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2장에서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신 것에 대해서 말씀한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음으로 인하여 죄인과 하나님 사이에 막힌 담을 허물어 주셨다. 구원받은 백성은 하나님과 연합하게 되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가서 의인이라 칭함을 받아야 한다.
십자가로 화평하게 하신 예수님(엡 2:11-18)
성 경: [엡2:11] 디오 므네모뉴에테 호티 휘메이스 포테 타 에드네 엔 사르키 호이 레고메노이 아크로뷔스티아 휘포 테스 레고메네스 페리토메스 엔 사르키 케이로포이에투
그러므로 생각하라 - '그러므로'는 본절을 1-10절의 내용과 연결시켜 주는 것으로 그리스도인이 되기 이전의 상태와 그리스도인이 된 이후의 상태를 대조시키고 있다.
너희는 그때에 육체로 이방인이요 - 본절은 유대인의 관점에서 진술한 것이다. '육체'에 대해서 혹자는 신체적인 혈통과 중생하지 못한 상태를 가리키는 이중적인 의미로 해석한다(Bruce). 그러나 본절의 '육체'는 신체적 혈통이나 출생을 가리키는 것으로 에베소 교인들이 과거에 유대인이 아니었음을 나타낸다(Mitton). '이방인'에 해당하는 헬라어 '타 에드네'에서 관사 '타'는 경멸과 무시 조의 어투로 그들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특권을 소유하지 못한 자임을 시사한다(Wood, Foulkes).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당이라 칭하는 자들에게 무 할례당이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 '할례'는 하나님께 속한 백성임을 나타내는 표식이다(창 17:8-14). 유대인들은 이방인이 하나님에게 소속되지 못하고 버림을 받은 백성이라는 의미에서 그들을 '무 할례당'이라고 불렀으며 반면에 그들 스스로는 하나님의 백성임을 자처하면서 '할례당'이라고 불렀다. 본절의 '할례당이라 칭하는 자들'의 헬라어 '테스 레고 메네스 페리토메스'는 문자적으로 '소위 할례당이라 불리는 자'라는 의미이다. 이는 바울이 이방인을 무 할례당이라고 무시한 유대인들의 태도에 찬성하지 않음을 암시한다(Mitton, Wood). 진정한 의미의 할례는 외적 표식이 아니라 마음의 할례이다(빌 3:2; 골 2:11).
성 경: [엡2:12] 호티 에테 엔 토 카이로 에케이노 코리스 크리스투 아펠로트리오메노이 테스 폴리테이아스 투 이스라엘 카이 크세노이 톤 디아데콘 테스 에팡겔리아스 엘피다 메 에콘테스 카이 아데오이 엔 토 코스모
그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 '그 때에'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알지 못했던 때를 가리킨다(Mitton, Foulkes).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는 그리스도인이 되지 못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에베소 교인들이 이스라엘로부터 분리되었다는 의미이다. 본문의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의 메시아를 의미하기 때문이다(Lincoln, Mitton, Foulkes, Wood).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 이방인은 국가적 출생의 차이로 인해 하나님의 선민으로서의 특권(特權)을 갖지 못하였다(롬 9:4, 5).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 '언약들'에 해당하는 헬라어 '톤 디아테콘'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창 15:7-21;17:1-21), 야곱(창 28:13-15), 이스라엘(출 24:1-8), 다윗(삼하 7장)에게 하신 언약들을 가리킨다(Foulkes, Lincoln). 이 언약들은 하나님과 이스라엘과의 특별한 관계를 나타낸다(Mitton).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 '하나님도 없는'의 헬라어 '아데오이'는 이방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참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는 의미이다(Foulkes, Wood, Lincoln).
성 경: [엡2:13] 뉘니 데 엔 크리스토 이에수 휘메이스 호이 포테 온테스 마크란 엘뤼스 에게네데테 엔 토 하이마티 투 크리스투
개역성경에는 '데'('그러나')가 생략되어 있다. 이것은 앞서 언급한 이방인의 이전 상태가 현재 반전(反轉)되었음을 시사한다.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느니라 - '멀리 있던'과 '가까와졌느니라'의 원어는 구약에서 이방 국가들이 하나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묘사하는 '라호크'(신 28:49;29:22; 왕상 8:41;사 5:26; 렘 5:15)와 이스라엘이 하나님에게 가까운 것을 묘사하는 '카로브'(시 148:14)에서 유래한다. 과거에 이방인들은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있는 상태였으나 이제는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는 존재가 되었다(Lincoln, Wood). 이방인의 상태에 대한 이런 반전은 '그리스도의 피'에 의해 이루어졌다(히 10:19-22). '그리스도의 피'는 하나님과 화해를 이루는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희생의 피다(1:7; 롬 5:10; 골 1:20-22). 그리스도의 피로 이방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된 상태에서 화해된 상태로 바뀐 것은 구약에서 유대교로의 개종으로 인해 생긴 반전과는 전혀 다르다. 이방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새롭게 창조된 공동체의 일원이 됨으로써, 이스라엘이 누리던 것보다 더 큰 특권(特權)을 소유하게 되었기 때문이다(Lincoln).
성 경: [엡2:14] 아우토스 가르 에스틴 헤 에이레네 헤몬 호 포이에사스 타 암포테라 헨 카이 토 메소토이콘 투 프라그무 뤼사스 텐 에크드란 엔 테 사르키 아우투
개역성경에는 '가르'('왜냐하면')가 생략되어 있다. '가르'는 본절이 이방인의 지위의 반전에 대한 이유임을 시사한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 '화평'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이레네'는 구약의 '샬롬'('평화')에서 유래한다. '샬롬'은 전쟁이나 적대 감정의 부재뿐만 아니라 인간 삶의 총체적인 행복과 평안을 의미한다. 그러나 본절의 '화평'은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적대 감정의 중지를 의미한다(Lincoln). 그리스도께서는 화평의 왕으로서 십자가의 구속 사역을 담당하셔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하나로 만드셨다(Mitton).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 '중간에 막힌 담'에 대해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 혹자는 예루살렘 성전의 성소와 이방인의 뜰(Court of Gentiles) 사이를 분리하는 성전 난간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Robinson, Hanson, Abbott, Houlden, Mitton, Foulkes, Bruce). (2) 혹자는 율법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Gnilka, Caird, Martin). 바울은 본 구절을 기록할 때 첫 번째 견해를 염두에 두었을 것이며, 또한 유대인의 성소와 이방인의 뜰 사이에 막힌 담은 영적으로 율법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첫 번째 견해와 두 번째 견해는 모두 본절의 역사적이며, 영적인 의미를 적절하게 밝히고 있다.
성 경: [엡2:15] 톤 노몬 톤 엔톨론 엔 도그마신 카타르게사스 히나 투스 뒤오 크티세 엔 헤아우토 에이스 헤나 카이논 안드로폰 포이온 에이레넨
원수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 '의문(儀文)에 속한 계명의 율법'은 '원수된 것'을 수식하는 것으로 (Foulkes, Bruce) 십계명과 같은 커다란 계명과 수많은 세세한 규정들로 구성된 모세 율법을 의미한다(Wood, Mitton). 그리스도는 자기 육체 즉 십자가의 대속적 죽음으로 '율법'을 폐하셨으며(롬 7:4; 갈 3:13). 율법에 의해서 지배를 받던 옛 질서를 폐하셨다. 그러나 율법을 폐지하셨다는 것은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구성된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이 율법을 지켜야 하는 의무에서 벗어났다는 의미이지(롬 7:6) 율법을 없애버렸다는 뜻이 아니다(Bruce, Lincoln). 도리어 믿음은 율법을 굳게 세운다(롬 3:31-4:25). 왜냐하면 율법을 행함으로 이신 득의의 복음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 본절의 '히나'('...하기 위하여')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대속적 죽음으로 율법을 폐지하신 목적을 명시한다. 그 목적은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있었던 벽을 허물어 화평하게 만드는(14절) 새 창조이다. '새 창조'로 이루어진 공동체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연합하여 만들어진 전혀 다른 새로운 그리스도인 공동체이다(Bruce, Lincoln, Foulkes).
성 경: [엡2:16] 카이 아포카탈락세 투스 암포테루스 엔 헤니 소마티 토 데오 디아 투 스타우루 아포크테이나스 텐 에크드란 엔 아우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 바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적 희생이 목적하는 바는 죄로 인해 생긴 원수된 것을 제거(除去)하고 궁극적으로 하나님과의 화목을 이루는 것이라고 진술한다(롬 5:10; 고후 5:18-20; 골 1:20). 그러나 그것은 유대인이나 이방인 각각이 하나님과 이루는 화목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새 창조로 이룬 한 인류,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는 것이다. 여기서 '한 몸'은 '교회'를 의미한다(4:4; 골 1:18, Meyer, Mitton, Gnilka, Merklein, Lincoln, Wood).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몸의 각 지체로 이루어진 유기체이다(고전 10:17;12:13; 골 3:15).
성 경: [엡2:17] 카이 엘돈 유엥겔리사토 에이레넨 휘민 토이스 마크란 카이 토이스 엥귀스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 '먼 데'와 '가까운 데'는 13절의 '멀리 있던'과 '가까워졌느니라'와 상관성을 갖는 것으로 본절은 70인 역의 사 52:7과 57:19를 인용한 것이다.
바울은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그리스도의 평화가 유대인과 이방인 각각의 그룹에 선포(宣布)됨을 강조하고 있다(Foulkes, Lincoln). 이러한 그리스도의 평안에 대한 선포는 '하나님과 각 그룹 간의 화해'를 전제로 한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화해'를 시사한다(Lincoln). 한편 그리스도께서 '언제 전하셨는가'에 대한 견해는 세 가지이다. (1) 혹자는 그리스도께서 공생애동안 계속적으로 전한 선포라고 주장한다. (2) 혹자는 사도들을 통해 전해진 예수의 선포라고 주장한다(Abbott, Gnilka, Caird, Wood). (3) 혹자는 화해의 죽음인 십자가 사건의 성취를 통해서 선포하셨다고 주장한다(Lincoln). 세 가지 견해 중 둘째와 셋째 견해가 타당하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대속적 죽음을 통해서 멀리 있던 이방인들과 가까이 있던 유대인들에게 화평의 복음을 선포하셨으며 동시에 사도와 교회를 통해서 현재도 계속적으로 화평의 복음을 선포하신다(행 10:36; 고후 5:18-20, Foulkes).
성 경: [엡2:18] 호티 디 아우투 에코멘 텐 프로사고겐 호이 암포테로이 엔 헤니 프뉴마티 프로스 톤 파테라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 '나아감'의 헬라어 '프로사고겐'은 구약에서 종교적이고 제의적인 표현으로 70인 역에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위해 제사드리는 경우에 사용되었다(레 1:3;3:3;4:14).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문이요 길이신 그리스도를 통해서(요 10:7, 9; 14:6) 이방인과 유대인을 구별하였던 옛 범주(範疇)는 폐지되었으며 그 결과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이 모두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한편 '한 성령 안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성령 안에서 아버지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를 맺으며 살아감을 나타낸다(롬 8:15, 16; 갈 4:6, Lincoln).
[예레미야 히브리어 성경 강해] 신실하지 못한 유다 백성에게 내릴 심판(렘 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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