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히브리어성경

[히브리어 성경 말씀 마태복음] 아브라함부터 다윗 왕의 족보(마 1:1-6)

베들레헴 2021. 11. 18. 16:25
반응형

마태복음 1장은 예수님의 족보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왕으로 오신 분이기 때문에 족보가 있어야 합니다. 마태는 예수님을 왕으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구속사의 출발은 아브라함부터 시작합니다. 아브라함을 통해서 다윗 왕까지 오게 되고 다윗 왕의 후손으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구원 역사를 이루게 됩니다. 

 

아브라함부터 다윗 왕의 족보(마 1:1-6)

 

• 1: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아브라함 마태가 예수님의 족보를 기록할 때에 아브라함부터 시작하였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을 아브라함에게 정식으로 허락하셨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의 자손 가운데서 그리스도가 나실 것을 확실하게 약속해 주셨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이 약속을 믿어서 의인이 되었고 모든 믿는 사람의 조상이 된 것이다(창 15:4-5).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이전에도 아담에게 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약속해 주셨다.  즉 창세기 3:15에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여자의 후손은 그리스도를 가리키며 그리스도가 뱀(마귀)의 권세를 깨뜨리겠다는 말씀이다.  이것이 죄인에게 최초로 그리스도를 허락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것이 최초의 복음이며 이 복음을 아담이 믿었고, 이 신앙이 아벨과 셋을 통하여 계승되어 내려왔다.

아담의 때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오실 그리스도를 믿어 내려오다가 약 2,000년이 지난 후에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을 통하여 그리스도가 나시겠다”라고 하나님이 정식으로 약속해 주셨다(창 15:5-7 참조). 하나님은 이와 같이 먼저 약속을 하시고 그 약속대로 이루어 주신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이 하늘의 뭇 별과 같이 많을 것이라”라고 약속해 주실 때에 아브라함이 그 말씀을 그대로 믿어 신앙의 조상이 되었다.  그리하여 유대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믿는 자는 모두 아브라함의 후손이 된 것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말씀을 그대로 성취시켜서 아브라함의 후손 가운데서 그리스도가 나셨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아브라함부터 기록한 것이다.  아브라함은 주전 2,000년경 사람으로 2,000년 전에 약속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져 그리스도가 탄생하신 것이다.

다윗의 자손 다윗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주전 1,000년경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자손인 다윗에게 좀 더 구체적으로 그리스도가 나실 것을 약속해 주셨다.  이사야 9:7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라고 하였다.  또 이사야 11:1에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다윗의 자손 가운데서 그리스도가 나실 것을 약속하신 말씀이다.  이 말씀대로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으로 탄생하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世系) 세계(世系)라는 말은 계통 혹은 족보라는 뜻이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씀 그대로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로 변함이 없다.  세대가 변하고 모든 사람과 모든 만물이 다 변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변함이 없다.  천지가 변할지언정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 일획도 변함이 없이 그대로 다 이루어진다.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를 구원해 주시겠다고 하신 구원의 약속을 틀림없이 성취시켜 주셨다.  예수님이 나시기 약 2,000년 전에는 아브라함에게, 약 1,000 년 전에는 다윗에게, 열 달 전에는 마리아와 요셉에게 천사를 통하여 약속하셨는데, 그대로 이루어져서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이루어져야 할 것도 있고 속히 이루어질 것도 있다.  비록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변함없이 다 그대로 다 이루어지고 만다.  천지가 변하여도 하나님의 말씀은 변하지 아니하며 하나님께서는 만능으로 그 말씀들을 성취시켜 나가신다.

 

• 1:2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고 

아브라함의 자손이 대대로 이어 내려왔다.  아브라함의 때부터 족장시대가 시작되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은 첫째 족장이 되었고, 이삭은 둘째 족장, 야곱은 셋째 족장, 요셉은 넷째 족장이 되었다.

이삭 아브라함의 아들로 특별히 순종의 사람이었다.  이삭이 어렸을 때에 아버지가 그를 모리아산에 데리고 가서 하나님 앞에 번제로 드리려고 할 때에도 이삭은 기쁜 마음으로 순종하였다(창 22:9-12 참조)

[시편 히브리어 성경말씀] 공의로운 판단을 위한 기도문(시 7:1-10)

이삭이 하나님의 축복으로 창대하고 왕성하여 거부가 되었을 때에 블레셋 사람들이 이삭을 시기하여 아브라함 때에 판 우물을 막고 그곳을 떠나가라고 하였다(창26:12-22 참조).  그 때에 이삭은 그 곳을 양보하고 그랄 골짜기로 가서 아브라함 때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다.  그런데 그랄 목자들이 그곳에까지 와서 다투며 그 우물이 자기들의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이삭이 그 우물을 또 양보하고 다른 우물을 팠으나 그들이 또 다투었기 때문에 다시 다른 곳으로 옮겨가서 우물을 파고 살았다.  이것을 보면 이삭은 물질 문제 때문에 싸우고 다투는 사람이 아니며, 다만 하나님의 축복으로만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성도가 범사에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고 믿음을 지켜 나아가면 하나님이 복을 주어 창대해지고 형통하게 되는 것이다.  싸우고 다툰다고 해서 잘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면 하나님이 축복해 주셔서 모든 일이 더욱 잘되어 나갈 것이다.

• 1:3-4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람은 아미나답을 낳고 아미나답은 나손을 낳고 나손은 살몬을 낳고

다말은 이방 여자이며 유다의 며느리이다.  다말이 시부(유다)와 동침하여 베레스와 세라를 낳았다. 참으로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일을 행한 여자이다.  그러나 다말이 이렇게 부끄러운 일을 행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그리스도가 유다 지파에서 나실 것을 다말이 믿은 것이다 (창 49:10 참조). 예언 전에도 유다 지파에서 그리스도가 나실 것을 이삭이 영감으로 아들들에게 말해 주었던 것 같다. 유다 지파에서 그리스도가 나실 터인데 그 유다 지파의 혈통을 계승하기 위하여 다말이 시부와 동침한 것이다.  방법은 잘못되었으나 다말이 그리스도에게 참여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에서 그렇게 한 것이며 결코 음란한 생각으로 한 것이 아니다.

• 1:5-6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라합과 룻도 이방 여자이다.  라합은 여리고 성에서 기생 노릇을 한 여자이며 룻은 모압여자로서 자기 남편이 죽은 뒤에 자기 시모 나오미를 따라 유대나라로 온 여자이다.  우리야의 아내는 다윗이 우리야를 죽이고 빼앗은 여자이다.

예수님 족보에 기록된 네 여자가 도덕적으로 볼 때에는 자랑할 만한 것이 하나도 없다.  라합은 기생노릇을 하였고 룻은 모압 족속이다.  모압 족속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자기 딸들과 동침하여 낳은 후손들이다.  대개 이방 여자요 도덕적으로 자랑할만한 것이 없는 여자들이 예수님의 족보에 기록된 것은 첫째, 이방인이나 죄인일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예수의 계통에 참여할 수가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아무리 이방 사람으로 부도덕하고 더러운 죄를 지은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예수 그리스도에게 참여할 수가 있다.  누구나 믿으면 구원의 반열에 참여할 수가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우리가 다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고 형편없이 더러운 죄인들이다.  또 우리들이 이 여자들보다 나은 것이 하나도 없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모두 가증한 자요, 이스라엘 밖에서 사는 이방 사람으로서 도저히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자들이다.  그러나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에 그리스도의 계통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구약성경지명 여호수아 원어설교] 그실 Chesil(수 15:30)

둘째, 육신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해서 자랑할 것이 없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유대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여 자기들을 굉장히 훌륭한 줄로 알고 있으나, 그들의 조상들 가운데에는 이방 사람도 있고 사람 앞에 내어놓을 수 없을 만큼 도덕적으로 더러운 죄가 가득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민족이 교만한 마음을 품지 말고 겸손해야 된다.  인간은 다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여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게 된다.  또 그리스도는 유대인에게만 구주가 되는 것이 아니고 이방 사람에게도 구주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며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야 한다.

셋째, 인성은 변천되어 가는 것을 가르쳐 준다.  사람이 과거에는 라합처럼 기생 노릇을 하던 사람일지라도 회개하고 돌이키면 성도의 반열에 참여할 수 있는 거룩한 사람으로 변한다.  그러나 이렇게 변화되는 것은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라합은 여리고 성에 이스라엘의 정탐군이 들어왔을 때에 하나님을 믿음으로 정탐군을 숨겨 주었다. 하나님께서 여리고 성을 이스라엘에게 붙이실 것을 라합이 믿은 것이다.  여리고 성이 죄 값으로 멸망할 것과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 운동이 성취되어 이스라엘 백성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운동이 이루어져 나가는 것을 믿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거기에 참여하고자 하는 간절하고 뜨거운 마음이 라합에게 있었다.  자신이 여리고 사람이었지만 본토나 친척이나 인정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오로지 하나님의 구원 반열에 참여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 때문에 이스라엘의 정탐군을 숨겨 준 것이다.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난 아브라함과 같은 신앙으로 라합이 하나님의 백성을 영접하고 보호해 준 것이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주겠다는 말씀을 라합이 믿고 자기도 거기에 참여하고자 간절히 소망한 것이다.

룻은 모압 여자로 유대 사람에게 출가하였으나 남편이 죽어 과부가 되었다.  그 후에 시어머니를 따라 모압을 떠나서 이스라엘로 가서 살았다.  나오미가 룻에게 “소망이 없으니 네 집으로 돌아가라”라고 말하였으나, 룻은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고 어머니의 백성이 내 백성이 되겠다”라고 하면서 돌아가지 아니했다.

룻도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참여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자기의 부모와 아비집과 본국을 떠나 이스라엘로 간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을 흠모하고 사모하여 고생을 무릅쓰고 시어머니를 따라 이스라엘로 간 것이다.  사람이 변화되려면 과거의 죄를 회개하고,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 믿음으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 성도들도 과거의 생활을 돌이켜 보며 날마다 회개하고, 세상에 대한 애착심을 버리고 주를 따라가야 인격이 점점 변화되는 것이다.  성도는 중심으로 하나님을 사모하며 고난을 무릅쓰고 진리를 따라가야 한다.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면 그것이 음란한 행동이다.  마태복음 12:39에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라고 하였는데 악하고, 음란한 세대란 마음이 하나님을 떠난 것을 말한다.

성도의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 세상과 육신에 속하면 인정과 물질에 얽매이고 믿음을 지키지 못한다.  룻이 자기 고국(모압)을 떠나는 것처럼 모든 죄악에서 온전히 떠나서 하나님의 구원 운동에 참여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주의 말씀대로만 따라가야 한다.  그리하면 변하여 새 사람이 되고 그리스도의 거룩한 반열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히브리어 성경 갈라디아서] 갈라디아 교회에 인사하는 바울(갈 1:1-5)

 

[히브리어 성경 갈라디아서] 갈라디아 교회에 인사하는 바울(갈 1:1-5)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임하기를 축복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면서 예수님은 성도를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속죄 제물이

bethlehem123.tistory.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