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히브리어성경

[신약 히브리어성경 요한계시록] 서머나 교회-환난을 당함(계 2:8-11)

베들레헴 2022. 6. 24.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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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2장에서 예수님은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편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에 이어서 서머나 교회에 편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서머나 교회에 자신을 소개하기를 죽었다가 살아나신 분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었다고 부활하셨습니다. 생명을 살릴 수 있는 능력의 주님이라는 것을 말씀합니다. 서머나 교회는 네가 환난과 궁핍을 알고 있지만 실상은 네가 부자라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러면서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주신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도 교회에서 열심히 충성하고 봉사하여 천국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상을 받아야 합니다.

 

서머나 교회-환난을 당함(계 2:8-11)

 

• 2:8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

처음이요 나중 우리의 구원을 시작하신 분이 주님이시고 나중까지 완성하실 이가 주님이시라는 것이다(1:17-18).  서머나 교회에 처음이요 나중 되신 주님으로 나타나신 이유는 서머나 교회가 현재 큰 환난을 당해서 살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내가 너희 구원을 처음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나중까지 구원을 완성시켜 나가실 것이라고 약속하신 것이다.  이것으로 인하여 서머나 교회에 큰 위로와 소망을 주신 것이다.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 서머나 교회에 예수님께서 죽었다가 살아나신 부활의 주님으로 나타나셔서 환난을 당한 서머나 교회를 위로하여 주시었다.  서머나 교회가 지금 환난을 당하여 죽을 지경에 빠졌으나 부활의 소망을 견고히 붙들고 믿음으로 나가라는 것이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이다.  죽은 것 같으나 다시 살아나고,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 일어서는 생명이 있다.  환난을 당하여 아무 희망이 없는 것 같으나, 살려 주시는 주님이 찾아오셔서 부활의 소망을 주시고 더욱 용기를 내라고 격려하시는 것이다.

• 2:9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

서머나 교회는 큰 환난 가운데서도 믿음을 잘 지켰다.  그리하여 환난과 궁핍을 당하고 있으나 실상은 부요하다는 주님의 인정을 받았다.  외부적으로는 환난과 궁핍을 당하고 있으나 영적으로는 부요한 자리에 서 있는 것이다.  서머나 교회가 믿음을 잘 지켰기 때문에 환난과 궁핍을 당한 것이다.  성도가 믿음을 지키지 않고 나가면 세상에서 환난과 궁핍을 당하지 않고 평안히 잘 살 수도 있으나,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할 때에 환난과 궁핍을 당하게 된다.  양심을 한번 속이고 진리를 한 번만 양보하면 세상에서는 잘 될 수도 있고 부요해질 수도 있으나 신앙 양심을 지키고 성경 말씀을 지키려고 하기 때문에 환난과 궁핍이 온다.  그러나 환난과 궁핍을 당하더라도 신앙 양심을 지키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 믿음을 지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①성경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한다.

②성경에 명문화되어 있지 않는 것은 성경의 원리원칙에 맞추어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한다.  성경의 원리원칙에 맞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될 수 없다.  성경의 원리원칙에 맞으면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더라도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순종하여야 한다.

③하나님의 섭리를 보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한다.

④신앙 양심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한다.

⑤성령의 감동과 인도로써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다.

성경을 어기고 성경의 원리원칙을 떠나는 것은 절대로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믿음을 지키지 않고 세상의 것만 잘하여 놓은 사람은 영적인 면은 벌써 망한 것이다.  진리를 버리고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서 높아지고 성공하였다 하더라도 영적으로는 벌써 망한 것이다.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려고 요한에게 나가셨을 때 요한이 말려 가로되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고 물었다.  그때 예수님께서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라고 대답하셨다(마3:13-15).  요한의 신분이 예수님보다 높고 낮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요한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하여 예수님께 세례를 베푼 것이다.  의(義)가 있는 곳에 하늘나라가 이루어지고 의가 없는 곳은 마귀의 나라가 된다.  환난이 오고 궁핍을 당할지라도 믿음을 지키고 의를 이루어 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성도가 세상에서 환난과 궁핍을 당하는 것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잠시 잠깐 후에 하늘나라에 가면 세상에서 믿음을 지키어 놓은 의(義)가 영원히 빛날 것이기 때문이다.  의를 이루어 나가는 것이 곧 순금 촛대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요즈음 공무원 채용시험이나 대기업 사원모집 시험을 주일에 실시하여 주일을 지키려는 성도들은 시험을 치를 수도 없고 취직하기가 무척 어려워졌다.  주일날 한 번만 시험을 치르고 취직한 후부터는 주일을 잘 지키겠다는 생각도 잘못된 것이다.  주일날 시험을 치러 좋은 곳에 취직이 되고 많은 월급을 받는다고 하여도 영적으로는 낮아진 것이요, 가련하고 궁핍한 가운데 빠진 것이다.  차라리 육신이 궁핍하고 영이 부요하여지는 것이 훨씬 좋다.  왜냐하면 육신은 잠시 잠깐 후에는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갈 것이고 영은 영원히 살 것이기 때문이다.  육은 아침 안개와 같이 잠깐 보이다가 없어질 것이고 믿음을 지킨 의는 영원히 남는 것이다.  예수님은 믿음을 지킨 자를 알아주신다.

아노니하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알아주신다는 것이다.  마태복음 10:32에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라고 하였다.  이것은 사람이 믿음을 지키면 예수님께서도 하나님 앞에서 저를 인정하여 주겠다 는 뜻이고, 사람이 믿음을 지키지 않으면 예수님께서도 하나님 앞에서 저를 부인하겠다는 뜻이다.  환난과 궁핍을 당하면서도 믿음을 지키는 자가 있고, 반대로 환난과 궁핍을 당하지 않으려고 믿음을 팔아먹는 사람도 있다.

성도 가운데 영에 속한 성도가 있고, 육에 속한 성도가 있으며, 좁은 길로 가는 성도가 있고, 넓은 길로 가는 성도가 있다.  시험을 이기고 믿음을 지켜 나가는 사람이 있고 시험에 넘어가서 믿음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  “자칭 유대인”이란 자칭 기독교인이란 뜻이다.  하나님은 인정하시지 않는데 자기 스스로 잘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다.  하나님께서 촛대를 옮기시면 교회는 영적 생명의 역사가 떠나고 껍데기만 남게 되는데 그 껍데기만 붙잡고 자랑하는 사람들이 자칭 유대인이라고 하는 자들이다.  성경말씀을 내버리고 신앙 양심을 지키지 않으면서도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자칭 유대인이다.  믿음을 지키는 참 성도는 환난과 궁핍을 당하나 믿음을 지키지 않는 자칭 유대인은 세상에서 잘 살고 편안할 수 있다.  세상의 것으로 부요하고 세상에서 편안한 자리에 있어 성공한 것 같을지라도 의를 배반하고 믿음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자칭 유대인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 아무리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생각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이미 촛대를 옮겨 놓아 생명의 역사가 떠난 것이다.  자칭 유대인은 참 성도를 훼방한다.  참 성도는 성경 말씀대로 순종하고 신앙 양심과 의리를 지키고 항상 하나님의 뜻을 찾아 그 뜻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이다.  참 성도를 핍박하는 사람은 불신자도 있지만 오히려 예수 믿는다고 하는 사람이 더 많다.  믿음을 잘 지키지 않는 성도가 믿음 잘 지키는 성도들을 더욱 훼방하고 핍박하는 경우가 많다.

열왕기상 13:11-26에 유다에서 한 젊은 선지자가 벧엘로 올라가서 여호와의 말씀을 외친 후 하나님의 뜻을 그대로 순종하여 돌아가려고 하였다.  그런데 한 늙은 선지자가 그 사람을 꾀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젊은 선지자가 처음에는 강경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겠다고 하였으나 늙은 선지자가 “나도 선지자”라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셨다”고 하는 바람에 그 젊은 선지자는 속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그곳에서 떡을 먹고 물을 마심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사자에게 찢겨 죽었다.  예수를 바로 믿으려고 하면 자칭 유대인의 훼방도 많고, 예수의 이름으로 거짓말을 하여 믿음을 지키지 못하게 하는 유혹을 받는 때도 많다.  그때마다 받은 말씀을 기억하고 믿음을 굳게 지켜야 한다.  디모데후서 3:14에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라고 바울이 말하였다 자기가 배우고 확신한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지 말고 굳게 붙잡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깨닫게 하여 주신 진리를 버리면 하나님께서 진노하신다.  한번 깨달은 진리는 죽을 때까지 순종하고 도중에 변경시키면 안 된다.  도중에 변질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변함이 없고 처음이나 나중이나 똑같아야 한다.  처음에 진리가 옳다고 깨달아 붙잡았으면 어떠한 고난이나 훼방이 올지라도 끝까지 그 진리를 붙들고 그 진리를 세워 나가다가 죽어야 한다.  진리를 깨닫고도 세워 나가는 일이 힘이 들기 때문에 도중에 인간의 지혜와 수단을 섞어 변질시키면 안 된다.

• 2:10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성도에게 장차 받을 고난이 반드시 있다.  그것을 미리 내다보면서 살아야 한다.  그러면 고난이 올 때에도 예상하였던 고난이 왔기 때문에 당황하지 않고 믿음으로 이겨 나갈 수가 있다.  고난이 올 때에 이상히 생각하면 안 된다.  베드로전서 4:12에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라고 하였다.  여름 날씨는 더웠으나 겨울이 되면 추워서 물이 꽁꽁 언다.  그러나 그 추위는 이미 예상하였던 일이므로 춥다고 하여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다만 겨울이 올 것을 생각지 않고 준비를 안 하고 있다가 겨울이 올 때에 벌벌 떨면 그 사람이 이상한 것이다.  예수를 성경대로 믿으려고 하면 고난이 반드시 오게 되어 있다.  고난이 올 때에 두려워하지 말고 말씀에 굳게 서야 한다.  두려워하는 자는 기드온 삼백 명 용사 중에 들지 못했다(삿7:2-3).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성도가 전부 옥에 갇히는 것이 아니고 몇 사람만 갇히게 된다.  마귀가 사람을 격동시켜 성도들을 옥에 가두게 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자기를 가두는 줄로 생각하지 말고 그 사람 속에 마귀가 들어가서 그렇게 하는 줄을 깨달아 그 사람을 미워하면 안 된다.  마귀가 성경대로 믿으려는 성도를 훼방하고 거짓으로 비방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악감정을 품게 만들어 그 성도를 똘똘 몰아 매장하는 일은 곧 감옥에 가두는 일이다.  그러나 이것도 하나님이 허락해서 된 것이다.  왜 하나님께서 허락하셨을까?  그 성도에게 더 좋은 것, 더 큰 은혜를 주시고 영광의 면류관을 주기 위함이다.  왜정 말기에도 신사 참배한 목사님들이 신사 참배하지 않는 목사님들을 똘똘 몰아붙여서 “별나게 믿고 교만한 자들”이라고 하여 심지어 제명시키고 일본 관헌에게 고발하여 감옥에 갇히게 한 경우가 많았다.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하나님께서 정하여 놓으신 일정한 기간 동안만 환난을 당한다는 뜻이다.  10수는 인간의 완전수이다.  마귀가 무한정으로 성도를 괴롭힐 수는 없고 하나님께서 정하여 놓은 일정한 기간에만 가능한데 그 기간이 결코 긴 기간은 아니다.

십일 동안은 사람과 사건에 따라서 다르다.  때로는 몇 달 몇 년이 될 수도 있으나 반드시 끝나는 시기가 있다.  하나님께서 정하여 놓은 기간을 다 채워야 환난이 끝난다.  어떤 사람은 9일까지 채우고 마지막 하루를 못 채우는 자가 많다.  하나님은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주시지 않는다고 하셨다(고전10:13).  하나님은 우리의 사정과 형편을 다 아시기 때문에 감당할 수 있는 시험만 주신다.  그러므로 무슨 시험을 당하든지 감당할 시험만 주신 줄 알고 죽도록 충성하면 다 이기게 된다.  하나님께서 옳다 인정할 때까지 충성하여야 한다(약1:12).  환난 가운데 믿음을 지키다가 살면 좋고 죽으면 더 좋다.  살면 자기의 구원을 이루어 가고 하나님의 일을 하니 좋은 것이고 죽으면 이 세상보다 더 좋은 천당에 가니 더 좋은 것이다.  환난을 받을 때에 “처음 사랑”과 “영적 생명의 세계”와 “빛의 세계”에 있으면 마귀가 아무리 강하게 역사하여도 하나님이 붙들어 주셔서 망하지 않는다.  십 일 동안의 환난을 믿음과 충성으로 통과하면 영적 생명이 많이 자라나게 된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환난이 필요한 것이고 환난은 귀한 것이다.  그러나 환난이 없는 사람이 일부러 환난을 찾아가면 안 된다.  성도는 항상 하나님께서 주시는 자기 위치에서 믿음을 지키어 나가야 한다.  평안한 환경을 주시면 거기에서 믿음을 잘 지키고 환난을 주시면 또 거기에서 믿음으로 환난을 이겨야 한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하나님은 죽도록 충성하는 것을 요구하신다.  “충성”은 맡은 바 일을 기어코 이루어 나가는 것이다.  우리 성도들은 자기의 맡은 사명과 달란트가 있는데 그것을 위하여 생명을 내놓고 충성해야 한다.  진리 운동하다가 환난과 핍박이 와도 진리대로(성경대로)만 행하고 그것 하나만 하는 것이 충성이다.  진리 운동을 하다가 훼방하는 사람이 많고, 진리를 세워 나가는 일이 힘들 때에 인간의 수단과 방법을 써서 진리를 변질시켜 나가면 죽도록 충성을 하지 못한 것이다.  진리에 인간의 수단과 방법을 섞어 인본주의로 나가면 훼방도 없고 외형적인 교회는 잘되어 갈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 앞에 가증한 것이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도 없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하려고 하지 않고 자기의 수단으로 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충성하지 못한다.  그러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서서히 촛대를 옮겨 놓으신다.  반대로 하나님께 부르짖고 하나님을 힘입어 하나님의 뜻대로만 하여 나가는 충성된 종에게는 하나님이 함께 하여 주시고 힘과 능력을 입혀 주신다.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죽도록 충성하는 자는 생명이 자라난다.  면류관은 상급이요 “생명의 면류관”은 상급으로 생명이 자라난다는 뜻이다.

• 2:11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둘째 사망은 영적 사망, 곧 지옥에 가는 것을 말한다.  환난을 이기고 믿음을 지키면 영이 항상 살고, 생명의 역사가 계속되어 가므로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게 된다.

[요한계시록 히브리어 성경] 에베소 교회-처음 사랑을 잃음(계 2:1-7)

 

[요한계시록 히브리어 성경] 에베소 교회-처음 사랑을 잃음(계 2:1-7)

요한계시록 2장에서는 예수님께서 에베소 교회에 편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교회를 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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