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하나님 말씀

[고린도전서 성경 주석말씀] 육에 속한 고린도 교인들(고전 3:1-4)

베들레헴 2023. 1. 21.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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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3장에서는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육적인 일에만 신경 쓰면서 시기와 분쟁을 하고 있다. 바울은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먹이지 않았다고 했다. 고린도교회 교인들은 복음을 주어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바울에게 대들었다. 성도는 밥과 같은 복음의 말씀을 먹어야 한다. 젖을 먹는 신앙은 하나님께 칭찬받지 못한다.

 

육에 속한 고린도 교인들(고전 3:1-4)

 

Ⅰ.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의 약함과 유치함에 대하여 책망한다. 성화된 사람들도 불완전하다. 은혜와 지식에 있어서 자라나고 증진될 여지가 있다(벧후 3:18). 신령한 은혜로 새로운 영적 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여러 면에서 부족한 점이 있다. 바울은 그들에게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1절)고 말한다. 그들은 신령한 계시 위에 그들의 교훈과 수단을 수립하고 복음의 정신을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거리가 멀어서 육적이고 부패한 생각의 지배아래 있었다. 그은 아직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이었다. 그들은 기독교의 얼마를 받아들였으나 그 진리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고 믿음과 거룩함도 부족하였다. 그러나 이 서신의 몇몇 절로 본다면 고린도 교인들은 그들의 지혜와 지식을 대단히 자랑했다는 것이 분명하다. 아래 점을 주목하자. 많은 지식과 이해력이 있는 자들은 흔히 자만한다. 바울은 그들이 유치하기 때문에 깊은 지혜의 말로 그들에게 전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들은 그런 음식을 먹을 수가 없었고 고기가 아니라 젖으로 먹을 필요가 있었다(2절). 청중들의 능력을 알아서 그 능력에 따라서 가르치는 것은 그리스도의 충실한 사역자의 의무이다. 어린이들이 어른으로 성장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어린아이들은 키가 자라서 그리스도 안에서 어른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평범한 일이 아니고 깊은 신앙의 진리를 이해하기 위해서 여러 기회와 수단을 통하여 신앙의 연조를 쌓아서 지식의 성장이 있어야 한다.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의 사역 아래 오래 있었으나 기독교 지식에 있어서 개선이 없었던 것이 책망당할 만했다. 은혜와 지식에 있어서 성장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비난을 받아야 한다.

Ⅱ. 바울은 그들이 육에 속함을 책망한다. 그것에 대한 증거로 사역자들에 대한 쟁투와 불화를 증거로 든다.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3절). 그들은 사역자들 때문에 경쟁하고 싸우고 당을 지었다.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4절) 이것들이 육적인 관심과 생각이 지배하는 육신에 속한 증거였다. 아래 점을 주목하자. 신앙에 대한 경쟁과 싸움은 육적인 증거이다. 참다운 신앙은 화평하게 하고 싸우지 않는다. 당을 짓는 것은 신앙의 원리가 아니고 인간의 원리다. 그들은 자신의 교만과 정열로 인도되고 기독교의 정신으로 인도되지 않는다. 보통 사람들의 수준보다 높게 살아야 할 기독교인들이 세상 사람과 너무나 같게 살며 행동하는 것은 한심한 일이다.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고전 3:5-10)

 

여기서 바울은 그들에게 어떻게 하여 이 잘못된 마음을 고치고 바르게 할까를 훈계한다.

Ⅰ. 고린도 교인들이 다투어 섬기는 사역자들은 어디까지나 사역자들이다.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저희는 주께서 각각 주신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5절). 사역자들은 은혜의 하나님에 의하여 사용되는 도구이다. 고린도 교회의 어떠 분당은 사역자들을 그들의 신앙의주와 종교의 창시자로 생각하였다. 다음을 주목하자. 우리는 사역자들을 신성화하거나 하나님 대신에 놓지 않도록 하자. 사도들은 믿음과 종교를 계시하고 전파하도록 권위와 자질을 받았지만 그것의 창시자는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모든 은사와 능력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왔다. 사역자들이 신처럼 되는 것은 잘못이다. 신령한 권위는 그들이 따르는 하나님에게만 돌려야 한다. "바울은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다"(6절). 둘은 다 특별한 목적을 위하여 유용했다. 하나님은 여러 기구를 사용하시며 그들을 여러 용도에 맞도록 조정하신다. 바울은 일을 시작하는데 적당했고 아볼로는 일을 성장시키는 데 적합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신다. 사역의 성공은 하나님의 축복으로부터 와야 한다. "그런즉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7절). 비록 사도적 사역자이라도 그들 스스로는 아무것도 아니요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시지 않으면 효과적으로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가장 유능하고 충실한 사역자는 자기의 부족을 알고 하나님이 그의 사역의 모든 영광을 받으시게 한다. 바울과 아볼로는 그들 홀로는 아무것도 아니요 하나님은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

Ⅱ.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의 일치성. "심는 이와 물 주는 이가 일반이나"(8절) 즉 같은 주로부터 채용되고 같은 계시를 위탁받고 같은 일을 하며 같은 계획에 종사하고 아무리 분당을 짓는 자들에 의하여 대립되더라도 서로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심는 자와 물 주는 자는 같은 일을 하는 동역자이다. 아래 점을 주목하자. 그리스도의 모든 충실한 사역자들은 사역의 위대성과 의향에 있어서 하나이다. 적은 일에 있어서 감정의 차이가 있을 수도 있다. 토론과 경쟁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참다운 기독교를 전파하여 하나님을 경외하고 영혼을 구하는 일에 있어서는 충심으로 일치하고 있다. 모든 그런 사역자들은 충성의 영광스러운 보답을 기대할 수 있다.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그들의 일은 하나이나 열심은 다르다. 그들의 목표와 계획은 같으나 그러나 어떤 이들은 더 철저히 수행한다. 그들의 주는 하나이나 이 선하시고 은혜로우신 주님은 그들의 봉사에 따라서 다르게 보답한다. "모든 사람의 일이 그의 보답을 받는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크게 성공한다. 가장 성실한 사람은 가장 큰 보답을 받는다. 모든 충실한 사역자들이 종사하는 일은 영광된 일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동역자들이다"(쉬네르고이:동역자들)(9절). 같은 서열과 신분으로서가 아니고 그에게 복종하며 그의 도구가 됨으로써 동역자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일에 종사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며, 귀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과 함께 일하고 있다. 그들의 일을 알고 계시는 하나님은 그들의 노동이 헛되지 않도록 돌보신다. 인간들은 어떤 사역자들을 찬성하나 어떤 사역자는 무시한다. 인간은 칭찬을 해야 할 때에 비난하고 비난해야 할 때에 칭찬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판단은 질리에 의한 것이다. 온당한 이유 없이 보답하지 않고 항상 그의 종들의 근면과 성실에 의하여 보답하신다. 아래 사항을 주목하자. 충실한 사역자들이 인간에 의하여 나쁘게 이용된다면 하나님 안에서 자신들을 격려해야 한다.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들이 자기를 증거 해야 할 대상은 복음의 위대한 사역의 지도자이며 감독자인 하나님 자신이다. 그들은 항상 하나님의 감독 아래 있고 농사와 건축에 고용되었다.

확실히 하나님은 그들을 주의 깊게 보고 계신다.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바울의 것도 아니요 아볼로의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것이다. 그들은 다만 너희를 심고 물을 준다.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밭에 내리는 신령한 축복이다. 너희들은 우리의 밭이 아니요, 하나님의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 아래에서 그와 함께 그를 위하여 일한다. 우리가 너희 중에서 일해 온 것은 하나님만 위해서다.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집이다. 바울은 앞의 은유를 전에 사용했던 적이 있으나 이제 집의 은유를 든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바울은 여기에서 자기를 지혜로운 건축자로 부르고 이것은 이중적인 명예이다. 하나님의 저택의 우두머리의 건축자가 되는 것은 명예이다. 그리고 지혜로운 건축가였기도 하다. 사람들은 자기가 자질이 갖추어 있지 못한 일에 있을 수가 있다. 바울이 자기를 그렇게 부르나 그것은 자기의 교만이나 신령한 은혜를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다. 그는 지혜로운 건축자이나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덕분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인 안에 있는 선을 말하는 것은 죄가 아니다. 영적 교만은 가증스럽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자신의 허영을 위하여 이용하는 것이며 스스로를 우상으로 만든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감사를 높이며 그의 명예를 위하여 하나님의 은총을 지적하는 것은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의무와 관심의 적합한 표현이다. 사역자들은 그들의 은사와 은혜를 자랑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더 좋게 자질을 갖추고 더 성공하면 할수록 이 특별한 선함에 대하여 더욱더 감사해야 한다. "나는 터를 닦았고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웠으니" 전에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다"는 말과 같다. 그들 중에서 교회의 기초를 놓은 것은 바울이었다. 그는 "복음으로써 그들은 낳았다(4:15)" 그 외에 어떤 스승을 가져도 "그들은 많은 아비를 가지지 않았다." 바울은 그들 중에서 봉사한 누구든지 훼손하고 싶지 않았고 자신의 명예나 존경을 박탈당하고 싶지도 않았다. 충실한 사역자들은 자신의 명성을 지켜야 한다. 그렇게 하여야 일하기가 쉽다. "그러나 각각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지니라." 이것은 적합한 주의이다. 좋은 터에 나쁜 건물을 세울 수가 있다. 실수하기 쉬운 점이다. 확실하고 올바른 기초를 놓을 뿐 아니라 좋은 집을 그 위에 세우도록 주의해야 한다. 기초에 적합한 건물만 세워야 한다. 금과 흙이 혼합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은 신령한 계시의 터 위에 자신의 상상이나 그릇된 이을 세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들이 전하는 것은 그들의 주님의 분명한 교리이어야 한다.

[갈라디아 1장 히브리어 성경말씀]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감(갈 1: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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