전능하신 불꽃같은 눈길을 벗어날 자가 누구리요!
5. 사람의 생각한 대로 심판하신다. < 시 7:9>
시 7:9에 보면 "의로우신 하나님이 사람의 심장을 감찰하시나이다."라고 하였으니, 마음속에 생각하였던 모든 내용들을 보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예언하기를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와 행실대로 보응하나니"(렘 17:9-10)라고 하셨다.
사람의 말과 행동은 밖으로 나타나는 일들이지만 생각은 속에 숨겨져 있으니 사람으로서는 더욱 알기 어려운 것이다. 옛 글에도 "^이면^"이라(어두운 방 안에서 마음을 속이는 일도 하나님의 눈은 번개같이 살피신다)고 하였는데, 현대 과학은 신체 속에 숨겨져 있는 비밀 내용을 엑스(X) 광선으로 살펴 적발하는 세대다. 하물며, 하나님의 거룩하신 X광선 앞에 무슨 비밀이 용납되리오, 다 드러나고 만다.
6. 나도 알지 못하는 죄까지도 심판받는다.
나는 전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지은 죄, 나로서는 도저히 기억에 남아 있지도 않는 죄, 나로서는 죄라고 생각조차 못 했던 죄까지라도 다 드러나서 심판받는다. 이 일은 두려운 사실이요, 떨리고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아무리 핑계되려야 될 수 없고, 아무리 변명한다고 해도 하나도 들어줄 수 없는 일들이다. 그것은 심판장 되시는 예수님께서 되는 대로 심판하시지 않는 사실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오직 예수님만은 확고부동한 증거에 의하여 할 것인데, 어찌 감히 부인이나 변명이 있을 수 있으리오.
결론 : 그러나 용서받은 자 구원받아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한다. 나팔은 힘차게 불고, 주님은 구름 가운데 서시고, 우리를 영접해 주실 것이다. 과연 누가 구원받는가? 본문에 있는 대로 책들이 있다고 하였다. 한 사람의 한 권씩의 각기 각 책이 있다. 각기 그 사람의 평생 지낸 행적의 일기가 기록되어 있다. 자필로 자서한 평생의 기록이니 그야말로 분명한 사실이다. 그저 황송하거나 죄송한 것뿐이다. 두렵고 떨릴 뿐이다.
그렇지만, 한 가지 위로를 받는 것은 또 다른 책이 있다. 그 책 표지에는 생명 책이라고 쓰였다. 그 생명 책에 녹명된 사람만은 자기가 쓴 책에 아무리 더러운 기록과 무서운 사실이 기록되었어도 그리스도의 피로 속죄함을 받았다고 하였다.
사죄의 도장이 찍혀 있으니 안심이다. 아멘 할렐루야!
과거의 무서운 죄가 다 탕감되었고, 도말되었다. 용서받았다는 자취는 있으나, 내용은 알지 못한다.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밖에 없네
다시 정케하시는 예수의 피밖에 없네.
이제 죄속함 입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대심판에서 무사히 통과 합격하여 우리 주님 모시고 길이 살겠네. 길이 살겠네. 저 생명수 시냇가에 길이 살겠네.
[마태복음 산상수훈 예수님 말씀] 믿음과 돈(마 6: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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