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신약 성경을 펼쳐 볼 때 제일 먼저 등장하는 것이 마태복음입니다. 마태복음 1장을 펼치면 예수님의 족보가 나옵니다. 마태가 족보를 제일 먼저 기록한 의도는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나타내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은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아무런 죄가 없으신 예수님이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성령으로 잉태되어 탄생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2편)(마 1:1-17)
성경: 마 1:1-17
[서론]
많은 사람들이 처음 교회에 나와서 예수님에 대해서 기독교에 대해서 알고 싶어서 성경을 펴서 읽을 때에 마태복음 1장을 접하게 되면 금방 흥미를 잃고 맙니다. 낯설은 사람들의 이름들이 거명되면서 누가 누구를 낳고 낳고 하는 말이 무려 40번이나 계속해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렵고 재미없게 보여서 이제는 낳고 가 아니라 진짜 성경책을 놓고 맙니다. 멀리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마태복음 1장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님의 족보야말로 기독교가 무엇인가를 밝히 알려주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또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리기 위하여 족보에 기록된 인물들이야 말로 복음이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가라쳐 주는 그야말로 놀라운 비밀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성경에 복음서는 4개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 사자 같은 예수님의 위엄이 있는 왕의 복음
마가복음 - 송아지 같은 예수님의 희생이 있는 종의 복음
누가복음 - 예수님의 인성이 잘 나타나 있는 인자 복음
요한복음 - 독수리 같은 예수님의 신성이 독수리 복음이란 별명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 유대인의 복음서
마가복음 - 로마인의 복음서
누가복음 - 헬라인의 복음서
요한복음 - 교회의 복음서
마태 + 마가 + 누가 = 공관복음 - 예수님의 육적인 면이 부각
요한복음 - 예수님의 영적인 면이 부각됨
마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부터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 마태복음은 유대인을 대상으로 기록했습니다. 그래서 특별히 족보를 중요시 여기고 민감한 저들의 문화를 의식하고 유대인들의 관심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족보를 중요시하는 유대인의 풍습은 우리의 풍습과 다를 바가 없는 것 같습니다. 양반 제도, 가문을 중시하는 풍습은 오랫동안 우리 민족의 발전을 막아왔던 요인이었습니다. 아무튼 유대인들이 족보를 중요시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까지만 해도 로마의 식민지로서 벌써 약 6세기 동안 주권 없는 나라로서 암울한 시기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성경에 약속되어 있는 데로 메시야(구세주)가 와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고 세계를 이 메시야가 다스려서 유대인들의 세계의 일등 국민이 될 것을 꿈꾸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메시야는
첫째로 아브라함의 자손으로부터 태어나게 되어 있었습니다.
둘째는 다윗의 왕통을 이어서 태어나게 되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스라엘의 믿음의 조상으로서 저들 민족의 정신적 지주였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자손만이 선민이며 이 아브라함의 자손 중에서 메시야가 온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최대의 부흥기의 왕으로서 왕중 왕으로 유대인들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메시야는 이 다윗가의 가문에서 태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마태는 마태복음 1장 1절 족보 초두에서부터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이 선언은 참으로 의미심장한 내용입니다.
여기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유대인들에게 어떻게 보이기를 바라는 분명하고 확실한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본론]
이 표현 속에는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는 순수한 유대인의 혈통을 타고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메시야로서의 합법성을 나타내 줍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아브라함을 통해서 약속하신 언약의 후손임을 강조해 줍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너를 통해서 천하 만민이 복을 받을 것이다”라고 창세기 22장 18절에서 말씀하신 것을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실 것이라는 겁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해서 많은 사람이 복을 받게 되는데 그 약속의 자손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는 이상적인 왕, 즉 메시야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유대 역사상 가장 모범적인 왕이었습니다. 그러하기에 예수님이 다윗왕의 혈통을 타고 태어났음을 강조함으로 유대인들에게 합리적으로 메시야이심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마태복음 1장 1절에서
1. 하나님 신실하심과 사랑을 발견하게 됩니다.(1절)
1) 하나님의 신실하심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범죄로 인하여 어두움 속에서 거하는 비참한 상태를 아시고 저들을 회복할 계획을 세우시고 메시야를 보내실 것을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고 추방당한 그때부터 이미 창세기 3장15절을 통해서 약속해 주셨습니다.
(창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인간은 약속을 지키지 못합니다.
조령모개처럼 아침의 약속이 저녁에는 변해버립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많은 문제들이 있지만 더욱더 심각한 문제는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불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로가 믿지 못할 때, 진실된 인간관계를 가질 수도 없고 이기적이 되고 서로를 경계하게 되어 그야말로 살벌한 생활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상품을 선전할 때에도 그 물건의 이름 앞에 {‘진짜, 참, 참참 --기름) 수식어들이 많이 붙습니다. 서로가 믿지 못하는 관계는 그 자체가 지옥입니다. 자신이 자신을 믿지 못하면 불안해하고 자신을 학대하여 결국 자살까지 하게 됩니다. 부모가 자식을 믿지 못하고, 자식이 부모를 존경하지 않고 믿지 않게 될 때 무서운 폭군이 나오고 패륜아가 나오는 게 아닙니까?
우리가 은행의 신용을 믿지 못하면 어떻게 돈을 맡길 수 있을까요?
오늘날의 사회는 신용사회라고 합니다.
신용을 지키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하는 시대입니다.
정직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서 금융계와 거래를 할 때에도 약속시간 내에 신용을 지키지 못하면 다시는 거래하지 못합니다. 부도가 납니다. 그렇게 되면 다시는 거래하지 못하고 그 사회에서 사장되고 맙니다.
사기 사건이 비일비재한 오늘날 우리 성도들은 서로를 믿고 신뢰하는 풍조를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서로에게 믿음을 주는 행동을 통해서 그러한 모습을 불신자에게 보여줌으로 생활전도의 밑거름이 되게 해야 하겠습니다. 이것은 마치 밑거름과 같아서 당장은 표시가 나지 않지만 시간이 흐르면 그 진가가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이 삶이 불신자가 보기에 본이 되는 삶을 사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인간은 온전히 믿을 수 없는 존재이지만 하나님은 한 번 하신 약속은 영원불변하십니다. 우리는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기에 하나님의 약속하신 말씀 위에 굳게 서서 오늘도 주님을 경배합니다.
2)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온 것은 상상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자손으로 오셨다는 이 충격적인 사실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을 얼마나 사랑하시고 애착을 가지고 계시는 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 상상할 수 없는 하나님의 낮아지심입니다.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아픔이 있는 사랑의 표현인 것입니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독생자까지 아낌없이 주셨던 하나님은 이제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들을 보호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비록 땅에 발을 딛고 살고 있지만 우리의 시민권은 저 하늘나라에 있습니다. 천국 백성의 자격을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신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는 하나님의 지극히 낮아지신 희생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사랑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은 이제 우리를 향한 기대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 순서는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은 것을 깨닫는 자입니다. 그래서 그 사랑을 이웃에게 보입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로서의 올바른 태도입니다. 보이는 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아무리 외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자기기만이요 속임수입니다.
형제 사랑의 정도는 자신의 몸처럼 사랑하라는 게 주님의 명령입니다.
이제 참 사랑을 받은 성도들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으로!
고아와 과부를 구제하는 모습으로!
그래서 한평생 선교적인 사명을 감당하는 모습으로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를 볼 수 있습니다.(2절)
이삭, 야곱, 유다 등은 장자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이어가는 장자직을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이들은 육적으로는 장자가 아니었습니다.
이삭의 형은 이스마엘입니다.
야곱의 형은 에서입니다.
유다의 제일 큰형은 므낫세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장자직을 계승하지 못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였습니다.
오늘날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얻고 천국을 소망하며 천국 백성이 된 것은 우리 힘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나의 공로가 아닙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교만해서는 안 됩니다. 겸손해야 합니다.
족보를 3단계로 나눈 이유?
본문의 족보를 보면 14대씩 세 단계로 언급을 했습니다.
① 아브라함 - 다윗 ---------------------- 14대
이스라엘을 한 국가로 통일하고 역사상 가장 강력한 왕으로 군림했던 다윗의 때 - 약속의 역사
② 다윗 - 바벨론으로 이거 할 때까지 -------- 14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수치스러운 패배와 분열과 외세 침략으로 바벨론의 포로 시기 - 비극의 역사
③ 바벨론으로 이거 한 후부터 - 그리스도까지 - 14대
포로 해방 이후에 에수 그리스도의 출현까지 이르는 역사로서 그리스도의 이 역사 개입과 출현이야말로 진정한 인류의 메시야, 참된 왕으로 인한 전인류의 구원과 참된 소망을 보여주는 역사를 말하는 시기로 영광과 축복을 회복하는 - 은혜의 역사
족보 3단계가 주는 교훈?
1. 진정한 회복의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로서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으로부터 다윗까지의 역사가 비록 긍정적인 방향으로 진행되었지만 그것은 완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으로 통해서 베푸실 하나님의 축복의 언약은 여전히 다윗 때까지 그림자로서 비취어져 왔습니다. 실체가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그림자에 불과했습니다. 약속을 받은 역사였지만 완성이 아니라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전진의 역사였습니다. 그러나 더디 오시는 메시야에 대한 소망이 점차 희미해져 갔습니다. 그리하여 저들은 오래 인내하지 못하고 비극의 역사를 맞이하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풍요로운 조건에 살 때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자칫 나태해지고 해이해져서 주님을 향한 신앙이 식어질 수 있습니다. 은혜를 받고 오히려 감사하며 더욱 주님께 가까이 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반대일 수가 있습니다. 이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영육 간에 복을 주실 때 그 복을 상실하지 않기 위해서는 더욱 감사하며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할 때 지속적인 축복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자 이스라엘 백성은 두 번째 14대의 역사는 그야말로 비극의 역사였습니다. 왕국이 분열되고 외세의 침략을 받아 황폐해지고 바벨론에 포로생활을 하게 되는 참담한 역사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부여잡지 못하고 신앙을 버리고 포기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드릴 영광을 인간이 차지해 버리고 하나님이 가증히 여기는 우상에게 돌렸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의 기회를 이기적으로 활용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거두십니다. 우상에게 돌려서는 안 됩니다. 사단의 종노릇 하는 데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그의 나라와 의를 위해서 사용할 때 하나님은 지속적으로 모든 필요를 채워주시는 은혜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만약 그러지 못했을 때 하나님이 떠나십니다. 하나님이 떠난 상태에서 오는 어려움들은 극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 방치된 사람은 그 고난이 극심합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회개하고 돌이키면 하나님은 다시 찾아오십니다.
우리는 자신의 삶들을 뒤돌아 보아야 합니다. 여기까지 은혜로 인도해 주신 에벤에셀의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지금도 함께하셔서 도우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미래에도 틀림없이 인도해 주신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이렇게 살아갈 때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온전한 인도하심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죄악 중에서도 돌이키는 자를 받아 주십니다. 용서하십니다.
(사 1: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주님께 돌이킬 때 하나님은 침묵을 깨시고 드디어 3번째 14대의 마지막에 메시야를 보내 주십니다. 이 메시야는 우리를 온전히 회복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자부심을 갖게 해 주시고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나라에 이를 때까지 인도해 주십니다.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원한 소망 중에 거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문제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해결될 수 있습니다. 약한 부분이 회복될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의 놀라운 복음의 진수를 보여줍니다.
드러날수록 자랑스러운 과거가 있는가 하면 드러날수록 부끄러운 과거가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과거를 은폐하러 듭니다. 특별히 공적으로 외부에 드러나 있는 분들은 지난날을 미화시키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입니다. 진실 그대로를 기록합니다.
유대인들이 하늘처럼 떠받드는 아브라함의 비행이 낱낱이 드러납니다. 이스라엘의 별이라고 믿는 다윗 왕의 치부도 고스란히 노출시킵니다. 성경은 어느 누구도 영웅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영웅을 만들지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를 노출시키고 치부를 그대로 공개하고 약점을 고스란히 인정한다는데 성경은 진실성이 있습니다. 성경은 하루아침에 갑자기 성자를 만들고 영웅을 만들고 위인을 만드는 그런 희극을 연출하지 않습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에 특이한 여인들이 등장합니다.
당시에 남성 위주의 족보 사회에서 여인이 등장하고 있다는 데에서 특이할 뿐만 아니라 한결같이 좀 문제가 있는 여성들입니다. 다말, 라합, 룻, 우리아의 아내 등은 부끄러운 과거를 가진 여인들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가급적 그녀들의 과거는 흐르는 강물처럼 세월 따라 씻은 듯이 흘러가 버리고 기록되지 않고 망각되었으면 하는 여인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태는 그녀들과 관계되었던 남자들의 이름까지를 밝히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를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 다말 - 그녀는 시아버지였던 유다와의 불륜의 관계를 통하여 베레스와 세라를 낳은 여인입니다.
* 라합 - 그녀는 여리고성의 기생 신분으로서 보아스를 낳은 여인입니다.
* 룻 - 그녀는 이방 여인으로서 보아스와 재혼하여 오벳을 낳았습니다.(이방인: 개취급 받음)
* 우리아의 아내(밧세바)- 다윗왕과의 비정상적인 결혼을 통하여 솔로몬을 낳은 여인입니다.
여기에 나타난 네 여자는 과거에 허물과 실수가 많았던 여자들이지만 모두 하나같이 하나님 앞에 돌아와서 변화받고 새로워졌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모든 죄악과 허물과 실수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 허물어지고 용서함 받는다고 하는 복음의 진수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장벽이 무너뜨렸습니다.
남자와 여자의 차별을 무너뜨렸습니다.
성도와 죄인의 장벽을 무너뜨렸습니다.
비록 그 여인들의 과거가 어두웠을지라도 이 네 여자들은 새롭게 변화된 존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변화받고 예수님의 족보에 당당히 기록되어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복음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과거를 묻지 마십시오!
과거는 십자가 밑에 묻어두십시오!
우리가 주님 안에서 발견되기만 한다면 우리의 과거의 허물과 죄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어떠한 죄인도 용납하시는 그리스도의 복음의 진수를 능력을 보여 줍니다. 이러한 은혜가 있었기에 죄인이었던 저와 여러분도 지금 은혜의 자리에 있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을 섬기는 우리의 신앙생활에 기쁨과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 나아올 때마다 복음의 진수를 느끼며 감격으로 채워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복음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기를 바랍니다.
[결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는 의미 없이 성경을 읽는데 부담을 주고 방해하는 내용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지극하신 사랑하심. 그리고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하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일그러진 인간의 생을 회복케 하시는 역사와 그 누구도 포용하는 놀라운 비밀이 담겨 있음을 배웠습니다.
섬김으로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 이제 주님은 재림 시에 마태복음에서 강조하듯이 만왕의 왕으로 위엄 있게 오실 것입니다. 온 인류의 왕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소망하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생활하는 축복이 저와 여러분에게 있기를 소원합니다.
[마태복음 예수님 설교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1편)(마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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