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하나님 말씀

[사무엘상 히브리어 성경말씀] 엘리 가문의 멸망을 예언함(삼상 3:10-21)

베들레헴 2023. 2. 23.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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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3장에서는 엘리 가문이 멸망당할 것에 대해서 예언하고 있다. 하나님이 엘리 제사장의 가문을 몰락시키고 엘리 집의 죄악은 제물로나 예물로나 영원히 속죄함을 받지 못한다고 했다.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해서 엘리 가문의 멸망에 대해서 말씀했다.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살아야 한다. 죄를 지으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

 

엘리 가문의 멸망을 예언함(삼상 3:10-21)

 

성 경: [삼상3:10] 바야보 아도나이 바이티야차브 바이크라 키파암 비파암 쉬무엘 쉬무엘 바요메르 쉬무엘 다베르 키 쇼메아 에브데카

주제1: [사무엘의 소명(召命)]

주제2: [엘리 가문의 멸망에 관한 계시]

󰃨 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 '임하여' (야보)'오다'(come)란 뜻이다. 그리고 '서서'는 신인 동형적(神人同形的) 표현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서서 계실 육체를 갖고 계시지 않은 영()이신데도 불구하고, 마치 사람과 같이 서 계신 것처럼 표현한 것이다. 본절이 이와 같은 표현을 사용한 것은 하나님께서 사무엘 앞에 실제로 임재하셨음을 강조하기 위함이다(28:13; 34:5; 4:16). 그러므로 본절은 사무엘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뿐만 아니라, '사무엘아 사무엘아'와 같은 반복적인 부르심의 표현이 성경 여러 곳에서 신현(神顯)의 장면과 함께 언급된다는 사실에서 또한 증명될 수 있다(22:11; 46:2; 3:4).

성 경: [삼상3:11] 바요메르 아도나이 엘 쉬무엘 힌네 아노키 오세 다바르 비이스라엘 아쎄르 콜 쇼미오 티칠레나 쉬테 아지나이브

주제1: [사무엘의 소명(召命)]

주제2: [엘리 가문의 멸망에 관한 계시]

󰃨 내가...한 일을 행하리니 - 여기서 '한일' (다바르)은 앞에서 상세하게 언급된 바 엘리 가정에 대한 심판의 예언을 실제로 성취시키는 일을 가리킨다(2:27-36). 즉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손을 들어 앞에서 예언하신 대로 엘리의 집안을 심판하실 것이라는 뜻이다.

󰃨 두 귀가 울리리라 - 이 말은 곧 '사건의 충격성'을 가리키는 말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엘리 집안에 내리실 심판이 너무도 충격적이어서, 그 소식을 접한 자가 공포와 전율로 인해 귀가 먹먹할 정도가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Smith, Fay, Keil). 구체적으로 제사장 엘리 집안에 임한 하나님의 심판은 (1) 법궤가 블레셋 족속에게 빼앗기고, 실로 성소가 파괴된 사실(4:11, 17; 5:1), (2) 엘리의 두 아들이 전쟁터에서 한 날에 죽은 사실(4:18), (4) 엘리의 며느리가 해산하다가 죽은 사실(4:19-22) 등으로 나타났다. 한편, 이런 의미에서 '두 귀가 울리리라'(테칠레나 쉐테 아즈나우)는 말은 성경 다른 곳에서 예루살렘의 함락과 파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게 되리라는 사실을 가리킬 때 역시 사용되었다(왕하 21:12; 렘19:3).

성 경: [삼상3:12] 바욤 하후 아킴 엘 엘리 에트 콜 아쎄르 디바리티 엘 베토 하헬 비칼레

주제1: [사무엘의 소명(召命)]

주제2: [엘리 가문의 멸망에 관한 계시]

본절은 엘리의 가문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예언한 대로(2:31-36) 반드시 있을 것임을 다시 확증하고 있다.

󰃨 처음부터 끝까지 - 이는 어떠한 일을 진행함에 있어 그중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세심하고도 철저히 이루어가겠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성 경: [삼상3:14] 비라켄 니쉬바이티 라베이트 엘리 임 이트카페르 아온 베이트 엘리 베제바흐 우비미니하 아드 올람

주제1: [사무엘의 소명(召命)]

주제2: [엘리 가문의 멸망에 관한 계시]

󰃨 내가 ...맹세하기를 - 이하 선언되는 내용과 같은 하나님의 맹세는 구체적으로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나 엘리의 집에 대한 '하나님의 사람'(2:27)의 엄중한 심판적 예언(2:27-36)은 하나님의 맹세와 결코 다를 바가 없다.

󰃨 엘리 집의 죄악은...속함을 얻지 못하리라 - 이 말은 엘리의 집안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불가피함을 강력히 시사한다. 그 이유는 (1) 엘리집안의 죄악이 엄중한 경고 후에도 계속되었고, (2) 그러한 죄악을 속하는 거룩한 제사마저도 그들의 탐욕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되었기 때문이었다(2:12-17).

󰃨 제물이나 예물로나 - 여기서 '제물(제바흐)은 피흘림이 있는 희생 제사를 가리키며, '예물(민하)은 소제와 같은 피흘림 없는 곡식 제사를 가리킨다(R.P. Smith). 한편 이 두 가지는 구약 시대의 백성들이 자신들의 죄를 여호와께 속죄받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성 경: [삼상3:15] 바이쉬카브 쉬무엘 아드 하보케르 바이피타흐 에트 달리토트 베이트 아도나이 우쉬무엘 야레 메하기드 에트 하마리아 엘 엘리

주제1: [사무엘의 소명(召命)]

주제2: [엘리 가문의 멸망에 관한 계시]

󰃨 여호와의 집 문을 열었으나 - 여기서 ''()은 히브리 본문에는 '문들'(doors)로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성막에는 많은 문들이 있었고, 그 문들을 열고 닫는 일이 사무엘의 중요한 임무였음을 추측할 수 있다. 한편, 그런데 여기서 ''(델레트)은 나무로 만들어진 '두 짝 문'(a tow - leaved door)을 가리킨다. 따라서 '여호와의 집 문을 열었다'는 말은 성막의 휘장들(26:36; 36:37)을 열어젖혔다는 뜻이 아니라, 성막에 부속된 여러 별관 건물들의 문들을 열었다는 뜻이다. 아마도 성막이 실로(Shlioh)에 오래 머무는 동안 성막 뜰 주변에는 제사 업무상 필요한 여러 부대(附帶) 건물들이 고정적으로 지어졌던 것 같다(Keil Delitzsch, R, Payne Smith). 2절 주석 참조.

󰃨 그 이상을...알게 하기를 두려워하더니 - 사무엘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이상(異像)은 엘리 가문의 멸망과 직접적으로 맞물려 있었다. 따라서 사무엘은 하나님께로부터 엘리 가문의 멸망에 대한 예언을 듣고도 즉시 엘리에게 말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사무엘은 그 같은 비극적인 예언으로 인하여 대스승 엘리 제사장이 심히 괴로워할 것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소년 사무엘의 사려 깊은 신중함이 엿보인다.

성 경: [삼상3:16] 바이크라 엘리 에트 쉬무엘 바요메르 쉬무엘 베니 바요메르 힌네니

주제1: [사무엘의 소명(召命)]

주제2: [엘리의 순복]

󰃨 엘리가 사무엘을 불러 - 지난밤 사무엘에게 어떠한 내용의 하나님의 계시가 임했는지 엘리가 무척 궁금해하고 있었음을 암시해 준다.

󰃨 내 아들 사무엘아 - 이것은 평소 엘리와 사무엘의 관계가 부자(父子)관계와 같이 밀접했음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내 아들아' 라는 호칭은 애정과 사랑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자신의 난감한 마음을 암시적으로 표현하는 호칭이기도 하기 때문이다(6).

󰃨 내가 여기 있나이다 - 이것은 엘리에 대한 사무엘의 존경심과 겸손한 마음, 그리고 순종의 의지를 보여주는 말이다(8, 9)

성 경: [삼상3:18] 바야게드 로 쉬무엘 에트 콜 하디바림 비로 키헤드 미메누 바요마르 아도나이 후 하토브 비에나브 예아세

주제1: [사무엘 소명(召命)]

주제2: [엘리의 순복]

󰃨 사무엘이...조금도 숨기지 아니하니 - 사무엘은 엘리의 엄숙한 요청을 뿌리칠 수 없었고, 또한 선지자적 소명을 받은 자로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말씀을 그대로 전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꼈기 때문에 엘리에게 모든 사실을 말했다. 그런데 이러한 사무엘의 메시지 전달은 다음 두 가지 목적을 지닌다고 볼 수 있다 (1) 메시지 전달로 부터 실제 심판이 임하기까지 약 10-15년의 기간이 있었다는 것은 다시 한번 사무엘을 통해 엘리 집안을 각성시키고 회개시키기 위한 목적이 깃들어 있다고 볼 수 있다. (2) 소년 사무엘에게 말씀을 주어 대제사장 엘리에게 메시지를 선언하도록 했다는 것은 향후 사무엘의 예언자적 기능을 강화시키고, 동시에 그를 이스라엘의 새로운 지도자로 부각시키기 위한 목적이 있다고 볼 수 있다(F.R. Fay.Smith).

󰃨 이는 여호와시니 - 사무엘의 모든 말이 틀림없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계시임을 엘리가 겸손히 인정하는 말이다.

󰃨 선하신 소견대로 하실 것이니라 - 이 말은 엘리가 하나님의 의지를 순히 받아들이고 있음을 보여주는 말이다. 즉 사무엘을 통해 전달된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 집안의 멸망과 죽음에 관한 무서운 심판의 내용이었지만, 엘리는 강퍅하게 거부하거나 냉소하지 않고 하나님의 선하신 뜻대로 모든 일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러나 반면, 엘리는 이처럼 무서운 심판의 말씀을 듣고도 옷을 찢고 통회하며 재를 무릅쓰고 회개한 참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따라서 이것으로 우리는 엘리의 신앙 면모를 얼핏 살펴볼 수 있는데, 즉 그는 개인적으로는 후덕(厚德)하고 어느 정도 신앙적이었지만, 공적으로는 죄에 대처함에 있어 유약하고 미온적인 우유부단한 인물이었던 것 같다.(Keil, Smith).

성 경: [삼상3:20] 바예다 콜 이스라엘 미단 비아드 비에르 샤바 키 네에만 쉬무엘 리나비 라아도나이

주제1: [사무엘의 소명(召命)]

주제2: [여화와의 선지자 사무엘]

본절의 내용은 19절 내용의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즉 선지자로서의 사무엘의 예언이 말한 대로 모두 성취되자 이스라엘 온 백성들은 사무엘을 의심할 나위 없이 여호와의 선지자로 인정하고 받아들였던 것이다. 한편, 여기서 '세우심을 입은 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네에만'은 민 12:7에서는 하나님의 위대한 종 모세의 경우와 관련되어 '충성됨'으로 번역되어 있다. 따라서 이는 그 직무상의 충성되고 신실함을 통해서, 하나께로 말미암아 세움 받은 그의 선지자 직의 정통성이 입증된다는 의미이다.

󰃨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 ''(DAN)은 이스라엘 북쪽 변경의 한 성읍이름이다. 그런데 이곳의 원래 지명은 '라이스'(18:29)였다. 그러나 이 지역에 단 비파의 사람들이 이주, 정착해 살면서 자신들의 조상 이름을 따라 이와 같은 지명을 붙였던 것이다. 단 지파는 원래 여호수아로부터 약속의 땅 중 남쪽 부분을 자신들의 기업으로 분배받았었다(수 19:40-48). 그러나 그들은 그 땅의 원주민을 몰아내지 못함으로, 그 땅을 자신들의 것으로 완전히 소유할 수 없었다(18:1). 그러던 중 정착지를 찾아다니다가 머무른 곳이 바로 이 단 지역이었던 것이다(18:27). 한편 '브엘세바'(beer-sheba)는 팔레스틴 최남단 곧 헤브론 서남쪽 55km 지점에 위치하였다(21:14; 26:23; 20:1). 따라서 '단에서 브엘세바까지'란 말은 이스라엘 전 국토를 가리키는 관용적이 표현이다(201).

󰃨 선지자(나비). - 어원적으로는 '부름을 받은 자'란 뜻이다(Klein)그런데 우리는 이 같은 어원적인 의미와 더불어 이 단어의 문맥적인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즉 본장의 문맥은 선지자의 의미가 (1) 여호와께서 임하신 바 된자(10, 21), (2) 여호와의 계시를 받은 자(17, 21절)임을 시사한다.

성 경: [삼상3:21] 바요세프 아도나이 리헤라오 비쉴로 키 니길라 아도나이 엘 쉬무엘 비쉴로 비디바르 아도나이

주제1: [사무엘의 소명(召命)]

주제2: [여호와의 선지자 사무엘]

본절의 내용은 사무엘을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은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부각시키려는 저자의 의도가 강하게 반영되고 있다.

󰃨 실로 - 하나님의 성막이 세워져 있던 곳으로, 사무엘이 머물던 것이다(1:3 ;2:11). 1:3 주석 참조.

󰃨 여호와의 말씀으로 - 이 말은 혹자들의 생각처럼 구체적으로 삼위일체 하나님 중제 2위의 출현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만 여호와께서 당신을 계시하시되, 당신의 말씀을 매개체로 사용하셨음을 뜻한다(2:1)

[갈라디아 1장 히브리어 성경말씀]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감(갈 1: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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