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하나님 말씀

[새해 신년 예배 설교말씀] 마음에 변화를 받아(롬 12:1-2)

베들레헴 2022. 12. 31.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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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2장에서는 우리가 거룩한 몸이 되어 하나님께 거룩한 산 제물로 예배를 드려야 할 것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드릴 영적 예배라고 했습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고 하나님이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새해를 맞이해서 마음을 새롭게 변화받아 하나님이 원하는 삶을 올 한 해 살아야 하겠습니다.

 

마음에 변화를 받아(롬 12:1-2)


한 해의 문이 닫히고 이제 새로운 새해의 문이 열렸습니다. 이 시간에 어떤 사람들은 나름대로 의미를 갖고자 하여 해돋이 여행을 하거나 파티를 열고 어떤 사람들은 보신각 타종을 보기 위해 나가 있고 어떤 사람들은 TV를 보거나 잠에 빠진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이 첫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면서 새로운 새하를 시작하니 매우 의미가 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의미 있고 귀한 것은 ‘처음 것’입니다. 시간적으로 열매로 생명 그 자체도 처음 것을 하나님께 드릴 때 그것은 향기로운 제물이 됩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새해 첫 시간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은 의미가 깊은 것입니다.

1. 이 처음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면서 동시에 하나님 앞에서 내 온 인격을 드리기를 원할 때 우선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먼저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새해 들면서 우리가 꼭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마음을 먼저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의 그릇을 준비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을 그릇 그것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어떠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서야 하나님께서 은혜와 복을 거기에 담아주시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 새해 첫 시간에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회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2절)라고 했습니다.

‘본받는다는 말씀은 헬라어 (쉬스케마티조)는 ‘비슷하게 모양 짓다, 같은 모양이 되게 하다, ~에 따라 자신을 맞추다’라는 뜻으로 세상 풍조를 따라가는 것을 말하고 ‘새롭게 함’ 아나카이노시스는 ‘혁신, 갱신’을 말하며, ‘변화를 받으라’라는 말씀은 메타모르푸스데 헬라어는 ‘변형하다, 변화하다, 형상을 바꾸다의 수동 2인칭 복수명령형입니다. 명령법을 사용했으니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할 것을 말씀합니다.

로마서 12장의 말씀은 11장까지 교리에 대한 말씀을 마치고 이제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사람들이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데 대한 말씀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 첫 번째로 마음의 변화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하여 믿는 과정에서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삶에 있어서 그 시작이 마음의 변화로부터 시작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은 우리의 전 인격 즉 지성과 감정, 의지의 자리입니다. 마음은 우리로 하여금 분별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합니다. 그리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하는 일련의 모든 감정적인 요소도 마음에서 이루어집니다. 의지적 결단 또한 마음에서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일반적으로 우리가 아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이 마음을 더욱 중요하게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먼저 마음은 하나님을 보는 눈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라고 하셨니다. 여기서 ‘본다’는 말씀은 헬라어로 옵타노마이 입니다. ‘응시하다’의 뜻으로 크게 뜬 눈으로 유심히 관찰하는 것을 의미하여 단순히 눈에 뜨이니까 본다는 헬라어 블레포나 기계적이고 수동적이거나 우연한 응시를 표현하는 헬라어 에이도와도 다릅니다. 마음이 청결할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뚫어지도록 바라보고 구원에 필요한 그분의 뜻을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볼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형상을 볼 수 없기에 우리가 그분을 볼 수 있는 것은 믿음의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또한 그분의 본체의 형상이시요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봅니다. 그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눈이 마음의 믿음의 눈인 것입니다. 마음으로 믿고 그 믿음으로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은 하나님을 보는 눈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보는 눈인 마음이 청결해야 합니다 깨끗하고 맑아야 합니다. 그리고 역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보십니다. 곧 중심을 보십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보시는 기준에 대해서 그것이 마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무엘상 16:7에서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여기서 말씀하는 중심인 히브리어 단어인 레바브는 ‘심장,  마음, 영혼, 정신, 기분, 의식, 심정, 성정, 감정, 진정, 사고방식, 행동양식, 의도, 분별력’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통하여 우리가 생각하는 의도까지 아십니다.(대상 28: 9). 사람은 의식, 형식, 외적인 요소 등을 매우 중시합니다. 외적으로 좋으면 잘했다. 좋다’라고 평가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그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중심, 내용이 없는 껍데기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용, 중심이 있고서야 의식과 형식이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내적인 것이 먼저 있어야 그것을 담을 외적인 것을 준비하는 것이 의미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먼저입니다. 우리의 마음, 중심은 어떠할까요? 역대상 29:17에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마음을 감찰하시고 정직을 기뻐하시는 줄을 내가 아나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이 중요합니다.

또한 마음은 사람을 새롭게 하는 근본입니다. 사람의 변화는 여기서 옵니다. 사람의 변화는 마음의 변화에서 이루어집니다. 외적인 변화에서 사람이 변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외적인 변화가 있으면 조금은 달라질 수는 있습니다. 또한 환경의 변화에 따라 사람의 마음이 다소 달라지기도 합니다. 불평하고 불만스럽던 마음이 환경의 변화로 가라앉고 잠시 기쁨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일시적입니다. 근본적인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가 시작될 때면 흔히들 좋은 글귀들을 생각하여 책상머리에 써붙이기도 합니다. 그 정신으로 한 해를 꾸준히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그러한 마음은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의 의식 가운데서 희미해지면서 환경과 현실이라는 굴레 안에서 둔해지게 되고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또다시 우리는 언제나 다름없는 옛 모습으로 되돌아가 한 해를 마무리할 때쯤이면 후회, 또 후회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대로 정신이 든 사람이라면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얼마나 많은 후회와 아쉬움 가운데 괴로워하는지 모릅니다. 사실 우리 모두 계획이 있었고 꿈꾸던 것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과 몸이 피로하게 되고 환경과 현실이라는 사실 앞에서 처음의 계획 그 신념과 각오를 빼앗기고 그것이 잊히고 사라진 것을 발견하면서 너무나도 놀라고 아쉬워합니다.

혹 그렇지 않은 분이 계시다면 정말로 큰 복입니다. 계획과 뜻을 다 이루고 좋은 열매를 거두었다면 그것은 큰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많은 아쉬움과 후회가 남는 것은 분명 우리가 잘못한 것이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이제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우리의 마음이 항상 새로워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느 쪽으로 항상 새로워져야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크게 두 가지의 방법이 있습니다. 먼저 마음이 변화하는 것, 새로워지는 것은 도대체 어떠한 것입니까? “마음의 변화”의 방향을 살펴보면 이런 것이 있습니다.

첫 번째, 그 변화는 ‘성숙’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변화라는 말은 원래는 외모의 변화를 말합니다. 사람의 외모는 시간이 지나면서 변합니다. 자라면서 변하고 나이 들면서 변하고 변화됩니다. 그런데 그 변화만큼 성숙되어 갑니다. 또 성숙되어 가야 정상입니다. 이와 같은 것을 영적인 변화, 영적인 성숙에 적용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성숙을 이루는 것이 변화의 한 방향입니다. 그러면서 앞을 바라보면서 새로운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 더 성숙해 가는 것입니다.

세상의 변화에 띠라 사람의 생각도 달라집니다. 가치관도 달라집니다. 방법도 덩달아 달라집니다. 이와 같이 영적인 면에서도 내면세계가 풍성하게 변화하면서 마음도 따라서 달라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변질이 아닙니다. 그것은 좋은 방향으로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특별히 신앙적으로 더 깊이 깨닫게 되고 체험을 하게 되면 마음도 더욱 달라집니다. 우리 안에 있던 옛 마음이 아니라 참신한 마음으로 변화해 가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변화의 방향에는 낡아지고 부패한 마음이 자꾸만 원래의 좋은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세상풍조를 따라 흘러가던 마음의 물줄기를 시초의 좋은 마음으로 수시로 바꾸어 놓는 것입니다.

이것 역시 나쁜 쪽으로 둥둥 떠서 흘러가던 마음의 방향에서 보면 방향을 원래 대로 돌려놓는 변화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잘못되면 자꾸 변질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처음에 신선한 마음에서 변질되고, 좋은 의도가 자꾸만 잊혀진다는 데에 문제가 있습니다. 이것은 현실에 너무 빠져들기 때문입니다. 현실을 전혀 무시할 수는 없지만 환경과 여건을 너무 의식하다 보니 가야 할 방향을 놓치고 주저앉게 되거나 변질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초심, 곧 처음의 마음을 잃어버리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 중 에베소 교회가 그랬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인내로 수고하였고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하였으며, 거짓 사도를 드러내고 주의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않았습니다. 드러낸다라는 헬라어 말은 휴리스코는 ‘발견하다, 찾아내다, 깨닫다, 알아내다의 뜻이고, ‘견딘다’라는 말은 헬라어 코피아오 ‘피로를 느끼지만 열심히 노력하고 수고하다의 의미입니다. 

이렇듯 처음에는 주님을 사랑하여 열심히 진리를 수호하기에 애썼지만, 에베소 교회는 그 처음 사랑을 버려 주님으로부터 회개하지 아니하면 촛대를 옮기리라는 책망을 들었습니다. 촛대를 옮기신다는 것은 교회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들이 처음 사랑을 버렸다는 말은 헬라어 아피에미 떠나다, 생략하다, 취소하다 포기하다, 단념하다, 저버리다, 이혼하다, 거절하다’의 뜻입니다. 그들은 주님 사랑하기를 포기하고주님을 떠난 것입니다.

우리 안에는 조상의 유전형질을 물려받아 아예 부패한 마음이 있기 때문에 그것이 우리의 인격을 더럽힙니다.  그것이 우리를 또한 변질시킵니다. 그렇게 안팎으로 썩어진 마음과 썩어진 환경이 우리를 변질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더러운 환경을 탓하기 전에 먼저 썩어진 내 마음부터 변화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더 풍성해지는 변화와 신선했던 옛 모습을 회복하는 변화를 주님의 도우심으로 끊임없이 말씀 따라 시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바람직한 마음의 변화를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먼저 이 세대를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본받는다는 말씀인 헬라어는 쉬스케마티조 ‘비슷하게 모양 짓다, 같은 모양이 되게 하다에 따라 자신을 맞추다.라는 뜻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말하자면 세상의 나쁜 풍조를 흉내 내지 말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지금 세상은 워낙 매스컴이 발달하여 너무나 쉽게 나쁜 것을 따라가게 됩니다. 

‘이 세대’라는 것은 이 속된 세상을 의미합니다. 이 세상의 헛된 풍조 세상적인 사악하고 약삭빠른 방법, 세상의 야비한 현실에 쓸려가지 말고, 그것과 비슷한 모양을 짓거나 거기에 따라 자신을 맞추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에 여러 가지 그럴듯한 이유를 대면서 쓸려갈 때 우리는 마음 자체를 빼앗기고 맙니다. 중심을 잃게 됩니다. 너무 현실에 무게를 두다 보니 사람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일에 마음을 빼앗기고, 중심을 빼앗겨서,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었던 그 은혜에 대한 감사, 사랑의 감격, 처음 결심의 마음이 온데간데없어지고 마음이 변질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썩어진 이 세상의 풍조를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그럴싸한 생활의 이유를 변명거리로 내세우면서 이 세대를 따라가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영생이 있음을 잊지 말고 괴롭고 힘들더라도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고 버텨야 합니다. 아니, 오히려 역으로 이 세대를 주님께로 이끌 적극적인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반대편 방향인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변화하여야 합니다. 빌립보서 2:5 이하에 말씀합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미음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니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란 곧 성정의 마음입니다. 그런 중에 특히 주님은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라고 하십니다. 곧 기본적으로 온유하고 겸손해야 할 것을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특히 온유, 겸손, 복종, 희생의 마음을 품고 하나님과 사람을 섬겨야 합니다. 이 마음을 가질 때에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모든 사물을 이 그리스도의 미음으로 바라보도록 끊임없는 변화를 시도하십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여 그 뜻에 순종하신 그리스도의 입장에서 내 모든 말과 행동이 나오도록 내 마음과 생각을 변화시키십시다.

‘선하시고’라는 말씀은 헬라어 아가포스는 적합한, 유용한, 좋은, 완전한’이라는 뜻이고 기뻐하시고라는 말씀인 헬라어 유아레스토스는 ‘완전히 마음에 드는, 용납될 만한 일반에게 인정된, 기꺼운, 기쁘게 받으실만한’의 뜻입니다. ‘온전하신’이라는 말씀인 헬라어 텔레이오스는 ‘완전한, 장성한, 성숙한’의 뜻입니다. 여기서 잠깐 생각하실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렇게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능력은 내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령님을 통하여 우리의 마음이 변화될 수 있습니다. 에스겔 36:26에서 말씀합니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미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분입니다.(딤전 6:16) 그래서 피조물에게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시기 위해서 말씀으로 다가오십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신(고전 1 :30) 이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요 1:1; 14) 성령님은 하나님의 영으로서 말씀을 우리에게 적용시키시고 모든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시고 말씀을 증언하시고 말씀을 가지고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은 말씀을 통하여 우리를 변화시키실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새해에도 더욱 말씀에 가까워지도록 노력하고 그 말씀을 통하여 성령님께서 내 마음을 늘 새롭게 변화시켜 주시도록 줄기차게 간구를 계속하여야 하겠습니다. 그 결과로 새해에는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변화되어 그 마음으로 한 해를 항해해 나가도록 하십시다.

항상 새롭게 하면서 성숙해 가고 또한 수시로 돌아보아 처음의 뜨거웠던 마음으로 돌아가도록 노력하면서 처음보다 더 강하고 확실한 믿음으로 우리 자신을 지킬 때에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이루어드리는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이고 또한 우리 개인도 진정한 만족과 감사가 더욱 넘치는 삶의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새해에는 우선 마음과 생각부터 변화를 받아 결심에 변화가 생기고 말과 행동에 놀라운 변화가 생겨 하는 일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긍정적인 변화가 생김으로 놀라운 성령님의 열매를 풍성히 맺어 참으로 뜻깊은 한 해를 만드실 수 있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송구영신예배 설교말씀] 12월을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자(히 10:19-25)

 

[송구영신예배 설교말씀] 12월을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자(히 10:19-25)

우리가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한다는 것은 부푼 마음이 듭니다. 그러나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설렘도 많이 사라지고 불안한 마음이 더 엄습해 오고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믿음을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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