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5장 성경주석강해 설교 말씀은 12년 동안 혈루증에 걸린 여인을 예수님께서 치유해 주셨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었는데 예수님이 살려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영육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12년 된 혈루증 여인을 치유(막 5:1-43)
Ⅰ. 군대 귀신을 쫓아 내심 5:1-20
우리는 이 본문에서 그리스도께서 귀신 들린 사람으로부터 귀신을 내쫓는 예를 볼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광풍을 지나 '바다 건너편에 이르러' 이곳으로 나아오시자마자 하셨던 일은 사단의 손에서 이 가련한 사람을 구하는 것이었다.
1. 이 가련한 사람이 처했던 비참한 상태(1-5)
그는 더러운 귀신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미쳐 날뛰었다. 그의 상태는 그리스도께서 고치셨던 어떤 귀신 들린 자들보다도 더 심했던 것 같다.
(1) 그 사람은 무덤 사이에, 즉 죽은 자들이 묻힌 무덤 사이에 거처하였다. 그 무덤들도 도시에서 떨어진 거친 터(욥 3:14)에 있었다. 아마도 귀신이 그를 무덤 사이로 몰아낸 것 같다. 무덤을 만지면 부정하게 되는 것이었다. 더러운 귀신은 사람들을 더러운 집단으로 몰고 감으로써 계속해서 그들의 마음을 지배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의 영혼을 사단의 권세에서 구해낸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지키신다.
(2) 그는 힘이 매우 세어서 아무도 그를 제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아무나 맬 수 없게 된다(3절). 밧줄로도 그를 매 놓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쇠사슬과 쇠고랑으로도 그를 매 놓을 수 없었다(3, 4절). 이 일은 마귀가 지배하는 영혼들의 비참한 상태를 나타낸다. 일부 악명높은 고의적인 죄인들은 이 미친 사람과 같다. 율법의 명령과 저주들은 죄인들을 악한 길에서 막아주는 쇠사슬과 고랑 같은 것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 맨 것을 끊고 그 결박을 벗어버리는 것이다 (시 2:3).
(3) 그는 자기 자신과 그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공포와 고통의 대상이 되었다. 마귀는 자기에게 포로가 된 사람들의 잔인한 주인이다. 그러므로 이 가엾은 사람은 '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 지르며 돌로 제 몸을 상하고 있었다'(5절). 사람이 이성을 잃고 사단의 지배를 받으면 얼마나 비참하겠는가?
2. 그리스도에 대한 그의 호소(6)
그가 멀리서 예수를 보고 해변에 상륙한 예수에게 달려와 절하였다. 그는 보통 격분한 상태로 다른 사람들에게 달려갔지만 그리스도에게는 존경심을 품고 달려갔다. 쇠사슬과 고랑으로도 할 수 없었던 일을 그리스도는 그의 보이지 않는 손으로 행하셨던 것이다. 그러자 그의 격분이 갑자기 진정되었다. 그리고 그 가련한 사람이 와서 그리스도에게 절했다. 이것은 그가 그리스도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느꼈던 바로 그 순간에 그의 몸 안에서 그를 지배했던 사단의 권세가 일시적으로 사라졌기 때문에 일어난 일 같다.
3. 마귀가 그리스도에게 느꼈던 두려움(7)
그 사람이 달려와 절했지만 (그 가련한 사람의 혀를 사용하여) '큰 소리로 부르짖어 가로되…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7절)라고 말한 것은 그 사람 속에 있던 마귀였다. (1) 마귀는 하나님을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으로 부르는데 이는 모든 신들 가운데 가장 높다는 뜻으로 사용된 것이다. (2) 마귀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었지만 마귀는 그 이상의 표현으로 나타냈다. (3) 마귀는 그리스도를 해치고자 하는 어떤 계획도 자백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라고 말한다. (4) 마귀는 그리스도의 진노를 면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마귀는 원컨대 나를 여기서 내보내더라도 '나르 괴롭게 마옵소서'라고 말했던 것이다.
4. 그리스도가 내린 명령의 말씀(8)
더러운 귀신이자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그 사람이 달려와 절할 수 있게 된 것은 그리스도께서 그 사람이 구제받기로 갈망하도록 하셨기 때문이다. 그런 뒤에 그리스도는 그를 구하기 위하여 권세를 나타내셨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사단의 권세로부터 구제받도록 우리로 하여금 진정으로 기도하게 하는 마음을 일으키시고 또 우리가 그렇게 할 때 우리에게 그 구원이 이루어지도록 역사하신다.
5. 그리스도가 이 더러운 귀신으로부터 그의 이름에 대해 들은 설명(9)
이 부분이 마태복음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리스도께서 그 귀신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 귀신은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라고 대답했다. 이제 이 설명은 귀신들에 대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암시해 주고 있다. (1) 그들은 군대 병력이다. 마귀들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영광,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복음, 그리고 인간과 인간의 경건 및 행복에 대항하여 싸운다. (2) 그들의 수효는 많다. 그 마귀는 '우리가 많음이니이다'라고 시인한다. 그러나 이 말은 오히려 자랑하는 것처럼 들린다. 마치 그 마귀는 그들의 수효가 너무 많아서 그리스도 자신이 감당할 수 없기를 바랐던 것 같다. (3) 그들의 뜻은 일치되어 있다. 그 마귀들의 수효는 많았지만 그들은 한 군대가 되어 하나의 악한 일에 종사했다. (4) 그들의 힘은 매우 강력하다. 누가 군대 앞에서 버틸 수 있을까?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이 영적인 원수들의 상대가 되지 못하지만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엡 6;10) 그들에게 대적할 수 있다.
6. 이 군대 마귀의 요구(10-12)
그들의 요구는 '산 곁에서 먹고 있는'(11절) 돼지의 큰 떼에게로 그들이 들어가도록 그리스도께서 허락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 군대 마귀의 요구는 다음과 같다. (1)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이 지방에서 내어 보내지 마시라는 요구였다(10절). 이 요구는 그리스도께서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마 8:29) 하지도 말고 또 '자기를 이 지방에서 내어 보내지'도 말라는 것이다. 그들은 이 지방에 특별한 애착을 느꼈던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오히려 이 지방에 앙심을 품었을 것이다. (2) 주님께 자기들을 돼지에게로 보내어 들어가게 해 달라는 요구였다.
7. 그리스도께서 마귀들의 요구를 허락하심과 돼지의 몰사(13)
그리스도께서는 허락하신대 더러운 귀신들이 나와서(13절). 그러자 더러운 귀신들이 즉시 돼지에게로 들어갔는데, 모세율법에 의하면 돼지들은 정결치 않은 피조물이었다. 돼지같이 감각적인 욕망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들은 사단에게 어울리는 거처이다. 귀신들이 돼지에게로 들어가자 곧 거의 이천 마리 되는 떼가 바다를 향하여 비탈로 내리 달아 바다에서 몰사하였다.
8. 그 지방에 즉시로 퍼졌던 이 모든 소식(14-17)
돼지를 치던 자들이 돼지들에게 일어난 일을 설명하기 위하여 그 주인에게 서둘러 갔다. 이 일로 인하여 '사람들이 그 어떻게 된 것을 보러 왔다'(14절). 그들은 그 가련한 사람이 너무도 놀라울 정도로 치유되어 있는 것을 보고 그리스도에게 존경심을 품게 되었다. 그들은 귀신들렸던 자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은 것을 보게 된 것이다(15절). 사단이 나가자 그는 제정신이 들었으며 즉시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러므로 진지하고 침착하며 규정대로 정중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들의 이런 행동을 통하여 마귀의 권세가 그리스도의 권세로 말미암아 그들의 영혼 속에서 깨어졌다는 사실을 나타내게 한다. 이런 모습이 그들을 두려워하게 했던 것이다. 이 모습이 그들을 놀라게 했으며 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권세를 인정하게 하고 그리스도는 경외함을 받을 만한 분이심을 시인하게 했다.
그들은 자기들의 돼지를 잃었다는 사실을 깨닫자 그리스도를 싫어하여 그리스도가 그 지경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였다. 그 이유는 아마도 그들이 시장에 곧 내다 팔 수 있을 정도로 살찐 많은 돼지들을 손실한 것에 대해 그리스도가 충분히 보상해 줄 만한 어떤 선을 행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마귀들은 그들이 원했던 것을 얻은 셈이었다. 이 악한 영들이 죄로 가득찬 영혼들을 관리할 때, 그들이 사용하는 방법 중에서 세상을 사랑하게 하는 방법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은 없다. 만일 그들이 죄에서 떠났다면 그리스도는 그들에게 생명과 행복을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죄가 아닌, 구세주를 단념하는 길을 택했다. 이와 같이 천한 욕망에서 떠나기보다는 오히려 그리스도에 대한 관심을 버리는 사람들은 그들과 같은 일을 하게 된다. 그래서 그들은 그리스도가 멀리 떠나기를 원했던 것이다.
9. 그 가련한 사람이 그리스도로부터 구원을 받은 뒤 취한 행동(18-20)
(1) 그는 그리스도와 함께 있기를 간구하였다(18절). (2) 그리스도는 그와 함께 가기를 허락지 아니하셨다. 그 사람은 해야 할 다른 일이 있었다. 곧 그는 집으로 돌아가서 친구들에게 주께서 그에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셨는지 고하여 그의 이웃과 그의 친구들이 감화를 받고 그리스도께 나아가 그리스도를 믿도록 해야 했다. 그리고 그는 특히 그리스도의 권능보다 오히려 그리스도의 동정심에 주목해야 했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가 비참한 처지에 놓였을 때 주께서 얼마나 동정심을 베풀어 주셨는지 그들에게 말해주어야 했다. (3) 그 사람은 기쁨에 도취한 채 그 지방 전체를 돌아다니면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 행하신 것'(20절)을 전파했다. 그런데 그 결과가 어떠했는지 보라. 모든 사람이 기이히 여기게 되었으나 더 이상의 관심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사역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지만 그들은 그들이 당연히 알고 싶어 해야 할 그리스도를 알려하지 않는다.
Ⅱ. 혈루증을 앓던 여인 5:21-34
가다라 지방의 사람들이 그리스도께서 그 지방을 떠나기를 바랐기 때문에 그는 더 이상 그들을 걱정시키지 않도록 그곳에 머물지 않고 곧장 물가로 나가 '다시 저편으로 건너 가셨다'(21절). 그런데 그곳에서 큰 무리가 그에게 모였다. 그리스도를 거절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를 환영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
(1) 병든 아이를 고쳐주도록 여러 사람 앞에서 간구한 사람이 있다(21-24절). 그는 회당장 중 하나에 속하는 신분을 지닌 사람이다. 마태복음에선 그의 이름이 나와 있지 않았으나 이 마가복음에선 야이로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그런데 이 야이로란 이름은 로마명이며 이 이름의 히브리어명은 야일로써 사사기 10장 3절에 나온다. 그는 매우 겸손한 태도와 존경심을 가지고 그리스도에게 자신의 뜻을 전했다. 그래서 그는 예수를 보고 발아래 엎드렸다. 그리고 그의 뜻을 간절한 간구로써 전했으며 열심을 내어 매우 끈질기게 졸랐다.
그 이유는 그에게는 집안의 귀염둥이인 약 열두 살 먹은 어린 딸이 있는데 그 아이가 죽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만일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시면 그 아이가 무덤의 문까지 갔다고 하더라도 되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처음 회당장이 왔을 때 회당장은 (마가복음에 기록된 대로)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다'고 말했으나 후에는 (마태복음에 기록된 대로) '내 딸이 방장 죽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그의 요청을 쾌히 승낙하여 그와 함께 가셨다(24절).
(2) 은밀히 다가와 직접 신유의 은혜를 훔친 사람이 있었다(25-34절). 그런데 그 여자는 자기가 온 목적대로 구원을 얻었다. 이 신유의 은혜는 그리스도께서 회당장의 딸을 일으키려고 가시던 도중에 일어났다. 그리스도가 행한 많은 설교와 여러 기적들이 길가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우리는 집에 앉아 있을 때뿐만 아니라 길을 걷고 있을 때에도 선을 행해야 한다.
1) 이 불쌍한 여인의 비참한 사정 : 그녀는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왔다. 그녀는 구할 수 있었던 모든 의사들로부터 최고의 진찰을 받았으며 그들이 처방해 준 많은 약과 방법들을 사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자기의 모든 재산을 탕진해버리자 그들은 그녀의 병을 불치병으로 간주하고 그녀에 대한 치료를 포기했다. 사람들은 보통 도움을 얻기 위하여 모든 의사를 찾아다니며 헛된 노력을 쏟고 또 그들이 확실히 아무 효험이 없는 의사라는 것을 깨달은 뒤에야 자신들을 그리스도에게 맡긴다. 그런데 그리스도는 자기를 최후의 피난처로 삼는 사람들에게조차 확실한 피난처가 되실 것이다.
2) 그녀가 병을 고치려고 그리스도의 권능에 대해 지녔던 강한 믿음 : 그 여인은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고 생각했다(28절). 그녀는 아무도 모르게 병고침을 받고 싶어 했으며 그런 그녀의 믿음은 그녀의 사정에 어울리는 일이었다.
3) 그녀의 믿음으로 초래된 놀라운 결과 : 그 여인은 '무리 가운데 섞여 뒤로 와서' 간신히 '그의 옷에 손을 대니' 즉시 병이 나은 것을 느꼈다(27절).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29절). 그녀는 그녀의 온 몸이 순간적으로 완전하게 회복된 것을 즉시 느낄 수 있었다. 그리스도께서 죄로 인한 병인 혈루병을 고쳐주신 사람들은 자신들의 내부에서 전반적인 변화가 일어나 더 좋아지는 현상을 경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4) 숨은 환자가 누구인지에 대한 그리스도의 질문과 그 환자에 대한 그리스도의 격려 : 그리스도께서는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셨다(30절). 자기의 환자를 만나고 싶어했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욕을 본 사람처럼 불쾌하게 물은 것이 아니고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과 같이 다정하게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고 물으셨던 것이다. 그런데 제자들은 그의 질문을 비웃다시피 했다. 그래서 제자들은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31절)라고 말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런 모욕적인 질문을 지나치시며 이 일을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보셨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그녀의 대담한 행동을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믿음을 칭찬하고 격려하기 위하여 하신 일이다. 그리고 그리스도 자신의 그런 행위를 통해 그녀의 병나음을 보증하고 확증시키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믿음의 행동도 죄의 행동처럼 은밀히 주 예수께 알려져서 그의 주목을 받는다. 그래서 여기에 나타난 그 불쌍한 여인은 두려워하며 떨며 주 예수께 모습을 나타냈다. 그런데 그녀는 그녀가 그리스도의 옷에 손을 댄 사실을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알았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두려워 떨었던 것이다. 그리스도의 환자들은 승리의 환희를 누려야 할 때에도 자주 두려워 떠는 경우가 있다. 그 여인은 '제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담대하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담대하게 그리스도에게 나왔어야 했는데 오히려 '제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 떨었던 것'이다. 그것은 놀라움 때문이었지만 나타난 바와 같이 기쁨의 놀라움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 앞에 엎드렸다. 두려워하며 떠는 사람들에게 주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리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그리고 그녀는 그리스도에게 모든 사실을 여쭈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우리 영혼 사이의 은밀한 관계를 시인하는 일을 부끄러워해선 안된다. 그러나 그런 시인이 요구될 때 그가 우리의 영혼을 위해 했던 것과 그로부터 병고침을 받았던 경험을 말해야 한다. 주님께서는 그 여인을 얼마나 격려하셨던가. 곧 그리스도는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34절)고 격려했던 것이다.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사 믿음에 의한 기도와 소망을 아멘으로 인치실 것이며 "너희에게 그렇게 될지며 또 그렇게 이루어질지어다"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도 평안히 가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Ⅲ. 야이로의 딸을 살리심 5:35-43
불치의 병을 고치셨던 그리스도께서 이제 죽음을 위하여 나아가신다.
(1) 딸이 죽었다는 슬픈 소식이 야이로에게 전해졌다(35절). 살아있는 동안에는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할 수 있는 소망과 여지가 있지만 죽은 뒤에는 다시 살릴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회당장과 함께 있던 사람 중 한 사람이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35절)라고 말했던 것이다. 보통 이런 일을 당할 때 할 수 있는 적절한 생각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문제는 이미 결정된 것이고 하나님의 뜻대로 된 일이기 때문에 나는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라'는 말씀을 복종하며 잠자코 따라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 일어난 사건은 특별한 일이었다. 보통 때와 같이 아이가 죽었다고 해서 이야기가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2) 그리스도께서 그 괴로워하는 회당장에게 소망을 갖도록 격려하신다(36절). 그리스도께서는 회당장 야이로의 집으로 내려오는 도중에 혈루병으로 시달리는 여인을 고쳐주느라 지체했지만 그 일로 말미암아 피해를 보거나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구할 기회를 잃지는 않는다. 그리스도께서는 오히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야이로가 그리스도에게 계속 가자고 요청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주저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집에 병든 사람이 있을 때처럼 죽은 사람이 있을 때 하나님의 은혜와 위로를 더 필요로 하지 않는가?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곧 이 문제를 결정한 뒤 내가 오는 것이 소용없는 것처럼 '두려워 말고' 내가 이 일로 좋은 성과를 내게 될 것을 '믿기만 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를 믿고 그에게 의지하라. 그러면 그가 가장 좋은 것을 베풀어 주실 것이다. 부활을 믿고 두려워하지 말라."
(3) 그리스도는 선택한 일행과 함께 죽은 아이가 있는 집으로 가셨다(37절). 이제 그리스도께서 무리를 떼어 놓으시고 그의 사랑하는 제자들인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외에는 '아무도 따라옴을 허치 아니하셨다.
(4) 그리스도께서 죽은 아이를 살리셨다(38-43절). 이 본문을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알아볼 수 있다.
첫째, 그 친척과 이웃들이 '울며 심히 통곡한' 것으로 봐서 이 아이는 매우 사랑을 받았다.
둘째, 그 아이가 실제로 죽었다는 것은 논쟁의 여지가 없다. 그리스도께서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말했을 때 그들이 그리스도를 비웃었던 점은 바로 이 사실에 대한 증거가 된다.
셋째, 그리스도는 기적을 증거 할 증인들로서 합당치 못한 사람들을 내보내신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의 일에 너무 무지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은 것을 잔다고 말씀하셨을 때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너무 냉소적이기 때문에 잔다는 말을 한 그리스도를 비웃었던 것이다.
넷째, 그리스도는 그 아이의 부모들이 기적을 증거 할 증인들이 되게 하여 위로를 얻게 했다. 그런데 슬픔을 아무 말없이 견디는 것으로 보아 그들은 진실로 슬픔에 젖어 있었다.
다섯째, 그리스도는 권능을 지닌 한 마디 말씀으로 그 아이를 살리셨다. 그런데 그 말씀은 여기서 그리스도가 사용하신 언어인 고대 시리아어로 기록되었다. 이 말을 좀더 확실하게 표현하면 '달리다굼'인데, 그것을 번역하면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는 뜻이다(41절). 그런데 그리스도는 여기서 사망으로부터 일어나라고 말한 것이다. 이 말은 단순히 내가 명하노니 일어나라는 뜻으로만 쓰인 것이 아니고 그 말속에 더 많은 뜻을 내포하고 있다. 곧 죽은 자는 일어날 능력이 없다. 그러므로 죽은 자가 일어나는 것을 실현시키기 위하여 능력이 이 말씀과 동반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명령하는 동안에 역사하실 뿐 아니라 명령을 통해서도 역사하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소생시키는 일이라도 기뻐하시는 일을 명하신다. 복음이란 본래 죄와 허물로 죽었고 이 아이처럼 자기 자신의 능력으로는 죽음에서 더 이상 일어날 수 없는 사람들을 부르는 것이다.
여섯째, 그 소녀는 다시 살아나자마자 곧 '일어나서 걸었다'(42절). 우리의 영적인 생명이 다시 살아나려면 우리는 게으름과 무관심의 침대에서 일어나 그리스도의 이름과 능력을 의지하고 돌아다녀야 할 것이다.
일곱째, 그 기적을 보았거나 그것에 대해 들었던 모든 사람들은 그 기적과 그것을 행한 그리스도에게 경탄했다.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42절). 그들은 기적 속에 특별하고 매우 위대한 것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그 기적을 어떻게 생각하고 또 그 기적으로부터 무엇을 추론해야 할지 모르고 있었다.
여덟째, 그리스도는 그 기적을 숨기시려고 애썼다. 그래서 그는 '이 일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려고 저희를 많이 경계하시었다'(43절). 그 기적은 상당히 많은 사람들에게 충분히 알려졌지만 그리스도께서는 그 기적이 더 이상 전파되게 하지 않으려 하셨다.
아홉째, 그리스도께서는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도록' 주의를 주셨다. 이 일로 알 수 있는 사실은 그 소녀가 다시 살아났을 뿐 아니라 왕성한 식욕을 가질 정도로 건강상태가 좋아졌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자신이 영적인 생명을 주신 곳에서 그 생명이 영생에 이르도록 양육시키기 위하여 음식을 제공해 주실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손으로 직접 하신 일을 결코 단념하지도 않을 것이며 또한 부족함이 없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에스겔 5장 히브리어 성경말씀] 하나님이 예루살렘 심판함을 예언(겔 5: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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