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장에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사건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이 세상을 지을 때는 땅이 혼돈하고 공허했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첫째 날에 빛을 창조하셨는데 엄밀히 따지면 빛이 있으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빛이 있었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이 빛을 보시기에 좋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빛과 어둠을 나누었습니다.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셨습니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첫째 날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첫째 날 빛 창조 사건(창 1:1-5)
1-5절, 첫째 날
[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두란노 사용
본절은 단지 1장 전체에 대한 제목이 아니고 하나님의 창조 사역의 실제적 시작을 증거 한다. 그것은 원문 2절에 웨라는 말에서 확증된다. 그 말은 ‘그런데’라고 번역될 수 있다. 1절의 말씀이 단지 제목이라면, 2절은 ‘그런데’(웨)라는 말로 시작될 수 없을 것이다.
‘태초에’(베레쉬트)라는 말은 ‘맨 처음에’라는 뜻이다. 그것은 시간의 시작을 가리킨다. 맨 처음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 그것은 우주의 근원 즉 존재 세계의 근원 문제에 대한 대답이다. 맨 처음에 하나님께서 계셨고 그가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이라는 원어(엘로힘)는 복수명사 형태이다. 이 말은 때때로 이방의 신들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출 23:13; 왕하 18:33 등). 그러나 이 단어가 유일하신 한 하나님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 히브리어에서 복수명사는 복수 동사를 취하지만, 이 말은 하나님을 가리킬 때 항상 단수 동사를 취한다. 하나님을 가리키는 이 복수명사 형태의 말은 하나님의 능력과 위엄이 크심을 나타내며 또한 하나님의 삼위일체 되심을 암시할 것이다.
1절의 ‘천지’는 우주 공간과 땅의 원소들을 가리킨다. 그것은 다음 몇 절들에서 분명해진다. 창조된 천지는 아직 원시 상태에 있었다.
‘창조하신다’는 말은 하나님께만 사용되는 단어로서 하나님께서 무(無)로부터 무엇을 만드셨음을 잘 나타낸다. 사람은 이미 있는 재료로 집도 만들고 자동차도 만든다. 재료가 없으면 아무것도 만들 수 없다. 또 사람은 이미 있는 자연법칙을 터득하여 전기도 발명하고 컴퓨터도 발명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신 외에 아무것도 없이 모든 것을 만드셨다. 그는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이’시다(롬 4:17). 이것이 하나님의 전능하심이다.
태초에 계신 하나님,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부터 계셨던 하나님께서는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다. 태초에 하나님 대신에 물질이 있지 않았다. 물질은 근원적 요소가 아니다. 물질은 영원하지 않다. 물질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심으로 존재하게 된 것뿐이다. 하나님께서 우주의 근원이시다. 그가 모든 것을 만드셨다. 이것은 가장 근원적인 진리이며 가장 중요하고 큰 진리이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는 모세에게 자신을 ‘스스로 계신 자’라고 계시(啓示)하셨다. 출애굽기 3: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 . .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여호와’라는 그의 이름은 ‘있다, 존재한다’는 단어(하야)에서 나온 말로서 ‘스스로 계신 자’라는 뜻을 나타낸다.
시편 90편에 보면,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기도하기를,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하였다(시 90:1-2). 이사야 40:28에서 이사야는 하나님을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라고 불렀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주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고 하셨는데(계 22:13) 그것은 그의 영원하심을 나타낸다.
[2절]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水面)에 운행하시니라.-두란노 사용
본절은 원문에 웨 라는 말로 시작한다. 그것은 ‘그런데’라고 번역될 수 있다. 본절은 창조된 천지의 원시적 상태를 묘사한다. ‘혼돈’이라는 원어(토후)는 ‘형태가 없음, 혼돈, 공허’ 등의 뜻이며, ‘공허’하는 원어(보후 )는 ‘텅 비어 있음’이라는 뜻이다(BDB). 창조된 땅은 아직 형태가 없고 텅 비어 있었다.
또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다. ‘깊음’이라는 원어(테홈)는 바다의 깊음을 가리키는 말이며(시 104:6), 이어서 ‘수면에’라는 말이 나오는 것을 보면 그 깊음은 물로 뒤덮인 땅이나 수증기로 가득한 공간을 가리키는 것 같다. 피조 세계에서 기본적 요소인 물은 창조된 천지의 초기 상태에 포함되어 있었다. 아직 어두움이 천지에 가득하였다. 빛이 창조되기 전까지 온 우주는 캄캄하였다.
그때 하나님의 영께서는 그 물 위에 운행하셨다. ‘수면에’라는 원문은 ‘그 물(함마임) 위에’인데, ‘그 물’은 앞에 나오는 ‘깊음’(테홈)을 가리키는 것 같다. 땅과 우주 공간은 물과 수증기로 가득한 상태이었던 것 같다. 그 창조 사역에 하나님의 영 곧 성령께서 물 위에 운행하고 계셨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다. 우리의 구원도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이다.
어떤 이들은 본절이 천사의 타락을 가리킨다고 본다. 그들은 하나님의 창조하신 땅이 천사의 타락으로 혼란하고 공허해졌다고 추측한다. 그러면 창세기 1장의 내용은 천지 창조의 사건에 대한 것이라기보다 천지 회복의 사건에 대한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본장의 구조상 1절은 첫째 날 안에 포함된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또한 창세기 1-2장과 출애굽기 20:11은 천지 창조가 엿새 동안에 된 것을 증거하며, 이것은 천사들을 포함하여 모든 피조 세계의 기원을 말한다고 본다. 또 창세기 1:31에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는 말씀은 천사의 타락이 천지 창조의 제6일 이전에 있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이는 것 같다.
[3절]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두란노 사용
원문은 ‘그리고’라는 말로 시작된다. 창조된 천지가 아직 형태가 없고 비어 있었고 캄캄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빛을 만드셨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빛을 만드셨다. 본장에는 ‘하나님이 가라사대’ 혹은 ‘이르시되’라는 말이 11번이나 나온다. 요한복음 초두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초부터 계신[계셨던] 말씀(로고스)이라고 불리었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고 증거되었다(요 1:3).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일하셨다. 그 말씀은 능력의 말씀이시다. 인간의 말도 힘이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더욱 그러하시다. 하나님의 말씀은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능력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에 풍성하게 기록되었다.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이며 이제는 한 책의 종교이다. 성경은 기독교의 근거이며 권위이며 내용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생명과 위로와 힘이 된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빛을 만드셨다. 그는 어두움의 세계에 밝은 빛을 주셨다. 빛의 정체는 신기하기만 하다. 우리는 대표적 빛인 태양빛 아래서 불빛이나 전기 빛을 보며 살고 있다. 창조 세계의 아름다움은 빛 가운데서만 드러난다. 빛이 있어야 만물의 색깔도 있다. 어두움 속에서는 모든 것이 검정색일 뿐이다. 하나님은 빛이시며(요일 1:5) 하나님의 세계는 빛의 세계이다. 성경에서 어두움은 무지와 죄, 슬픔과 불행을 상징하고, 빛은 지식과 의, 기쁨과 행복을 상징한다. 하나님의 창조 세계는 기쁨과 행복이 기대되는 세계이었다. 장래의 천국도 기쁨과 행복이 충만한 세계일 것이다(롬 14:17).
[4절]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두란노 사용
하나님께서는 창조하신 빛이 좋았음을 보셨다.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표현이 창세기 1장에 일곱 번 나온다. 이 말씀은 창조된 천지 만물의 본래의 상태가 선하고 아름다웠음을 증거한다. 창조된 세상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다면, 그것은 사람 보기에도 선하고 아름다운 세상이었음에 틀림없다. 오늘날 세상에 있는 죄와 불행은 본래 상태의 모습이 아니고 사람이 범죄한 후 상태의 모습이다.
하나님께서는 어두움도 만드셨고 빛도 만드셨다. 빛과 어두움은 이 세상에서만 있다. 천국에는 밤이 없을 것이다(계 22:5). 이것은 교훈적 의미를 가지는 것 같다. 이것은 세상에 죄와 슬픔과 불행도 있고, 의와 기쁨과 행복도 있을 것을 암시한다.
하나님께서는 빛을 만드셨고 빛과 어두움을 나누셨다. 빛과 어두움은 섞일 수 없다. 그것들은 본질상 서로 다르다. 하나님께서는 혼돈과 무질서를 싫어하시고 죄와 불의를 미워하신다. 하나님은 ‘나누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는 빛과 어두움을 나누셨을 뿐 아니라, 의와 불의, 선과 악을 나누신다. 그는 최종적으로 의인과 악인을 나누실 것이다. 마태복음 13:49,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 요한계시록 22:15,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밖에 있으리라.”
[5절]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두란노 사용
하나님께서는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부르셨다. 낮과 밤이라는 것이 시작되었다. 이와 같이, 첫째 날 하나님께서는 공간과 땅의 원질, 물, 그리고 빛을 만드셨다. 천사들의 창조도 첫째 날에 두어야 할 것 같다(욥 38:4, 7; 시 148:5; 골 1:16).
본장에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라는 말이 여섯 번 나온다.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 사역의 육일의 하루가 일상적인 24시간의 하루에 적합함을 보인다. 여기에 하루가 긴 시대를 가리킨다면,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라는 표현은 무의미할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엿새 동안에 창조하시고 일곱 째 날에 안식하셨고 그것을 기념하는 안식일이 일상적 하루이므로, 다른 육일도 일상적 하루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고 긴 시대로 해석하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다.
그러나 천지 창조의 처음 삼일은 태양 없는 날들이었던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지구를 만드셨고 지구의 자전도 아마 시작된 것 같다. 그러나 현재 지구의 빛에 주된 공급원인 태양은 아직 창조되기 전이었다. 그러나 태양이 없이 저녁과 아침을 맞이하였다.
본문은 몇 가지의 중요한 진리를 깨닫게 해준다.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와 인생의 해답이시다. 인간에게는 ‘우주가 어디에서 왔는가?’ ‘인간은 어디에서 왔는가?’ 등의 근본적 질문이 있다. 아무도 대답해주지 못하는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여기 있다. 하나님께서 그 대답이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말씀 속에 그 대답이 있다. 우리도 모세처럼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시 90:1-2)라고 고백하자.
둘째로, 온 우주와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물이다. 물질 세계와 인간 세계는 스스로 존재한 것이 아니다. 천지와 만물이 다 하나님의 창조하심으로 존재하게 되었다. 사도 요한의 증거대로,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 1:3). 여기에 인간의 바른 위치가 있다. 사람은 피조물이다.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빛을 창조하셨다. 어두움은 무질서와 무지와 죄와 슬픔과 불행과 통한다. 그러나 빛은 질서와 지식과 의와 기쁨과 행복과 통한다. 하나님의 세계는 빛의 세계이다. 현재 세상은 사람의 죄로 슬픔과 불행이 많지만, 구원은 의와 평안과 기쁨을 주며 장차 우리가 들어갈 천국은 의와 평강과 기쁨이 넘치는 나라일 것이다(롬 14:17).
[마태복음 히브리어 예수님 말씀] 사탄의 시험을 이긴 예수님(마 4: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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