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하나님 말씀

[열왕기하 히브리어 강해] 모압치기 위한 여호람과 여호사밧의 동맹(왕하 3:6-12)

베들레헴 2022. 8. 27.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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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압과 전쟁하기 위한 여호람과 여호사밧의 동맹(왕하 3:6-12)

 

북 이스라엘 여호람 왕이 남 유다의 여호사밧 왕에게 사신을 보냈다. 모압 왕이 배반하였으니 함께 동맹을 맺어 치자는 제안이었다. 하나님 백성은 여호와를 배반한 사람들과 함께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은 유다 백성이다. 북 이스라엘 민족은 여호와 하나님을 따르지 않았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와 함께 멍에를 메면 안 된다.

 

6절 바예체 하멜렉크 이호람 바욤 미쇼미론 비이피코드 에트 콜 이스라엘

성 경: [왕하3:6]

주제1: [여호사밧의 모압 원정(遠征)]

주제2: [여호람 동맹군]

󰃨 그 때에...온 이스라엘을 점고하고 - 여기서 '그때'는 여호람이 왕위에 오른 때를 가리킨다. 그리고 '점고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파카드'로서 '방문하다', '보살피다', '헤아리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이 단어가 가리키는 의미는 기존의 군대를 정비하는 것(Wycliffe) 뿐만 아니라 군인으로서의 자격이 없는 사람들을 모아 큰 군대를 조직하는 것을 말한다(Matthew Henry, Lange Commentary). 그래서 여호람 왕은 정규 군대와 지방에 있는 군대까지 모두 소집하여 메사 왕에 대한 보복을 꾀했던 것이다. 그리고 '온 이스라엘'을 소집할 정도로 여호람의 보복 행위는 강력했으며 또한 이것은 상대적으로 메사 왕의 위력이 상당했음을 암시해 준다.

7절 바옐레크 바이쉴라흐 엘 이호샤파트 멜렉크 이후다 레모르 멜렉크 모아브 파샤 비 하텔레크 이티 엘 모아브 라밀하마 바요메르 에엘레 카모니 카모카 키아미 키아메카 키수사이 키수세카

성 경: [왕하3:7]

주제1: [여호사밧의 모압 원정(遠征)]

주제2: [여호람 동맹군]

󰃨 또 가서 유다 왕 여호사밧에게 보내어 이르되 - 여호람은 모압 원정을 위해 전 이스라엘 군대를 소집하였을 뿐만 아니라 유다 왕 여호사밧에게도 전갈을 보내어 원조를 요청했다. 왜냐하면 여호사밧이 아합과의 동맹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자신의 장자 여호람과 아합의 딸 아달랴를 정략적으로 결혼시키는 관계였기 때문이다(8:18; 대하 18:1). 그런데 이것은 이스라엘 왕 여호람이 여호와를 신뢰하지 않고 유다의 병거와 말을 신뢰했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때에 유다 왕 여호사밧이 이스라엘과 동맹을 맺은 것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지 않으셨다(대하 19:2). 한편 여호람이 여호사밧과의 협조 관계를 추구했다는 것은 모압을 격파하기 위해 유대 땅을 지나야 할 필요가 있었음을 나타냄과 동시에 당시 유다의 속국이던 에돔의 긍정적 영향을 원했던 것으로 이해된다(Wycliffe Bible Commentary, p. 343).

󰃨 내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일반이요 - 여호람의 요청에 여호사밧이 이렇듯 쉽게 응락한 것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한민족이라는 사실에 기인하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는 여호사밧이 모압과 암몬의 연합군에 의해 침공을 당해 큰 위기를 겪은 경험 때문인 것(대하 20:1-37)으로 추측된다(Matthew Henry).

8절 바요메르 에 제 하데레크 나알레 바요메르 데레크 미드바르 에돔

성 경: [왕하3:8]

주제1: [여호사밧의 모압 원정(遠征)]

주제2: [여호람 동맹군]

󰃨 에돔 광야 길 - 당시 북이스라엘에서 모압을 침공할 수 있는 길은 둘이었다. 하나는 사해 동북쪽을 통해 요단 강을 지나 모압 북쪽으로 가는 길이었고, 다른 하나는 사해 남단을 돌아서 에돔 북쪽을 지나 모압 남쪽으로 가는 길이었다. 이중 후자의 길은 아주 멀뿐만 아니라 험하고 위험한 길이었지만 여호사밧은 이 길로 갈 것을 권했다(Keil & Delitzsch, Pulpit Commentary). 이와 같이 여호사밧이 모압의 남쪽 노선을 권고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전자의 북쪽 노선으로 가게 되면 길르앗 라못 부근에 있는 아람을 건드릴까 하는 염려에서 이며 2) 모압이 남방의 불가침성을 굳게 믿고 있어서 남쪽 방어가 허술했기 때문이고 3) 당시까지도 유다의 속국이었던 에돔과 합세할 수 있으므로 더욱 강력한 공격을 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Keil, Lange). 그러나 이러한 철저한 계획에도 불구하고 그 계획은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았는데(10) 이것은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이심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16:9). 다음 지도는 연합군이 모압을 침공한 경로를 나타낸 것이다.

9절 바옐레크 멜렉크 이스라엘 우멜렉크 이후다 우멜렉크 에돔 바야소부 데레크 쉬비아트 야밈 비로 하야 마임 라마하네 비라비헴마 아세르 비라길레헴

성 경: [왕하3:9]

주제1: [여호사밧의 모압 원정(遠征)]

주제2: [여호람 동맹군]

󰃨 이스라엘 왕이 유다 왕과 에돔 왕으로 더불어 - 모압의 메사(Mesha)를 치러가는 연합군의 행렬을 기술한 것으로 이스라엘 왕이 원정의 지휘자로서 역할을 했고 그 중요성 정도에 따라 유다 왕과 에돔 왕이 기술된 듯하다(Pulpit Commentary). 한편 왕상 22:47에서는 에돔에 왕이 없고 섭정왕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본절에 왕이 명기된 것은 에돔의 일시적인 배반(대하 20:22) 때 세운 듯하다.

󰃨 길을 둘러 행한 지 칠 일에 - 본절에서는 세 나라의 동맹군이 광야를 칠 일 동안이나 방황하며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본절에서 '둘러 행하다'(surround)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사바브'인데 이 단어는 '어떤 장소를 배회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세 나라가 동맹한 연합군이 지나치게 숫적으로 과다하여 예상외로 긴 거리를 우회하게 된 것이다(Word Biblical Commentary). 그런데 이 단어는 삿 11:18에서도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한편 이러한 방황은 여호와의 뜻에 순종하지 않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로 인한 결과였다(T. R. Hobbs). 그래서 카일(Keil)도 이것이 하나님의 징벌이었음을 암시적으로 다음과 같이 시사하고 있다. , 연합군이 7일 동안 방황하며 지나간 곳은 에돔과 모압의 경계가 되는 '아시'(Ashi)의 바위 골짜기였다. 이 골짜기에는 로빈슨(Robinson)에 의하면 사시사철 계속 물이 흐르는 강이 있었고 그 강에 이르기만 하면 병사나 육축을 위한 충분한 물을 공급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그곳에 도착했을 때는 가뭄이 한창이어서 이 강이 말라 있었는데 예기치 않은 이러한 상황, 즉 물의 고갈은 바로 하나님의 징벌이라고 생각했다(Keil &Delitzsch).

󰃨 먹일 물이 없는지라 - 연합군은 광야의 길로 진군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물이었다. 그런데 광야에 있는 시내는 비가 올 때만 흐르는 건천(wady)이기 때문에 건기, 즉 비가 오지 않는 시기에는 물을 얻기가 무척이나 힘들었다.

10절 바요메르 멜렉크 이스라엘 아하흐 키 카라 아도나이 리쉘로세트 하밀라킴 하엘레 라테트 오탐 비야드 모아브

성 경: [왕하3:10]

주제1: [여호사밧의 모압 원정(遠征)]

주제2: [여호람 동맹군]

󰃨 이스라엘 왕이 가로되 슬프다 - 본절은 환난에 직면해서야 비로소 하나님을 인식하는 여호람의 어리석음을 보여 준다. 모압 원정을 준비할 때는 하나님과는 전혀 상관없이 독단적인 생각에 의해 무력으로 일을 꾀하던 그가 이제 환난에 닥친 뒤에야 비로소 이러한 상황을 하나님의 심판으로 깨닫고 후회한다. 이와 같이 믿음으로 일을 시작하지 않은 사람은 곤경에 직면할 때만이 믿음으로 대처하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하기 십상이고 남에게 그 원망을 돌리기 일수이다. 한편 이러한 태도는 믿음 없는 자의 전형적인 모습이다(14:10-13; 15:24; 16:2; 17:2; 11:1; 14:1-3; 21:5 ).

11절 바요메르 이호샤파트 하엔 포 나비 라아도나이 비니디리샤 에트 아도나이 메오토 바야안 에하드 메아비데 멜렉크 이스라엘 바요메르 포 엘리샤 벤 샤파트 아세르 야차크 마임 알 이데 엘리야후

성 경: [왕하3:11]

주제1: [여호사밧의 모압 원정(遠征)]

주제2: [여호람 동맹군]

󰃨 여호사밧이 가로되...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없느냐 - 왕상 22:5-7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여호사밧은 거짓 선지자의 의견을 듣기보다는 참 선지자의 말을 듣기 원했다. 그래서 지금도 여호사밧은 여호람의 의견을 배척함과 동시에(Wycliffe) 신앙과 소망을 갖고 여호와의 선지자를 찾은 것이다. 또한 본절은 한 사람의 신실된 믿음으로 얼마나 많은 생명을 구원할 수 있는가를 실증해 주고 있다. , 유다 왕 여호사밧의 믿음으로 이스라엘과 유다, 그리고 에돔의 모든 병사들까지도 기적적으로 승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24-26;62:11;10:13).

󰃨 엘리야의 손에 물을 붓던 - 엘리야 선지자의 종으로서 엘리야와 함께 생활했으며, 그의 능력을 이어받아 하나님께로부터 계시를 받고 그것을 해석할 수 있는 자(Keil &Delitxsch), 혹은 엘리야로부터 가장 신임을 받던 자(Thenius)라는 의미로써 엘리야의 뜻을 수행했을 뿐만 아니라 그를 섬겼기 때문에 엘리야와 같은 능력을 전가받은 자라는 뜻이다. 한편 '물을 붓던'이란 표현은 '수종 드는 것'을 말하는데 손을 씻으려 할 때에 그 옆에서 물을 부어주며 심부름하는 제자의 위치를 나타낸 것이다.

󰃨 엘리사가 여기 있나이다 - 엘리사가 모압 원정군을 따라 여기 모압의 경계 지역인 '아사' 골짜기까지 오게 된 경위에 대해서 성경은 아무런 언급도 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본절을 근거로 해서 엘리사가 여기까지 오게 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추측해 볼 수 있다. (1) 믿음의 사람 유다 왕 여호사밧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었다. 즉 여호사밧이 이스라엘과 동맹 맺은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셨지만(대하 19:2) 하나님은 그의 신앙을 익히 알고 계셨기 때문에 그를 끝까지 지키셨던 것이다. (2) 여호람에게 이스라엘의 참 보호자는 여호와 한 분뿐이심을 보이시기 위해 엘리사를 성령의 감동으로 이곳까지 인도하신 것이다(Keil). (3) 유다 왕 여호사밧에 대한 엘리사의 염려에 기인한 것이다(14절에 의거). 한편 본절의 의미로 볼 때 여호람은 엘리사의 존재를 전혀 알지 못한 것 같다(Wycliffe).

12절 바요메르 이호샤파트 예쉬 오토 디바르 아도나이 바예리두 엘라이브 멜렉크 이스라엘 비호샤파트 우멜렉크 에돔

성 경: [왕하3:12]

주제1: [여호사밧의 모압 원정(遠征)]

주제2: [여호람 동맹군]

󰃨 여호와의 말씀이 저에게 있도다 - 문자적으로 이것은 '그는 참 선지자이므로 그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잘 알려줄 수 있다'라는 의미이다(Pulipit Commentary). 여호사밧이 엘리사의 명성에 대해 어떻게 알았는지 알 수 없으나 그가 엘리사를 참 선지자요, 하나님의 진정한 사역자로 인정하고 그 권위를 받아들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엘리사에 대한 명성이 북이스라엘을 넘어 유다까지 알려졌음이 이 표현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Lange).

󰃨 이에 이스라엘 왕이...더불어 그에게로 내려가니라 - 여기서 엘리사에게로 내려가는 세 왕 중에 이스라엘 왕이 맨 선두에 있음이 제시되고 있는데 이것은 이스라엘 왕이 (1) 동맹군의 대표였고 (2) 자국의 선지자였고 (3) 여호와의 심판에 대한 자각 때문에 제일 먼저 서두른 것이다. 그러나 14절에 있는 엘리사의 말에 비추어 볼 때 그가 회개하는 마음으로 혹은 큰 믿음이 생겨서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한편, 흔히 선지자들이 왕 앞에 불리어 갔던 사례들과 비교해 볼 때 세 왕이 직접 엘리사에게로 간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였다. (1) 엘리야의 제자인 엘리사에 대한 존경심 때문이며(G.Rawlinson) (2) 이러한 곤경으로 인해 세 왕이 겸손해졌기 때문이다(Keil, Wycliffe, Pulpit Comment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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