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하나님 말씀

[시편 90편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영원하심과 인생의 덧없음(시 90:1-17)

베들레헴 2023. 2. 28.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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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90편에서는 영원하신 하나님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이 생기기 전부터 영원부터 영원까지 존재하는 분이다. 이 세상을 창조할 때 예수님도 함께 하셨다. 예수님이 아니면 이 세상이 된 것이 없다고 했다. 성도는 영원하신 구원자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았다.

 

하나님의 영원하심과 인생의 덧없음(시 90:1-17)

 

[1-2]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모세는,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말한다. 낮의 더위와 밤의 추위를 막고 도적을 방지하고 편히 쉴 수 있는 집처럼, 영원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원한 집이 되신다. 그 집은 낡아서 재건축이 필요치 않는 완전하고 영원한 집이다. 하나님께서는 우주와 인생의 해답이시다.

[3-6]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이는]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이다. 주께서 저희를 홍수처럼 쓸어 가시나이다. 저희는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벤 바 되어 마르나이다.

모세는 영원하신 하나님과 대조하여 인생은 너무 짧고 잠깐임을 증거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며 또 너희 인생들아, 돌아가라고 말씀하셨다. 즉 하나님께서는 인생을 허무하게 하셨다. 또 그가 이렇게 말하는 까닭은, “이는 주께서 보시기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노아 시대의 홍수가 있기 전의 선조들처럼 천년 가까이 산다 할지라도 죽고나면 그 긴 세월은 밤의 한 경점에 불과할 것이다. 또 모세는 주께서 저희를 홍수처럼 쓸어가시나이다라고 말한다. 죽음은 홍수처럼 생의 모든 것들을 쓸어가며, 인생의 복잡다단한 삶을 꿈같이 헛되게 만든다. 인생은 아침에 돋는 풀과 같다. 풀이 자라고 꽃을 피다가 베어지듯이, 인생의 삶과 성공은 죽음으로 끝나고 만다.

[7-9] 우리는 주의 노()에 소멸되며 주의 분내심에 놀라나이다.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 빛 가운데 두셨사오니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일식간에 다하였나이다.

모세는 인간의 죽음의 원인이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라고 말한다. 인류의 시조가 범죄치 않았더라면 인간은 죽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본래 인간을 죽도록 창조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그는 아담에게 범죄하면 정녕 죽으리라고 경고하신 대로 그가 범죄하였을 때 죽음의 형벌을 내리셨다(2:16-17; 창세기 5).

[10-12]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누가 주의 노()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를 두려워하여야 할 대로 주의 진노를 알리이까?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

모세는 인간의 수명을 70년 혹은 80년이라고 말한다. 오늘날도 80세 이상 사는 사람은 건강한 자요 장수한 자에 속할 것이다. 그러나 인생의 자랑거리가 있다면 그것은 수고와 슬픔뿐이다. 또 게다가 그 수고로운 세월도 어찌 그리 빨리 가는지 모른다. 세월은 화살같이 빠르게 지나가고 흐르는 강물같이 빠르게 흘러간다.

인생은 이런 빠른 세월 속에서, 이런 짧은 삶 속에서 하나님의 노()의 능력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인생이 하나님의 진노로 죽음을 맞이하면서도 죄 짓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무지한 자인가. 그러므로 어느 날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하지 않고 선한 일을 구별하지 않고 또 짧은 생에 일의 우선순위를 두지 않고 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13-15]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언제까지니이까? 주의 종들을 긍휼히 여기소서. 아침에 주의 인자로 우리를 만족케 하사 우리 평생에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우리를 곤고케 하신 날수대로와 우리의 화를 당한 연수대로 기쁘게 하소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 때문에 인간을 멀리 떠나셨다. 그 결과, 인간의 삶은 수고와 슬픔이 가득한 삶이 되었고 세상은 죽음의 그늘진 곳이 되었다. 그러나 이제 모세는 하나님께서 돌아오시기를 구하며 주의 종들을 긍휼히 여기시기를 구한다.

하나님의 공의로는 인간의 죄에 대한 진노와 죽음의 형벌만 가능하다. 오직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로만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죽음과 지옥 형벌에서 건져주시고 영생을 주실 수 있다. 하나님의 뜻은 인생이 평생 슬프지 않고 기쁘게 사는 것이다. 구원은 우리의 기쁨을 회복시킨다. 천국은 기쁨과 희락의 나라이다(14:17).

모세는 우리가 곤고함을 당한 햇수들만큼 기쁨을 얻게 해달라고 소원한다. 그러나 실상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훨씬 그 이상을 주신다. 사사기를 보면, 하나님께서는 옷니엘 때에 징계를 8년간 주셨으나 평안을 40년간 주셨고, 에훗 때에 징계를 18년간 주셨으나 평안을 80년간 주셨다. 또 하나님께서는 드보라 때에 징계를 20년간 주셨으나 평안을 40년간 주셨으며, 기드온 때에 징계를 7년간 주셨으나 평안을 40년간 주셨다. 이와 같이, 인생의 수고로운 삶은 7, 80년이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천국의 복락은 영원하다.

[16-17] 주의 행사를 주의 종들에게 나타내시며 주의 영광을 저희 자손에게 나타내소서. 주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임하게 하사 우리 손의 행사를 우리에게 견고케 하소서. 우리 손의 행사를 견고케 하소서.

주의 행사곧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은 이스라엘 백성의 회복의 일이며 사람들을 죄와 죽음과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구원하는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구원을 받아 영생에 이르기를 원하신다. 영생은 택한 백성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며 약속이다.

모세는 주의 영광을 저희 자손에게 나타내소서라고 기도한다. 인류는 범죄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구원은 그 잃어버린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하는 일이다. 이 일은 말씀이 육신이 되신 하나님의 독생자께서 그의 영광을 죄인들에게 비추시므로 이루어질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의롭다 하심이나 장차 몸의 부활과 천국도 하나님의 영광을 그들에게 나타내시는 일이다.

모세는 또 주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임하게 하사 우리 손의 행사를 우리에게 견고케 하소서. 우리 손의 행사를 견고케 하소서라고 말한다. ‘은총이라는 원어(노암)기뻐함이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기뻐하시는 자들, 즉 그가 은혜와 호의를 베풀기를 기뻐하시는 자들에게 은총을 베푸신다. 인생은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행할 수 있다.

우리 손의 행사는 우리의 모든 행위들에 관계될 것이지만, 특히 문맥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시작하신 구원의 일과 그 구원의 열매들을 가리키는 것 같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모든 죄를 버리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 이제 우리는 모든 죄를 버리고 더욱 거룩해져야 하고 하나님의 계명대로 선한 일을 힘써야 한다. “우리 손의 행사를 우리에게 견고케 하소서라는 말은 우리의 구원을 온전케 하소서라는 말과 같다. 우리는 우리의 성화를 온전히 이루어야 하며, 또 선행의 열매를 많이 맺어야 한다.

본 시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창세 전부터 계신 영원하신 하나님을 알고 그를 우리의 거처로 삼아야 한다. 영원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원한 거처가 되신다. 영원하신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다(1:1). 그는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는 천지만물의 창조자이시며 섭리자이시다. 우리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알 때 영생을 얻으며(17:3), 또우리가 영원하신 하나님을 거처로 삼을 때 참된 안식을 얻는다.

둘째로, 우리는 이 세상이 허무한 세상임을 알아야 한다. 세상의 삶은 천년이라 하더라도 지나간 어제와 같고 밤의 한 경점과 같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홍수처럼 쓸어가신다. 인생은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과 같다. 본문은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라고 말한다. 이 세상의 이런 허무함은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의 징벌이다. 그러므로 본문은 우리는 주의 노에 소멸되며 주의 분내심에 놀라나이다,”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일식간에 다하였나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 위주로 살지 말고 하나님 위주로 살아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구원의 새 삶을 힘있게 이루자. 모세의 간구의 내용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세상에서의 곤고한 80년의 삶과 비교할 수 없는 내세의 복된 영생을 약속하셨고 현세에서도 평안과 기쁨을 허락하셨다. 우리는 주 안에서 항상 평안하며 성령 안에서 기뻐하며 살 수 있다. 요한복음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데살로니가후서 3:16,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기를 원하노라.” 성령의 열매는 희락이다(5:22). 빌립보서 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또 하나님께서는 우리 손의 행사를 견고케 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성화를 이루고 선한 열매를 많이 맺을 수 있다. 구원의 목적은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하나님의 친 백성을 만드시는 것이다(2:14). 우리는 선행의 열매를 많이 맺어야 한다(15:5: 3:8, 14). 요한계시록 22: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우리는 평안과 기쁨 가운데서 성화를 이루고 전도와 교회 건립과 선행의 열매를 많이 맺는 자가 되자.

[교회 성찬식 주일 설교말씀] 성례에 참여하는 성도(고전 11: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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