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히브리어성경

[신약 히브리어성경 산상수훈말씀] 팔복에 관한 예수님 말씀(마 5:1-12)

베들레헴 2022. 9. 18. 18:06
반응형

팔복에 관한 예수님 말씀(마 5:1-12)

 

마태복음 5장에서는 예수님이 산상수훈 말씀으로 팔복을 강해하고 있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천국이 그들의 것이라고 했습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는데 그들이 위로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온유한 사람은 복이 있는데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고 했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도 복이 있습니다. 이렇게 산상수훈의 팔복을 통해서 구원받은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5: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이 산은 컨해틴(Kun Hattin) 산이라고 하는데 후에 팔복산이라고도 부르게 되었다.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운 곳에 있었다. 예수님이 산에 올라가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나아오매 예수님이 입을 열어 가르치셨다. 이렇게 예수님은 엄숙하고 경건한 태도로 앉아서 진리의 도를 가르쳐 주신 것이다. 진리는 큰 소리로 외쳐야만 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앉아서 조용한 음성으로 하나님의 참된 말씀을 능력 있게 가르치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여덟 가지 복을 말씀하셨다. 세상에서는 흔히 5복을 말한다. 예수님이 말씀하실 필 복은 세상의 복과는 전연 다르다.

 

세상의 5복은 () 부귀(富貴) 강령(康寧) 유호덕 (攸好德) 고종명(考終命)을 말한다.

 

성경의 팔복은 세상 5복과는 거의 반대이다. 가난하고 애통하고 핍박받는 것이 복이라고 하였다. 세상 복은 건강한 것이 복이지만 하늘나라의 복은 하나님의 뜻만 이루어 드리면 병든 것도 복이 될 수 있다. 몸이 건강한 것이 좋으나 건강하기 때문에 교만해지고 방탕하고 악한 마음을 갖게 된다면 차라리 병이 들어서 하나님 앞에 겸손하고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온유한 마음을 갖는 것보다 못하다. 칼빈이 기독교에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이지만 몸은 퍽 약하였다고 한다. 몸이 약하였기 때문에 칼빈이 위대한 사람이 되었는지 모른다. 건강해도 믿음을 잘 지킬 수 있는 사람은 건강한 것이 복이고 병이 들어야 믿음을 잘 지킬 수 있는 사람은 병드는 것이 복이다. 육신의 몸이 항상 건강해야 복이 되는 것은 아니다. 디모데도 위병을 앓았고 바울도 육체에 가시가 있었다고 하였다. 사람의 생각에는 바울에게 그 가시가 없었더라면 하나님의 일을 더 많이 하였을 것 같이 생각되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그 가시가 없었다면 바울이 교만하여져서 망하게 된다. 성도의 복은 육신에 표준을 두지 말고 믿는 일에 두어야 한다.

5:2-3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첫째 복은 심령이 가난한자의 복이다. 가난하다는 것은 천국에 대하여 가난한 것을 말한다.

 

심령이 가난한 자 영적 문제에 대하여 가난을 느끼는 사람을 말한다. 심령이라는 것은 영혼이 마음을 통해서 역사하는 면을 말한다. 영적인 문제에 대하여 가난을 느끼는 사람은 영이 산 사람이다. 심령이 깨어 산 역사가 있어야 가난한 것을 느끼게 된다. 심령이 잠자는 상태에 있으면 가난을 느끼지 못한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예수님이 그 안에 들어와서 천국을 소유하게 된다. 우리는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천국을 소유해야 한다. 야고보서 2:17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하였다. 믿음 자체가 마음을 통하여 생명력을 발휘해야 될 터인데 믿음이 죽었기 때문에 생명력이 없고 생명의 역사가 없는 것이다. 생명의 역사가 없는 자는 예수를 믿어도 죽은 믿음이다. 그리하여 기쁜 소리를 해도 춤추지 아니하고 슬픈 소리를 해도 가슴을 치지 않는 무감각한 상태에 빠진다. 영이 깨어서 심령이 일을 하는 사람이라야 심령의 가난함을 느끼게 된다. 일하는 사람은 항상 모자라게 되어있고 일하지 않는 사람은 조금 있는 것도 남아 돌아간다. 심령이 깨어서 영의 역사가 있고 심령에 영적인 가난을 느끼게 되면 그 사람은 벌써 천국을 소유한 사람이다.

 

심령에 가난을 느끼는 사람은 갈급하여 하나님께 부르짖기 때문에 하나님이 더 많은 것을 주신다. 많은 것을 받은 다음에는 그것을 가지고 또 영의 일을 해 나가야 한다. 영의 일을 해 나가면 또다시 모자라게 되어 다시 더 많은 것을 하나님께 구하게 되고 하나님은 또 더 많은 것을 주신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항상 하나님 앞에 신령한 것을 구하게 되고 하나님께로부터 신령한 것을 많이 받게 된다. 심령에 가난을 느껴야 안타까워서 하나님께 매달릴 생각이 나고 기도할 생각이 난다. 심령에 가난을 느끼면 성경을 배울 때에도 열심히 듣게 되며 성경 말씀이 꿀송이보다 달고 정금보다 귀하게 여겨진다. 그러므로 그 말씀대로 살려고 힘을 쓰고 그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도 전하게 된다. 가난한 심령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하늘나라를 많이 소유한 사람이다. 현재에도 천국을 소유하고 있으나 앞으로도 점점 더 많이 소유하게 되어 하늘나라의 보화가 아주 많아지게 된다. 그러나 마음이 부요한 사람은 화가 있나니 지옥이 저희 것이다(눅 6:24-25 참조).

 

5: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둘째는 애통하는 자의 복이다. 애통하는 자는 하나님의 위로를 받게 된다. 그러나 믿음에서 떠나 세상 것으로 부하고 웃고 즐거워하는 자에게는 화가 있다. 누가복음 6:25에 “화 있을 진저 너희 이제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라고 하였다.

 

애통하는 자는

자기의 죄를 붙들고 애통하는 사람을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 나가기를 소망하면서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이루지 못한 것 즉 말씀대로 신앙 인격이 만들어지지 못한 것을 애통하는 사람이다.

신령한 세계에 들어가지 못해서 애통하는 사람이다. 신령한 세계에 들어갔더라도 좀 더 깊은 세계에 들어가려고 애통해야 한다. 세상의 것 때문에 애통하는 것이 아니고 신령한 것을 위하여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죄 때문에 애통하면 죄 사함 받은 기쁨이 있게 된다. 또 말씀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애통하면 말씀대로 이루어지게 되고, 신령한 세계에 들어가지 못하여 애통하면 드디어 신령한 세계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위로를 받게 되는 것이다. 성도가 말씀을 받았으나 말씀대로 만들어지지 않아서 애통을 하게 되면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능력을 입혀서 말씀대로 만들어지게 하신다. 그때에는 한량없는 하나님의 위로가 오는 것이다. 진리(말씀)의 세계는 애통을 통과해야 이루어지고 기쁨이 오는 것이다. 십자가 후에 부활이 있었다. 애통이 없이 예수 믿는 사람은 진리에 대한 성공이 있을 수 없다. 자기의 되지 못한 것을 붙들고 애통하면서 말씀의 표준에 도달하려고 힘을 쓰되 해산하는 수고를 해야 그 말씀대로 이루어진다. 성도가 말씀을 받아서 그대로 만들어지려면 반드시 해산하는 수고를 해야 한다. 교역자들도 날마다 계속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해나가야 겨우 교회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피와 땀을 흘리고 해산하는 수고를 하여 진액을 짜 바치고, 사선을 넘는 수고와 인내가 있어야 생명을 살릴 수 있다. 기독교는 애통을 통과한 후에 성공이 있는 것이다. 또 애통을 통과한 다음에 오는 기쁨이어야 참된 기쁨이다. 애통을 통과함이 없이 얻어지는 기쁨은 다 세상적이고 인간적이고 임시적이다.

 

하나님 말씀을 붙들고 그 말씀대로 자기 인격이 만들어지지 못한 것을 애통하면서 힘을 바짝 써서 일심 정력을 기울이면 하나님이 도와주셔서 조금씩 조금씩 말씀의 세계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 그때에는 하나님의 위로가 한량없이 내려온다. 그러므로 믿는 일을 힘써하고 해산하는 수고를 하면서 믿는 사람에게는 받은 증거가 많아진다. 눈물을 통과하여 얻는 기쁨이 참으로 가치 있는 기쁨이다.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마음으로 힘을 다하여 참되게 애통하면 하나님께서 만능으로 도와주셔서 믿는 일이 성공되어 나간다. 그렇게 되면 영적 생명이 자라나게 되고 새로운 영적 세계가 발견이 되며 영이 힘을 얻고 소생하여 올라와 한량없는 위로를 받게 되는 것이다. 성도가 애통하는 단계를 거쳐서 새 생명을 받아 새로운 기쁨을 날마다 누리고 새 사람이 되어 나아가야 한다.

 

5: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셋째는 온유한 자의 복이다. 온유한 자는 땅을 기업으로 받는 복이 있다.

 

온유한 자는 하나님의 진리를 붙든 자이다. 하나님의 진리를 붙든 자는 마음이 든든하고 온유하다. 온유한 사람은 하나님의 인도와 주장을 받게 된다. 무조건 다른 사람이 하자는 대로 하는 것이 온유가 아니다. 자기 마음대로만 하는 사람은 완고한 고집쟁이이고 다른 사람이 하자는 대로 따라가기만 하는 사장은 무골충과 같은 사람이다. 참으로 온유한 사람은 하나님의 인도와 주장을 받아 모든 것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판단하고 말씀대로 순종하는 사람이다. 이러한 사람이 때로는 고집쟁이라는 말을 듣게 되나 하나님의 보시기에는 아주 온유한 사람이다.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하나님의 인도와 주장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나아가는 자에게는 세상의 모든 것이 그 사람의 구실을 이루어 나아가는데 이용당하게 된다는 뜻이다.

 

고린도전서 3:21-22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 것이요라고 하였다. 온유한 사람에게는 만물이 다 자신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데 이용되어 유익한 것이다. 온유한 자는 먼저 자기 자신을 하나님의 것으로 삼아놓고 하나님께 이용을 당하는 사람이다. 온유한 사람은 악한 사람에게 악한 일을 당할지라도 그것을 유익하게 이용한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먹고 빌라도가 악을 행하였으나 결국 그들은 예수님께 이용당하고 예수님의 일을 해 주었다. 모든 선한 것과 악한 것이 예수님을 위하여 있고 예수님은 그것들을 바르게 이용하여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어드렸다. 온유한 자에게는 모든 것이 그 사람을 위하여 일해 주고 도와준다. 풍랑이 일어난다고 하여도 그 풍랑 인연하여 더 빨리 나아갈지언정 그 풍랑 때문에 손해보지 않는다. 그러므로 땅 위의 모든 것이 온유하고 믿음 지킨 사람을 위해서 존재한다. 이것이 땅을 차지한다는 뜻이다.

 

5: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넷째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의 복이다. 어떻게 해야 옳은 길을 걸어 나아갈까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대로 살까? 하고 하나님의 의를 찾고 그 의를 이루어 나가는 일에 굶주리고 목마른 사람처럼 갈급한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 복이 있다. 이러한 사람은 의가 아니면 천하를 다 주어도 가지려 하지 않고 의() 하나를 생명보다 귀하게 여긴다.

 

베드로후서 3:13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의를 이룬 것은 하늘나라에 영원히 남아 있게 된다. 누가복음 19:12-19에는 열 므나 남긴 사람은 열 고을 권세, 다섯 므나 남긴 사람은 다섯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땅에서 의를 이루는 것이 참으로 가치 있고 고귀한 것이다. 우리 성도는 천하를 다 준다고 하여도 의가 아니면 행치 말고 의를 이루는 일이라면 죽음이라도. 사양치 말고 나아가야 한다. 스데반은 의를 위하여 목숨을 바쳤고, 다니엘은 의를 위하여 사자 굴에 들어갔다. 의가 참으로 귀한 줄 알고 오늘 이루어야 할 의는 오늘 이루고 내일 이루어야 할 의는 내일 또 이루어 나아가야 한다. 세례 요한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세례를 베풀고 헤롯 왕을 책망하다가 감옥에 갇히어 죽기까지 하였다. 우리 성도가 의() 사모하기를 주리고 목마른 것처럼 간절히 사모하고 의()를 이루기 위하여 전심전력을 다 기울여야 한다.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그리스도의 의로 만족하게 되고 또 자기가 의를 이루어 만족하게 된다는 뜻이다. 의를 이루기 위하여 간절히 사모하는 자는 마침내 의를 이루게 된다. 의를 이루기 위해서 밤낮 애타는 심정으로 사모하면 하나님이 도와주심으로 의를 이룰 날이 오게 된다. 성도를 이 세상에 살게 하는 목적은 믿는 일을 잘하여 의(하나님의 뜻)를 이루라는 것이다. 의인 줄 알면서도 자기 육신을 아끼느라고 따라가지 못하고 돈과 인정 때문에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은 의가 얼마나 귀한 것인 줄 아직 깨닫지 못한 사람이다. ()인 줄 알았으면 자기의 모든 재산이나 자기의 생명을 잃어버리는 한이 있어도 따라가야 한다. 주님께서 요구하시면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라도 바치는 것이 의이다. 주님께서 나귀를 바치라 할 때에 바치지 않으면 불의(不義) 한 일이요 죄()이다. 예수님께서 나를 따라오너라” 하실 때에 제자들은 배와 그물과 부친(父親)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갔다. 이것이 의()이다. 예수님께서 따라오라고 하실 때 따라가지 않으면 불의요 죄이다.

 

의를 하나 이루면 자기 영이 그만큼 배가 부르고, 강해지고, 자라나고, 커짐으로 하늘나라에서 상급이 그만큼 크다. 고린도후서 9:9기록한바 저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라고 하였다. 하나님이 주신 물질을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했으므로 그 의가 영원히 하늘나라에 남아 있다는 뜻이다. 참된 신앙으로 의를 이루어 나가면 영혼이 만족하고 새 힘을 얻어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고 그것이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남아 있게 된다.

 

5: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다섯째는 긍휼히 여기는 자의 복이다.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긍휼을 베푸신다. 성도가 하나님께 받은 긍휼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어야 한다. 우리에게 있는 긍휼(적은 긍휼)을 다른 사람에게 주면 하나님은 더 많은 긍휼을 우리에게 주신다. 우리가 긍휼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면 하나님은 계속해서 더 많은 긍휼을 우리에게 주시게 되므로 긍휼의 그릇이 점점 커진다. 그릇이 커지면 하나님의 긍휼을 더욱더 많이 받게 된다. 우리 성도가 항상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겨 허물을 덮어 주어야 한다. 우리에게 손해를 주고 잘못을 범하였을지라도 불쌍히 여겨 용서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남을 긍휼히 여기지 않고 관용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긍휼 없는 심판을 받게 된다(약 2:13 참조).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일곱 번까지 용서해 주면 되겠느냐고 묻는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 주라고 하셨다. 또 믿지 않는 사람들의 영혼을 불쌍히 여겨 복음을 전해 주어야 한다.

 

5: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여섯째는 마음이 청결한 자의 복이다. 마음이 청결해지려면 물욕과 정욕과 사욕을 벗어버리고 중생한 영혼을 따라 살아야 한다. 마음이 부패성(욕심)을 따라 살 때에는 더럽고 악한 마음이 된다. 그러나 마음이 성령과 중생한 영혼을 따라 살 때에는 청결하고 거룩하게 되어 그 마음을 통하여서 하나님과 사귀게 되고 하나님을 볼 수 있다. 신자의 마음과 육신이 중생한 영혼에게 이용될 수도 있고 육체의 부패성에 이용될 수도 있다. 중생한 영혼에게 이용될 때에는 의의 병기가 되고 부패성(죄성)에게 이용될 때에는 불의의 병기가 된다(6:15-19 참조).

 

중생한 영혼에는 언제나 성령이 내재한다. 그러므로 중생한 영혼이 마음을 사용하면 청결한 마음이 된다. 성경에는 마음이 두 가지 상태로 표현되어 있다. 마음이 전적으로 부패하였다는 말씀도 있고(7:18, 17:9, 7:21-23 참조), 하나님을 사모하는 좋은 마음으로도 표현되어 있다(7:25, 13:34-35, 왕상 8:18,23 참조). 중생한 영이 마음을 사용할 때에는 선한 마음이 되어 하나님을 사모하고 즐거워하고 하나님의 뜻만 좋아하며 그 뜻대로 살려고 한다(7:22). 반대로 부패성이 마음을 이용하면 악한 마음이 되어 하나님을 멀리하여 떠나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게 된다. 마음이 청결한 자가 되려면 마음이 항상 중생한 영에 붙들려서 중생한 영에 인도를 받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과의 교제가 이루어지고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마음이 된다.

5:9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일곱째는 화평케 하는 자의 복이다. 화평케 하는 자란 하나님과 화평하고 자기 마음에 화평을 누리고 다른 사람과 화평하는 사람이다.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어 자기 마음이 화평을 누리고 다른 사람과 화평하여야 복이 있다. 성도는 모든 일을 화평으로 해결해야 한다. 불의를 당하고 속는 한이 있더라도 화평한 가운데 모든 문제를 해결하도록 힘써야 한다(고전 6:7 참조). 사람이 악한 마음을 쓰면 한없이 악하여지고 선한 마음으로 나 아가면 아무리 억울하고 불의를 당한 경우에라도 화평을 이룰 수가 있다. 마귀는 육신의 부패성(정욕)을 충동시켜 마음에서 화평을 제하여 분노하게 만들고, 미워하게 만들려고 한다. 우리가 우리의 마음이 성령과 중생한 영혼을 따라가도록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중생한 영인 성령의 역사를 힘입어 내 마음을 붙들고 사용하면 무슨 일에나 화평을 이루며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게 된다. 성령과 중생한 영에게 이용되는 마음은 항상 평안하고 다른 사람과도 화평을 이루기를 원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아들의 행동이며 따라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일컬음을 받게 된다. 만일 반대로 불화하는 자가 되면 화가 있나니 마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다. 어떤 사람으로 인하여 억울하게 고통 가운데 빠져 있다고 하더라도 마음을 선하게 쓰고 하나님을 순종해 나가면 마침내 하나님이 건져주시게 된다.

 

5:10-12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여덟째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의 복이다. 의를 이루어 나아가려면 반드시 핍박이 오게 되어 있다. 언제나 예수를 바로 믿으려고 하면 여러 가지로 비방과 핍박을 받게 된다. 그러나 핍박이 올 때에 기뻐해야 한다. 의로 인해 핍박이 오는 것은 바로 믿는 증거이다. 서 있는 나무는 바람을 맞게 되나 누워 있는 나무는 바람을 맞지 않는다. 태풍 맞는 것이 싫다고 부러져 누워 있는 나무는 잠시는 평안할지 모르지만 태풍이 지나가면 말라죽고 만다. 바로 서서 태풍을 견디어 낸 나무는 고난이 많았으나 태풍이 그치고 해가 나오면 더 싱싱하게 자라나고 뿌리가 더 깊이 박힌다. 성도에게 핍박이 오는 것은 믿음이 산 증거이고, 의의 길을 걷는 증거이다. 핍박을 믿음으로 통과하면 연단이 되어 더 좋은 인격이 만들어진다. 전에 있던 모든 선지자들도 핍박을 받았고 거짓말로 비방을 당한 것이다. 성도가 핍박을 받게 되면 선지자가 걸어간 길을 걸어가는 줄 알고 기쁘게 받으며 끝까지 참고 믿음을 지켜 나가야 한다. 주님과 의를 위해 핍박을 달게 받으면 하늘나라에서 상급이 크다. 그러므로 의를 위해 핍박당하는 것을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한다.

[창조과학 성경공부] 창조론과 진화론의 차이점 질문과 해답

 

[창조과학 성경공부] 창조론과 진화론의 차이점 질문과 해답

창조론과 진화론의 차이점 질문과 해답 1. 생명이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가? 오늘날의 실제적 질문은 종의 생존문제 라기보다는 인류가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느냐 하는 것이다. 그 기원 문제를

bethlehem123.tistory.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