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하나님 말씀

[에베소서 6장 강해 설교말씀]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엡 6:1-24)

베들레헴 2024. 3. 17.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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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6장 강해 설교말씀은 구원의 투구와 성경의 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종말이 되면 우리는 영적인 전신 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악한 영들과 싸우기 위해서는 예수님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예수님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사탄의 궤계를 막을 수 없습니다. 사탄은 지금도 우리에게 불 화살을 날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사탄의 미혹을 막아내야 합니다.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엡 6:1-24)

 

. 부모와 자녀, 주인과 종의 의무에 대한 권고 6:1-9

1. 부모에 대한 자녀의 의무 (1-3)

그것은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다(1). 하나님께서 자녀들에게 요구하시는 순종은 외적인 표현이나 행위들뿐 아니라 내적인 존경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주안에서 순종하라(1). 이는 곧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되 특별히 주와 관계된 것들에 대해서 순종하라. 너희 부모가 너희에게 가르친 선한 예법들을 너희는 순종해야 한다. 또한 너희는 너희 부모가 너희에게 건강을 위해서 가르친 것을 순종해야 한다. 그러나 너희는 주께 관계된 것에 가장 순종할 수 있어야 한다"라는 말이라고 하겠다. 자녀들은 특별히 이 안에서 그들이 순종해야 할 것을 보아야 한다. 이것이 옳으니라(1). 그 안에는 당연한 정당성이 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명하신 것이다. 부모가 명하고 자녀가 순종하는 것은 자연의 질서이다.

바울은 제 5계명을 인용하고 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2,3). 외적인 번영과 장수가 이 계명을 지키는 자들에게 약속된 축복이다. 순종하는 자녀들은 종종 외적인 축복으로 보상을 받는다. 그러나 항상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대개 순종은 이와 같이 보상을 받는다는 말이다. 복음은 영적인 약속뿐 아니라 현세적인 약속도 주고 있다. 우리는 약속된 보상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수 있어야 하겠다.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순종하게 하는 등기가 되고 또한 격려가 되는 것으로 생각되어야 할 것이다.

2. 부모의 의무(4)

'또 아비들아'로 시작되는 4절에 그것이 나타나고 있다.

[1]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4). 너희의 자녀들은 곧 너희 자신들의 분신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큰 관용과 사랑으로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 너희가 그들에게 주의를 주거나, 그들을 권하거나 그들을 책망하게 될 때 그들을 노엽게 하지 말고 그들의 판단력을 일깨워 주어 자신들의 이성으로 처리하도록 힘쓰는 방식으로 행하라는 말이라고 하겠다.

[2]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4). 이는 곧 그들을 훌륭하게 양육하라는 말이라고 하겠다. 자녀를 양육시키는 일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부모의 큰 의무이다. 부모들은 자녀들을 인간으로 양육할 뿐 아니라 주의 훈계로써 그리스도인으로 양육할 수 있어야 한다. 그들에게 신앙 교육을 베풀 수 있어야 한다.

3. 종들의 의무 (5-8)

이것 또한 순종이라는 한 마디 말로 요약되어 있다. 이 종들은 일반적으로 노예들이었다. 사회적 예속이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모순되지 않는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예속되어 있는 주님의 자유인들이라고 할 수 있다, 육체의 상전(5). 그들은 몸은 지배하나 마음과 영혼은 지배하지 못하는 자들이다, (1) 두렵고 떨림으로 순종해야 한다. 종들은 자기들을 관할하는 자들을 존경해야 한다. (2) 신실함으로 순종하여야 한다. 종들은 성실한 마음으로 신실하게 상전들을 섬겨야 한다. (3) 그들은 상전들에게 온갖 섬김을 다함에 있어서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안목으로 해야 한다(5-7).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7). 종들이 땅에 속한 상전들에게 봉사하되 그리스도에 대한 안목을 가지고 행하면 이는 또한 그리스도께 받아들여질 만한 붕사가 된다. (4) 그들은 눈가림으로 상전들을 섬겨서는 안 된다(6).

`눈가림'이란 곧 상전들이 볼 때만 하는 것을 말한다. 하늘에 계신 상전께서 그들을 보시고 계신다. 따라서 그들은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행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확고한 신뢰로 삶의 모든 처지에서 신실하고 성실하게 생활할 것이다. (5) 그들은 기쁨으로 일해야 한다.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6). 이는 곧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처럼 상전들을 섬기라는 말이다. 이것이 `단 마음으로 섬기는 것'이다(7). 마음으로 행하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행한 봉사는 그것이 아무리 불의한 상전들에게 행해진 것이라 할지라도 그리스도에 의해서 그 자신에 대해서 행한 섬김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6) 신실한 종들은, 그들이 자신들의 의무를 두려움 가운데서 행할 때 하나님께서 보상하시라는 것을 믿을 수 있어야 한다.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앎이니라'는 말씀이 그것을 모여준다(8).

각 사람이 주에게 그대로 받을 줄 앎이니라(8) 땅에 있는 상전이 보상하는 대신에 무시하고 조롱한다 할지라도 주 그리스도께서는 틀림없이 보상하실 것이다. 종이나 자유하는 자나 모두에게 보상하실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현재 사람들의 이러한 차이를 중요시하지 않으신다. 아울러서 그는 마지막 대심판 때에도 차별을 두시지 않으신다.

4. 상전들의 의무 (9)

상전들아 너희도 저희에게 이와 같이 하고. 종들이 상전들에 대해서 순종해야 하고 의무가 있는 것처럼 상전들 역시 그들의 종들에 대해서 행해야 할 엄격한 의무가 있다. 공갈을 그치라(9). 이 말은 그들에 대해서 전제적이거나 폭력적이지 말라는 말로 '이는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는 줄을 너희가 알기 때문'이었다. 즉 이상의 말은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볼 수 있겠다. "너희와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종 된 자들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너희가 그리스도의 은총을 얻고자 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은총을 보일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너희가 너희 종들을 아무리 심하게 대한다 할지라도 너희가 그에게서 받게 될 보응과는 결코 비교도 되지 않을 것이다." 그에게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는 일이 없는 줄(9). 하나님께서는 상전들과 종들을 부르셔서 서로에 대한 그들의 행위를 공정하게 회계하실 것이다. 만일 상전들과 종들이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관계와 그들이 곧 지게 될 책임을 생각한다면 그들은 서로에 대한 자신들의 의무를 더욱 주의해서 수행하려고 할 것이다.

. 그리스도인의 영적 싸움에 대한 권면 6:10-18

우리의 인생은 곧 싸움이 아닌가? 분명히 그렇다. 이는 우리는 인간 생활의 일상적인 재난들과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신앙은 더욱더 싸움이 아닌가? 분명히 그렇다. 이는 우리는 어두움의 주관자들과 대적하여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종말로 너희가(10). (흠정역에서는 '형제들아'라고 되어 있다-역주). 이 말은 "너희는 그리스도의 군병으로서 너희의 일과 의무에 전념해야 한다"는 말을 의미한다.

[1] 그들은 먼저 자신들이 용기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10) 많은 싸움을 싸워야 하는 자들과 하늘나라로 가는 길에 온갖 곳을 검으로 해결해 가야 하는 자들은 대단히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강건하여지라'라고 했다. 병사가 아무리 외적으로 잘 무장하고 있다 할지라도 내적으로 굳센 마음이 되어 있지 못하다면 그의 무장이 그에게 거의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영적인 강건과 용기는 우리의 영적 싸움에 매우 필수적인 것이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우리의 모든 능력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그의 능력 안에서 우리는 계속해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우리는 우리가 가져야 할 그리스도인의 일과 싸움에 있어서 우리의 힘으로써는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게 만드는 하늘로부터 오는 은혜와 도움을 얻을 수 있어야만 한다.

[2] 그들은 반드시 잘 무장할 수 있어야 한다(11-18).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11). 이는 곧 그리스도인의 모든 은혜, 즉 전신갑주를 입고 훈련함으로 적에게 노출되는 부분이 전혀 없도록 하라는 말이라고 하겠다. 참된 은혜를 받은 자들은 모든 은혜, 즉 전신갑주를 목적해야 한다. 우리는 시련의 때에 버텨낼 수 있는 우리 자신의 어떤 갑주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하나님의 갑주 외에 어떤 것도 우리에게 도움을 주지 못할 것이다. 이 갑주는 우리를 위해서 준비된 것으로 우리는 그것을 입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해서' 즉 마귀의 궤계를 능히 방어하고 이기기 위해서 철저히 무장할 수 있어야 한다.

1) 우리가 처한 위험의 내용과 우리가 이 전신갑주를 입어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 :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12). 우리의 전투는 평범한 인간을 적으로 한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단순히 `혈과 육'으로 이루어진 인간애 대한 전투가 아니다. 11절에서 보여주고 있듯이 우리는 궤계와 술책을 사용하고 있는 대적과 싸워야 한다. 그 대적은 불안정한 영혼을 속이는 수많은 방법을 알고 있는 자다. 상대는 강력한 자다.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 그들은 숫자적으로 매우 많고 강력하며 여전히 어두움 가운데 있는 이방 나라들을 주관하는 자들이다. 사단의 왕국은 어두움의 왕국이다. 반면에 그리스도의 왕국은 빛의 왕국이다. 그들은 영적인 적들이다.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

우리의 대적들은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우리가 그들을 알아차리기도 전에 우리를 공격하기 때문에 그들로부터 우리가 당하는 위험은 매우 크다고 하겠다. 이 대적들은 `하늘에' 흑은 높은 곳에 있다고 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우리가 하늘나라에 올라가는 것을 방해하려고 애를 쓴다. 그들은 우리를 공격하되 우리의 영혼에 속한 것들을 공격한다. 우리는 영적인 힘을 공급받아야 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의 일을 수행함에 있어서 믿음을 필요로 할 뿐 아니라 또한 영적인 대적들과 맞붙어 싸워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싸움을 수행함에 있어서도 믿음을 필요로 한다.

2) 우리의 의무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13)

우리는 대적하여야 한다(13).

우리는 마귀의 유혹과 공격에 굴하지 말고 그것들에 맞서야 한다. 만일 마귀가 우리를 대적하고 서면 우리도 또한 그를 대적하여 서야 한다. 사단에 대적하여 서는 것이 곧 죄에 대적하여 싸우는 것이다. 이는 악한 날에 혹은 유혹의 날에, 고통스러운 환난의 날에 '너희로 능히 대적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굳게 서야 한다.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러면 그는 도망갈 것이다. 만일 우리가 뒤로 물러선다면 그는 거점을 확보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현재의 일은 마귀의 공격에 대적하고 대항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제대로 싸움을 가지는 것이 될 것이며 우리는 마침내 승리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무장을 하고 서야 한다. 여기에 그리스도인의 완전무장이 나타나 있다. 그 무장은 신적인 것이다. '하나님의 갑주'라는 말이 그것을 나타내준다. 바울은 이 무장에 대하여 공격용과 방어용으로 나누어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것은 군대용 허리띠, 흉배, 각반 (혹은 군화), 방패, 투구, 그리고 검이다. 이 모든 것들 가운데 등을 위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주목할만하다. 따라서 만일 우리가 적에게서 돌아서게 된다면 우리는 허점을 노출시키는 것이 되는 것이다. 첫째,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14). 진리는 우리의 허리의 힘이 된다. 그것은 무장에 있어서 다른 모든 것들 위에 졸라매는 것이므로 먼저 언급되어 있는 것이다. 신실함이 없는 신앙이란 있을 수 없다. 둘째, 의의 흉배를 붙이고(14).

흉배는 생명을 유지하기에 가장 필요한 곳을 보호라는 것으로 특히 심장을 보호해 준다. 우리 가운데 뿌리 박힌 그리스도의 의는 사단이 우리를 공격할 때 가슴을 보호해 주는 흉배가 된다. 셋째, 우리의 발에 신은 신발은 결심과 같다.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15). 옛날엔 신발 또는 장화는 군대 무장의 한 부문으로서 진군을 막기 위해 적이 길에 놓아둔 함정이나 덫으로부터 발을 보호해 주었다.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은 우리로 하여금 믿음의 길을 착실하게 걷게 해주는 확고한 마음의 상태를 나타내 주는 것이다. 그것은 온갖 종류의 평안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평안의 복음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이것은 마침 군화가 군인들을 제반 함정에서 보호해 주듯이 많은 시험과 핍박으로부터 반드시 성도들을 보호해 줄 것이다. 넷째, 우리는 방패는 믿음이다.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16).

이것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필요한 것이다. 믿음은 시험의 때에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이 된다. 흉배는 우리의 생명에 가장 필요한 부분을 보호하나 방패는 시방을 다 방어해 준다. 믿음은 일종의 방패와 같아서 전반적인 방어를 해준다. 우리의 대적 마귀는 여기서 악한 자로 불리어지고 있다. 그는 스스로가 악하므로 우리를 악하게 만들고자 힘쓴다. 그의 시험은 화전으로 불리는데 이는 독 붙은 화살을 가리키는 것으로 그것으로 상처를 입은 부분은 염증을 일으키게 된다. 영혼을 지옥불에 떨어뜨리는 격렬한 시험은 곧 사단이 우리에게 쏘는 화전이다. 믿음은 이러한 화전을 막아주는 방패이다. 믿음의 방패가 있을 때 화전은 우리를 맞추지 못할 것이며 우리를 상하게도 하지 못할 것이다. 다섯째, 구원의 투구(17). 즉 소망의 목적은 구원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사단은 우리를 시험하여 절망 가운데 떨어지게 하려고 한다. 그러나 선한 소망은 우리로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해 주며 그 안에서 기뻐하도록 해 준다.

여섯째,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17). 하나님의 말씀은 곧 성령의 검으로 불리어진다. 이는 성령께서 그것을 강력하고 효과 있게 하시기 때문이다. 마음속에 감춰져 있는 이것은 죄로부터 우리를 보호하여 줄 것이다. 일곱째,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모든 무장에 대해 물림쇠 역할을 한다(18). 우리는 기도로 이 모든 은혜를 한데 묶어야만 한다. 또한 우리는 항상 기도하여야 한다. 우리는 기도만 해서는 안된다. 이는 때와 장소에 따라 해야 할 다른 의무들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부단히 기도하는 시간들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모든 경우에 있어서 기도해야 한다. 때때로 엄격하게 규정해 놓은 기도는 시기적으로 맞지 않을 때가 있으나 경건한 부르짖음은 결코 그렇게 될 수 없다.

우리는 '모든 기도와 간구로' 즉 온갖 종류의 기도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성령 안에서' 기도해야 한다. 이는 곧 하나님의 선하신 성령의 은혜로 말미암아 기도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를 위하여 깨어 있기를 항상 힘쓰며(18). 우리의 마음으로 하여금 늘 기도하는 상태 가운데 있도록 힘쓰며 이 일을 위해서 항상 기회를 얻도록 해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는 기도하되 모든 인내로 해야 한다. 이는 즉 "우리가 세상에 살고 있는 한 우리는 계속해서 기도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라고 하겠다. 우리는 간구하되 우리 자신들을 위해서 뿐 아니라 모든 성도를 위하여 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세상에 아주 온전한 상태 가운데 있는 성도란 그리 많지 않다. 그들은 우리의 기도를 필요로 하고 있으며 또 우리의 기도를 가져야만 한다.

. 맺음말 6:19-24

[1] 바울은 자신을 위해서 기도해 줄 것을 바라고 있다(19). 즉 그는 '모든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고 언급하고서는 그 안에 자신을 포함시키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모든 성도를 위하여 기도하고 또 특별히 하나님의 신실한 사역자들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어야 하겠다.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19)라고 하였다. 전 복음은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 알려지게 되기까지는 비밀이었다. 바울은 위대한 말씀의 사역자였다. 바울이 말하는 일을 담당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머큐리 신(그리이스 신화에 나오는 신으로 신들의 사자 역을 맡았음)으로 불렸다(14:12).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의 친구들에게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말씀의 은사를 주실 것을 간구해 달라고 청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또한 대단히 담대한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담대함을 주시기를 위해서 기도해 달라고 그들에게 청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사람에 따라서 무엇을 말해야 할지를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들에게 그가 해야 할 말을 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고 있다.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20). 그는 복음 전파로 인해서 핍박을 받았으며 감옥에 갇히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리스도에 의해서 그에게 맡겨진 사신의 일을 계속하였다. 가장 훌륭한 사역자들일지라도 선한 그리스도인들의 기도에 의해서 유익함을 얻는다. 그러므로 진지하게 성도들의 기도를 바라야 할 것이다.

[2] 바울은 그들에게 두기고를 추천하고 있다(21,22). 그는 이 편지와 함께 그를 보내고 있다. 이는 그가 어떻게 행하였으며 또 무엇을 행하였는지를 두기고를 통해서 그들에게 알리고자 하기 위해서였다. 선한 사역자들이 성도들에게 자신들의 사정을 알리고 또 그 성도들의 사정에 대해서 아는 일은 바람직한 일이다. 혹은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서로 기도하는 일에 더욱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또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기 위하여(22). 이는 곧 자기의 고난당함에 대한 설명을 함으로써 그들로 자기의 환난으로 인해 약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그들에게 기쁨과 감사의 요건이 되게 하기 위해서라고 하겠다. 두기고는 사랑을 받는 형제요 주안에서 진실한 일군이었다. 그는 바울에게 매우 사랑받는 사람이었다. 이 사실은 에베소 사람들을 위해서 그처럼 선하고 사랑하는 동료와 헤어져야 한다는 뜻인 바 바울이 얼마나 에베소 교인들을 사랑했는가를 보여준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한 종들은 그들 자신의 개인적인 이익보다는 전체의 유익을 더 위할 수 있어야 한다.

[3] 바울은 그들을 위해 그의 선한 바람과 기도로 글을 맺고 있다. 그들을 위해서 뿐 아니라 모든 형제들을 위해서 그리하고 있다(23,24). 평안과 믿음을 겸한 사랑이 형제들에게 있을찌어다(23절). 여기서 믿음을 겸한 사랑이란 다른 모든 것을 포함한 것으로서의 믿음과 사랑으로 곧 하나님의 윤리를 말하는 것이다. 바울이 그들에게 바란 것은 바로 이러한 것들이 계속되고 증가되기를 원한 것으로 그러한 것들은 이미 에베소 성도들 안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부터(23). 끝맺는 축복이 앞의 축복보다 더욱 범위가 넓혀져 있다. 이는 이 안에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모든 참된 신자들 뿐 아니라 모든 곳에 있는 신자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그것이 만일 신실하지 못하다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참으로 신실성이 없는 한 사람이 아무리 가장하려고 할지라도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과 같은 것은 없게 될 것이다. 은혜 즉 하나님의 은총과 모든 좋은 것 즉 은혜의 선물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모든 자들에게 함께 있으며 또 함께 있게 될 것이다. 또한 그러한 은혜가 모든 다른 성도들에게 함께 있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의 기도이며, 또 마땅히 기도할 수 있어야 한다. 아멘.

[마태복음 히브리어 성경말씀] 살인과 간음과 이혼에 관한 법(마 5:21-32)

 

[마태복음 히브리어 성경말씀] 살인과 간음과 이혼에 관한 법(마 5:21-32)

마태복음 5장 히브리어 성경말씀은 예수님이 살인과 간음과 이혼에 관하여 새로운 법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구약의 율법은 행동으로 했을 때 법에 걸리지만 신약에서 예수님이 주신 법은 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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