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히브리어성경

[신약성경 히브리어 마태복음 설교] 요단강의 예수님 세례식(마 3:13-17)

베들레헴 2022. 6. 6.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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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3장에서 예수님은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게 됩니다. 세례를 받으신 후에 공생애 사역이 시작됩니다. 요셉의 아들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하나님의 사역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인간이며 완전한 하나님입니다. 세례 요한으로부터 예수님이 세례를 받을 때 하늘에서는 성부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도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구원받은 백성은 성령 세례를 받게 됩니다. 구원의 확신을 받은 자가 교회에서 물세례를 받게 됩니다. 물세례는 구원의 표식으로 받게 됩니다.

 

요단강의 예수님 세례식(마 3:13-17)

 

예수님이 세례를 받음(13-17)

• 3:13-15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서 요단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신대 요한이 말려 가로되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신대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고 오졌다. 그 때에 요한이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어떻게 내게로 오시나이까”라고 말하였다. 요한은 참으로 겸손한 사람이다.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누가 세례를 주고 누가 세례를 받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의 일만 잘되면 좋은 것이지 네가 세례를 줄 수 있다 없다 말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 그것을 이루어 나아가면 그것으로 만족한 것이다. 세례를 주는 사람은 높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낮다고 하는 제도적인 면이나 의식적인 면에 얽매이지 말고 다만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나(예수님)도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야 되겠고, 또 너 (세례 요한)도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야 되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예수님이 세례 받으시는 일은 하나님을 순종하는 일이었고, 또 모든 택한 백성을 대신하여 행한 것이며 모든 성도의 모본(模本)으로 받는 일이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완전히 순종하고 택한 백성들을 위해서 신구약 성경 말씀을 다 지키어야 한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온전히 순종하려면 세례 받는 일까지 순종하여야 되고, 따라서 세례를 받아야 의가 되는 것이다.

세례요한은 세례 주라고 하나님이 보내셨으므로 세례를 주는 것이 요한의 의무이며 책임이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도 하나님을 순종하여 자기 책임을 다하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이 된다. 예수님은 세례 받는 것이 하나님의 의가 되고, 세례 요한은 세례를 주는 것이 하나님 앞에 의가 되는 것이다.

• 3:16-17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네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쌔 예수님께서 물(강)에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 없는데(육지)로 올라오셨다는 말이다. 이 말씀을 가지고 예수님이 세례 받으실 때에 물속에 완전히 잠겼다가 물 위로 올라온 것처럼 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다. 예수님이 물에서 땅으로 올라오실 때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하였다. 물속에 들어갔다가 나왔다는 말이 없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어떻게 물에 잠갔다가 꺼낼 수가 있는가?  물을 떠서 끼얹는 것이 신사적이고 또 구약에서부터 내려오는 세례의 원 뜻에 맞는다.

세례(βαπτι´ζω)라는 말은 “잠그다”, “적시다”, “씻는다”, “씻어서 정결케 한다”는 뜻이 있다. 침례교파에서는 “잠근다”는 뜻으로만 해석하여 침례를 주장한다.

세례라는 헬라원어가 βαπτι´ζω(밮티조)인테 변형되어 βαπτω(밮토-), βα´πτισμα(밮티스마), βαπτιστη´ς(밮티스테-스)로 되어 성경 여러 곳에 사용되었다.  누가복음 11:38에 “잡수시기 전에 손 씻지 아니하심을…” “손씻지”나 요한복음 13:26의 “떡 한 조각을 찍어서…”의 “찍어서"가 다 βαπτι´ζω라는 말이 변형된 말이다.

침례교파에서는 잠근다는 뜻에만 국한시키고 다른 뜻을 무시한 것은 헬라어 원문을 올바로 해석한 것이 아니다.  물론 “잠근다”라는 뜻도 있다. 그러나 “씻는다” “적신다”는 뜻도 있다. 원문의 뜻만 가지고는 잠그는 것인지, 씻는 것인지, 적시는 것인지 확실히 나타낼 수 없다. 침례교파에서는 일방적으로 “잠그다”로만 해석하여 침례만이 참된 세례라고 주장하는 것은 전체를 무시하고 의식(儀式)에 치우쳐 침례를 고집하는 것이기 때문에 옳지 않다.

세례요한이 세례를 줄 때 사람들을 물에 잠갔다가 꺼냈을까?  아니면 물을 떠서 머리에 끼얹었을까?  세례의 기원은 세례 요한의 때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다. 전에 없던 세례를 세례 요한이 새로이 시행하였다고 하면 백성들이 당연히 세례가 무엇이냐고 물어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백성들이 무슨 뜻으로 이렇게 하느냐고 물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세례는 구약시대부터 유래한 것인데 세례요한이 특별히 많이 행한 것뿐이다. 그러면 세례가 구약시대에 무엇에서부터 유래되었는가? 모세가 송아지의 피를 뿌려 성소를 정결케 하였다(출 29:16 참조). 에스겔 36:25에 “맑은 물로 너희에게 부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을 성경에서 너희를 정결케 할 것이며”라고 하였다. 또 문둥병 걸렸다가 정결케 된 자는 살아있는 새(烏) 두 마리를 제사장에게 가져가면 한 마리는 죽여서 피를 내어 그 피를 제사장이 찍어서 문둥병 걸렸다가 나은 사람에게 일곱 번 뿌려 “정하다” 하라고 했다(레 14:5-6 참조).  이와 같이 구약시대의 모든 정결케 하는 예식이 모두 물이나 피를 뿌리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이 베푼 세례도 뿌려서 정결케 하는 예식의 일부였다.

베드로가 하루에 3천 명이나 세례를 주었는데 3천 명을 모두 물에 잠그었다가 꺼내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겠는가!  물에 잠그었다가 꺼낸다면 철야하여 24시간 동안 세례를 베푼다고 하여도 3천 명을 다 세례주지 못한다. 바울이 다메섹에 가서 금식 기도하다가 아나니아에게 안수 기도를 받고 일어나 세례를 받았다고 하였지 물에 나가서 세례를 받았다고 하지는 않았다.  방에서 기도하다가 일어나 세례를 받은 것이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감옥에 갇혔을 때 간수와 그의 온 가족이 예수를 믿고 세례받았다(행 16:33 참조).  강에 가서 세례를 준 것도 아니요, 목욕통을 만들어서 세례를 준 것도 아니었다.  즉시 머리에 물을 끼얹어 세례를 주었다고 보아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 바다에서 세례를 받았다고 하였다(고전 10:1-2 참조).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 바다 물속에 완전히 잠겼다가 나왔는가?  물속에 들어갔다 나오지 않고 바다를 육지같이 건넜으나 그것을 곧 세례라고 하였다.

침례파에서는 세례가 죽었다가 살아나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즉 다시 말하면 물속에 들어간 것은 옛사람이 죽어서 장사 지낸 것을 상징하고 물속에서 올라오는 것은 새 사람이 살아 올라왔다고 해석한다.  세례의 참 뜻이 “씻어서 정결케 한다”라고 해야 성경 전체의 사상에 맞는다.  그러므로 세례를 받을 때에 꼭 물속에 들어갔다가 나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우리는 적수(滴水) 세례 가 옳다고 본다.

침례교파에서 적수세례를 무시하고 다시 침례를 받아야 한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삼위의 이름으로 건전하게 세례 받은 것은 피차간 인정하고 나가는 것이 옳다. 그런데 삼위의 이름으로 세례 받은 것을 취소하고 다시 침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은 의식주의이고 독선적이다.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하였다고 했으나 성령의 모양이 비둘기 같이 생긴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우주에 충만한 분이시고 영이시기 때문에 형태가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비둘기 같은 모양으로 임한 것은 상징적인 뜻이 있다. 비둘기는 하나님께 제물로 이용되는 새이다. 구약시대에 하나님께 제사드릴 때에 소나 양이나 비둘기를 제물로 드렸다. 그러므로 성령이 비둘기 같은 모양으로 임하신 것은 예수님이 세상 죄를 지고 하나님께 제물로 바쳐지게 될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이다. 성령은 예수님께서 하나님 앞에 완전한 제물이 되도록 역사하시는 것이다. 내 아들이요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예수님이 아들로서 다 받았다는 뜻이다. 기뻐하는 자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어 드린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것을 다 받을 수 있는 분이시고 하나님의 계시를 다 받아 은혜와 진리를 우리에게 전부 전달하여 주신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하시는 인을 완전히 다 받아서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어 드리므로 하나님의 구원 운동을 완성하시는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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