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하나님 말씀

[구약 히브리어 성경말씀 사무엘상] 임신하지 못하는 한나(삼상 1:1-8)

베들레헴 2021. 11. 29.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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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1장에서 엘가나와 한나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한나는 아이를 낳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브닌나는 아이를 낳아서 한나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한나가 임신하지 못한 것은 여호와께서 태를 닫았기 때문입니다. 한나는 여호와께 기도하면서 서원을 합니다. 서원하여 낳은 자녀가 사무엘입니다.

 

임신하지 못하는 한나(삼상 1:1-8)

 

1절 바예히 이쉬 에하드 민 하라마타임 초핌 메하르 에프라임 우쉐모 엘카나 벤 예로함 벤 엘리후 벤 토후 벤 추프 에프라티

2절 베로 쉐테 나쉼 솀 아하트 한나 베솀 하셰니트 페닌나 바예히 리페닌나 옐라딤 우레한나 엔 옐라딤

3절 베알라 하이쉬 하후 미이로 미야밈 야밈마 레히쉐타하오트 베리제보아흐 라아도나이 체바오트 베쉴로 베솸 쉐네 베네 엘리 호프니 우피느하스 코하님 라아도나이

4절 바예히 하욤 바이제바흐 엘카나 베나탄 리페닌나 이쉐토 우레콜 바네이하 우베노테이하 마노트

5절 우레한나 이텐 마나 아하트 아파임 키 에트 한나 아헤브 바아도나이 사가르 라흐마흐

• 1:1-5  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소빔에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라 하는 자가 있으니 그는 여로함의 아들이요 엘리후의 손자요 도후의 증손이요 숩의 현손이더라 그에게 두 아내가 있으니 하나의 이름은 한나요 하나의 이름은 브닌나라 브닌나는 자식이 있고 한나는 무자하더라 이 사람이 매년에 자기 성읍에서 나와서 실로에 올라가서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며 제사를 드렸는데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여호와의 제사장으로 거기 있었더라 엘가나가 제사를 드리는 날에는 제물의 분깃을 그 아내 브닌나와 그 모든 자녀에게 주고 한나에게는 갑절을 주니 이는 그를 사랑함이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로 성태치 못하게 하시니

사무엘의 아버지 엘가나가 에브라임 사람이라고 기록되었으므로 사무엘이 에브라임 지파 같으나 그가 제사장이 된 것을 보면 레위 지파임이 분명하다. 그 이유는 레위 지파가 아니면 제사장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증거로는 역대상 6:16-28에 엘가나가 레위 족속에 속한 사실이다. 레위 지파 사람이지만 에브라임에 오랫동안 살았기 때문에 에브라임 사람이라 하였을 것이다.

엘가나에게 아내가 둘이 있었는데 하나의 이름은 한나요 다른 하나의 이름은 브닌나였다. 브닌나는 자식이 있었고 한나는 자식이 없었다. 구약시대에는 아내를 여러 얻는 것도 용납되었다.

엘가나가 실로라고 하는 곳에 있는 제사장을 찾아가서 제사를 드렸다고 하였다. 거기에는 엘리와 그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제사장으로 있었다.

창세기 22장 주일설교문 모리아 산에서 이삭 번제

엘가나의 온 식구는 매년 실로에 올라가서 제사를 드렸으며 제사드리는 날에 엘가나가 제물을 나누어 줄 때 브닌나와 그 자녀들에게도 주었고 한나에게는 갑절을 주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한나로 성태치 못하게 하셨으므로 한나에게는 자녀가 없었다. 아무리 제물의 분깃을 갑절이나 받고 또 남편의 특별한 사랑을 받지만 하나님께서 잉태하지 못하게 만드셨기 때문에 그로 인하여 여러 가지 번민과 고통이 있었다.

6절 베키아사타 차라타흐 감 카아스 바아부르 하르이마흐 키 사가르 아도나이 베아드 라흐마흐

7절 베켄 야아세 솨나 베솨나 미데 알로타흐 베베이트 아도나이 켄 타케이세나 바티브케 베로 토칼

8절 바요메르 라흐 엘카나 이솨흐 한나 라메 티브키 베라메 로 토켈리 베라메 예라 레바베크 할로 아노키 토브 라크 메아사라 바님

• 1:6-8  여호와께서 그로 성태치 못하게 하시므로 그 대적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동하여 번민케 하더라 매년에 한나가 여호와의 집에 올라갈 때마다 남편이 그같이 하매 브닌나가 그를 격동시키므로 그가 울고 먹지 아니하니 그 남편 엘가나가 그에게 이르되 한나여 어찌하여 울며 어찌하여 먹지 아니하며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슬프뇨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뇨

한나는 잉태하지 못한 것 때문에 늘 브닌나의 격동을 받아 번민케 되었고 마음이 편안치 못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왜 한나에게 잉태하지 못하게 하셨는가? 하나님께서 한나를 잉태하지 못하게 만드신 것은 그로 인하여 낮추고 시험하여 마침내 복을 주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낮추고 또 시험하사 마침내 복을 주시려고 광야길로 인도하신 것과 같다(신8:2, 16 참조). 가까운 길로 인도하시면 며칠 만에 가나안 땅에 도착할 수 있는데 광야길을 빙빙 돌게 만드시고 40년 동안 큰 시험과 환난을 당하게 하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을 낮추고 시험하여 마침내 복을 주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이었다. 한나에게 잉태하지 못하게 하신 것도 이스라엘 백성을 40년 동안 광야길을 걷게 하신 것과 마찬가지이다.

브닌나가 자주 한나를 격동시킨 것은 한나의 연단을 위한 시험이요 가시이다. 즉 하나님께서 한나에게 브닌나를 가시로 주어 격동시키고 번민하게 만들고 고통을 주어 마침내 좋은 신자가 되게 하여 복을 주시려고 하신 것이다. 사도 바울에게 하나님께서 가시를 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바울이 교만하여져서 망하지 않도록 바울을 낮추시기 위함이었고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바울을 통하여 끝까지 성공시키기 위한 연단이 필요하였기 때문이었다(고후12:7-10).

[구약성경지명 여호수아 원어설교] 그실 Chesil(수 15:30)

한나가 순조롭게 잉태했다고 하면 하나님 앞에서 낮아질 것도 없었고 하나님께 매달려 부르짖을 것도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남편이 제물을 갑절이나 줄만큼 특별한 사랑을 받았고(5절), 수소 셋과 가루 한 에바,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재물로 바칠 만큼 경제적으로 유족하였는데(24절), 거기에다 잉태하여 아들까지 낳았다고 하면 더 이상 부족한 것이 없었겠기 때문이다. 그래서 잉태하지 못하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한나를 낮추셨다.  잉태하지 못하는 까닭에 자주 격동을 받은 한나는 더욱 하나님 앞에 나아가 눈물로 기도하게 되었고 매달리게 되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한나가 낮아지고 겸손하여 하나님만 의뢰하는 좋은 신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그를 낮출 만한 결함이나 결점을 주신 것 같다.  무엇 한 가지라도 잘되면 의기양양하다가도 자기의 결함이나 결점이 나올 때는 거기서 낮아지고 교만하던 것이 쑥 들어간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에게 가시를 주시는 것이다. 베드로도 졸기를 잘하는 결점이 있었다. 변화산에서 졸았고, 겟세마네 동산에 가서도 졸았다. 또 성격이 과격하여 환도를 빼어 말고의 귀를 베었고,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한 것들은 다 결함이요 결점이지만 이것 때문에 베드로는 더욱 겸손하여지고 좋은 사도가 되었다. 베드로가 받은 은혜가 너무 크기 때문에 교만이 나오려고 하다가도 “아!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예수님을 몇 번 모른다고 하였는가? 나는 말고의 귀를 벤 사람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떠오를 때는 그만 교만이 쑥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각 사람에게 단점과 가시와 시험하는 것이 있음은 하나님께서 그것으로 그 사람을 낮추시려는 것이다. 사람마다 무엇인가 낮출만한 가시가 있어야만 낮아질 수가 있게 된다. 엘리 제사장도 아들은 있었지만 아들들의 못된 행실로 낮추고 연단하셨으며(2:12-17), 사무엘도 그 아들들이 아비의 행실을 따르지 않고 불의한 행동을 하였으므로 그것으로 사무엘을 낮추셨다(8:1-3).

대개 사람들은 아무 결함이나 결점이 없이 늘 평안하고, 가는 데마다 대접을 잘 받고 모든 것이 형통하게 되어야 그것이 하나님의 복인 줄 안다. 그러나 참으로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사랑하신다면 그런 평안한 환경 가운데 가만히 놓아두시지 않고 어떤 사건을 통하여서라도 낮추시고 연단하시어 하나님 앞에 버림받지 아니하고 마침내 복을 받는 사람으로 만들어 가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믿는 사람들은 자기의 결함과 부족한 면을 붙들고 늘 겸손하며 낮아져서 자기를 만들어 가도록 힘써야 한다.

성도는 자기가 되지 못한 것, 잘못한 것, 죄지은 것을 늘 붙들고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고 교만하지 않도록 자기를 만들어 가야 된다. 일평생의 원수가 자기인 줄을 알아야 한다. 곧 자기가 제일 큰 원수이다.  자기를 부인(否認)하고 나아갈 때는 생명의 역사가 있는 때요, 자기를 부인하지 못하고 자기가 살아서 자기가 중심이 되면 영적 생명이 끊어지는 때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날마다 부인하여야 된다.  하루라도 자기를 부인하지 않을 때는 자기가 살아나고 자기가 살아나면 하나님과의 교통이 막혀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한다. 하나님과 자기 사이를 막는 것은 언제나 자기라는 것을 알아야 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9:27에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라고 하였다. 또 고린도전서 15:31에 바울은 날마다 죽노라고 하였다.

오늘에 자기를 죽인 사람은 희망이 있는 사람이다.  바울은 자기가 사도 가운데 제일 작은 자요, 성도라 일컬음도 감당치 못할 자라고 하였다. 자기가 교회를 핍박하고 또 스데반을 죽일 때 주도적 역할을 한 죄를 붙들고 통회하고 낮아진 것이다.

자기를 죽이지 못하면 성경을 다 알아도 쓸데가 없다. 도리어 교만하여진다. 마치 강도에게 칼을 준 것과 같아서 위험하기 짝이 없다. 먼저 강도질하려는 속마음을 없앤 다음에 칼을 취면 그 칼을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속의 강도는 그냥 두고 칼만 쥔다면 죄만 짓고 더욱 비참한 상태가 되고 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에게는 강제로라도 낮추어 자신을 부인하고 낮아지게 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명한 사람은 하나님의 강제적 징계가 오기 전에 미리 자기를 쳐서 복종시켜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 앞에 낮아진다.

한나가 브닌나의 격동을 받고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아 아직도 다 만들어지지 못한 것을 알 수 있다. 참 신앙에 섰다면 남이 자기를 격동할지라도 격동받지 않게 된다.  격동받는 자체가 한나에게는 아직까지도 만들어질 것이 많다는 증거이다. 또 원통히 생각하고 번민하고 눈물을 흘리는 그 자체가 그만큼 되지 못한 것을 나타낸다. 예수님께서도 격동을 받으셨을까? 예수님은 아무리 격동시켜도 격동을 받지도 않으시며 분한 마음도 생기지 않았다. 

[구약성경인물 설교말씀] 에스라-율법에 정통한 학자들(렘 25:12; 스 1:1)

한나는 깊은 도(道)에 도달하지 못한 신자이지만 보편적으로 신앙이 아주 좋은 신자이며 영에 속한 신자이다. 반면에 브닌나는 육에 속한 신자로 보아야 하겠다. 왜냐하면 브닌나는 육신의 것을 가지고 만족하고, 육신의 것 때문에 질투하고 남을 멸시하였기 때문이다. 자기는 아들 딸을 낳았다고 하여 그것을 가지고 뽐내고 자랑하며, 다른 사람을 아이 낳지 못한다고 멸시하며, 또 남편이 한나를 더 사랑한다고 질투한 것을 보아 분명히 육신 중심이요 육에 속한 신자이다. 

한나는 신령한 은혜 속에 있는 신자이다.  2:1-2에서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고 여호와로 인하여 뿔이 높아졌고 여호와와 같은 반석이 없고 주 밖에 다른 이가 없다고 기도한 것을 보아 한나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여 사는 신자이다. 그러나 육신에 속한 생활에서 아주 떠나지는 못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것을 없애려고 자주 격동을 받게 하신 것이다. 본래의 신앙은 좋으나 표준까지 아직 도달하지 못한 것뿐이다. 한나의 신앙은 좋은 편이지만 더 좋은 신앙 인격을 만들려고 하나님께서 역사하여 브닌나로 하여금 한나를 핍박하게 하였다. 

육에 속한 신자가 영에 속한 신자를 핍박하고 학대하고 격동을 시키는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동일하다.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한 아들은 계집종에게서 난 이스마엘이고 다른 한 아들은 자유하는 여자 사라에게서 난 이삭이다. 그 계집종의 아들이 이삭을 희롱하고 핍박하였다. 이때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니 계집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고 하였다(창21:1-13 ; 갈4:21-31).

여기에서 한나가 낳은 사무엘이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과 똑같은 의미의 영에 속한 아들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을 때에 언약으로 인하여 이삭을 낳았고 이 언약은 메시아에 대한 약속이었다. 사무엘에게는 그러한 약속이 없었으며 다만 육에 속한 자가 영에 속한 자를 핍박하는 면이 엘가나의 가정과 아브라함의 가정이 같다는 것이다. 

육에 속한 이스마엘이 영에 속한 이삭을 핍박하였고 브닌나가 한나를 격동시키고 핍박하였다. 육에 속한 신자는 세상에서 출세하고 육신의 것이 부요해지는 반면에 영에 속한 자는 세상에서 환난과 궁핍을 당한다. 요한계시록 2:9에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라고 하였고, 요한계시록 2:10에 “․․․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라고 하였다. 

한나가 경건하게 살려고 하므로 핍박을 받았고 진리를 지키려고 하므로 시험을 당하게 된 것이다. 격동시켜도 격동을 받지 않으며 육에 속한 모든 것을 초월하고 하나님 안에 깊이 들어가 그 진리에 바로 서서 나아가면 점점 자신이 만들어지게 된다. 격동받는 일 때문에 한나는 기도를 많이 하며 하나님을 더욱더 간절히 찾게 되었다. 이제는 한나가 하나님을 떠나려야 떠날 수 없는 그런 자리에 들어가 자신의 인격이 잘 만들어지게 되었다. 이것이 참으로 하나님 앞에 복 받은 것이요 감사한 것이다. 

[구약 히브리어 성경말씀 룻기] 베들레헴으로 돌아온 나오미와 룻(룻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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