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하나님 말씀

[마태복음 성경 좋은 말씀] 산상수훈 팔복에 관한 예수님 말씀(마 5:1-12)

베들레헴 2022. 5. 13.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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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장에서 예수님은 팔복에 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팔복은 구원받은 백성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았다고 모두 끝난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천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산상수훈 팔복을 통해서 우리의 삶이 바뀌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산상수훈 팔복에 관한 예수님 말씀(마 5:1-12)

 

1-12, 팔복

마5: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마5:2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1-2]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 . . .

마태는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고 말한다. 마태는 무리와 제자들을 구분하는 것 같다. ‘무리는 이런 혹은 저런 관심을 가지고 또 이런 혹은 저런 동기로 예수께 나온 자들이며,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배우고 그를 본받고 그의 교훈을 실천하려는 자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도 교회에 나온 사람들 중에도 두 부류가 있을지 모른다. 우리는 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되기를 원한다.

예수께서는 입을 열어 가르치셨다. 그가 산 위에서 가르치신 말씀이라고 하여 산상보훈’(山上寶訓)이라고 부른다. 그 대상은 제자들이었다고 본다. 본문의 내용은 예수께서 여덟 부류의 복된 자들을 언급하셨다고 하여 흔히 팔복(八福)’이라고 부른다. 처음 네 가지는 구원을 위한 준비이고, 나머지 네 가지는 구원받은 자의 덕이라고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예수께서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셨다. 심령이 부유한 자는 어떤 사람이고 심령이 가난한 자는 어떤 사람인가? 심령이 부유한 자는 자기 자신이 지식과 지혜와 의와 힘이 있다고 생각하여 하나님을 찾지 않고 구원의 필요를 느끼지 않는 자이며, 심령이 가난한 자는 자기 자신이 지식과 지혜와 의와 힘이 없음을 깨달아 하나님을 찾고 구원의 필요를 느끼는 겸손한 자라고 말할 수 있다.

불신앙과 불순종은 항상 교만과 함께 간다. 그것은 하나님 대신 자기 자신을 높이고 신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기라는 것과, 또 자기가 의뢰하는 돈이나 세상의 것들이라는 것이 과연 신뢰할 만한 것인가? 그것들이 환난 날에 자기를 구원하며 장차 지옥의 불못에서 자기를 구원할 수 있는가? 그것들이 영원한 생명과 행복을 보장할 수 있는가? 아니다. 결코 아니다!

믿음은 가난한 심령에서 시작된다. 겸손한 자만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를 믿고 그를 따를 수 있다. 심령이 가난하지 않으면 아무도 믿음의 길에 들어설 수 없다. 심령의 가난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이며 은혜받은 자의 모습이다. 이사야 66:2,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나의 말을 인하여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권고하리라[돌아보리라]”고 말한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천국을 소유하는 복을 얻을 것이다. 성경에 증거된 대로 사람은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받음으로 천국에 들어간다. 그러므로 주께서 하신 말씀은 사람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으려면 우선 자신의 빈곤을 알아야 한다는 뜻이라고 본다. 우리는 겸손하게 우리 자신이 지식과 지혜가 없고 의가 없고 힘이 없는 부족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주께서는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다(18:3). 이것은 사람이 겸손한 행위로 구원받는다는 것이 아니고, 구원받는 자 곧 천국에 들어가는 자는 누구나 심령이 교만치 않고 겸손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겸손한 자만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복음을 진심으로 믿게 된다. 교만한 자는 예수님을 믿을 수 없다.

물론, 구원받은 자는 계속 겸손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부족과 무능력을 늘 인식하고 우리의 우리 된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뿐임을 늘 인정하며 살아야 한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잠언 18:12,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예수께서는 또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셨다. 어떤 애통을 말하는 것인가? 사람에게 의미 있는 애통은 회개의 애통뿐이다. 죄인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깨달아야 한다. 이것이 아주 중요한 일이다. 사람은 자신의 죄의 심각함, 즉 하나님께서 죄를 미워하시고 노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자신의 많은 부족과 죄를 인해 애통해야 한다.

다윗은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라고 말하였다(51:17). 요엘은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라고 말하였다(2:12-13). 예수께서 한 동네에 들어가셨을 때 죄인인 한 여자가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그의 뒤로 와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었다. 그것은 회개의 눈물이었다고 본다(눅 7:37-38).

자신의 죄 때문에 애통하는 자는 위로를 받을 것이다. 그것은 죄 문제의 해결을 통해, 즉 죄사함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앞에 말한 그 여자에 대해 예수께서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라고 말씀하시고 그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고 하셨듯이(눅 7:47, 50), 애통하는 자는 위로를 받을 것이다. 사죄는 지극히 크고 놀라운 하나님의 은총이다. 왜냐하면 그 무엇으로도 씻을 수 없고 하나님의 공의의 진노를 피할 수 없는 인간의 더러운 죄가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단번에 깨끗케 되기 때문이다.

[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예수께서는 또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셨다. 온유하다는 말은 겸손하다는 말이다. 그것은 교만함, 완고함, 패역함, 목이 곧음과 반대된다. 교만한 마음은 불신앙과 불순종으로 나아가지만, 겸손하고 온유한 마음은 믿음과 순종으로 나아간다. 온유는 믿음의 품성이다. 믿는 자 또는 믿으려 하는 자는 심령이 온유해야 한다. 사람은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하나님과 주 예수님을 믿고 순종할 수 있다.

온유한 사람은 땅을 기업으로 받는 복을 얻는다. 여기의 은 이 세상에서 땅 몇 평을 받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새 하늘과 새 땅 곧 천국을 받는 것을 말한다고 본다. 이 세상에서는 힘센 자나 억센 자가 땅을 차지하겠지만, 천국은 다르다. 천국은 온유한 자가 얻는다. 온유한 자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도 베드로는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고 말했다(벧전 1:3-4).

히브리서 저자는,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고 말했다(11:16).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아 천국의 기업을 얻게 될 것이다.

예수 믿고 구원 얻은 자들도 여전히 온유해야 한다. 온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이다. 예수께서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말씀하셨다(11:29). 온유는 또한 성령의 열매이다(5:23). 그러므로 바울은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라”고 교훈하였고(4:2),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으라”고 했다(3:12).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예수께서는 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셨다. 의는 하나님의 계명에 일치하는 것 즉 하나님 말씀대로 믿고 그 말씀대로 사는 것이다. 그것은 참 경건과 도덕성이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것은 자신에게 의가 없고 죄만 많다는 것을 깨닫는 것을 말한다. 자신이 의가 없는 죄인임을 깨닫지 못하는 자는 결코 구원을 얻을 수 없다. 그러나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구원의 문 앞에 서 있다. 그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배고프면 밥을 찾고 목마르면 물을 찾듯이, 사람이 자신에게 의가 없음을 깨닫고 의를 갈망하면 의를 풍성히 얻을 것이다. 그 풍성한 의란 성경이 증거하는 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을 통해 얻는 완전한 의를 말한다. 바울은,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고 말했다(3:20-22).

[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7절부터의 네 가지 복은 구원받은 자의 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첫째는 긍휼히 여기는 것이다. 주께서는 또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셨다. 은혜와 긍휼은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성품이다. 사도 바울은,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라고 말했다(2:4-5). 예정(豫定), 속죄(贖罪), 중생(重生)도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에서 시작되고 완성된다. 우리의 우리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다. 그러므로 남을 긍휼히 여기는 것은 구원받은 성도의 당연한 태도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고 권면하였다(4:32).

긍휼히 여기는 자는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다. 주께서는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고 말씀하셨다(6:14-15). 더욱이 마지막 심판 때에 하나님께서는 긍휼히 여긴 자들을 긍휼히 여기실 것이며, 긍휼히 여기지 않은 자들을 긍휼 없이 대하실 것이다. 야고보는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고 말하였다(2:13). 하나님의 크신 긍휼과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는 남을 긍휼히 여겨야 마땅하다.

[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예수께서는 또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셨다. 아담이 범죄한 이후, 사람의 마음은 태어날 때부터 매우 부패되어 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는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고 말했다(17:9). 주께서도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덕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라고 말씀하셨다(15:19-20). 사람의 마음이 더러운 것은 물욕, 정욕, 명예욕 같은 욕심 때문이다. 사람의 욕심은 사람으로 죄를 짓게 한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모든 욕심을 다 버리고 죄씻음을 받은 자를 가리킨다. 우리는 깨끗한 마음을 지켜야 한다. 그래야 거룩하신 하나님을 감히 섬길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이다. 그것은 장차 천국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을 말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신 영이시므로 마음이 더러운 자, 곧 죄와 탐욕으로 더러운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고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우리가 그를 우리의 육신의 눈으로 뵈올 수 없으나, 우리는 하나님을 알게 되고 그의 나라에 들어가게 되고 그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며, 또 그의 영광의 형상인 주 예수 그리스도를 뵈옵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깨끗한 마음을 잘 유지해야 한다.

[9]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예수께서는 또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셨다. ‘화평케 한다는 말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고 본다. 첫째로, 그것은 하나님과 화목하게 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죄 때문에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되었다. 로마서 5: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골로새서 1:20-22,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

그러므로 하나님과 화평케 하는 것은 복음 전파로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다. 구원받지 못한 자는 하나님과 원수 관계에 있지만, 구원받은 자마다 하나님과 화목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다고 증거하였다(고후 5:18).

둘째로, 화평케 한다는 것은 사람들 간의 화목도 의미할 것이다. 하나님과 화목한 자들은 서로 간에도 화목하기를 힘쓸 것이다. 서로 화목하는 것은 구원받은 성도들의 마땅한 행위이다. 로마서 12:18,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갈라디아서 5:19-21,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살인[전통사본] 등 아홉 가지를 육체의 일들로 말하였고 또 이런 일들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라고 선언되었다. 야고보서 3:17,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화평케 하는 자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리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하나님과 인간 간의 불화를 제거하시고 화목하게 하셨기 때문에, 화목하게 하는 성도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리기에 합당하다는 뜻이다. 성도다운 행위, 즉 거룩하고 선한 행위는 구원의 표요 확증이다. 특히 죄인들을 하나님과 화목시키는 전도의 일과 하나님 안에서 서로 화목시키는 일은 성도다운 선한 일이다.

마5:10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마5: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마5: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10-12]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 . . .

주께서는 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고 말씀하셨다. 팔복의 처음 네 번째는 의에 주리고 목마름인데, 다음 네 번째는 의를 위해 핍박을 받음이다. 사람은 심령이 가난하고 죄를 애통하고 온유하고 의에 주리고 목마름으로 하나님께로 나오고 구원을 받지만, 구원받은 후 남을 긍휼히 여기고 마음이 깨끗하고 화평케 하고 의를 위하여 핍박까지 받는다.

의는 하나님의 계명에 일치하는 것이다. ‘의를 위하여라는 말은 의 때문에라는 뜻이다. 의 때문에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다. 즉 하나님의 계명대로 산 것 때문에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다. 왜냐하면 천국이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확실히 천국 백성이기 때문이다. 의를 행하는 것이 구원받은 천국 백성의 표라면, 의 때문에 핍박을 받는 것은 더욱 그러할 것이다. 구원받은 성도는 의를 사모하고 의롭다 하심의 구원을 받고 의를 위해 살고 의를 전파하고 의를 위해 고난과 핍박과 순교도 당한다.

예수께서는 또,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다. ‘나를 인하여라는 말은 나 때문에라는 뜻이다. 주께서는 제자들이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욕과 핍박을 받을 것을 내다보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것은 평탄한 길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를 부정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는 길이다(16:24-25). 그것은 핍박받을 것도 예상되는 길이다. 마귀는 예수 믿는 자를 미워하고 세상을 충동하여 성도를 핍박하게 한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예수 믿는 자들을 욕하고 핍박하며 거짓으로 모든 악한 말로 비난할 것이다. 사도 바울은,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고 말하였다(딤후 3:12).

그러나 주의 제자들은 핍박을 받을 때에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늘에서 그들의 상이 크기 때문이다. 주께서는 상을 말씀하시며 핍박받을 제자들을 격려하셨다. 이 구절은 또한 천국에서의 상급의 차등을 보인다. 마지막 심판 때에 죄악에 대한 형벌에 차등이 있을 것이듯이, 선행에 대한 상급에도 차등이 있을 것이다.

주께서는 또 그들이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성경 역사에서 참 선지자들은 많은 핍박을 받았다. 그 이유는 단지 그들이 바른 말을 하였기 때문이고, 그 바른 말이 회개치 않는 악인들에게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오늘날도 회개치 않는 사람들은 참된 목사들의 설교를 미워하고 그들을 핍박하고 거짓말을 동원해서라도 그들을 비난할 것이다. 그러나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선악간에 공의로 보응하실 것이며 악인들의 악행을 반드시 공명정대하게 보복하실 것이다.

의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때문에 핍박을 받는다는 것은 구원받은 자의 삶에서 가장 복된 일이다. 그것은 참으로 주를 믿고 따르며 섬기는 표가 되며 큰 상이 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핍박을 당하는 것은 결코 불행이 아니고 오히려 행복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의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받는 핍박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바르게 힘있게 살지 못한 것을 뉘우치자. 어떤 고난과 핍박이 닥쳐와도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을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바르게, 충성되게 살자.

본문을 다시 정리해보자. 예수께서 말씀하신 여덟 가지의 복에서 첫 번째부터 네 번째까지는 죄인들의 구원을 위한 준비를 보인 것 같다. 심령의 가난, 애통함, 온유함, 의에 주리고 목마름은 사람으로 하여금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 구원에 이르게 할 것이다. 또 다섯 번째부터 여덟 번째까지는 구원받은 자들의 덕을 보인 것 같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구원받은 우리는 남을 긍휼히 여기며, 마음을 깨끗케 하며, 다른 이들에게 전도하며 또 서로 화목하며, 의를 위해 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핍박을 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 당신은 심령이 가난하고 죄를 애통하며 온유하며 의에 주리고 목마른가? 또 남을 긍휼히 여기며 마음이 깨끗하며 화목케 하며 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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