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전서 1장에서 바울은 성도들의 신앙에 대해서 칭찬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주님을 본받은 자가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이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성도들의 본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성도들은 재림을 준비하고 있어야 할 것을 말씀합니다. 우리도 믿음을 지키면서 주님의 재림을 준비해야 합니다. 주님이 이 땅에 구름 타고 강림하신다고 했습니다. 반드시 주님이 이 땅에 오시니 우리는 믿음으로 주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살전 1:5-10)
• 1:5 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며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은 너희 아는 바와 같으니라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 말과 능력과 큰 확신으로 전했으며 또 인격으로 전했다. 전도자가 복음을 전할 때
첫째, 말로 전해야 된다. 로마서 10:14에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라고 했고, 로마서 10:17에는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라고 했다. 그러므로 말씀을 전파해야 된다. 디모데후서 4:2에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라고 했다. 전도하는 사람 자신은 부족해도 이렇게 항상 힘써서 복음을 전하면 복음 자체 속에 능력이 있기 때문에 그 능력이 다른 사람을 살려내고 정복하여 믿게 한다. 로마서 1:16에는 복음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다고 했다.
둘째, 능력으로 전해야 한다. 하늘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다고 하였다(고전 4:20 참조). 복음 자체의 능력과 전도자의 능력이 합할 때 더욱 큰 역사가 나타난다. 전도자가 열심이 있어야 한다. 최 권능 목사님은 권능으로 전도하여 75개 교회를 설립했다고 한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한 것만큼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에 참예한다(빌 3:10-11 참조). 말씀을 순종할 때에 오는 고난을 잘 참고 견디면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이 입혀지고 능력의 전도자가 된다.
셋째는 성령으로 전해야 한다. 자기가 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하시도록 맡기고 주님께 붙들려서 성령이 인도하는 대로 복음을 전하여야 한다. 즉 자기 영혼이 성령을 힘입어서 다른 사람의 영혼에게 복음을 전하여야 한다. 그때 성령이 그 사람을 믿게 한다.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예수를 구주로 믿을 수 없다(고전 12:3 참조).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넷째는 복음을 전할 때에 진리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전해야 한다. 전하는 사람이 확신이 없으면 듣는 사람도 시원치 않게 듣는다. 자기가 먼저 진리를 바로 깨닫고, 깨달은 진리에 확신을 가지고 전해야 듣는 사람도 확신을 가지고 따라온다.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은 너희 아는 바와 같으리라 다섯째로 복음을 전할 때에 인격으로 전해야 된다. 전도자는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고 참된 인격으로 자신을 만들어 나가면서 복음을 전해야 된다(행 26:25 참조). 전도자가 인격적으로 모본이 되고 존경을 받아야 그 말을 잘 청종한다.
• 1:6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는 자가 되었으니
이것이 복음을 받는 모범적인 태도이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도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았다. 복음을 받을 때에 성령으로 받아 영혼의 양식을 삼고 그 말씀으로 생명을 삼았다. 사람이 회개하고 돌이켜 온유한 마음으로 이 도를 받아야 한다(약 1:21 참조). 하나님의 말씀을 온유한 마음으로 받아 영의 양식으로 삼는 자는 말씀이 꿀보다 달게 되고 그 말씀이 자기에게 힘이 되며 생명이 된다. 말씀을 달게 받은 다음에는 새김질을 하고 소화를 시켜서 그 말씀대로 순종을 해야 된다. 그러면 더욱더 말씀이 사모가 되고 갈급증이 생겨 심령이 가난하게 된다. 천국은 심령이 가난한 자의 것이다.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은 데살로니가 교회는 그 말씀을 실행하여 바울과 주님을 본받아 나간 것이다.
• 1:7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는지라
예수님과 바울을 본받은 데살로니가 교회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의 모든 믿는 자에게 본이 되었다. 마게도냐는 데살로니가와 빌립보 교회가 있는 헬라 북쪽 지방이며 아가야는 고린도가 있는 남쪽 지방이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북쪽 지방뿐 아니라 아가야가 있는 남부 지방까지 신앙의 모본이 되며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해주었다. 아가서 1:8에 “갈 길을 알지 못하거든 앞서간 양 떼들의 발자취를 보고 따라 오라”고 했다. 앞서간 양 떼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신앙은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간 사도들과 사도들의 발자취를 따라간 선진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이다.
• 1:8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진고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믿음은 하나님을 향한 순종의 행위이다. 사람에게 나타내거나 보이려고 하는 것은 외식이다. 믿음을 지키면 그 열매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난다.
• 1:9 저희가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고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과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며
저희는 데살로니가 교회의 믿음의 소문을 들은 마게도냐와 아가야와 각처 사람들을 가리킨다.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과 바울 일행이 어떻게 데살로니가에 가서 전도했는가를 말하는 것이다. 바울과 실라가 데살로니가에 들어가서 3주간 동안 전도했다(행 17:1-9 참조).
그때에 반대 세력이 일어나서 그들을 잡아 죽이려고 하였으므로 밤에 베뢰아로 피해 갔다. 이처럼 예수를 반대하는 세력이 가득하고 전도하는 사람을 잡아 죽이려는 곳이었지만 바울이 하나님을 힘입어 생명을 내놓고 능력과 성령으로 복음을 전했다. 전도할 수 없는 곳에서도 전도하고 하나님이 가라고 할 때에 순종하여 어느 곳에나 가서 전도하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복음이 증거 되고 택한 백성이 구원을 받게 된다. 하나님의 구원 운동은 하나님이 친히 해나가는 것이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사람이 협력하여 순종만 하면 된다.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바울의 전도를 받고 즉시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왔다. 우상을 버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은 그 우상을 버리면 큰 저주를 받을 것 같아 버리지 못한다. 그런데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단번에 우상을 다 내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온 것은 신기한 은혜의 열매이다. 이는 그들이 말씀을 받을 때 성령의 기쁨으로 영적 생명의 양식으로 받았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우상이 많이 있다.
① 돈이 우상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우상이 되어서 돈이 사람을 살리고 돈이면 모든 일이 다 되는 줄로 알아 돈을 사랑하고 따라 나간다.
② 인본주의의 세상 문화가 우상이 되기도 한다. 사람들이 이 세상과 향락주의와 인본주의 문화를 하나님보다 더 따라간다.
③ 단체나 국가가 우상이 되기도 한다. 하나님의 지배보다 그것들의 지배를 더 받고 단체나 국가의 명령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순종하면 그것이 우상이 된다.
④ 남편이나 자녀가 우상이 되기도 한다. 이들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하나님 말씀을 어기며 그들을 위하고 따라가는 것은 그들이 우상이 된 증거이다.
⑤ 자기 목숨이 우상이 되기도 한다. 자기 목숨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것은 목숨이 우상이 된 증거다.
⑥ 기도하는 중에 무슨 감동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 마음이 우상이 된 것이다. 그것은 주관적 감정으로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겔 14:2 참조). 하나님의 뜻은 성경에서 찾아야 된다. 마음에 어떤 감동이 있더라도 그것이 성경에 어긋나면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이 모든 우상을 버려야만 하나님을 따라갈 수 있다.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며 우상은 산 것도 아니고 참된 신도 아닌데 비해 하나님은 사신 하나님이요 참된 신이시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생명이 없고 거짓된 우상을 버리고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께로 돌아온 것이 참으로 지혜로운 일이요 복 받은 증거이다.
• 1:10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린다고 말하니 이는 장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신앙이다.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죽은 가운데 살려주시는 능력의 하나님을 믿었고 예수님께서 장차 구름을 타고 재림하실 것을 믿었다. 예수님의 재림을 믿는 신앙이어야 참된 신앙이다. 데살로니가 전서는 매장 끝마다 예수님의 재림이 언급되어 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예수님의 재림을 전적으로 기다리는 교회였다. 예수님의 재림을 고대하는 신앙은 슬기 있는 다섯 처녀와 같이 귀한 신앙이다(마 25:1-13 참조).
[신약 히브리어 성경말씀 골로새서] 구원자이신 예수님(골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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