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히브리어성경

[마태복음 신약히브리어 성경말씀] 회개를 선포하는 세례 요한(마 3:5-12)

베들레헴 2022. 5. 25.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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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3장에서는 세례 요한이 요단강에서 회개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요단강에 나와서 세례를 받고 있습니다.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있습니다.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요단강으로 나오는 것을 요한이 보았습니다. 요한은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율법주의 신앙자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회개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구원받아야 합니다.

 

회개를 선포하는 세례 요한(마 3:5-12)

 

대중인도(大衆引導)(5-10)

• 3:5-7  이 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세례 베푸는 데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세례요한이 세례를 베풀어 준 것은 하나님께 맡은 자기의 직무를 수행한 것이다.  하나님 앞에 돌아오려는 백성들에게 요한은 자기가 해야 할 일과 의무를 성실히 이행한 것이다.  요한이 백성들에게 세례를 준 것은 자기 육신의 평안이나 자기의 유익을 구한 것이 아니다.  우리도 교회에 대한 자기의 사명과 자기의 직무를 감당할 줄 알아야 한다.

예수님이 세례요한에게 나아올 때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하고 예수님을 밝히 증거하고 자기는 예수님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한 자라고 하면서 모든 사람을 예수께로 보냈다.  세례요한은 참으로 믿음 있는 일을 하였다. 

자기 제자들이 모두 예수님께로 가는데 좋다고 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세례요한은 만족하게 여겼다.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요3:29)고 하였다.  세례요한은 모든 것을 다 내어놓고 아무것도 자기 것으로 삼아 놓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삼아 놓고 하나님이 하라는 대로만 하는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하라 하면 하고, 그만 두라 하면 그만두는 사람이다.  우리 성도들도 모든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삼아 놓고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충성을 다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교역자들도 교회를 하나님의 것으로 알고 하나님이 하라는 대로만 해야 한다.  마음으로는 늘 이삿짐을 싸놓고, 내일이라도 떠나라 하면 떠날 각오를 하고 목회를 해야 하며, 있는 동안에는 충성을 다하여 자기의 책임을 잘 감당해야 한다.  세례요한이 자기 위치를 바로 알았을 뿐 아니라 세상의 것을 초월하여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신 것이다.  우리 성도는 하나님 앞에 마땅히 해야 할 사명과 의무가 있으니 그 사명을 다하지 못하면 하나님 앞에 큰 죄가 된다.

• 3: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우리는 날마다 회개하여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 앞에 해야 할 일을 감당하지 못한 것과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못한 것을 찾아서 회개하여야 한다.  아무리 회개를 다한 것 같아도 또 회개할 것이 남아 있다.  그러므로 날마다 회개하면서 자기의 죄를 벗어버려야 한다.  죄가 없다 하는 사람은 거짓말하는 사람이다(요일 1:8-10 참조).  날마다 죄를 찾아서 회개해야 심령이 깨끗해지고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회개하지 못하는 것은 교만하기 때문이다.  죄 가운데 제일 큰 죄는 교만 죄이다.  우상 섬기는 죄도 큰 죄이지만 우상을 섬기게 되는 것도 결국 교만하기 때문이다.  교만은 죄의 근본이다.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것도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교만한 마음 때문이었다. 마귀가 하늘나라에서 쫓겨난 것도 교만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교만이 가득하여 그 교만이 쉬지 않고 나온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으나 교만 때문에 버림을 당하고 하나님이 귀히 쓰는 자리에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사울 왕도 교만 때문에 망하였고, 다윗도 교만하여 인구 조사를  하다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7만 명이 죽었다.  웃시야 왕이 문둥병에 걸린 것도 교만 죄 때문이었다. 이처럼 교만은 사람을 망하게 만드는 죄의 근본이다.  바울이 자신은 성도 가운데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으며 죄인 중의 괴수라고 하여 겸손하였다.  그러나 바울을 그냥 놓아두면 교만해질까 봐 교만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그에게 가시를 주셨다(고후 12:7 참조).

그러므로 날마다 가시가 바울을 찔러서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게 만들었다.  실상 바울이 받은 계시가 크므로 교만해질 가능성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바울을 망하지 않게 하려고 사랑으로 가시를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성도를 아침마다 정책 하시고 분초마다 시험하시며 침 삼킬 동안도 놓아두지 아니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요 은혜이다(욥 7:18-19 참조).

세상에서 잘되는 것만 복인 줄로 알아서는 안 된다.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만사형통하게 되는 것만이 복이 아니다.  재앙과 징계도 하나님께서 복으로 주시는 것이다.  외부로 나타나 보이는 면이 잘되고 영적으로는 낭패를 당하는 것보다 보이는 면이 잘 안 되더라도 영적 열매가 많이 맺히는 것이 복이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말로만 회개한다고 하여서는 안되고 실제로 고쳐 나아가야 한다. 죄를 짓던 자리에서 돌이켜 못된 행실을 끊어버려야 한다.  죄짓는 습관을 끊고, 선한 사람이 되어  그리스도를 닮아 나아가는 것이 회개에 합당한 열매이다.

 • 3:9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이스라엘 백성이 조상을 자랑하고 혈통을 자랑하는 자리에 빠지지 말라는 뜻이다.  외부적인 혈통만 자랑해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갖지 않으면서 아브라함의 혈통만 자랑한다면 아브라함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신다.

아브라함이 걸어간 신앙의 길을 실제로 걸어가면서 다윗과 같이 전심으로 하나님을 좇고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순종하는 사람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다.  외부적으로 아브라함이 자기 조상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이 아브라함과 같은 생명 있는 신앙을 가졌는가가 문제이다.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지고 영적 생명의 역사가 있다면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로마서 11:17에 “또한 가지 얼마가 꺾였는데  돌 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정 붙임이 되어 참 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 되었은즉”이라고 하였다.  돌 감람나무와 같은 이방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참 감람나무(이스라엘)에 접붙여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실 수가 있다.  이스라엘 사람이 천대하고 멸시하는 이방인을 불러서 성도의 반열에 참여케 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요 능력이다.  혈통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더라도 아브라함의 신앙을 갖지 아니하면 꺾어 버리고 그 대신 이방 사람들을 접붙여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외부적인 혈통은 결코 자랑할 것이 못된다.

 • 3:10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도끼로 다 찍어 버리신다.  하나님께서 심판의 도끼를 나무뿌리에 놓고 좋은 열매를 맺히나 못 맺히나 살펴보시고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면 다 찍어 버리실 것이다.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명령 한 마디에 다 찍혀 버릴 것이라.  하나님의 심판의 도끼가 내려오면 그것을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상태를 살펴보시고 우리가 악한 열매만 맺고 좋은 열매를 맺을 소망이 없을 때에는 당장에 심판해 버리실 것이다.  예수 믿는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를 쌓는 나쁜 열매를 맺게 되면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가 내려온다.  성도가 성경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양심을 쓰지 않고, 서로 싸우고 다툰다면 믿지 않는 사람과 다를 바가 없다.

예수 믿는 성도들이 마음으로 하나님을 떠나 말씀을 거역하고 나아가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를 쌓고,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인 것처럼 심판이 임박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거짓 선지자들은 “괜찮다”  “평안하다” 하며 사람의 비위만 맞추어 준다.  에스겔 시대에도 분명히 하나님의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기 때문에 에스겔 선지는 하나님의 진노가 내려온다고 하였으나 거짓 선지자들은 “평안하다 평안하다”라고 백성을 미혹했던 것이다.  지금 강대국들이 비축해 놓은 핵무기는 세계를 40여 번 망하게 할 수 있다고 한다.  하나님께서 앞으로 세상을 심판할 도끼로 핵무기를 이용하실는지도 모른다.

부패한 인간들이 핵무기를 가지요 있으니 언젠가는 한번 사용할 날이 올 것이다.  우발적인 핵전쟁이 일어나서 확대될 수도 있고 악한 지도자가 나와서 침략 수단이나 방위 수단으로 핵을 사용하게 되어 전 세계가 핵전쟁에 휘말려 들어갈 수도 있다.  한국의 입장에서 보아도 도끼가 휴전선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언제 전쟁이 일어날는지 모르는 긴박한 상황에 처해 있다.  하나님의 심판의 도끼가 언제 내려올지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경성하여 회개하고 하나님만 의지하며 나아가야 한다.

 

구주를 밝히 증거함(救主明證)(11-12)

 • 3:11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려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세례요한이 베푼 물세례는 회개의 세례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로 회개시켜서 그리스도가 공적으로 나타나실 때에 그에게로 인도할 목적이었다(16절 해석 참조).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요한의 세례는 물로 주는 것이며 회개케 하는 세례이다.  이것은 외부적이고 의식적인 세례이며 예수님을 영접하기 위한 준비이다.

불세례는 죄인이 믿음으로 근본적으로 정화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죄에서 정결케 되고 새로운 생명이 하나님에 의해서 죄인에게 주어진다.  우리가 예수님께 나아가야만 본질적으로 정화가 되고 변화가 된다. 

요한의 세례는 어느 정도 외부적으로 회개케 하여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일과 죄를 뉘우치고 죄를 떠나는 생활을 하게 하였으나 영에까지는 영향력을 주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셔서 하시는 회개운동은 영 에게까지 영향력을 주어 본질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일이다.

누가복음 12:49-50에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 이루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라고 하였다.  불을 땅에 던지러 왔다는 것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려고 예수님이 오셨다는 말씀과 같은 것이다.  그 불이 아직 붙지 않았으나 이제 붙을 것이라고 하셨다.  불은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으로 이루어 주시는 구속 성취를 말한다. 하나님은 죄인들이 죄 가운데서 멸망받는 것을 보시고 불쌍하여 참을 수가 없다.

죄를 짓고 죄 값으로 망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으로 볼 때에 그냥 둘 수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죄지은 것을 그냥 묵인할 수도 없다.  죄의 값은 반드시 갚아야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뜨거운 사랑으로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어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우리의 구속을 이루어 주신 것이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구속의 도리를 성취시키는 일은 하나님의 열렬한 사랑의 불이 나타난 열매이다. 예수님이 불로 정화시킨다고 할 때 불은 구속의 도리요 하나님의 말씀이다.  말씀 가운데는 우리 죄를 소멸하고 우리를 건져내는 재료가 풍성하고 충만하다.  성령께서 그 말씀을 가지시고  역사하셔서 우리를 정결하게 하고 우리 영을 살려 나가신다.

예수님께서 불을 땅에 던지러 왔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불, 보혜사 성령으로 역사하시는 말씀의 불을 말한다.  구약시대의 율법은 그 재료가 약하다(롬 8:3-4 참조).  그러므로 성령의 역사도 약하였다.  신약시대의 복음은 재료가 강하고 하나님의 사랑이 명백하게 나타났다.  그러므로 성령이 강하게 역사하여 성령의 역사가 강력하고 충만하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신 것은 성령께서 신약시대에 강하게 역사하시기 시작한 것을 보여 준 것이다.

구약시대의 율법은 연약하고 육체의 부패성은 강하기 때문에 구속의 역사를 이룰 수 없으므로,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보내어서 우리 죄를 짊어지게 하시고 구속을 이루어 주신 것이다.  신약시대는 진리도 충만하고 성령도 강하게 역사하시기 때문에 성도가 육신을 좇지 않고 영을 좇아 살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갈 수 있다.  불로 세례를 준다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예수님이 구속을 이루어 놓으신 그 복음은 하나님의 사랑이 강하게 역사한 복음이요, 따라서 성령도 강하게 역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죄를 벗어  버리는 일과 의를 이루어 나아가는 일도 강하고 그만큼 뜨겁게  역사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불로 정결하게 만들어진다고 했다.

성도는 누구나 예수를 믿을 때에 불세례를 받은 것이며, 성령께서 계속하여 말씀으로 뜨겁게 감동을 시켜 성도를 더욱더 정결하고 더욱더 깨끗하게 만들어 간다. 예수님의 불세례는 하나님의 열렬하고 뜨거운 사랑이 내포되어 있는 말씀을 가지고 성령으로 우리에게 역사하여 우리 영혼을 날마다 살려 나아가고 죄악을 떠나 점점 정결케 만들어 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복음운동은 불로 세례를 주는 운동이다.  외부적인 의식도 아니고 조직적으로 움직여 나아가는 단체운동도 아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을 때에 성령의 감동으로 마음이 뜨거워지고, 죄를 떠나 하나님의 의에 참여하여 점점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어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바로 깨닫고 또 자신이 어떠한 자인 줄도 바로 알았다.  세례요한처럼 훌륭한 사람도 예수님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고 하였으니 우리들이야 말할 필요도 없다.  우리도 세례요한과 같이 겸손하여 주님만 높이고 주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한다.  우리가 자신에 대하여 알면 알수록 우리는 부족하고, 연약하고, 죄악이 가득한 것을 고백하게 된다.  그러나 예수님에 대하여는 알면 알수록 예수님이 거룩하시고, 높으시고, 능력이 무한하신 것을 깨닫게 된다.

• 3:12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예수님의 절대적인 심판권을 가리킨다.  예수님은 세상을 심판하사 사람들이 행한 대로 갚아 주신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가 불로 점점 정결함을 받아서 신앙의 열매를 많이 맺고 알곡이 되어야 한다. 정결함을 받아 깨끗해져야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요한복음 15:2에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하게 하시느니라”라고 하였다.  불로서 정결함을 받아야 새 생명의 싹이 나오고 열매가 맺혀 알곡이 된다.  알곡이 되지 못한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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