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하나님 말씀

[로마서 헬라어 주석강해] 믿음으로 얻는 구원의 은혜(롬 1:13-17)

베들레헴 2022. 5. 14.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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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장에서 바울은 구원은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얻는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어서 영생을 가지게 됩니다. 행위로 구원을 얻는 것은 거짓 복음입니다. 행위로는 절대 구원받을 수 없다고 하나님이 말씀합니다. 우리는 행위를 주장해서는 안 됩니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강조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얻는 구원의 은혜(롬 1:13-17)

 

13절 우 델로 데 휘마스 아그노에인 아델포이 호티 폴라키스 프로에데멘 엘데인 프로스 휘마스 카이 에콜뤼덴 아크리 투 듀로 히나 카르폰 티나 스코 카이 엔 휘민 카도스 카이 엔 토이스 로이포이스 에드네신

성 경: [롬1:13]

󰃨 열매를 맺게 하려 함. - 15:16 참조, 하나님께서 신자들을 세상에 두시는 목적은, 그들이 영적(靈的)으로 결실하게 되기 위함이다. 그들의 처음이 좋지 못했어도 나중에는 좋을 수도 있다. 신약의 사울은, 처음에 비록 패역했으나 한 번 회개한 후에는 주님을 충성되이 섬겼다. 마가도 처음에는 바울과 바나바를 따라가다가 낙심하고 돌아섰으므로 바울에게 불신임을 당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도 후에 회개하고 귀한 종이 되었으므로, 바울이 그를 자기에게 유익한 종으로 여겨 모든 교회에 추천하였다(4:10). 이와 반대로, 어떤 신자들의 처음이 좋았다 할지라도 그 나중이 좋지 못한 것은, 그들의 실패를 의미한다(18:21-24). 구약의 사울은, 처음엔 하나님의 총애를 받았으나 후에 패역한 길로 갔으므로 그 말년에는 저주를 받았다. “열매는 주로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신자 자신의 성결의 열매요, 둘째는 다른 사람을 복음으로 인도하는 전도의 열매이다. 15:1-6 ; 눅 13:6-9 ; 11:11-14, 20-21 참조.

󰃨 길이 막혔도다. - 하나님께서는, 그 사랑하시는 신자들의 길을 언제나 열어 주시지 않고 때로는 막으신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듣지 아니 하심이 아니다. 그것은, 그들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려는 그의 오묘한 섭리이다.

14절 헬레신 테 카이 바르바로이스 소포이스 테 카이 아노에토이스 오페일레테스 에이미

성 경: [롬1:14]

󰃨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 복음은 야만인에게도 가야 하며, 문명인에게도 전파되어야 한다. 문명(文明)이란 무엇인가? 지혜와 지식은 무엇인가? 혹은 과학이란 것이, 만물의 성질은 알 수 있으나 그것의 근원을 알 수는 없다. 다시 말하면, 과학 연구로써 만물의 용법은 알 수 있으나, 그 만물이 어디서 왔으며 어떻게 존재하며 어디로 가는 바를 알 수는 없다(고전 1:20). 이 세상의 지식층은 무식(어리석은 자들)과 마찬가지로 진리 앞에서는 소경이니, 진리 곧 복음이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러므로 전도자는, 지식 있는 사람들 앞에 역시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복음에 빚진 자의 명심할 것이 두 가지니, 이 빚을 갚지 않으면 화를 당하는 것(고전 9:16), 복음 전한다는 자세를 하지 말 것이다(고전 9:18-23).

15절 후토스 토 카트 에메 프로뒤몬 카이 휘민 토이스 엔 호메 유앙겔리사스다이

성 경: [롬1:15]

󰃨 할 수 있는대로.... 원하노라. - 이 구절은 헬라 원어로 토 캇 에메 프로뒤몬”이니, 그것을 개역하면, “내게 달린 것은 뜨거운 소원이니이다. , 자기로서는 뜨겁게 원하나,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기다린 후에야 그 소원대로 행동하리라는 말씀이다. 사람이 어떤 선한 사업 계획을 세울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인도를 기다려 행하지 않고 조급하게 행함은, 도리어 무익할 수 있다.

󰃨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 이것은 이미 믿은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리라는 말씀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벌써 믿는 자들에게 복음의 지식을 가르쳐 줌도 일종의 전도이다.

16절 우 가르 에파이스퀴노마이 토 유앙겔리온 투 크리스투 뒤나미스 가르 데우 에스틴 에이스 소테리안 판티 토 피스튜온티 이우다이오 테 프로톤 카이 헬레니

성 경: [롬1:16]

󰃨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 하노니. - “부끄러움이란 것은 두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곧 사람이 자기의 소유가 무가치하여 부끄러워함과 자기의 성질이 겁약하여 부끄러워함이다(딤후 1:8, 12-18 ; 2:11 ; 고후 10:8 ; 1:20 ; 눅 16:3 ; 요일 2:28). 그러나 바울은 자기의 소유한 복음 전파의 사명을 무쌍한 영관으로 알았다. 그러므로 그는 그런 귀중한 것에 대하여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그는 복음 운동과 및 자기를 위하여 염려할(염려는 겁에 이르고 겁은 부끄러움에 이름) 처지에 있지 않았다. 그가 본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던 사울이었으나, 다메섹으로 가던 도상에서 그리스도에게 붙들렸다. 그러므로 이제는 그의 안에 사시는 이가 그리스도였다. 그에게는 죽는 것도 유익함이 되는 줄로 느껴졌다(1:21).

󰃨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이 순서는 민족 차별(民族差別)의 순서가 아니고, 하나님의 경륜의 순서를 가리킬 뿐이다(3:1-2.9 ; 1-13, 11:1-6, 15:9 ; 15:24 ; 4:22 ; 1:8 , 13:46 참조). 구원의 복음이 왜 이스라엘 사람을 먼저 찾았는가? 그것은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 복음이 이스라엘을 먼저 찾은 것은, 이스라엘 자신을 위하는 동시에 꼭 같이 이방인들도 위한 것이다. , 그것이 이스라엘 자신에게 구원을 베푸는 행동인 동시에, 이방인들에게는 구원을 전하는 제사장(이스라엘은 이방인에게 제사장이 됨)으로 세우는 행사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의 사역을 통하여 많은 이방인들을 구원하시려 하셨다(12:3 ; 19:5-6). 그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시간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다. 그는 나중 된 자로 먼저 되게 하시고 먼저 된 자로 나중 되게 할 수 있는 전능자시오 또 공의로우신 심판자이시다(19:30).

17절 디카이오쉬네 가르 데우 엔 아우토 아포칼륍테타이 에크 피스테오스 에이스 피스틴 카도스 게그랍타이 호 데 디카이오스 에크 피스테오스 제세타이

성 경: [롬1:17]

󰃨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 “하나님의 의”()가 무엇인가? 이 의는, 그리스도가 우리를 의로 제공되셨음을 말함이다(고전 1:30). 사람이 하나님 하나님 앞에 의를 얻는 문제에 대하여 신학적 의견을 대표적으로 든다면, 세 가지를 말할 수 있다. 펠라기안 학파의 의견, 이 학파에서는 말하기를, 사람은 유대인의 의식적 율법을 순종함으로 의를 얻는 것이 아니고, 다만 도덕적 율법을 행함으로 말미암아 의를 얻는다고 한다. 로마교의 의견, 여기서는 율법적 행위로 말미암아 의를 얻는다고 한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의견은 성경적이 아니라.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의견. 여기서는 성경이 말하는 데로 바로 주장하였다. , 우리는 우리로 말미암아 행하여진 무엇으로 의를 얻는 것이 아니고, 우리를 위하여 행하여진 다른 이(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는다고 한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을 말함이다. 그러므로 이 의는 본래 우리의 것이 아니고 다만 그리스도의 것을 우리의 것으로 인정하여 주는 것뿐이다. 이 의는 복음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인데, 그 의로 말미암아 신자가 의롭다 함을 받는다. 그 의는 완전한 것이다.

나타나서란 뜻은 무엇인가? 이 말에 대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실을 생각하게 된다. 하나님의 정하신 구원의 때가 이르었다는 뜻(4:4). 그러므로 그리스도로 나타난 하나님의 의()는 신자들에게는 바로 종말을 현재화(現在化)시켰다는 의미도 된다. 이 의를 받는 자는, 세상 끝날에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는, 그리스도의 죽음에서 벌써 심판을 받았다. 인자(人子)가 땅 위에서 사죄(赦罪)하는 권세가 있다고 한 대로(9:6), 신자들은 벌써 그리스도 안에서 사죄와 칭의(稱義)를 받는다. 이 세상에서 사죄와 칭의를 못 받은 자는 내세(세상 끝날 심판 때)에도 그것을 받지 못한다(3:18).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다는 말은 그것이 영원 전 하나님의 작정에 감취었던 것이라는 뜻을 내포함(엡 3:11), 이 감취었던 것이 나타난 것을 보는 신약 시대의 사람들은 감사히 그것을 받아야 된다. 3:5 참조. 나타나서란 말이 현재사로 되었으니, 그것은, 사람이 복음을 믿는 그 현재에 하나님의 의와 접촉되고 또 받아지는 상칙(常則)을 말함이다. 이와 달리 3:21에는 나타났으니라는 현재 완료 동사가 사용되었다. 그것은 그리스도 사건의 역사적 실현(歷史的實現)의 완료를 보여 준다.

󰃨 믿음으로 믿음에. - 칼빈은 말하기를 이것은 불완전한 믿음으로부터 완전한 믿음에 이르는 신앙적 장성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 해석은 옳지 않다. 하찌(Hodge), 이것이 역설체(力說體)로서 오직 믿음으로만 의를 받는다는 의미라고 한다.

[사도행전 헬라어 성경말씀]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는 12제자(행 1: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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