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3장에서는 다윗의 신복인 요압이 아브넬을 사적인 원한으로 죽여서 복수했다. 다윗과 아브넬이 언약을 맺고 아브넬이 돌아가는데 요압이 이 사실을 알고 아브넬을 죽였다. 이 사실을 다윗은 몰랐다. 아브넬이 요압의 동생인 아사헬을 죽였기 때문에 복수하기 위해서 다윗을 모르게 아브넬을 죽였다. 이것 때문에 요압은 저주를 받았다.
요압이 아브넬을 죽이다(삼하 3:22-30)
성 경: [삼하3:22] 비힌네 아비데 다비드 비요아브 바 메하기두드 비샬랄 라브 임맘 헤비우 비아브네르 에네누 임 다비드 비헤브론 키 쉴리호 바옐레크 비샬롬
주제1: [다윗가의 흥왕과 사울가의 쇠퇴]
주제2: [아브넬의 죽음]
요압이 적군을 치고... 돌아오니 - 아마도 요압이 싸움터에 나가있게 된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닐 것이다. 다시 말해서, 다윗은 아브넬과의 중요한 협상을 위해 요압을 일부러 변방에 파견했을 것이라는 말이다(Pulpit Commentary, Lange, The Interpreter's Bible). 그것은 아마 다음 두 가지 목적에서였을 것이다. (1) 당시 지나치게 강한 세력을 갖고 있던 요압(39절)을 견제하고, 아브넬과의 협상에서 그의 간섭을 배제하기 위함이다. (2) 요압과 아브넬 사이에 일어날지도 모르는 충돌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다.
크게 노략한 물건 - 요압이 유다를 공격해 온 적들을 물리치기 위해 출정(出征) 한 것이 아니라 순전히 변경 지대에 약탈하러 나갔었음을 시사해 주는 말이다. 그런데 당시에는 이 같은 노략물로 군대를 유지하는 것이 보편적이었다(삼상 27:8, 9).
성 경: [삼하3:23] 비요아브 비콜 하차바 아쎄르 이토 바우 바야기두 리요아브 레모르 바 아브네르 벤 네르 엘 하멜렉크 바이샬리헤후 바옐레크 비샬롬
주제1: [다윗가의 흥왕과 사울가의 쇠퇴]
주제2: [아브넬의 죽음]
왕이 보내매 저가 평안히 갔나이다 - 다윗도 일전에 아브넬에게 죽임 당한 아사헬과 같은 유다 지파이자, 더욱이 그의 외삼촌이었는 바(2:28) '피의 복수'(14:7;민 35:19)를 할 의무가 있었다. 그런데도 다윗이 아브넬을 그냥 돌려보냈다는 가시 돋친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이다.
성 경: [삼하3:24] 바야보 요아브 엘 하멜렉크 바요메르 메 아시타 힌네 바 아브네르 엘레카 라마 제 쉴라히토 바옐레크 할로크
성 경: [삼하3:25] 야다이타 에트 아브네르 벤 네르 키 리파토티카 바 비라다아트 에트 모차아카 비에트 미보에카 모바에카 비라다아트 에트 콜 아쎄르 아타 오세
주제1: [다윗가의 흥왕과 사울가의 쇠퇴]
주제2: [아브넬의 죽음]
다윗이 아브넬과 모종의 협상을 체결한 후 그를 평안히 보내준 데 대해 요압이 불평하는 장면이다. 이 불평은 표면상 다윗을 위하는 양 표현되었으나 실상 그가 불평한 이유를 보면 다음과 같다. 즉 (1) 다윗이 중요한 협상에서 자기를 배제시킨 데서 느끼는 불쾌감, (2) 다윗이 자기보다 아브넬을 신뢰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 (3) 아사헬을 죽인 아브넬에 대한 복수심 등이다(2:23, 27, 30).
어찌하여... 하셨나이까 - 요압의 방자(放恣)함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장면이다. 즉 그는 마치 다윗이 국사(國事)를 진행함에 있어서 모든 일을 자신과 의논한 후에 처리했어야 했다는 투로 대들고 있는 것이다.
왕도 아시려니와... 왕을 속임이라 - 요압은 아브넬의 방문 목적을 매도(罵倒) 하기 위하여 먼저 아브넬의 인물 됨됨이에 대하여 다윗의 주의를 환기시킨다. 즉 요압은 다윗을 향해'당신은 아브넬이라는 작자가 도대체 어떤 인간인지 모른단 말입니까? 그 자는 뻔한 놈입니다. 따라서 그가 온 이유 역시 당신을 속이기 위해 온 것이 틀림없습니다'라는 말을 한 것이다.
출입하는 것 - 이 말은 다음에 나오는 '모든 하시는 것'과 같은 의미의 관용어이다(신 28:6;31:2;왕하 19:27;시 121:8).
성 경: [삼하3:26] 바예체 요아브 메임 다비드 바이쉴라흐 말아킴 아하레 아브네르 바야쉬부 오토 미보르 하시라 비다비드 로 야다
주제1: [다윗가의 흥왕과 사울가의 쇠퇴]
주제2: [아브넬의 죽음]
시라 우물 - 이곳이 어디인지에 대하여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 이곳은 헤브론 북방 약 4km 지점으로, 거기에는 대상(隊商)들을 위한 숙박 시설이 있었다는 견해이다(Josephus). (2) 헤브론 서북방, 곧 예루살렘 방면으로 2. 4km 지점에 위치한 오늘날의 '아인 사라'(Ain Sarah) 저수지라는 견해이다(R. Young). 이 두 견해 중 어느 것이 보다 정확한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어쨌든 간에 아브넬은 뜨거운 사막의 열기를 피하여 이곳에서 쉬면서, 행군하기에 알맞은 서늘한 저녁때를 기다리다가 요압이 보낸 사자들을 만나게 되었을 것이다(Pulpit Commentary).
저를 데리고 돌아왔으나 - 요압이 다윗의 이름을 이용하여 아브넬을 데리고 왔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왜냐하면 아브넬은 일전에 요압의 아우 아사헬을 죽인 연고로 요압을 경계했을 것이다(2:22, 23). 그리하여 요압이 자신의 이름으로 그를 불렀을 경우 아브넬은 틀림없이 응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요압은 다윗이 미처 아브넬에게 못다 한 말이 있는 것처럼 꾸며서 별다른 의심을 사지 않고 아브넬을 헤브론으로 소환했을 것이다(Keil & Delitzsch , Lange, Pulpit Commentary).
성 경: [삼하3:27] 바야샤브 아브네르 헤브론 바야테후 요아브 엘 토크 하샤아르 리다베르 이토 바셸리 바야케후 샴 하호메쉬 바야마트 비담 아사 엘 아히브
주제1: [다윗가의 흥왕과 사울가의 쇠퇴]
주제2: [아브넬의 죽음]
종용히 말하려는 듯이 - '종용히'에 해당하는 원어 '바쉐리'는 '개인적으로'라는 뜻이다. 즉 이는 요압이 마치 아브넬에게 개인적으로 은밀히 얘기할 것이 있는 것처럼 꾸며 그를 유도한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는 요압이 마땅히 비난받아야 할 행동이다. 왜냐하면 그가 진정 자기의 동생 아사헬의 복수를 하려 했다면 좀 더 당당히 아브넬과 맞서야 했기 때문이다(Matthew Henry's Commentary, Vol. II, p. 462).
성문으로 들어가서 - 당시 '성문'은 공공 행사를 위항 모임의 장소였을 뿐 아니라 사교(社交)의 장(場)이기도 하였다. 창 19:1 주석 참조. 따라서 그곳은 항상 많은 사람들로 붐볐으니 요압이 아브넬은 은밀히 처리하기에는 부적당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혹자는 여기서 가리키는 '성문'이란 '성문 근처의 한적한 곳'을 의미하는 것으로 추측하기도 한다. 70인 역(LXX)이 바로 이 같은 견해를 취하고 있는데, 그에 따라 공동 번역 역시 '성문 한 옆'으로 번역하고 있다(Wycliffe).
이는 자기의 동생 아사헬의 피를 인함이더라 - 본절은 아브넬의 죽음이 요압의 복수였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일전에 아브넬이 아사헬을 죽인 것은 수차례의 경고 후에 어쩔 수 없이 정당방위로 행한 것이었다(2:21-23). 따라서 이는 피의 복수가 될 수 없다(민 35:22-25). 그런데도 요압이 아브넬을 죽였으니 이에는 다른 까닭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것은 곧 아브넬이 이스라엘의 총사령관이자 실력자로(6절) 다윗의 신임까지 받고 있었던 터라(20절), 자신의 지위를 아브넬에게 빼앗길까 봐 우려했기 때문이다(Keil & Delitzsch, Lange, Matthew Henry, Wycliffe, Pulpit Commentary). 요압의 이와 같은 악의에 찬 욕망은 다시 아마사를 살해하는 일로 나타난다(20:11).
성 경: [삼하3:28] 바이쉬마 다비드 메아하레 켄 바요메르 나키 아노키 우마밀라키티 메임 아도나이 아드 올람 미디메 아브네르 벤 네르
주제1: [다윗가의 흥왕과 사울가의 쇠퇴]
주제2: [아브넬의 죽음]
그 후에 다윗이 듣고 - '다윗은 알지 못하였더라'(26절)는 말과 대구(對句)를 이루는 구절로, 아브넬의 죽음에 다윗이 전혀 무관함을 시사해 준다(Lange).
나와 내 나라는... 무죄하니 - 요압이 아브넬을 죽인 것은 공적(公的)인 일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사사로운 감정과 이기심에 의거한 사적(私的)인 일이었다. 따라서 이에 대한 책임은 이스라엘 공동체에 돌릴 수 없고 오직 요압에게만 돌아가야 할 뿐이라는 강조적 의미이다.
성 경: [삼하3:29] 야힐루 알 로쉬 요아브 비엘 콜 베이트 아비브 비알 이카레트 미베이트 요아브 자브 우미초라 우마하지크 바펠레크 비노펠 바헤레브 바하사르 라헴
주제1: [다윗가의 흥왕과 사울가의 쇠퇴]
주제2: [아브넬의 죽음]
그 죄가... 돌아갈지어다 - 다윗이 자신의 신복인 요압을 이토록 저주한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분명 요압이 저지른 죄 때문이었는데, 그 죄의 내역을 우리는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1) 요압의 행위는 정당한 복수(復讐)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아사헬의 죽음에 대한 책임은 아브넬보다 아사헬 자신에게 있었기 때문이다(2:21, 22). (2) 아무리 정당한 복수라 할지라도 복수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레 19:18;눅 6:27;롬 12:20).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압은 자신의 감정에 따라 복수했던 것이다. (3) 요압은 이 일과 관련하여 왕인 다윗과 전혀 의논을 하지 않았다. 이는 곧 국정(國政)의 최고 책임자인 다윗을 무시한 처사로서, 일종의 반역 행위가 아닐 수 없다. (4) 무엇보다도 요압은 다윗을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시려는 하나님의 계획(5:1-5;삼상 16:28, 29)을 얼마만큼 지연시켰다. 즉 그는 하나님의 뜻은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일만 생각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상과 같은 죄의 내역으로 보아 다윗이 자신의 신하 요압을 저주한 것은 지나친 처사가 아니라 아주 공의로운 처사였음을 알 수 있다.
백탁병자 - 이에 해당하는 '조브'는 '흐르다', '유출하다'는 뜻의 '주브'에서 파생된 말이다. 따라서 이는 레위기 15장에 기록된 유출병(流出炳)을 의미하는 듯한데, 그 증세는 임질(淋疾)과 비슷한 것으로 추정된다.
문둥병자 - 이에 해당하는 '차라'는 비단 문둥병뿐 아니라 각종 피부병에 걸린 자까지 의미하는 단어이다. 이와 관련하여서는 레위기 14:10-20 강해, '문둥병에 대하여'를 참조하라.
지팡이를 의지하는 자 - '목발을 의지하는 자'또는 '막대기를 짚는 자'(NIV) 란 뜻이다. 이에는 절름발이나 소경이 해당된다(Lange).
성 경: [삼하3:30] 비요아브 바아비샤 아히브 하리구 리아브네르 알 아쎄르 헤미트 에트 아사헬 아히헴 비기브온 베밀하마
주제1: [다윗가의 흥왕과 사울가의 쇠퇴]
주제2: [아브넬의 죽음]
요압과 그 동생 아비새가... 죽인 것은 - 아브넬 살해 사건에 어떤 식으로든 아비새도 관계했음을 보여 주는 구절이다. 추측건대 요압은 사전(事前)에 아비새와 공모하여 아브넬을 유인, 살해하였을는지도 모른다(Pulpit Commentary).
[사무엘하 24장 강해설교말씀] 다윗의 인구조사의 죄(삼하 24: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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