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히브리어성경

[신약 히브리어 성경 사도행전강해]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남(행 1:1-5)

베들레헴 2021. 11. 19. 13:28
반응형

사도행전 1장에서 누가는 데오빌로에게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고난 받으신 후에 십자가에서 죽고 삼일 만에 살아나셨습니다.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사십일 동안 보이시고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했습니다. 성령이 임하여 세례를 베풀어 주신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성령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성령 세례를 받을 때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남(행 1:1-5)

 

• 1:1-2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의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그의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데오빌로 본서는 데오빌로에게 보내는 것으로 되어 있다. 누가 복음은 “데오빌로 각하”에게 보낸다고 하였다. “각하”라는 칭호를 보면 데오빌로가 어떤 개인의 이름이며, 그가 높은 관직에 있었던 것 같다(총독 이상을 각하라 하였다고 함). 그러므로 누가가 데오빌로에게 누가복음을 먼저 써 보내었고 두 번째로 사도행전을 써 보낸 것이다.

먼저 쓴 글 이것은 누가복음을 말한다. 누가복음은 예수님이 행하시며 복음 전파하신 것을 처음부터 승천하실 때까지 기록한 것이다.

• 1:3  해 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사십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해 받으신 후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다음이라는 뜻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친히 부활하신 몸을 많은 사람에게 나타내 보여 주셨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승천하실 때까지 사십일 동안 많은 증거로 자신이 부활하신 것을 나타내 보여 주셨고, 하늘나라에 대하여 증거 하셨다.

• 1:4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부활하신 예수님이 사도들과 함께 감람산에 가셔서 저희에게 분부하셨다. 그것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는 것이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제자들이 예루살렘을 떠나면 안 된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거기에서 기도하라고 하셨다. 이때에는 아무 곳에서나 기도하면 안 되고 예루살렘에서 기도하여야만 아버지의 약속하신 성령을 받을 수 있다.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은 성령이다(요 15:26, 16:7, 14:16, 눅24:49 참조).

[에스겔 원어성경 말씀] 예루살렘에 닥칠 기근에 대한 상징(겔 4:9-17)

그 당시는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전이므로 보혜사 성령이 오시지 않았었다. 보혜사 성령은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신 다음 첫번 오순절 날에 강림하셨다. 지금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도 보혜사 성령이시다. 오순절 성령 강림 전에도 성령님이 세상에 계셨다.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말씀하셨고,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할 때에도 성령으로 한 것이다. 마리아에게 성령이 충만하였고(눅1:34-35), 세례요한(마3:1-12), 엘리사벳(눅1:41), 사가랴(눅1:67), 시므온(눅2:27), 안나(눅2:38)와 같은 사람에게도 성령이 함께 하였다. 그러나 오순절에 강림하신 성령은 보혜사 성령인데 대언자의 직책을 가지고 오신 것이다. 제자들이 예루살렘을 떠나서 기도하면 주의 명령을 어기는 것이므로 보혜사 성령을 받지 못한다.  예수님이 왜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셨는가?

① 복음이 예루살렘으로부터 땅 끝까지 전파되어야 할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가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기 위하여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아야 한다. 누가 24:47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라고 하였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와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것이다.

②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기도를 하여야 간절한 기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도할 때에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여야 한다.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으면 간절한 기도를 아니할래야 아니할 수 없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잡아죽인 무리들이 예루살렘에 다 있고 그들이 예수 믿는 사람들도 잡아 죽이려고 하였다.

그러므로 제자들이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으면 간절한 기도를 하게 되어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간절한 기도를 하라고 하여도 하지 않기 때문에 죽느냐 사느냐 하는 위급한 환경에 빠뜨려서 간절한 기도를 하게 하신 것이다. 성령의 역사가 아니면 죽게 되고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살 수 없는 환경에 빠뜨려 놓아야만 간절한 기도를 하게 된다.  기도하지 않던 사람도 이러한 환경 속에 빠뜨려 놓으면 결사적으로 기도를 하게 된다.  

평소에 새벽기도를 하지 않던 사람도 어떤 위급한 일이 생기면 간절히 기도하게 된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 간절한 마음으로 참된 기도를 하라는 것이다.

③ 하나님의 능력을 간절히 사모하게 하려는 것이다. 당시 예루살렘에서는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면 환난을 이길 수 없으므로 하나님의 능력을 간절히 사모하게 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였다.

④ 하나님께 생명을 바쳐 놓고 헌신하는 생활을 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생활을 하려면 생명을 하나님께 바쳐 놓고 헌신 봉사하는 생활을 하여야 한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기도를 할 때에는 그 생명을 하나님께 바쳐 놓고 기도하게 되고 앞으로도 하나님께 생명을 바쳐서 봉사할 수 있게 된다.

◉ 당시 예루살렘의 상황은 어떠한 상황이었나?

㉠ 예루살렘은 사단의 위가 득세한 곳이다. 마귀의 세력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곳이다.

㉡ 예루살렘은 어두움의 세계요, 빛이 없는 세계이었다. 요한 11:9-10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하느니라”라고 하였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잡히실 때부터 어두움의 권세가 시작이 되어 이때까지 계속되었다.

㉢ 예수 믿는 자를 잡아죽이려고 하는 곳이다. 예수님을 잡아 죽였을 뿐 아니라 예수 믿는 사람도 잡아 죽이려고 하는 곳이다. 그러므로 제자들이 숨어서 나타나지 못하고 있는 때였다. 한마디로 말하면 예루살렘은 기독교 박멸 운동이 한창 전개되고 있는 곳이었다. 그러므로 제자들이 문을 닫고 숨어 있는 그때에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는다는 것은 보통 신앙으로는 할 수 없는 것이다.

◉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는 목적

㉠ 생명을 내어놓고 말씀을 지키게 하기 위하여서이다. 생명을 내어놓아야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말씀을 지킬 수 있고, 내어놓지 않으면 말씀을 지킬 수 없는 곳이다.  예수님께서도 생명을 내어놓고 죽기까지 하나님께 복종하셨다(빌2:8참조). 바울도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환난과 결박이 기다리고 있는 줄 알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죽을 것을 각오하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행21:13 참조). 그러나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르고 다시스로 가다가 고기 뱃속에까지 들어갔다.  하나님의 명령은 니느웨로 가라고 하였으나 요나가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르고 다시스로 가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것이다.

성도가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리고 나가면 요나와 같이 풍파가 일어나고, 모든 사람 앞에 부끄러움을 당하며 마지막에는 환난의 바다에 빠져 징계의 채찍을 맞게 된다. 누구나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면 사망이요, 그 말씀을 귀히 여겨 순종하면 생명을 얻는다.

[요한계시록 2장 헬라어성경] 두아디라 교회에 보내는 편지(계 2:18-29)

그러므로 말씀을 생명과 바꾸어 가질 수 있는지 시험하여 능력을 주기 위하여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육신의 생명보다 말씀을 더 귀히 여기고 그 말씀을 떠나지 않는 자가 참된 하나님의 사람이다.  이것을 가르쳐 주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시험과 환난을 성도에게 허락하신다(신13:1-3, 8:2-3 참조). 성도가 평안할 때는 잘 믿는 것 같고 성경 말씀을 잘 지키는 것 같으나 어려운 환경에 처하면 성경 말씀을 헌신짝처럼 내어버리는 사람이 많이 있다. 제자들이 시험을 치러서 생명보다 말씀을 더 귀히 여기고 말씀을 떠나지 않으면 제자의 자격이 있고 예수님의 증인의 자격이 있다. 그 자격을 만들려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 하나님의 능력을 생명보다 귀히 여기는 자로 만들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을 자기의 생명보다 귀히 여겨야 한다.  성도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않아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은혜 받지 못하고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지 아니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과 능력이 생명이므로 능력의 사람이 되도록 힘은 써야 한다. 제자들이 예루살렘에 있어야 그 능력을 사모하게 되고 그 능력을 생명보다 더 귀히 여기는 자리에 들어갈 수 있다.  바울은 살전 1:5에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라고 하였다. 복음을 말로만 전해도 안되고 말로만 믿어도 안 된다.

능력과 성령으로 전하여야 한다. 교역자들이 하나님 앞에 은혜를  받아서 영적 생명의 역사로 복음을 전해야 한다.  교역자가 설교집이나 사다 보고 말로만 전하면 교인들의 영혼이 살지 못한다. 능력과 성령(영권)이 아니면 교인들의 생명을 살려내지 못한다. 바울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과 능력으로 전하여 줄 때에 성도들의 영혼이 힘을 얻어 일어선다. 예배드릴 때에 교역자를 통하여 나오는 능력이 신자들의 영혼을 움직여 영이 새 힘을 얻어 야 한다. 이러한 교역자가 되려면 기도를 많이 하고 영권이 입혀지기를 사모하여야 한다. 영권은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많은 기도와 해산하는 수고를 하여 많은 시련과 인내를 이루어 나가야 조금씩 얻어지는 것이다.

㉢ 생명을 내어놓고 사명을 수행하게 하려는 것이다. 생명이 위험한 곳에서는 자기 생명을 내어놓고 하나님의 말씀만 붙들고 나아가야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해 나갈 수 있다. 자기 생명보다 하나님의 사명을 귀히 여기면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을 것이고, 자기 생명을 더 귀중히 여기면 예루살렘을 떠날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 생명보다 하나님의 사명을 더 중히 여겨 생명을 내어놓고 나가는 훈련을 받게 한 것이다.

㉣ 자기 위치를 떠나지 않고 지키게 하기 위해서이다.  성도는 하나님께서 세워 놓은 각자 자기의 위치가 있다. 그러므로 자기의 위치에서 생명을 내어놓고 자기 자리를 지켜야 한다. “예루살렘에 있으라”고 하면 예루살렘에 있어야 하고 “감옥에 있으라”라고 하면 감옥에 있어야 한다. 성도가 자기의 위치를 떠나면 안 된다.  천사가 자기의 위치를 떠났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쫓겨나 마귀가 된 것이다. 천사로서의 위치가 따로 있는데 교만하여져서 자기 위치보다 더 올라가려고 하다가 하나님께 벌을 받았다(유 1:6 참조). 교인은 교인의 자리를 지켜야 되고, 집사나 장로들은 집사나 장로의 위치를 지켜야 한다. 전도사는 전도사의 위치를 지키고, 목사는 목사의 위치를 지켜야 한다. 목사라고 다 같은 것이 아니며 선후배의 위치가 있다. 가정에서도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위치가 있고, 아들과 손자의 위치가 다르다. 아무리 어렵고 힘이 들어도 자기 위치를 떠나지 말아야 한다. 십자가가 오고 고난이 와도 하나님이 세워 놓은 자기 위치에서 탈선하면 안 된다. 

자기 위치보다 넘어가지도 말고 뒤로 물러서지도 말아야 한다. 자기에게 유리할 때에는 자기 위치를 지키다가 자기에게 불리하면 그 자리를 떠나는 것은 절도요 강도들이다. 제자들이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자기 자리를 지키려면 환난을 겪고 자기 생명까지 내어놓을 각오를 해야 한다. 예수님이 승천한 후 첫 번 오순절 날 보혜사 성령이 오셨고, 그 성령이 신약 교회 시대에 계속 역사하여 우리를 믿게 하시고 우리 속에 내주 하여 계시고 계속하여 감동을 시키고 계신다.  그런데 성도가 성령의 능력을 입지 못하는 것은 예루살렘을 떠나고, 또 하나님의 능력이 입혀지기를 끝까지 기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성령이 오시지 않아서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다. 보혜사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신다(고전 3:16, 빌 2:13 참조).  요한일서 2:27에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라고 하였다.

성령은 우리 안에 계셔서 우리를 떠나지 아니하시고 계속하여 감동을 시키고 또 탄식하면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신다(롬8:26 참조). 열광적으로 손뼉을 치고 육신의 감정을 흥분시켜 얻는 감동은 외부적인 감동이며 감정적인 것이다. 참으로 하나님의 능력이 입혀지는 것은 영혼이 자라나서 거기에서 역사하는 능력이다.  참된 능력은 영혼이 자라나면서 입혀지고, 능력이 입혀지면서 영혼이 자라나는 것이다.

• 1: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① 위로부터 능력이 입혀지는 것을 가리킨다(눅24:49 참조).

② 세례는 정결케 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말씀대로 성화를 이루어 나가는 운동 즉 하나님의 말씀대로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것을 말한다. 성도가 말씀대로 점점 깨끗하여져 나가는 운동이 성령의 세례이다. 성령께서 말씀을 가지시고 우리를 깨끗하고 정결하게 만들어 나가는 일이 곧 성령의 세례이다.

③ 성령의 인도와 주장을 받아 점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나가는 일이다. 성도는 성령의 능력으로 정결함을 입어 나가야 한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면 성령의 인도와 주장을 받아 성령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신약 히브리어 성경 강해 요한복음]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요 1:1-8)

 

[신약 히브리어 성경 강해 요한복음]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요 1:1-8)

요한복음 1장에서 요한은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는데 이 말씀은 하나님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하나님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bethlehem123.tistory.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