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하나님 말씀

[예레미야 성경 강해 말씀]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 선언(렘 2:9-13)

베들레헴 2022. 10. 6.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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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 선언(렘 2:9-13)

 

하나님을 저버린 그들의 악한 배은을 보인 후, 여기서는 이 예언자가 그들의 비교할 데 없는 변덕스러움과 우둔함을 보여주고 있다(9절). "그러므로 내가 여전히 너희와 다투리라. "하나님은 죄인들을 벌하시기 전에 그들이 회개케 하기 위해 그들에게 항변하신다는 사실을 주목하라. 더 나아가서 죄의 악함에 관해 많이 언급될 때에도 거기에는 더 많은 할 말이 아직 남아 있으며 한 가지 책임에 소재가 선하게 될 때에는 또 다른 것이 강요되며 우리가 많은 것을 말했을 때라도 아직 하나님을 위해서는 해야 할 말이 있다(욥 36:2). 사람들에게 그들의 죄를 드러내기 위해 죄인들을 상대하는 자들은 다양 논증을 내세울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그들의 열조와 다투시기 전에 왜 그들이 허탄한 것을 따라 헛되이 행하였는지(5절) 질문하셨다.

 

이제 하나님은 열조들의 전통을 받아 헛된 변론을 하는 자들과 그들의 후손들과 후손들의 후손, 즉 모든 세대에서 그들의 전철을 밟아 반항하는 모든 자들과 다투신다. 하나님을 저버린 자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충분한 명분을 세우시기 위하여 그들과 기꺼이 공정하게 변론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는 우리가 스스로 변론해야 할 것을 가지고 우리와 변론하신다.

 

Ⅰ. 그는 그들이 모든 민족들의 관습과 반대로 행동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의 이웃 족속들은 그들이 참 하나님에 대한 충성보다 그들의 거짓 신들에게 더욱 확고하고 충실한 충성을 나타내었다. 그들은 여러 민족들과 같이 되겠다는 야망을 가졌으나 이 점에 있어서만은 그들과 같지 못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어느 민족의 그들의 신들을 바꾸었으며(10.11절), 혹은 그들의 변하기를 잘한 예가 있으면 말해 보라고 도전하신다. 그들로 하여금 옛 기록이나 현재의 깃딤, 헬라, 유럽의 여러 섬들과 나라들, 또 더 문화가 발달되고 지식수준이 높은 나라들과 좀 더 거칠고 야만적인 나라로 남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게달에 있는 나라들을 살피게 하라. 비록 그들이 자기들에게 그들의 신들이 어떤 호의를 보이지 못했고 또 그들은 신이 아니기 때문에 사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도 어느 민족도 그들의 신을 바꾼 예는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신들을 위해 이러한 존경을 가졌고 그 신들에 대하여 대단히 좋은 편견을 가졌으며 그의 열조가 결정한 선택에 크나큰 존경을 나타내었다. 이 신들은 비록 나무나 돌로 만들어진 신들이었지만 그들은 그것들을 은이나 금으로 만든 신과 바꾸지도 않았고 더욱이 살아계신 참된 하나님과도 바꾸지 않았다. 우리가 이것 때문에 그들을 칭찬하겠는가? 우리는 그들을 칭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을 바꿀 아무런 원인도 가지지 아니한 오직 유일한 백성인 바로 그들이 하나님을 바꾼 유일한 백성이 되어버린 이스라엘을 책망하기 위해 마땅히 강요되어야 할 이야기다. 사람은 자기가 자라난 종교가 비록 대단히 불합리하고 엄청난 허위가 있어도 거기서 떠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주목하자. 우상 숭배자들의 열심과 집념은 자기 신앙에 냉담하고 일관성이 없는 그리스도인들을 마땅히 부끄럽게 할 것이다.

Ⅱ. 그는 그들이 상식과 반대로 행동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즉 그들은 신을 바꾸었을 뿐 아니라(그렇게 행하는것이 때때로 우리의 의무나 지혜가 될지 모른다) 그들은 더 나쁜 것과 바꾸었고 그들 자신에게 해로운 계약으로 바꾸었다.

 

1. 그들은 그들의 영광이요 참으로 그들을 영광스럽게 하시며 모든 길에서 그들에게 영예를 주시는 하나님을 떠났다. 또한 그들이 겸손한 신뢰로 자기들의 하나님으로 영광 돌려야 할 분이며 그 자신 영광스러운 하나님이요 그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자들의 영광도 되시는 그분을 떠났다. 그는 특별히 그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었다. 그의 영광은 종종 그들의 성막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2. 그들은 자기들에게 선한 일도 행할 수 없고 예배자들에게 유익도 줄 수 없는 신들을 가깝게 했다. 우상 숭배자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부끄러운 것과 바꾸었고(롬 1:23) 그들 자신의 것을 따라 행한다. 그들이 하나님을 불명예스럽게 할 때에 그들은 스스로를 부끄럽게 하고 멸시하는 것이며 그들 자신이 이익에 적이 되게 한다. 하나님을 저버린 자들이 어떤 것으로 돌아가든지 그것은 그들에게 결코 어떤 유익도 행치 않을 것이고 그것이 그들에게 아첨하고 일시 즐겁게는 할지언정 유익하게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견고한 하늘이 하나님을 배신한 이 배교자들의 죄와어리석음에 놀랐다(12, 13절). "너 하늘아 이 일을 인하여 놀랄지어다." 땅은 전체로부패했기 때문에 이런 일에 관심 가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하늘과 하늘에 있는 것들은 이 일에 놀랄 것이다. 이러한 배은망덕한 자들을 보고 해가 붉어지며 이러한 은혜를 모르는 악인들에게 빛을 비추기를 부끄러워할 것이다. 하나님을 저버린 자들은 하늘의 무리 즉 해, 달, 별들을 예배했다. 이런 것들에게 바친 존경으로 기쁨이 되는 대신에 이런 것들은 놀라며 크게 두려움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들에게 예배하는 자들에게 어떤 근거를 주기보다 차라리 적막하게 하며 완전히 기운을 진하게 하며 그들의 빛마저 빼앗는 결과가 될 것이다. 흑자는 이것을 "하늘의 천사들" 이라고 말한다. 만일 그들의 하나님께로 영혼들이 돌아가는 것을 기뻐한다면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번역하는 영혼들에 대해서도 놀라고 심히 두려워하리라는 것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이 백성의 행위가 하나님을 향한다는 것은 다음의 몇 가지를 의미한다.

 

(1) 이치를 찾아내는 척하는 사람들은 사실은 언제나 대단히 불합리한 어떤 일을 행하고 있다는 것 우리가 놀라고 이상히 생각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2) 모든 사람이 그의 영광을 갈망하는 우리의 조물주에 대해서 불경하고 경멸하는 것에 대해서 거룩한 분노를 마땅히 가지는 것을 말한다.

(3) 하나님을 반역하는 행위의 결과를 생각하고 떨지 모른다. 결국 이것의 결과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나님의 은혜와 은총으로부터 떠나는 사람들이 받을 대가인 진노와 저주를 심히 두렵게 생각하라.

이제 이 모든 두려움에 대해 생각되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나의 백성, 즉 내가 가르치고 다스려온 백성이 두 가지 큰 악을 범하였으니 은혜를 저버린 것과 우매함이라. 그들은 자기들의 의무와 자기들의 이익과 반대되는 행동을 했다"는 것이다.

 

① 그들은 마치 하나님이 그들에게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처럼 그들의 등을 돌려댐으로 하나님을 경멸했다. "그들은 그 안에서 풍성하고 끊임없는 어느 위로를 받고 그들이 여러 요한 안심을 가지며 또한 그것은 값없이 받을 수 있는 생수의 근원 되는 나를 버렸다." 하나님은 그들의 "생명의 원천"이다(시 36:9). 그분 안에 은혜의 강건함의 모든 풍성함이 있다. 우리의 모든 근원은 그에게 있고 우리의 생명의 시내는 그로부터 흘러나온다. 그를 저버리는 것은 결과적으로 이것을 부인하는 것이다. 그는 우리에게는 은총의 선물로 흘러넘치고 항상 흐르는 "생수의 근원"으로서 풍성한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었다. 그러므로 그를 저버리는 것은 그의 애호를 받아들이기를 거절하는 것이요 사랑에 대한 감사와 그의 친절이 요구하는 찬양을 거절하는 것이다.

 

② 그들은 자신들을 속였다. 그들은 자기 자신들의 행운을 저버렸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되고 무가치한 짓이다. 그들은 스스로 저수통을 파고 물을 옮기기 위해 혹은 빗물을 받기 위해 땅이나 바위에 웅덩이나 연못을 파는데 큰 수고를 했다. 그러나 그것들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이었다. 그들이 갈증을 채우려고 웅덩이를 찾아갔을 때 거기서 그들은 진흙과 수렁과 고인 우물의 더러운 쓰레기 외에는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우상을 섬기는 자들은 이와 같으며 하나님을 떠나 우상에게로 돌아가는 자들은 이와 같은 경험을 가지게 될 것이다. 만일 우리가 어떤 피조물들 - 즉 부나 쾌락이나 명예나-이런 것으로 우상을 삼는다면, 만일 우리의 행복을 이런 것에 두고 또 오직 하나님만이 가지고 계시는 위로와 만족을 이런 것에서 찾는다면-만일 이런 우상을 우리의 기쁨과 사랑과 희망과 신념으로 삼는다면 우리가 아무리 수고하여 파고 채우려고 애써도 기껏해야 더러운 물도 거의 담을 수 없고 메마르고 바닥이 드러나며 조금 물이 있어도 곧 부패하고 더러운 물이 담긴 웅덩이만 보게 될 것이다. 아니 그것은 더운 날씨에 깨지고 틈나서 우리가 물이 가장 필요할 때 물이 없는(욥 6:15) 터진 웅덩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을 다하여 오직 주님에게만 집착하자. 그렇지 않고 우리가 그밖에 어디로 가겠는가? 그는 영생의 말씀을 가지고 계신다.

[마태복음 5장 산상수훈 설교말씀] 제3의 복 온유한 자(마 5: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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