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기나무에서 받은 모세의 소명(출 3:1-22)
출애굽기 3장에서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떨기나무에서 부르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모세가 40년 전에는 자기의 힘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려고 했는데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았다. 인간의 의로 하려 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미디안 광야에서 훈련을 시키고 하나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서 모세를 부르고 있다. 하나님의 일을 때가 있다. 그때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한다.
● 1절 -----------------------------------------------------------
모세가 그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무리를 광야 서편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 "미디안"은 호렙산에 가까운 곳이다. "호렙"은 시내산을 말함인데, 그 산의 서쪽을 "호렙"이라고 한다. 모세는, 자기 장인의 "양 무리를 치던" 미천한 처지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건져내는 인도자의 사명을 받게 되었다. 하나님은 천한 자를 들어 쓰시기를 기뻐하신다(고전 1:28). 만일 그가 이때까지 애굽 공주의 양자로서 왕궁에 머물렀다면 애굽의 큰 권세를 잡았을지도 모른다. 그가 그런 권세를 가지고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구출시킬 길은 없었을까? 우리는, 이런 문제에 대하여 아무런 답변을 할 수가 없다. 설혹 모세가 바로의 공주의 아들 자격으로 어떤 큰 권세를 잡아 가지고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할 만한 길이 있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은 아니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세워서 신약 시대의 교회를 예표하셨기 때문이다(고전 10:4,6,11). 하나님의 교회는, 이 세상 세력으로 성립되는 것도 아니고, 그 구원을 완성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을 위한 지도자는, 낮게 떨어져 미천한 목자의 자리에서 출발하게 되었다. 그는, 그의 사명을 자기의 힘으로 실행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권능으로만 이루도록 되어 있다. 신약 시대의 교회에 있어서 하나님 백성의 구원 성취도 역시 그러하다. "하나님의 산 호렙." 모세 이전에 벌써 호렙산이 성산(聖山)으로 알려져 있었던 것은 아니다(Holzinger). 모세가 그 산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받은 사건 때문에 그 산을 "하나님의 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 2절 -----------------------------------------------------------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 "여호와의 사자"란 말은 특별히 창세기에 많이 나온다(창 16:7,21:17,22:11,31:11,48:16). 그는, 하나님을 대리하신 분이신 동시에, 역시 하나님 자신으로 자처하셨다. 그리고 나타나신 모습은 사람의 모습이었다(창 18:1-15,32:24-32). 그러므로 그는, 장차 신약 시대에 화육(化肉)하실 그리스도 자신의 계시(啓示)라고 생각된다. 그리스도는 구약 시대의 하나님 백성에 대해서도 이렇게 계시자이시며 구원자이신 사역을 담당하셨다(Calvin).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를 찾아오시되 자신을 낮추셔서 우리와 접촉하실 수 있는 사람의 모습으로 오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찾을 때에 진실하기만 하면, 그는 영적(靈的)으로 우리를 접촉하여 주신다. "떨기나무란" 말은, 히브리 원어로 세네이니 가시 떨기를 의미한다. 이것은, 아카시아 나무 덤불을 의미하는데 시내산에 많이 있다. 일설에, 시내산이란 이름이 이 말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떨기나무에 불이 붙으면서 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한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떨기나무는 아름답고 고상한 나무들과 달라서 (삿 9:15) 죄 많은 이스라엘 민족을 상징한다. 거기에, "불이 붙"는 것은, 그 백성이 수난 중에서도 망하지 않을 것을 보여 준다(시 118:18). 이 사실이 성립되기 위하여, 모세는 하나님 앞에서 사명을 받게 되었다. 7-22절의 모든 말씀이 이 계시(가시떨기에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않는 것)에 대한 설명이다.
● 3,4절 -----------------------------------------------------------
하나님께서 모세를 불러 "모세야 모세야" 하셨으니, 그것은 모세에게 크게 은혜되는 말씀이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모세를 참으로 아시고 개인 상대로 이름을 불러 각근하게 접촉하여 주시는 사랑의 음성이었다(사 40:26).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을 단체적으로 취급하실 뿐 아니라, 보다 먼저 개인 별로 불러 주신다. 그가 사무엘을 부르실 때에도 그의 이름을 불러 주셨고(삼상 3:4-10), 엘리야도 그의 이름을 불러 찾아 주셨다(왕상 19:9). 부활하신 주님께서도 마리아의 이름을 불러 찾아 주셨고(요 20:16), 그가 바울을 부르실 때에도 "사울아 사울아" 하셨다(행 9:4).
● 5절 -----------------------------------------------------------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 여기 이른바 "거룩한 땅"이란 것은 바로 그때에 하나님이 나타나신 지점이 되었다는 것이다.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신"은 땅을 디디고 다녀서 더러워진 것이니, 그것은 모세의 모든 행위를 가리킨다. 사람은 무슨 일을 행할 때마다 범죄 하여 더러워진다. 그의 행위는 모두 다 "신"과 같다. 요한 번연(John Bunyan)은 말하기를, 우리의 죄는 물거품과 같다고 하였는데, 우리 자신이 물이라면 되는 거기서 부글부글 올라오는 거품과 같다는 것이다. 물이 있는 동안 물거품이 있음과 같이, 사람이 있는 동안 죄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있어서는 즐거워할 소망이 전혀 없다. 우리에게는, 오직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즐거움 외에 세상에서는 아무 다른 즐거움이 없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에 자신의 행실을 조금도 의지할 것 없고, 맨 발로 서듯이 하나님 앞에 서야 된다. 우리는, 신을 벗듯이 우리의 행한 바를 전적으로 회개해야 된다. 나의 행한 일 가운데 옳은 것 같은 것도 벗어야 된다. 그것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더러운 옥과 같고, 또한 우리가 그것을 행하자마자 자기 자신을 의지하는 죄를 범하였다. 사 64장에는 말하기를, "대저 우리는 다 부당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라고 했다. 율법 아래서 신던 신은 이제 다 더럽혔으니 완전히 벗어야 된다. 다시 말하면, 모세의 신을 벗어야 "평안의 복음"의 신을 신을 수 있다(엡 6:15). 그러므로 우리는 잘못한 것도 벗어야 되고, 잘한 것도 벗어야만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옛사람을 신 벗듯이 아주 벗어 버려야 된다. 우리는, 우리의 몇 가지 죄만 보고 원통히 여길 것이 아니라, 그 죄를 범한 자아(自我) 전체가 그 죄의 책임자니 만큼, 자아 전체를 원통히 여겨서 벗어 버리고, 그리스도 만을 의뢰하는 새 사람이 되어야 한다.
● 6절 -----------------------------------------------------------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보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우매 - 하나님은 여기서 자신이 어떤 분이심을 말씀해 주신다. 곧 그는, 옛적부터 말씀해 주시고 그대로 이루시는 계약신(契約神)이시다.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란 말씀이 그 뜻이다. 그는 옛적에 말씀하시고 그대로 이루신 분이니, 그의 말씀을 믿는 자마다 구원의 새 맛을 얻는다. 히 11:2에, "선진들이 이로써(믿음으로)증거를 얻었느니라"라고 한 말씀이 그 뜻이다. 하나님께서 옛적에 말씀하여 주신 그 말씀의 뭉치(성경)가 바로 진리요 생명이기 때문에, 사람은 그것을 믿는 그만큼, 증거를 얻는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종종 말씀하시기를, "네 믿음대로 되라" 하시고(마 9:29), 혹은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하셨다(마 9:22,15:28 ; 막 10:52 ; 눅 7:50,8:48,17:19,18:42). 하나님은 보이지 않으시는 참 신(神)이신 고로, 우리와 관계하시는 유일한 방법으로 말씀을 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그것을 믿도록 하신다. 그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 대하여 신실하게 계약을 지키셨다는 의미에서 하시는 말씀이, "나는...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셨다. 곧, 그가 모세에게 말씀하시는 순간에도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하나님의 계약대로 천당에 살아 있어서 하나님을 자기들의 하나님으로 모시고 있다는 것이다(마 22:32). 그들이, 하나님의 계약을 믿은 결과로 필경 이와 같이 영생하여 하나님을 기업으로 모시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은 것은 헛되지 않고 반드시 열매를 가져온다.
● 7,8절 -----------------------------------------------------------
하나님께서, 이제는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의 압제에서 구원해 내실 작정이 계심을 말씀해 주신다. 이 점에 있어서 그는, 특별히 애굽에서 당하고 있는 그들의 고통을 하감 하셨다는 것과 또는 그들의 기도를 들으셨다는 것을 강조하신다.(2:23-25). 특별히 그들이 기도로 부르짖을 때에 그는 기쁘게 들어주신다(눅 18:1-8). 시 9:9-10,12,18,10:14,19 참조. 애 3:30-32에 말하기를, "때리는 자에게 뺨을 향하여 수욕으로 배불릴지어다 이는 주께서 영원토록 버리지 않으실 것이며 저가 비록 근심케 하시나 그 풍부한 자비대로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라고 하였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 - 그때에 가나안 땅에는 풀이 무성하였기 때문에 목축업이 성행하여 "젖"이 많이 생산되었다. 또한 그 땅에는 꽃이 많았으므로 "꿀"도 많이 생산되었다.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 - 여기서 팔레스틴에 거주하는 여섯 민족만 말하기도 하고(출 23:28), 또 혹은 열 민족을 대표적으로 든다(창 15:19-21). 어쨌든 우리가 여기서 주목할 수 있는 것은, 한 민족을 정복하기도 어려울 터인데, 이렇게 많은 민족들을 이스라엘로 하여금 정복하게 하고 그 땅을 차지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권능으로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대로 되는 일이었다. 이스라엘이 그 모든 민족들을 정복함은 침략이 아니었고, 그 민족들의 더할 나위 없는 많은 죄악을 벌하시는 하나님의 도구가 되는 것뿐이었다. 창 15:16 참조.
● 9,10절 -----------------------------------------------------------
하나님께서는, 여기서 또다시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구출하실 동기에 대하여 재설하신다(첫 번은 7-8 절에서). 곧, 그들이 거시서 심한 고난을 당한다는 것과 또는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한다는 것이다. 위의 7-8절의 해석을 참조하여라. 하나님께서 모세를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로 세우시고 그를 바로 왕에게 보내시고자 하실 때에, 모세는 겸손히 사양하였다.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라고 한 말이, 그의 겸손을 보여 준다. 그가 일찍이 자력으로 이 스라엘 민족을 도우려고 했을 때에는 온전히 실패하였다(2:11-15). 그는 하나님이 주시는 사명을 겸손히 사양하는 것은, 그의 정직이라고 할 수 있다. 언제든지 겸손이란 것은 정직인 것이다. 인간은 누구든지 전적으로 부패하였는데, 그것을 직시하는 자는 언제든지 겸손할 수밖에 없다.
● 12절 -----------------------------------------------------------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 이스라엘의 지도자 되기를 사양하는 모세로 하여금 용기를 얻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그와 "함께" 하여 주시겠다고 하신다. 구원은 하나님께서만 성취하실 수 있는데, 이제 그가 모세로 더불어 함께 하여 주시겠다고 하신다. 이것이야말로 모세로 하여금 용기를 얻게 하는 또 한 가지 말씀을 주셨다. 그것은, 그가 모세를 보내신 증거를 알게 하심이었다. 그 증거의 실현은, 실상 미래에 속하였다. 곧,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나와 호렙산(시내산)에서 하나님을 섬기게 됨이었다. 모세가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출발할 용기를 얻기 위해서는, 그 현재에 하나님의 파견증이 필요할 것이었다. 그런데, 이때에 하나님의 미래의 사건으로써 그 파견증을 삼으심은 무슨 이유일까? 그것은, (1) 하나님의 말씀은, 미래에 대한 것도 현재에 실현된 것과 같이 확실하기 때문이며, (2) 미래에 그 일이 이루어질 때에 그것을 바라보던 모세에게 확신을 증가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 13,14,15절 -----------------------------------------------------------
모세는, 아직도 용기를 얻지 못하고 또 하나의 문제를 하나님 앞에 제기한다. 그것은,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이 누구신가 하고 물을 때에 답변이 곤란하다는 것이다(13절). 이것을 보면,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민족 중에는 그 조상들의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할 정도로 타락한 자들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수 24:14 ; 겔 23:3,19).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 점에 있어서 모세의 하나님은 이방 애굽 사람들의 소위 신(神)이란 것과는 달리, 이스라엘 족장들의 하나님이시란 것을 강조하신다. 그는, 자기가 애굽의 이방 신(異防神)과는 다르다는 의미에서,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의미의 말씀을 이 부분(14-15)에 두 번이나 강조하셨다. 이 이름이야말로 하나님의 고유명사처럼 사용되었다. 그러면, "나는 스스로 있는 자"(에흐예)란 뜻이 무엇인가? 이것은, 홀징겔(Holznger)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현재에 약속하신 대로 미래에 권자로 드러나신다는 의미이든지(Der sich in Zukunft als den zeigen will, der er zusein jetzt verspricht, namlich als Retter), 혹은, 하나님께서 그의 존재를 그대로 파수해 나가신다는 의미라고 한다(Bezeichnet sich Gott als den in senem Sein denharrenden. K. Marti, Hand-Commentar 1,1989, p.11).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존재에 있어서 변함이 없으시고, 그 말씀에 있어서도 변함이 없이 그대로 이루신다는 뜻이다. 그보다도 우리는, "스스로 있는"(에흐예)란 성호의 의미를 계시록이 작 해석하였다고 본다. 곧, 하나님은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계 1:4) 신데, "알파와 오메가"(계 1:8), 혹은 "처음이요 나중"이라고 한 것이다(계 2:8). 이것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계시되신 계약 신이시다. 곧, 말씀하시고 그대로 이루시는 하나님이시다.
● 16,17절 -----------------------------------------------------------
이 부분은,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을 찾아가서 전달할 말씀의 내용을 보여 준다. 그것은, 벌써 위의 7:8이 보여 준 것과 같은 것이다. 그 구절들의 해석을 참조하여라.
● 18절 -----------------------------------------------------------
그들이 네 말을 들으리니 너는 그들의 장로들과 함께 애굽 왕에게 이르기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임하셨은즉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려 하오니 사흘길쯤 광야로 가기를 허락하소서 하라 -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이와 같은 칭호는 5:3, 7:16, 9:1,13 10:3에도 나타난다. 이것은, 특별히 참 하나님은 애굽 신이 아니고 히브리인의 하나님이란 것을 바로에게 알려 주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그 하나님이 애굽인과는 상관없다는 뜻을 포함하지 않았다. 그런데 홀징겔(Holzinger)은, 이 칭호가 애굽인과는 상관없는 신(神)이란 뜻이라고 잘못 말한다(:redet von Jahwe nicht als dem absoluten Gott, sondern alsdem Volksgott der lsraeliten, der an sich die Agypter nichts angeht. -K. Marti, Hand-Commentar 1,1898, p. 15).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려 하오니 사흘길쯤 광야로 가기를 허락하소서 하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모세로 하여금 바로 왕에게 청원케 한 내용이다. 하나님의 목적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애굽에서 아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도록 하시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어찌하여 이렇게 딴 말로 바로 왕에게 청원하도록 하셨을까? 하나님께서 모세더러 이런 정도로 말하라고 하신 것은, 바로를 속이는 것이 아니라, 다만 강퍅한 그에게 우선 시험적으로 조금만 요구해 보도록 하시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강퍅한 바로를 취급하시는 방법이다. 하나님께서는, 백성으로 하여금 애굽에서 아주 떠나 가나안까지 들어가도록 인도하실 방침을 세우셨으나, 우선 바로에게는 그 내용을 다 알리지 않도록 하신 것이다. 이렇게 비밀을 가지시고 폭군을 접촉하실 수 있는 주권이 그에게 있다. 스트락(Strack)도 말하기를, 여기 이 말씀은 거짓말을 하라는 것이 아니고, 다만 바로에게 조금 요청해 보는 의미의 말씀이라고 하였다(Kurzgefasster Kommenter, Die Bucher, Genesis, Exodus, Leviticus, 1894, p. 171). 사실상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시내산에서 중점적으로 하게 될 것이었다. 거시서 그 민족이 율법을 받았으며, 또 하나님으로 더불어 계약을 맺었다(24장).
● 19,20절 -----------------------------------------------------------
하나님께서는, 바로가 순종치 아니할 것을 미리 아셨으며, 또한 거시에 따라 여러 가지 이적으로 그 나라를 징치 하시겠다고 하신다. 그는 이렇게 미리 말씀하시고 그대로 이루신다. 따라서 우리는, 언제든지 그가 참 신(神)이신 줄 알고 믿으되 절대적으로 믿을 만하다. 사 44:7-8, 45:21, 46:10 참조.
● 21,22절 -----------------------------------------------------------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떠나 나오되 간신히 도망하는 것처럼 하지 않고, 유유히 거기서 많은 재물도 가지고 나올 것을 말씀하신다. 이것은, 일찍이 아브라함에게 예고하신 대로이다(창 15:14). 과연 이 예언대로 마침내 이루어지고야 만 것이다(12:36).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구원은, 이렇게 여유 있고 풍족한 것이다.
[레위기 2장 강해설교말씀] 여호와의 소제 규례 제사(레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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