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히브리어성경

[신약 히브리어 성경말씀 로마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롬 1:8-17)

베들레헴 2021. 12. 27. 16:41
반응형

사도 바울은 로마서 1장에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율법주의 신앙자들은 행위로 구원을 얻어 산다고 말하지만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성경은 행위가 아니라 예수님을 믿음으로 산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고 살아야 합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롬 1:8-17)

 

• 1:8  첫째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을 인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첫째라고 한 것은 모든 것 중에 첫째가 될 만한 중요한 것이라는 뜻이며 순서적으로 둘째, 셋째를 열거하기 위함이 아니다. 바울은 로마에서도 사람들이 예수를 믿어 구원받은 것을 생각할 때에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였다. 당시 로마는 세계의 중심지로 정치와 권력과 향락의 도시요 기독교 핍박의 본거지였다. 그곳에 성도가 생기고 교회가 세워졌다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므로 바울이 그 은혜를 생각하며 더욱 큰 감사를 하게 되었다. 어디서나 택한 백성들이 예수를 믿어 구원받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제일 먼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일이다. 마귀의 종노릇 하다가 영원히 멸망할 그들이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로마에 있는 성도들의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될 만큼 그들이 믿음을 잘 지키고 복음을 열심으로 전파한 것 같다. 이것이 또한 바울이 하나님께 감사하는 원인의 하나이다. 당시 온 세상은 로마제국의 판도와 그 부근 국가들을 가리킨다.

• 1:9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란 뜻이며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가리킨다(1:2-4).

복음 안에서란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의 세계 안에서라는 뜻이다.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 심령의 원어 πνεύμα(프뉴마)는 영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영으로 섬겨야 되고, 또 진리대로 섬겨야 된다(요 4:24). 하나님을 영으로 섬긴다는 것은 중생한 영이 성령을 힘입어 마음과 몸을 바쳐 섬기는 것을 가리킨다. 성도가 육신의 감정과 지식으로, 또는 의식적으로 하나님을 섬긴다면 생명이 없다. 그러한 제사는 산 제사가 되지 못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이사야 29:13에“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라고 하였다. 마음과 영으로 하지 아니하는 경배는 헛된 것이다. 성도가 하나님을 바로 섬기려면 회개하여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이켜 신령한 세계를 찾고 영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그 예배를 기쁘시게 받으시고 하나님의 권고와 생명의 역사가 그 사람에게 오게 된다. 사도행전 20:22에 바울이 환난과 핍박이 기다리는 예루살렘으로 담대히 올라갈 때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올라갔다고 했다.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바울의 심령을 감동시켜 예루살렘으로 인도하기 때문에 바울이 그 인도를 따르지 않을 수 없고 환난과 결박이 기다린다고 해도 자기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게 된 것이다. 오늘날 성도들도 심령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법을 배워 그 심령에 매임을 받아서 전진하는 신앙을 가져야 되겠다.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된다는 말은 그의 생활과 말이 진실하여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 앞에 인정받을만한 것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사람의 증거나 자기 양심의 증거보다 더욱 큰 증거이다.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바울이 쉬지 않고 로마 교인들을 위해서 항상 기도했다. 이것은 쉬지 않고 계속적으로 기도만 하고 있었다는 말이 아니고 기도할 때마다 중단하지 않고 로마교인을 기억하면서 위하여 기도해 주었다는 말이다. 교역자가 교인들의 신앙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 1:10  어떠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바울이 복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로마에 가기를 오래 전부터 원하며 기도하였다. 복음 전파도 자기의 생각과 뜻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하고 이것을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바울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대로 그의 인도를 받아서 하려고 힘썼다.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것이 중요하다. 바울은 하나님의 뜻이라면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아무리 위태한 곳일지라도 갔다(행 20:22-24).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거절해야 되고 하나님의 뜻이면 생명이라도 내놓고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을 때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실 때까지 기다리는 것을 우리가 배워야 한다(하나님의 뜻을 찾는 방법은 마태복음 강해서 7:7-8 해석 참조).

• 1:11-12  내가 너희 보기를 심히 원하는 것은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주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 함이니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을 인하여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

바울이 로마에 가서 로마교인들을 보고자 심히 원한 것은 인정으로 인간적 교제를 하기 위함이 아니고 신령한 은사를 그들에게 나눠주어 그들의 믿음을 견고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이것은 마치 의사가 어떤 곳에 가서 병들고 약한 환자들을 고쳐서 건강하게 해주고자 하는 것과 같다. 사도 바울은 어리고 연약한 성도들과 병든 성도들에게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주어서 믿음을 견고하게 하고자 한 것이다. 우리도 받은 바 신령한 은사 즉 깨달은 진리를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어리고 연약하고 병든 성도들을 돌보아 주어야 한다. 어디를 갈 때에도 신령한 복을 가지고 가서 나누어주는 자가 산 신앙을 가진 자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주는 자와 받는 자들이 피차 은혜를 받고 믿음이 자라나고 안위함을 얻게 된다.

• 1:13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바울이 여러번 로마에 가고자 했으나 하나님이 허락지 않아서 가지 못했다. 그 사실을 로마 교인들이 알기를 바울이 원한 것은 바울과 로마 교우들 사이에 사랑의 교통을 위함이요 앞으로 만날 때에 더욱 큰 은혜를 받게 하기 위함이다.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열매는 믿음의 열매이며 의와 진리와 거룩의 열매요(엡 4:24), 하나님과 진리 지식의 열매요(골 3:10), 영이 자라나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는 열매이다(갈 4:19). 사람에게 신령한 복을 나누어주므로 그들이 신령한 도리를 깨달아 알게 되고 그 진리대로 순종하면 신령한 열매가 맺혀 나간다.

• 1:14-15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헬라인은 문명인, 야만인은 미개인을 가리킨다. 바울은 문명인이나 미개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복음의 빛을 졌다고 했다.

빚진 자라 빚진 자가 그 빚을 갚을 의무가 있는 것처럼 복음을 받은 자는 복음의 빚을 갚을 의무가 있다. 복음의 빚을 갚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자기가 받은 복음을 전해주는 것이다. 빚진 자는 빚을 갚으면 마음이 평안하고 갚지 않으면 무거운 죄책을 느낀다. 이 복음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주지 않고 혼자만 가지고 있는 것은 마치 국가에서 동민에게 나누어주라고 동장에게 배급한 밀가루를 동장이 자기 혼자서 착복하고 나누어주지 않는 것과 같다. 그 동장은 마땅히 벌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복음도 자기 혼자만 구원받으라고 주신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성도가 자기 혼자만 좋아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그 복음을 전해주기 않으면 하나님이 노하신다. 고린도전서 9:16에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니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라고 하였다. 로마서 15:27에 보면 이방인들이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신령한 것(복음)을 받았으니 육신의 것으로 보답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다. 이것도 빚을 갚는 원리이다.  잠언 22:7에 “빚진 자는 채주의 종”이라고 했다. 우리가 모든 사람에게 복음의 빚을 갚고자 하는 심정으로 열심히 전도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에스겔 3:11에는 듣든지 아니 듣든지 이 말씀을 전하라고 하였다. 복음을 받고도 전하지 않는 자는 빚을 갚지 않는 자이므로 반드시 화가 있다. 우리는 우리가 받은 복음을 할 수 있는 대로 많은 사람에게 나눠주어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에게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사람에게도 전해줄 의무와 책임이 있다.

•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에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라고 하였다(고전 1:18). 믿지 않는 자들은 복음을 아주 멸시하고 미련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바울은 이 복음을 부끄러워 아니하고 도리어 자랑하며 담대하게 전했다. 그 이유는 복음이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에 유명하고 지식 있는 사람들은 인간의 지혜를 구하고 철학을 논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들에게는 나사렛 예수가 사형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난 것과 저를 믿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고 하는 것이 아주 어리석게 보여 멸시하고 비웃는 자가 많이 있었다. 그러한 환경에서도 바울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온 세상을 향해 담대히 전하였다. 아무리 훌륭한 철학을 논하고 그것을 통달했다 하여도 그것으로는 자신이나 남의 영혼을 구원할 수 없다. 또 과학자들이 아무리 연구하여 새로운 지식과 발명을 했다고 해도 그것으로는 사람의 영혼을 살려낼 수 없다. 철학은 인간의 지혜에서 나온 것인데 대부분이 추상적으로 나온 헛된 말이 많다. 과학은 자연의 원리나 물질에 대한 이치와 법칙을 찾아내어 논증하고 적용하는데 지나지 않고 창조주나 창조의 원리 및 그 목적은 알지 못한다. 더군다나 인생의 근본 문제인 영혼이 사는 것과 하나님과 내세에 대하여는 알지 못한다. 복음의 내용을 바로 알면 복음을 부끄러워 하기는 보다 도리어 그 복음을 자랑하며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이 복음을 전하는 직분도 영광스러운 직분이다(고후 3:9). 복음 자체가 아름답고 귀하므로 복음을 전하는 직분도 세상의 어떤 직분보다 고귀하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가 복음을 귀히 여기고 힘써 전하는 생활을 하자.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복음은 ① 복음 자체에 능력이 있고 ② 하나님의 능력이 그 속에서 역사하여 모든 믿는 자를 구원한다.

능력이라는 원어 δὑναμιζ(뒤나미스)는 자연적인 힘이나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힘을 가리킨다. 이 단어에서 다이나마이트(dynamite=화약)라는 말이 나왔다. 즉 복음의 능력은 폭탄과 같은 능력이라는 말이다. 복음 자체에 폭탄과 같은 위대한 능력이 있다. 폭탄을 던지면 강한 힘이 나와 그 위력으로 모든 것이 파괴되고 또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이와 같이 복음을 던져 놓으면 마귀의 세력이 깨져 나가고 강퍅한 마음이 녹아져서 택함 받은 자들이 구주를 믿어 구원을 얻게 된다. 이러한 능력이 복음 안에 있다. 사람의 힘으로는 죄인을 건져낼 수 없고 살려 낼 수도 없으나 복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큰 능력이 복음과 함께 역사하여 사람들을 살려내고 구원해 내는 것이다. 전도자는 이 능력을 믿고 나가서 전해야 한다. 이 복음의 능력 앞에 세상이 반드시 정복될 것이다. 이 복음을 반대하고 대적하는 것은 마치 안전핀을 뽑아 던진 수류탄을 개들이 발로 밟고 물어 찢는 것과 같다. 수류탄이 “쾅”하고 터지면 개들이 다 죽고 정복당하고 만다. 하나님의 말씀은 폭탄과 같은 능력이 있으므로 아무도 이길 수 없다. 우리가 복음을 세상에 던져 놓기만 하면 믿는 자는 살려낼 것이요, 끝까지 믿지 않고 반대하는 자는 멸망할 것이다. 그러므로 복음은 믿는 자에게는 구원의 능력이 되고 믿지 않는 자에게는 심판의 능력이 된다. 우리가 복음을 전해 놓으면 하나님이 능력으로 일하셔서 건져낼 자를 건져내시고 심판할 자를 심판하신다. 또 성령이 역사하기 때문에 복음은 이기고 또 이기며 계속해서 이겨 나가는 것이다.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유대인에게 먼저 복음을 전했다는 뜻이다. 유대인은 조상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구약의 말씀)을 받았고 조상들을 통해서 내려오는 생활이 구약 성경화되어 있다. 또 유대인들은 외부적인 계명을 지키고 있었으며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을 받고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었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 보내심을 받았다고 하였으며(마 15:24 참조), 또 그 제자들이 유대인에게 먼저 전도했다(마 10:5-6). 유대인들이 복음을 믿게 되면 이미 받은 말씀이 있으므로 먼저 깨닫게 되고 그리스도를 먼저 영접하게 된다. 로마서 9:4에 “저희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라고 하였다. 유대인들은 외부적으로 언약에 참여하여 율법을 지키고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으므로 예수를 믿게 되면 더 빨리 영접하게 되고 더 많이 충성할 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첫째는 유대인에게요“라고 했다.

또한 헬라인에게로라 전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모든 이방인들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인에게도 유대인과 마찬가지로 복음을 주셨으며 그 복음을 믿으므로 구원받도록 축복하셨다.

•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하나님의 의는 무엇을 말하는가? 하나님 자신의 의로운 성품을 가리키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이 행한 의도 아니고 하나님의 공의도 아니다. 또한 인간이 율법을 행한 의도 아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선물로 주신 의이다(3:21-22). 즉 하나님이 보시기에 의롭다고 간주(看做)되는 의, 하나님의 법정에서 의롭다고 선언할 수 있은 의이다. 하나님의 의는 복음에 나타났으며(롬 1:17),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1:2-4 해석 참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어 신구약 성경을 다 지키시고 하나님의 뜻을 죽기까지 순종하여 완전한 의를 이루어 놓았다. 이 의는 믿는 자에게 주기 위하여 행하신 의이다(고전 1:30). 성도는 믿음으로 그 의를 받아 가졌으므로 하나님 앞에 의인으로 칭함을 받는다.

믿음으로 믿음에 믿음의 성장과 믿음의 진보를 말한다. 진리의 말씀을 많이 배워 믿음으로 화합하면 믿음이 점점 진보가 되고 자라난다. 처음 믿을 때도 그 믿음 자체는 완전하나 아직 어린 믿음인데 그 믿음이 점점 장성해 나가야 한다. 고린도전서 3:1-2에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라고 하셨다. 또 히브리서 5:13-14에 보면 어린 신앙을 가진 자는 젖을 먹고 장성한 자는 단단한 식물을 먹는다고 했다. 에베소서 4:15에는 범사에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나라고 했다. 그러므로 성도는 신앙과 영이 자라나야 한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 말씀은 성경에 네 번 나온다(합 2:4, 갈 3:11, 히 10:38 참조). 이 말씀은 로마서 전체에 대한 요절이요, 요한복음 3:16과 같이 성경 전체의 요절이라고 할 수 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라야 참 믿는 사람이고 믿음으로 살지 않는 신자는 죽은 믿음이다. 학자는 학(學)으로 살고, 상인은 상업으로 살고 농민은 농사로 살고 기술자는 기술로 산다. 각각 자기의 것을 가지고 산다. 그러므로 신자는 당연히 믿음으로 살아야 된다. 세상 사람들은 다 자기 것을 가지고 사는데 성도가 믿음으로 살지 않는다면 참 신자가 아니다. 과거의 성도들을 보면 돈이 없어도 믿음으로 살았다.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 귀향 살이 갔어도 믿음으로 살았고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는 사자굴과 풀무 불에서도 믿음으로 살았다. 또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독자를 하나님께 바치면서 살았다.  세상을 이기는 것은 우리의 믿음이라 했다(요일 5:4). 그러나 오늘날 예수 믿는 사람들이 믿음으로 살지 않고 세상의 것으로 살려고 힘을 쓰고, 세상 것을 붙잡으려고 오히려 믿음을 버리는 사람이 많이 있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①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산다는 뜻이다.

②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산다는 뜻이다.

③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뜻이다.

마태복음 4:4에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라고 하셨다. 이것은 “믿음으로 산다”는 말과 같은 뜻이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한다(히 11:38).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은혜와 축복을 받는 도구이며 그릇이다. 또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그 말씀을 이루어 나가는 도구가 된다(약 2:22). 그러므로 참된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그대로 이루어 나가는 것이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믿음으로 그 말씀을 순종하여 그 말씀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되어 나간다. 하나님의 말씀은 간단히 말하면 하나님과 그의 뜻을 나타내 보여준 것이다.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성부, 성자, 성령)을 알게 되고 믿음으로 하나님을 영접하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과 죄 사함과 하나님의 의(義)의 새 생명(양자의 영)을 우리가 믿음으로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또한 하나님을 닮아가며 장차 하늘나라의 기업에 참여할 것이다. 또 말씀(복음)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기 때문에 말씀을 믿는 자에게는 위대한 능력의 역사가 나타나 그 말씀을 이루어 나갈 수 있게 된다. 말씀(복음)을 믿는 자는 미련한 자가 지혜 있게 되고, 약한 자가 강하게 되며, 멸시받는 자가 존귀하게 됨으로 지혜 있고 능한 자들이 부끄러움을 당하게 된다(고전 1:27). 소년 다윗이 약하였으나 믿음으로 사자와 곰을 이겼고 강한 골리앗을 이기었다(삼상 17:34-57). 고린도후서 6:9-10에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라고 하셨다. 이것이 믿음으로 사는 생활이다.  연약하고 벌레와 같은 우리 성도가 말씀을 믿고 순종하면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고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서 썩어질 것이 썩지 아니할 영광의 형체로 변화되어진다.

살리라 영과 몸 전체가 산다는 것이나 영이 그 주체가 된다. 영이 사는 생활을 하지 못하면 몸은 살았으나 죽은 자와 같다.

[신약 히브리어 성경말씀 사도행전] 예수님의 승천과 재림 기록(행 1:6-11)

 

[신약 히브리어 성경말씀 사도행전] 예수님의 승천과 재림 기록(행 1:6-11)

사도행전 1장에서 예수님은 승천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아서 제자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증인이 되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하늘로 승천하시면서 다시 이 땅

bethlehem123.tistory.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