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하나님 말씀

[마태복음 히브리어 예수님 말씀] 사탄의 시험을 이긴 예수님(마 4:1-11)

베들레헴 2022. 6. 6.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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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4장에서 예수님은 세례를 받은 후에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들어가게 됩니다. 광야에서 40일 금식하시면서 사탄의 시험을 받고 승리하게 됩니다. 사탄은 예수님을 시험하는데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돌들에게 명하여 떡을 만들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탄은 육적인 것을 시험하고 있지만 예수님은 영적인 것으로 살 것을 말씀합니다. 마귀가 예수님을 거룩한 성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뛰어내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명령했습니다. 마귀가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고 예수님께 엎드려 경배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모든 것을 네게 준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고 했습니다.

 

사탄의 시험을 이긴 예수님(마 4:1-11)

 

예수님이 시험을 이기심(1-11)

 

1. 떡에 대한 시험(1-4)

• 4:1-4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마귀가 예수님께 와서 돌로 떡이 되게 하라는 시험을 한 것은 예수님이 40일 금식 기도한 후였다.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여러 가지로 시험을 받으셨으나 거기에 대한 결론으로 마귀가 세 가지를 시험했다.

첫째시험은 돌로 떡 덩이가 되게 하여 먹으라는 것이었다. 마가복음 1:12-13에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셔서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라고 하였다.  이것을 보면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계속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다고 볼 수 있다. 이 시험문제 때문에 예수님이 기도를 많이 하셨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고 죄가 없으신데 왜 시험을 받으셨겠는가?

예수님이 시험을 받으신 이유는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 하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이겨 주시기 위한 것이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인성을 입으셨기 때문에 우리와 꼭 같이 시험을 받았으나 죄는 없으시다(히 4:15 참조).  예수님은 인성을 입으셨기 때문에 연단을 받기 위해서 마귀의 시험을 이기셔야 했다.  예수님이 시험을 이기기 위해서 고요하고 한적한 광야에 나가서 하나님 앞에 깊은 기도를 하셨다.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바로 깨닫고 하나님이 주시는 권능을 힘입어야 하기 때문에 깊은 기도를 하기 위해 광야로 가신 것이다.

예수께서 시험받는 기간 동안 여러 가지 들짐승이 많이 왔으나  하나님이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않도록 보호해 주시고 모든 시험을 다 이길 수 있도록 하여 주셨다.  예수님이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로 나가셨고, 성령께서 기도를 하게 하셨다.  예수님은 성령께서 주신 힘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모든 시험을 이기셨다. 

오늘날 우리성도가 시험을 받을 때에도 광야 생활을 통과해야 된다.  “광야생활”이라는 것은 아무 의지할 데도 없고 도와주는 사람도 없어 쓸쓸하고 거친 지경을 당하는 것을 말한다.  성도가 시험당하는 동안에는 주위에는 사람들이 모두 들짐승과 같은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하면 시험당하는 기간에는 사람들이 짐승같이 해하려고 하는 일이 많다.  시험당하는 기간에는 가까운 사람들도 모두 짐승처럼 물어뜯으려고 하며 잡아먹으려고 하는 때가 많다.  그러나 믿음으로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손해 받지 않게 해 주시고 멸망하지 않도록 보호해 주신다.  시험받는 동안에는 짐승이 많이 오는 줄을 알아야 한다.  시험받을 때에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말씀대로 걸어가면서 그 말씀으로 시험을 이겨 나가야 한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의심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이 시험은 마음으로 받은 시험이다.  예수님이 실제로 마귀를 따라 성전 꼭대기에 올라 갓을 리가 없다.  또 실제로 천하 영광이 다 보이는 산은 없다.  마귀가 예수님의 마음속에 그러한 생각을 넣어 주어 마음속으로 받은 시험이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하는 것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의 자격이 구비되었다고 하면”의 뜻이다.  즉 하나님의 아들의 권능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행사를 하려고 한다면 이 돌들을 떡덩이가 되게 하여 먹으라는 것이다.  그만한 권능이 있어야 하나님의 아들의 행사를 할 수 있지 않느냐는 뜻이다.

제일 초단계의 시험은 물질 시험이다.  사십 일 동안 금식하고 주린 형편에서는 먹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예수님께서 사십일 금식 기도하신 후 몹시 배가 고픈 틈을 타서 마귀가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고 했다.  그때 만일 예수님이 돌로 떡을 만들어 먹었다고 하면 마귀에게 지는 것이다.  예수님은 말씀 한마디로 돌로 떡을 만들어 먹을 권능이 있었으나 마귀의 말대로 예수님이 돌로 떡을 만들어 먹었다면 예수님은 마귀에게 지는 것이요, 하나님의 구속 사업을 완성할 수가 없게 된다.  마귀는 항상 기회를 타서 그럴듯한 말로 미혹을 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하여 성경 말씀으로 마귀를 이기셨다(신 8:3 참조).

말씀으로 살 것이라는 말은 영(靈)이 살 것이라는 뜻이다.  육신이 사는 것이라고 하면 안 된다. 영이 사는 것이 첫째이고 그 다음에 육신도 살 것이다.  영이 살아있으면 육신이 죽는다고 해도 실상은 죽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육신이 살아 있어도 영이 살지 못하면 실상은 죽은 것이다.

디모데전서 5:6에 “일락을 좋아하는 이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고 하였다.  육신은 살았으나, 심령은 죽었다는 뜻이다.  예수님이 죽어 있는 나사로를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라고 하셨다(요 11:11 참조). 영이 산 사람은 육신이 죽었더라도 죽은 것이 아니라 잠자는 상태에 있는 것이다.  영이 살아서 날마다 생명의 길을 걸어가지 못하면 아무리 세상에서 잘되고 육신이 건강하다고  하여도 벌써 죽은 것이고 실패한 것이다.  교역자도 자기 영이 살아서 생명의 길을 걸어가지 못하면 외부적으로 아무리 교회가 잘되어 나간다 해도 벌써 실패한 자이고 마침내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고 만다(고전 9:27 참조).

야고보서 4:16에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고 하였다.  믿음을 지키지 않으면서 세상의 것이 성공되었다고 해서 그것을 자랑하는 것은 다 헛된 것이고 악한 것 이 라는 뜻이다.  성도는 먼저 영이 살아야 하고 그다음에 육도 살아야 한다.  영이 살지 못하고 육만 살아가는 것은 허탄한 것이고 실패한 것이다.  세상의 것은 아무리 성공되었다고 할지라도 허탄한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다 없어질 날이 온다.  영의 일(믿는 일)이 잘 되면서 육신의 일이 잘 되는 것은 괜찮다. 우리 영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살고, 말씀으로 영이 힘을 얻는다.

떡으로만 여기 “만”자가 왜 들어갔는가?  영혼은 말씀으로  살고, 육신은 떡으로 살기 때문에 “만”자를 붙였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나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렇다면 말씀과 떡 둘 다  있어야 산다는 말이 되어 성경에 맞지 않는다.  마태복음 6:24에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정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고 하였다.  “말씀과 떡” 두 가지가 다 있어야 산다고 하는 것은 두 주인을 섬기는 것이 되므로 부당하다.

누가복음 10:41-42에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고 하였다.  인간 생활에 필요 불가결한 것은 몇 가지밖에 없고 오로지 필요한 것은 말씀 하나만이라는 뜻이다.  사람이 사는 데에는 말씀 하나만 있으면 된다.  말씀 하나만 있으면 영과 육신이 다 살게 되는 것이다.  “떡으로만”하는 “만”자가 들어간 것은 떡을 부인하지 않는 태도이다.  사람이 사는 것이 말씀에만 있으며 말씀만 붙들고 사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떡도 주신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영과 육이 사는 것은 말씀에만 있다.  말씀만 붙들고 있으면 하나님이 영을 살리시고 떡도 덤으로 주어서 육신도 살리신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영을 먼저 창조하시고 다음에 육신을 만드셨다.  사람을 먼저 만들고 다음에 사람이 거할 집을 짓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영이 먼저 영의 양식(말씀)을 먹고살게 되면 육신의 양식도 하나님께서 주신다.  마태복음 6:33-34에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라고 하였다.  “이 모든 것”은 육신에 필요한 것들인데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더해 주신다고 하였다.

말씀만 붙들고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떡을 주셔서 육신도 살릴 것을 믿어야 한다.  그러나 “말씀과영” 두 가지를 다 가지려고 하면 두 주인을 섬기는 것이 되고 마침내는 하나님을 잃어버리게 된다.  말씀만 붙들고 살면 하나님이 기뻐하셔서 영혼도 살펴 주시고, 육신에 필요한 것도 모두 주신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첫째, 영을 살리는 특별계시(말씀)가 필요한 것이다.  성도가 날마다 영의 양식을 받아먹고 영이 소생하며 생명의 역사가 있어야 한다.

둘째, 도덕이 필요한 것이다.  물질보다 도덕이 있어야 사람이 산다.  채소를 먹으면서도 서로 화목하고 도와 가면서 살면 마음이 평안하고 즐겁다.  소를 잡아먹으면서도 날마다 싸운다면 채소를 먹으면서도 서로 화목하고 도와주는 것만 못하다(잠 15:17 참조).  물질을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사용하여야 한다.  물질을 바로 사용하지 못하면 수전노가 되어 물질의 종이 된다.  그러므로 물질보다는 바른 정신이 항상 먼저이다.  사람이 사는 것이 떡에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에 있으므로 바른 신앙과 도덕(바른 정신)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 물질이 적든지 많든 지 희락과 화평으로 생명의 길을 걸어 나갈 수가 있다.  그러나 바른 신앙과 도덕이 없다면 물질이 아무리 풍성해도 그 물질 때문에 도리어 망하게 된다.  현재에 물질이 없을지라도 바른 신앙이 있고  도덕이 있으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물질을 주실 날이 온다.

17세기에 영국의 청교도들이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갔다.  당시 아메리카 대륙은 황무지와 같은 곳이었고 청교도들은 빈 손들고 신앙의 자유만을 찾아갔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얼마나 좋은 땅으로 인도하여 주셨는가!

스페인 사람들은 그 당시에 돈을 벌기 위해(금을 얻기 위해서)남미 대륙으로 갔으나 지금은 저개발 국가의 처지를 못 면하고 있다.  마귀가 예수님께 돌들로 떡 덩이가 되게 하여 먹으라고 할 때에 예수님이 왜 만들지 않았는가?  마귀가 만들라고 했기 때문에 만들지 않았다는 것은 바른 대답이 못된다.  왜냐하면 마귀가 간 다음에 예수님이 스스로 떡을 만들어 먹어도 옳지 않기 때문이다.  돌로 떡을 만들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있을 때에만 만들어야 한다.  이적을 자기 사사로운 일에 사용하면 안 된다.  하나님의 구원 운동을 위하여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이적을 행할 수 있으나 자기를 위하여서 이적을 행하는 것은 안 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하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하시지 않는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명령하신 것만 행하시고 자기 스스로는 아무것도 행하지 않는다고 하였다(요 5:19 참조).  40일 동안 굶어서 말할 수 없이 배가 고프더라도 하나님의 명령이 없이는 절대로 돌로 떡을 만들어 먹을 수 없는 것이다. 

예수님이 마귀의 시행을 말씀으로 이기셨다.  둘째 시험이나 셋째 시험도 예수님은 모두 성경 말씀으로 이기셨다.  말씀이 아니면 시험을 이길 수가 없다.  마귀는 사람보다 강하고 지혜롭기 때문에 사람이 자기의 힘이나 자기의 지혜로는 마귀를 이길 수 없다.  마귀보다 더 강하고 더 지혜 있는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권능으로만 마귀를 이길 수가 있다.  그리하여 예수님도 세 번 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기게 된 것이다.

 

크고 기이한 일에 대한 시험(5-7)

• 4:5-7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신대

둘째 시험은 예수님이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는 시험이었다. 이것은 크고 기이한 일을 행하여 보라는 것이다. 앞으로도 더욱 더 큰 일과 기이한 일을 하여야 하나님의 일이 잘되지 않겠느냐는 시험이다. 또 하나님께서 사자들을 보내어 발이 상하지 않도록 붙들어 주나 붙들어 주지 않나 한 번 시행해 보라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도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시험하는 것도 된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이 사자를 보내서 실제로 붙들어 주시는지를 시험하는 것이고, 또 시편 91:11-12의 말씀이 그대로 될 것인지를 시행하기 때문이다.

마귀가 예수님을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웠다고 했으나 누가복음 4:9에 보면 마귀가 예수님을 이끌고 갔다고 하였다.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웠다는 것을 보면, 이것은 종교적인 시험이며 하나님의 사업에 대한 시행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이 왜 성전 꼭대기에서 내려 뛰라는 시험을 받으셨는가?  마귀가 시행할만한 근거가 조금은 있었다.  그럴만한 근거가 조금만 있으면 마귀는 기회를 타서 들어와 시험을 한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하기 때문에 마귀가 그것을 이용하는 것이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구속 사업을 하려면 무슨 비상한 역사가 있어야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도 다치지 않는 이적이 나타나게 되면 많은 사람이 우러러보고 따르게 되어 예수님의 하시는 일이 잘 성공되어 나갈 것이라고 마귀가 유혹한 것이다.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많은 사람에게 큰 인기를 얻어 갑자기 큰 일을 하라는 것이다. 마귀는 큰 일과 기이한 일을 행하여 모든 사람 앞에 자랑할만한 일이 있어야 모든 사람에게 인기를 얻고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다고 미혹한다.  마귀가 종교적 사업주의, 인기주의, 명예 영광 주의로 성도를 시험한다.

다윗도 이런 시험을 당하여 많은 실패를 거듭한 뒤에 바로 깨달았다. 시편 131:1에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치 아니하고 내 눈이 높지 아니 하오며, 내가 큰 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을 힘쓰지 아니하나이다”라고 하겠다. 성전 꼭대기에서 내려 뛰면 하나님께서 그 사자를 보내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붙들어 주실 것이라고 시편 91:11-12의 성경 말씀을 이용하여 미혹하였다. 마귀는 성경 말씀을 교묘하게 악용하여 사람을 미혹하는 것이다. 자기의 명예나 인기나 자랑을 인하여 성경을 이용하는 것은  악한 일이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일을 자기의 뜻과 자기의 힘으로 하려고 성경을 악용하면 안 된다.

시편 91:11-12에 있는 말씀의 원 뜻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순종하여 말씀대로 걸어갈 때에 위태한 일을 만나게 되면 하나님에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붙들어 주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기의 뜻대로 나아가면서 자기의 명예와 사업주의를 위하여 모험심으로 이 말씀을 이용하면 믿음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시지 않는다. 성경대로 한다고 하여도 성경을 바로 알고 성경의 바른 뜻대로 하여야 한다. 성경의 바른 뜻을 깨달아 그 뜻대로 하지 아니하면 성경대로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의 역사가 없고 하나님의 권고가 떠난다. 마귀는 성경을 제멋대로 이용하여 사람들을 미혹시킨다. 성경을 말한다고 해서 모두 다 성경을 바로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마귀가 성도를 넘어뜨리려고 성경을 이용하는 수가 많다. 마귀가 악랄하게 성경을 가지고 예수님을 시험할 때에 예수님이 “또 기록하였으되”라고 하셨다. 이것은 성경 다른 곳을 또 상고하여 원리대로 해야 된다는 뜻이다. 성경의 일면만을 말하여 다른 면에 어긋나게 적용하는 것은 마귀의 시험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무엇이라고 말하였는가를 찾아보아야 한다. 한 면에만 치우치지 말고 성경 전체에 맞는 성경의 본뜻을 깨달아 하나님을 위하여 그 뜻대로 이루어 드려야 한다. 바리새인의 고르반 사상도 한 면만을 맞춘 것이다.

또 이단설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성경 말씀을 근거하여 주장한다(예 : 영혼이 없다고 주장하는 여호와 증인도 성경에서 근거를 대고 주장한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지 않고 물건을 사고 파는 행위를 거침없이 하는 사람들도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을 잘라먹었다고 하면서 성경을 갖다 댄다. 그러나 주일에 일하는 것은 분명히 죄이다. 그들은 성경을 내 버리고 믿는 자들이다.  마귀는 성경을 비뚤어지게 이용하여 미혹시키는 고등 술법을 사용한다. 일제 때에 신사 참배를 하면서도 성경대로 한다고 했다.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은 것이 없나니 권세를 복종하는 자는 하나님을 복종하는 것이라”라고 하여 로마서 13:1의 말씀을 이용하였다.

그릇된 신비주의자들도 고린 도전서 12장의 아홉 가지 은사 가운데 제일 작은 것이 방언인데 제일 작은 것도 못하는 자가 어떻게 큰 것을 하겠느냐고 하면서 방언을 못하는 자는 성령을 못 받은 자니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성경 본뜻에 맞지 않는다. 고린도전서 12:30에 “다 방언을 말하는 자겠느냐”고 한 것은 교회(교인)가 모두 다 방언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고린도전서 14:23에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무식한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비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라고도 했다.

마귀의 세력이 성경을 잘못 해석하여 사람을 미혹시킬 때 “또 가라사대”를 말해야 한다. 다른 성경에 또 무엇이라고 말했는가? 성경 해석은 성경 전체의 원리에 맞아야 한다.  한 성구만 가지고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면 성경의 본뜻에서 이탈된다. 이단들은 대개 여기서 한 성구, 저기서 한 성구씩 뽑아서 자기들 생각대로 해석하여 자기들의 교리를 세워 놓고도 성경대로 한다고 하며 사람들을 미혹시킨다.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은 죄이다. 고린도전서 10:1-10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60여만 명)이 네 가지 죄로 인하여 광야에서 쓰러졌었다. 네 가지 죄란 ① 우상 숭배한 죄 ② 간음한 죄. ③ 하나님을 시험한 죄. ④ 원망한 죄였다. 그중에 제일 많이 죽게 한 죄가 하나님을 시험한 죄였다.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은 큰 죄가 된다.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도록 해 주겠나 하고 말씀을 의심하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죄이다. 성경 말씀에 된다고 하였으면 되는 줄로 믿어야 한다. 되는지 안 되는지 한 번 시험해 보아야겠다고 하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다. 성경 말씀에 된다고 하였으면 된 것과 같다.  이미 된 줄로 믿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고 시험하는 것은 아주 악한 일이다.

 

명예와 영광에 대한 시험(8-11)

• 4:8-11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셋째 시험은 마귀가 예수님을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주면서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다 주겠다”라고 하였다.

누가복음 4:5-7에는 마귀가 예수님께 천하 만국을 보이며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준 것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라고 했다. 요한일서 5:19에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라고 하였다. 또 요한일서 2:16에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라고 하였다. 마귀는 하나님이 허락한 그 한도 안에서만 불신자나 불순종하는 자의 속에 들어가 주장하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마귀가 아무것도 자기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허락하는 한도 안에서 마귀가 사람을 괴롭게도 하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세상 권세와 영광을 마귀에게 넘겨주었다는 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한도 안에서 마귀가 집행권을 넘겨받았다는 뜻이다.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의 주권을 벗어날 수가 없다. 하나님이 허락지 않으면 마귀가 꼼짝하지 못한다. 마귀에게 엎드려 경배하라고 할 때에 예수님께서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라고 하셨다. 마귀가 자기에게 절을 한 번만 하면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다 주겠다고 예수님에게 말하였다.

신앙을 양보하는 것과 말씀을 양보하는 것과 신앙 양심을 양보하는 것과 옳은 것을 양보하는 것은 다 마귀에게 절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선한 양심을 어기면 세상에서 일시적으로는 좋은 것을 얻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마귀에게 절하고 얻은 것이요 허탄하고 악한 것이다.

예수님을 따라가려면 자기의 명예와 영광심을 버리고 모든 물질이나 권세도 포기해야 한다. 마귀가 “하나님의 말씀”을 택하든지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택하든지 두 가지 가운데 하나를 택하라는 것이다. 말씀을 내놓으면 세상 영광을 가질 수 있으나 말씀을 택하면 세상 영광을 내놓아야 한다. 오늘날 마귀가 천하만국과 그 모든 영광을 준다고 할 때 그것을 버리고 믿음 지키는 성도가 과연 얼마나 될까! 마귀는 예수를  믿되 성경을 조금 양보하여 천하만국과 그 모든 영광을 얻으라고 한다. 마귀는 또 절을 여러 번 하라고 요구하지 않고 단 한 번만  절하면 모든 영광을 다 준다고 한다. 성도가 한 번 마귀에게 절하여 천하 영광을 얻어 놓은 다음에 믿는 일을 잘하면 어떠할까?  그것은 안 된다. 왜냐하면 한 번 마귀에게 절하면 믿음을 팔아먹은 것(예수를 팔아먹은 것)이 되기 때문이다. 신앙을 팔아먹은 다음부터는 믿는 일이 되지 않는다. 믿음을 다시 찾으려면 호리라도 남김없이 다 갚는 회개를 해야 한다(마 5:26 참조).

한 성구를 팔아먹은 다음에는 다른 것을 아무리 잘해도 믿는 일이 되지 않는다. 신앙을 회복하려면 먼저 팔아먹은 그것을 물어내야(회개해야) 한다. 이 말씀은 내가 못 지키지만 다른 말씀은 잘 지키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원점으로 돌아가서 말씀 지키지 못한 것을 회개하고 돌이켜서 바로 지켜야 그때부터 믿는 일이 되어 나아간다. 그러므로 한 번  절하여 천하 영광을 얻은 후에 잘 믿겠다는 것은 전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다만”은 다른 것은 다 내어버리고 하나님만 섬기라는 뜻이다.  다만 하나님의 말씀만 붙잡아야지 다른 것도 붙잡고 말씀도 붙잡으려고 하면  “다만”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것에 끌려가게 된다. 말씀만 붙들어야 끌려가지 않는다. 예수 믿으면서 언제나 “다만”이라는 말을 써야겠다. “다만” 하나님만 섬겨 나아갈 때 마귀가 떨어져 나간다. 하나님만 경배하고 하나님만 따라가면서 육신의 염려는 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필요한 것을 모두 보내 주실 것을 믿고 나아가야 한다.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께서 절대로 버리시지 않는다. 시편 37:25-26에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다”라고 하였다. 마귀에게 속한 사람도 다 하나님이 먹여 살리는데 하나님께 속한 사람을 하나님이 굶겨 죽일 리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을 버리고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따라가면 하나님의 징계가 내려오게 된다.  결국 하나님도 잃어버리고, 세상의 명예 영광도 잃어버려 모두 다 잃어버리게 된다. “다만” 그를 섬길 때에 마귀는 떨어져 나갔다. 하나님 섬기는 일 하나만 하겠다고 할 때에 마귀는 발붙일 곳이 없으므로 떨어져 나간다. 말씀만 붙잡고 모든 시험을 이긴 예수님을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 들었다.

마귀가 떨어져 나갔으나 얼마 동안만 떠난 것이다(누가 4:13 참조). 마귀가 예수님께 이렇게 참패를 당하고도 마귀는 얼마 있다가 또 온다는 뜻이다. 마귀가 우리들을 시험하다가 실패한 다음에도 아주 떠나는 것이 아니다. 얼마 후에는 다시 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마귀는 참으로 악착스럽다.

성도가 시험을 이겼다고 해서 마음을 놓으면 안 된다. 마귀는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  그러므로 근신하고 깨어 계속하여 마귀를 대적해 나아가야 한다. 마귀를 한 번 이겼다고 해서 방심하면 그다음에는 마귀에게 지게 된다. 우리들은 보통 하루에 세 번 이상 마귀에게 지고 있는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시간마다 사사건건 마귀를 이겨 나아가야 한다. 불쾌한 마음이나 섭섭한 마음이 들어오고, 남을 원망하고 혈기를 내는 것도 마귀에게 넘어간 증거이다. 또 적극적으로 믿음을 써서 영의 세계에서 새 생명의 길을 걸어 나가지 못하는 때도 마귀에게 진 때이다. 그러므로 삼가 조심하여 마귀에게 화평한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우리의 믿음과 영적 사랑의 생활을 빼앗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신약성경 히브리어 마태복음 설교] 요단강의 예수님 세례식(마 3:13-17)

 

[신약성경 히브리어 마태복음 설교] 요단강의 예수님 세례식(마 3:13-17)

마태복음 3장에서 예수님은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게 됩니다. 세례를 받으신 후에 공생애 사역이 시작됩니다. 요셉의 아들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하나님의 사역을 하게 됩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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