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6장에서는 예수님이 물 위를 걸으신 이적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를 건너다가 풍랑을 만났다. 괴로워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물 위를 걸어서 만나러 오셨다. 하나님은 성도가 고통받는 것을 아시고 구원해 주신다.
예수님이 물 위를 걸으신 이적(요 6:16-26)
성 경: [요6:16] 호스 데 옵시아 에게네토 카테베산 호이 마데타이 아우투 에피 텐 달랏산
저물매 제자들이 바다에 내려가 - 그들이 예수님의 명령을 받들어 이렇게 하였다(마 14:22). 그가 그렇게 그들을 지도하신 목적은, 그 자신이 홀로 떨어져 기도하시기 위한 것이었다(마 14:23). 그는 많은 무리가 따르는 때를 도리어 위기(危機)로 보시고 기도에 열중하셨다. 이것이 그의 특이하신 점이고, 사람들에게 모범을 보여 주심이다. 사람들은 인기가 올라갈 때에 그것을 성공으로 알고 안심한다.
성 경: [요6:17] 카이 엠반테스 에이스 토 플로이온 에르콘토 페란 테스 달랏세스 에이스 카페르나움 카이 스코티아 에데 카이 에게고네이 카이 우크 엘렐뤼데이 프로스 아우투스 호 이에수스
예수는 아직 저희에게 오시지 아니하셨더니 - 그가 아직 저희에게 오시지 않은 것은 무의미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이때에 제자들의 신앙을 연단시키려고 하셨다. 제자들은, 이때에 예수님 없이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죽을 지경에 빠졌다가 예수님의 권능으로 구원받게 될 것이다. 그들이 그때에 예수님을 더 믿었어야 될 것이었다.
성 경: [요6:18] 헤 테 달랏사 아네무 메갈루 프네온토스 디에게이레토
큰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 - 지중해보다도 682 피드나 낮은 갈릴리 바다에는 사방 높은 언덕사이의 골짜기로부터 강한 바람이 뜻밖에 불어오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제자들이 예수님 없이 배를 타고 풍랑 중에 있는 것은, 마치 교회가 세상에서 환란을 당하고 있음과 같다. 예수님은 얼마동안 그 배로 찾아오시지 않았으나, 마침내 오셔서 풍랑을 잔잔케 하셨다. 그와 같이, 환란 중에 있는 교회도 마침내 주님의 권고로 말미암아 평안해진다.
성 경: [요6:19] 엘렐라코테스 운 호스 스타디우스 에이코시펜테 에 트리아콘타 데오루신 톤 이에순 페리파툰타 에피 테스 달랏세스 카이 엥귀스 투 플로이우 기노메논 카이 에포베데산
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 여리쯤 가다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 어떤 학자들은, "바다 위"란 말이 해안을 의미한다고 하며, 예수님께서 물 위로 걸러 오신 것이 아니고 바닷가의 언덕으로 걸어오셨다는 말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기사(記事)는 이적을 기록하는 것임이 분명하다. 그 이유는, (1) 제자들이 두려워한 까닭이며, (2) 공관 복음의 동일한 기사가 이적을 기록하는 심리를 명백히 보여주기 때문이다(막 6:29; 마 14:26).
성 경: [요6:20] 호 데 레게이 아우토이스 에고 에이미 메 포베이스데
가라사대 내니 두려워 말라 하신대 - "내니"란 말은, 예수님께서 그때에 자신의 현림(現臨)하심을 가리킬 뿐 아니라,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계시(啓示)하심이다. 하나님이 계신 곳에 안전과 평안이 있다.
성 경: [요6:21] 에델론 운 라베인 아우톤 에이스 토 플로이온 카이 유데오스 토 플로이온 에게네토 에피 테스 게스 에이스 헨 휘페곤
배는 곧 저희의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 여기 "배는 곧"이란 말을 주목해야 한다. 예수님이 함께 하시므로 말미암아 또 다시 배는 초자연적으로 순조롭게 가게 되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자연계를 통솔하실 수 있는 권능으로써 자기가 하나님 아들이심을 증거 하셨다(마 14:33 참조).
성 경: [요6:22] 테 에파우리온 호 오클로스 호 헤스테코스 페란 테스 달랏세스 이돈 호티 플로이아리온 알로 우크 엔 에케이 에이 메 헨 에케이노 에이스 호 에네베산 호이 마데타이 아우투 카이 호티 우 쉬네이셀덴 토이스 마데타이스 아우투 호 이에수스 에이스 토 플로이아리온 알라 모노이 호이 마데타이 아우투 아펠돈
이튿날 바다 건너편에 섰는 무리가 배 한 척 밖에 다른 배가 거기 없는 것과 또 어제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 배에 오르지 아니하시고 제자들만 가는 것을 보았더니 - 곧, 떡 먹은 무리들은, 예수님께서 아직 바다 이 편(저희 있는 곳)에 계신 줄 알고 안심한 적이 있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그들의 생각에는, 제자들만이 거기 한 척 밖에 없었던 배를 타고 건너갔고, 바다 이 편에 남아 계셨던 예수님은 아직 머물러 계시는 줄로 알았다. 그런데, 뜻 밖에도 예수님도 거기 계시지 않은 사실을 그들은 발견하게 되었다(24절).
성 경: [요6:23] 알라 데 엘덴 플로이아리아 에크 티베리아도스 엥귀스 투 토푸 호푸 에파곤 톤 아르톤 유카리스테산토스 투 퀴리우
(그러나 디베랴에서 배들이 주의 축사하신 후 여럿이 떡 먹던 그곳에 가까이 왔더라) - 이 구절 말씀은, 그 무리가 어떻게 바를 건너가게 된 사실을 알게 하는 것이다. 본래는 배 한 척 밖에 없었으나, 그 뒤에 여럿이 왔으므로 그들이 그 배 편들을 이용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여기 알려진다. 이런 자세한 기록을 보아서도 이 사실에 대한 목격자였던 사도 요한이 이 책을 기록한 것이 분명하다.
성 경: [요6:24] 호테 운 에이덴 호 오클로스 호티 이에수스 우크 에스틴 에케이 우데 호이 마데타이 아우투 에네베산 카이 아우토이 에이스 타 플로이아 카이 엘돈 에이스 카페르나움 제툰테스 톤 이에순
곧 배들을 타고 예수를 찾으러 가버나움으로 가서 - 이 말씀을 보니, 그들은 예수님을 찾는 일에 열중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님을 바로 알지는 못하였으니, 그것은, 예수님을 찾는 그들의 동기가 불순한 것을 보아서 알 수 있다. 예수님을 찾는 동기는, 예수님의 말씀이 바로 전해지는 여부에 중대한 관계를 가진다(Grosheide).
성 경: [요6:26] 아페크리데 아우토이스 호 이에수스 카이 에이펜 아멘 아멘 레고 휘민 제테이테 메 우크 호티 에이데테 세메이아 알르 호티 에파게테 에크 톤 아르톤 카이 에코르타스데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 "진실로 진실로"란 말은, 그 장차 말씀하시려는 사실의 중대성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 무리가 예수님을 찾은 이유는, 그를 영적 메시아로 바로 안 까닭이 아니다. 그들은 떡을 위하여 따라다녔던 것이다. 곧, 그들은, 5천 명 이상의 무리에게 떡 먹이신 그 이적에서 그리스도의 증표를 깨달음보다 물질적인 떡에 흥미를 가졌다. 인간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육체적 만족을 위하는 때가 많다. 그것은 인간의 부패성의 결과이다.
[히브리어 원어성경 잠언 6장] 하나님 말씀에서 떠나지 말라(잠6: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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