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하나님 말씀

[디모데전서 4장 주일설교말씀] 경건에 대한 교훈(딤전 4:6-16)

베들레헴 2023. 2. 15.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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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전서 4장에서는 경건에 대한 훈련에 대해서 권면하고 있다.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자신을 연단하라고 했다. 성도가 이상한 거짓 복음에 빠지면 안 된다. 참 복음인 예수님만 믿어야 한다. 예수님을 떠나서는 절대 구원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교회에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면서 진실하게 살자.

 

경건에 대한 교훈(딤전 4:6-16)

 

바울은 디모데에게 유대 선생들에 의한 유혹을 방지할 수 있도록 그리스도인들의 마음 가운데 분별력을 가르쳐 주라고 지시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좋은 목회자는 자기의 일에 부지런한 사람이다. 그렇다고 무슨 새로운 것을 연구하는데 부지런한 것을 말함이 아니라 "형제들이 받았고 또 들은 것을 깨우쳐 기억케 하는 일에 부지런한 복음 사역자가 훌륭한 사역자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성경에 "이러므로 너희가 이것을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섰으나 내가 항상 너희로 생각하게 하려 하노라"라고 한 것이다(벧후 1:12). 또 다른 곳에서 이르기를 "너희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나게 하려고 편지를 쓴다"(벧후 3:1)라고 하였다. 또한 사도 유다는 "너희가 본래 범사를 알았으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하노라"(유다서 1:5)라고 하였다. 사도들과 복음 전도자들이 주로 복음을 들은 사람들로 다시 그 복음을 기억하도록 하는 것을 그들의 가장 중요한 임무로 생각하였다는 것을 우리는 주의 깊이 생각해야 한다. 그들이 그렇게 한 이유는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잊기는 빨리 하고 배우는 것과 기억하는 데는 느리기 때문이다. 이같이 "성도들을 깨우치면 따르는 믿음의 원리와 참된 교훈으로 점점 자라게 될"것이라(6절)고 하였다. 다음을 살펴보자.

1. 복음 사역자 자신들일지라도 그리스도와 주의 교훈을 아는 지식이 자라고 더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들도 믿음의 말씀 가운데서 양육되어야 한다.

2. 복음 사역자들이 지식과 믿음 안에서 자라나는 가장 최선의 방법은 형제들로 하여금 말씀을 기억나게 하는 것인데 이는 우리가 다른 사람을 가르칠 동안 우리 스스로가 배우게 되기 때문이다.

3. 목회자들이 가르치는 사람들은 형제들이며 또 형제와 같이 대하여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복음 사역자라고 해서 하나님의 소유물의 주인 노릇을 할 수은 없기 때문이다.

Ⅰ. 여기서 바울은 디모데와 다른 사람들에게 경건함을 강조하였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라"(7,8절)고 한다. 유대의 전통에 대해 어떤 이들은 많은 것을 알고 있으나 실질적으로 행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므로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라고 하였던 것이다. 즉 실천적인 신앙을 소유하라고 하였던 것이다. 거룩하게 되고자 하는 사람은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여야 한다. 즉 경건에는 끊임없는 훈련이 요구된다. 그 이유는 경건의 유익은 쉽게 와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거나 혹은 잠깐의 유익이 있을 뿐이다. 음식과 결혼으로부터 절제하거나 또 그와 같은 행동은 절제와 자기부정에는 유익이 있을지 모르나 경건에는 별 유익이 없는 것이다. 그 이유는 만약 우리가 죄를 억제하지 않는다면 육체의 억제도 아무 유익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음을 살펴보자.

1.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전체의 삶에 필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금생과 내생을 약속해 주기 때문이다."

2. 경건을 통하여 얻는 이익은 주로 장래의 주어질 것이라는 사실이다. 경건한 사람들에 대해 주어진 약속은 현재와 관련하여 주어진 약속이기도 하지만 특별히 앞으로 올 삶에 관련을 가진 약속이다. 구약 시대에는 약속이 대부분 세상적인 축복에 관한 것이었으나 신약 시대에는 영적이며 영원한 축복이다. 만약 경건한 사람들이 금생에서 조금의 유익밖에 얻지 못한다. 해도 앞으로 올 생애에 있어서는 많은 좋은 것들을 받게 될 것이다.

3. 사도 시대에도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가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디모데가 비록 뛰어난 사람이었다 할지라도 속된 것을 버리라는 충고의 말에서 제외될 수는 없었다는 사실이다.

4. 우리가 속된 것을 피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스스로 경건을 훈련하여야 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악행을 그쳐야 할 뿐 아니라 잘 행하기를 배워야 하며(사 1:16, 17) 경건을 연습하도록 하여야 한다.

5. 진정으로 경건한 사람은 마지막에 잃은 자가 되지 않을 것인데 왜냐하면 경건은 약속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육체의 연습으로 만족하는 자들은 아무 유익도 얻지 못할 것이다.

Ⅱ. 우리가 경건에 이르기를 힘쓰는 중에 어려움과 실망을 당할지라도 경건의 길로 나아가고 이르기를 힘써야 한다는 격려의 말씀. 바울은 8절에 말하기를 "경건은 범사에 유의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라고 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경건을 통해 얻는 이익이 과연 경건을 통해 잃는 것을 보충하겠느냐는 것이다. 만일 잃은 것이 얻는 것보다 더 많다면 그것은 유익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익이 있으리라는 것을 우리는 확신할 수 있다. 여기에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바울의 믿음직한 말이 또다시 나와 있다. 즉 하나님을 섬기는 일과 신앙의 사역을 하는 중에 우리가 한 모든 수고와 잃어버려진 것들은 충분히 보장받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잃은 것이 있다 할지라도 결국 그것은 잃은 것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또한 바울은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진력하는 것은 우리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고 그에게 소망을 두기 때문이다"(10절)라고 하였던 것이다. 다음을 유의하라.

1. 경건한 사람들은 수고를 해야 하며 비난을 각오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좋은 일을 행하나 동시에 나쁜 일을 당할 것을 각오해야 한다. 힘써 일하는 것과 고난 받는 것은 이 세상에 살동안 인간으로서 또한 성도로서 당연히 당하게 되는 것임을 각오해야 한다.

2. 하나님을 섬기고 또 신앙의 사역을 위해 수고하고 또 수치를 당하는 사람들은 이 수고와 수치 때문에 신앙을 팔아먹지 않도록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그들은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지하노라"는 말씀으로 위로를 받아야 한다. 우리에게 대가를 지불하실 영원히 살아계시면서 자기를 섬기는 모든 사람에게 생명의 샘이 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특별히 우리의 섬기는 것과 그를 위하여 당하는 고통 중에도 구세주께서 우리를 격려해 주신다는 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용기를 얻게 된다. 그러면 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생각해 본다.

(1) 하나님은 그의 섭리를 통하여 사람들을 보호하시고 사람들의 자녀들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신다.

(2)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이 영원한 구원을 얻기를 바라시며 어떤 사람도 멸망당하기를 원치 않으시고 회개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의 죽음을 원치 아니하신다. 하나님은 아무도 타락한 천사가 처해 있는 것과 같은 운명에 처하기를 원치 아니하시는 모든 사람의 구세주이다. 만약 하나님께서 이같이 만인의 구세주가 되신다면 그를 찾고 그를 섬기는 자들에게는 더욱 놀랍게 상 주시리라는 것을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의 피조물에 대해 이 같은 선한 뜻을 가지고 계신다면 거듭난 새 피조물들을 위하여는 더욱 좋은 것을 준비하고 계실 것이다. 하나님은 만민의 구세주이시지만 특별히 믿는 자들의 구주이시다. 또 그가 그를 믿는 사람들을 위하여 준비해 놓으신 구원은 그들의 봉사와 수고에 충분한 보상이 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의 것을 알 수 있다.

① 그리스도인의 삶은 노력과 수고의 삶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본문에 "우리가 수고하고 진력한다"라고 하였다.

② 현생에서 우리가 가장 좋은 수고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우리의 선행과 우리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 때문에 수치를 당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③ 진실한 그리스도인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살아계신 하나님 이외에 어떤 것이고 믿는 사람은 저주를 받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결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항상 하나님을 믿으라"라고 하였다.

④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구원의 자리로 이끌어 주시는 만인의 보편적 구주시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독특한 면에 있어서 진실한 신자들의 구주이시다. 그러므로 일반 구원과 특별 구원이 있는 것이다.

Ⅲ. 바울은 디모데에 대한 훈계로 4장을 끝맺었다.

1. 바울이 지금 그에게 가르치고 있는 "이것들은 명하고 가르치도록 훈계함." 즉 바울은 디모데에게 다음과 같이 명한다. "형제들로 하여금 스스로 경건에 이르기 위해 연습하도록 명하고 또 그들에게 경건의 유익을 가르치라. 또 그들이 섬기는 하나님은 반드시 보상하시는 분임을 가르치라"라고 하였다.

2. 디모데가 비록 젊다고 하여도 존경을 받을 수 있도록 위엄 있고 신중하게 행동하도록 훈계함. 본문에 "누구든지 네가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라고 했는데 이 말씀은 누구든지 그의 젊음을 멸시할 기회를 주지 말라는 말이다. 만약 사람이 젊더라도 허영에 빠지지 않고 또 미련을 떨지 않는다면 아무도 그의 젊음을 업신여기지 않을 것이다.

3. 좋은 본을 보임으로써 그의 교훈을 확고히 하도록 훈계함. 그러므로 본문에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라고 하였다. 다음을 명심하자. 교훈을 가르치고자 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자기의 생활로 본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아니하면 자기가 한쪽으로 세워 놓은 탑을 다른 손으로 허물어 버리게 되는 결과가 된다. 남을 가르치는 자는 반드시 말과 생활에 있어서 본이 되어야 한다. 그들의 언행은 덕스러워야 한다. 그럴 때 그것은 좋은 본이 될 것이다. 또한 그들의 생활은 엄격해야 하는데 이 또한 좋은 본이 될 것이다. 또한 성도들은 "사랑"의 본이 되어야 한다. 즉 하나님과 착한 사람에 대한 사랑의 본을 보여야 한다. 또한 성도들은 "영적 생활"에 있어서 본이 되어야 한다(역주: 한글 개역에는 없음). 즉 영적인 일에 관심을 가지는 일과 영적 예배에 본이 되어야 한다. 또한 성도들은 "믿음에 본이 되어야 한다." 즉 기독교 신앙을 고백하는 일에 본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성도들은 "정절" 또는 "순결"에도 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4. 바울은 디모데에게 열심히 공부할 것을 명하였다.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착념하라"(13절). 비록 디모데가 특별한 은사를 받았다 하더라도 일상적인 연구 역시 버려서는 안 되었다. 또한 이 말씀은 디모데에게 회중 앞에서 성경을 일고 해석하라는 말로도 볼 수 있겠다. 즉 성경을 풀어서 그 교훈과 교리를 알려 주고 또 디모데는 그들에게 무엇을 행하고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를 가르쳐야 한다는 말씀인 것이다. 다음을 살펴보자.

(1) 복음 사역자들은 그들이 배운 것과 행하도록 명령받은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가르치고 명해야 한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명하신 모든 것을 성도들이 알도록 가르쳐야 한다(마 28:20).

(2) 복음 사역자들이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는 가장 최선의 길은 자기가 명령받은 것을 가르치고 실행하는 것이다. 만약 복음 사역자로서 그러한 일을 가르치지 않거나 성도들에게 선한 본보기가 되지 아니하고 자기가 가르친 교훈에 반대되는 행동을 하였다면 그들이 업신여김 받는 것을 당연하다. 왜냐하면 복음 사역자는 그 무리의 본보기이기 때문이다.

(3)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가장 잘 성취한 목회자들도 계속 공부하는데 뜻을 두고 또 지식을 습득하는 일에 노력해야 한다. 또한 그들은 자기들에게 부여된 일에 대해 늘 신경을 써야 한다. 그들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착념해야 한다.

5. 바울은 디모데에게 태만을 경계하라고 명령하였다. 이에 대하여 본문은 "네 속에 있는 은사를 조심 없이 말며"(14절)라고 기록하고 있다. 만약 하나님의 은사를 소홀히 한다면 그 은사는 시들어 버릴 것이다. 이 말은 그가 받은 직책을 소홀히 하지 말라는 말이거나 혹은 그 직책을 위해 위로부터 부여된 능력들을 소홀히 하지 말라는 말이거나 일 것이다. 만일 전자의 의미로 본다면 본문의 "은사"는 안수(직책 수여)를 뜻하는 말일 것이고 후자의 의미로 본다면 본문의 은사는 특별한 능력을 뜻하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전자의 것인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이 은사가 본문에 보면 "안수를 통해"주어진 것이라고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직책 수여에 대한 성서적인 방법을 배우게 된다. 당시의 직책수여는 안수로 말마암아 즉 장로회에서의 안수를 통해 수여되는 것이었다. 디모데도 사람들에 의해 직책을 수여받았다는 것을 기억하자. 바울이 디모데에게 안수하였다는 말씀을 우리가 다른 곳에서 보게 되는데 이때 디모데에게 수여된 것을 특별한 하늘로부터의 은사였고 그가 직책을 수여받을 때는 장로회의 안수에 의하여서였던 것이다.

(1) 목회자의 직책은 은사인데 곧 그리스도의 은사임을 잊지 말자. 그리스도의 승천하셨을 때 인간을 위하여 은사를 하나님으로부터 받으시었다. 그리고 그는 그 은사를 가지고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목자로 또는 교사로 삼으셨다(엡 4:8, 11). 이러한 은사는 그가 교회에 베푸신 배려 깊은 은사였다.

(2) 목회자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은사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3) 디모데의 직분이 예언에 의해 주어진 것이라고 할지라도 많은 사람의 장로들이 손을 얹어 안수하는 것이 동반되었다는 사실이다(그의 특별한 능력은 예언에 의해 주어진 것이었다). 디모데의 직분은 이런 방법을 통해 수여된 것이었다. 내 생각에는 장로들에 의해 직책을 수여하는 정도는 충분한 타당성이 있다고 여겨진다. 바울이 디모데의 직책 서임에 관여하였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그러나 바울이 안수함으로 그에게 특별한 능력을 부여했던 것은 확실하다(딤후 1:6). 직책 수여의 안수에 관여하였다 해도 장로들은 제외시키지는 않았을 것이다. 본문에 장로회의 안수에 대하여 특별히 기록한 것을 볼 때 장로들이 세습적인 직책 서임권을 가지고 있었다는 증거가 명백한 것이다.

6.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 직분을 부여받았으니 그 일에 전심전력하여야 한다는 것을 명하였다.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15절). 디모데는 현명한 지성인이었는데도 더욱 지식을 얻어야 했고 또 자신의 지식의 진보를 나타내야 했었다. 다음 사실을 생각해 보자.

(1) 목회자는 명상하는 일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어떻게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에 대해 미리 생각해야 한다. 목회자들은 자기에게 위임된 임무와 불사의 영혼의 가치와 귀중함에 대해 그리고 또 마지막 날에 그들이 하나님 앞에 내어놓을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

(2) 목회자들은 위의 일들에 전심전력하여야 하며 이것들을 그들의 당면 과제로 여겨야 한다. 그리하여 본문에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라고 말한 것이다.

(3) 이같이 전심전력할 때 그들의 진보가 모든 일에 나타날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도 나타날 것이다. 전심전력을 기울이는 것이야말로 목회자들이 지식과 은혜 또 다른 모든 것들에서 자라 가는 방법인 것이다.

7. 바울은 디모데에게 매우 조심하기를 강조하였다.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 즉 네가 사람들에게 전한 복음을 삼가 생각하고 이일은 계속하라. 즉 네가 받은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을 구하고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다음을 유의하라.

(1) 복음 사역자들은 구원 사역을 위하여 고용된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2) 복음 사역자들은 먼저 자신의 구원에 대하여 주의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네 자신을 먼저 구하고 그 후에 너에게 듣는 자들을 구원하는 도구가 되라."

(3) 설교에 있어서 목회자는 설교를 듣는 사람들의 구원을 목표로 해야 하며 그다음으로 자기의 영혼의 구원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4) 이러한 두 가지 목적을 이루기 위한 가장 최선의 방법은 우리가 스스로 조심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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