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 자료 말씀

[신명기 성경공부자료] 신명기의 특별 주제와 저작설에 관한 논쟁

베들레헴 2024. 3. 22. 13:16
반응형

신명기 성경공부자료에서는 신명기의 특별 주제와 저작설에 관한 논쟁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신명기는 모세의 설교로 시작합니다. 과거를 회상하면서 광야 2세대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어떻게 여호와 하나님을 섬겨야 할 것인지에 관하여 말씀합니다.

 

신명기의 특별 주제와 저작설에 관한 논쟁

 

I. 신명기의 저작설

신명기에서 가장 커다란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신명기의 저자가 모세인가 아닌가 하는 '신명기의 모세 저작설'에 관한 논쟁이다. 오경의 다른 네 권과 구약의 다른 책에 관해서도 저자에 대한 논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특별히 신명기의 저작설에 관한 논쟁이 제일 크게 대두되는 것은 신명기 안에서 모세의 저작이 아닌 후대의 편집처럼 보이는 부분이 가장 많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분들을 가지고 현대의 이성적 비평가들은 신명기의 저자가 모세가 아닌 후대의 여러 저자들, 혹은 여러 문서들의 편집이라 주장하면서 모세를 신명기의 유일한 저자로 증거하고 있는 성경의 증거를 거부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해석은 후대의 편집처럼 보이는 말씀들을 그 당시의 상황과 환경에 적용시켜 해석하지 못하고 단순히 그 의미를 문자적으로만 해석하려 한 오류의 결과였다. 그러므로 신명기의 모세 저작설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먼저 그러한 부분들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필요로 하는데 본문에서도 모세의 저작설을 증명하기 위해 먼저 신명기의 난해한 해석 부분들을 새롭게 해석 제공한 뒤 모세의 기록에 대한 성경의 증거들과 성경 외적인 증거들을 제시하여 신명기의 모세 저작에 대한 전통적인 견해를 다시 한번 확실하게 증명하고자 한다.

1. 후대의 편집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의 견해

1) 모세의 죽음에 대한 기록(신34장)

모세의 저작설을 부인하는 자들의 가장 강력한 주장은 모세의 사망을 기록한 신 34장의 내용이다. 그들은 만약에 모세가 진정한 신명기의 저자였다면 어떻게 자신의 죽음과 그 후의 일에 대해 기록할 수 있겠느냐고 주장하면서 모세의 죽음과 그 후에 대한 기록은 모세 이후에 기록된 것이 틀림없으며 따라서 신명기는 모세의 기록이 아니라 후대의 기록을 편집한 편집물이라는 것이다.

2) '요단 저편'(신 1:1)

모세의 저작설을 부인하는 자들의 두 번째 근거는 신 1:1절의 '요단 저편'이라는 표현이다.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모세와 이스라엘이 도착한 모압 평지에서 바라본 '요단 저편'은 요단 강 건너편의 땅, 즉 가나안을 의미하며 따라서 신명기의 저자 역시 '요단 저편'의 가나안 땅에 거하던 거주민이나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한 후 거기서 태어난 후대의 이스라엘인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3) '오늘날과 같으니라'(2:30)

모세의 저작설을 부인하는 자들의 세 번째 주장은 신명기에 여섯 번씩이나 기록되어 있는 '오늘날과 같다'라는 표현이다(참조, 2:30; 4:20, 38; 8:18; 10:15; 29:28). 그들은 '오늘날과 같다'라는 표현을 후대의 사람들이 과거의 역사를 살펴볼 때 과거의 역사가 현재의 역사와 동일한 상태임을 발견할 때 사용되는 표현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표현이 본서에 여섯 번씩이나 강조되어 반복된 것은 본서 신명기의 저자가 모세가 아닌 후대의 역사가, 기록자라는 사실을 증명해 준다는 것이다.

2. 후대 편집설에 대한 반증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후대의 편집설을 지지하는 듯한 위의 세 구절들은 어떠한 관점에서 해석하는가에 따라 후대의 편집설을 주장하는 말씀들이 될 수도 있고, 정반대로 모세의 저작설을 주장하는 말씀들로 해석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러한 관점의 차이는 무엇인가? 그것은 단순한 문자적 해석을 초월하여 신명기가 쓰일 당시의 상황이나 풍습, 그리고 고고학적 증거까지도 참조하여 해석하는 해석의 차이이다.

이제 이러한 해석들 중 성경을 보다 넓고 심오하게 해석하는 후자의 견해를 가지고 위의 말씀들을 새롭게 해석함으로 후대의 편집설에 대한 오류를 살펴보기로 하자.

1) 34장에 대한 새로운 견해

먼저 신 34장의 해석을 살펴보자.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신 34장에 대한 보수주의의 견해는 '모세의 예언적 저술'이라는 설명이었다. 즉 모세가 자기의 죽음을 예견하고서 자신의 죽음과 그 후에 될 일들에 대해 예언적으로 기록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근래에 와서는 이러한 입장보다도 대다수의 보수주의 역시 신 34장의 기록만은 모세의 기록이 아님을 인정하는 쪽으로 기울어졌다. 왜냐하면 신 34장의 기록은 모세의 죽음뿐만 아니라 모세의 죽음 이후의 일, 즉 모세의 장례와 백성들의 애통함, 그리고 여호수아의 영도 하에 가나안으로 전진하는 이스라엘의 모습에 관한 일들까지도 모세의 예언이라고 보기에는 그것이 너무도 생생하고 세밀하게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 34장의 기록은 아무리 봐도 모세의 기록이나 예언적 서술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우며 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가 기록하여 첨가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렇듯 신 34장의 기록이 모세의 기록이 아니라 해도 신명기 전체를 모세의 저작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신 34장의 기록은 어떤 위인의 마지막 작품에 그의 사망 기사를 첨가시키는 매우 관례적인 풍습에 따라 기록된 기록이었는데(Gleason Archer). 이러한 습관은 현대에도 시행되어 위인의 전기나 유명한 저술의 뒤에는 언제나 작가에 대한 프롤로그나 그의 사망, 그리고 그와 관련된 그 후의 일들에 대한 약간의 언급이 뒤따르는데 그러한 기록이 뒤에 삽입되었다고 해서 그 책의 원저자가 바뀌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비록 신 34장의 기록이 모세의 기록이 아닌 여호수아의 기록이라고 해서 신명기에서 제외시키거나 성경에서 제외시킬 수는 없는데 그것은 신 34장 역시 성령의 영감하에 쓰인 성경의 한 부분이며 신명기의 끝맺음과 오경의 결론을 위해 가장 적당하고 없어서는 안 될 유익한 기록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비록 신 34장의 기록이 모세가 아닌 여호수아에 의해 기록된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모세의 저작설에 대한 반박 증거가 될 수는 없다.

2) '요단 저편'이라는 표현에 대한 새로운 증거

모세의 저작설을 부인하는 자들에 의하면 '요단 저편'이라는 말은 당연히 '가나안 땅'을 의미하는 것으로 설명된다. 그러나 '요단 저편'이 꼭 '요단강의 저편 쪽'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 말은 때로 어떤 지역을 칭하는 고유명사를 뜻하기도 하였는데 '요단 저편'은 일찍이 팔레스틴 원주민에 의해 모압 평지에 붙여진 이름이었으며, 동시에 모압 평지에 거하는 주민들에 의해서도 모압 평지가 '요단 저편'이라 불렸었다(정규남, '구약개론', 개혁주의 신행협회, 1986, p. 186). 이러한 사실은 고대 시대에만 통용되던 사실이 아니라 신약 시대 역시 그러한 의미가 사용되어 신약 시대 때에도 모압 평지의 거주자들에 의해 '저편 땅'(Peraea)으로 불렸다(Archer, 'A Survey of Old Testament Introducion, Moody Press, 1980, p. 256). 그러므로 '요단 저편'이라는 표현은 단순히 모압에서 바라본 '요단 저편', 즉 가나안 땅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모압인들이 살고 있던 모압 지역 자체를 의미하는 지명이기도 하며 따라서 '요단 저편'이라는 표현 때문에 신명기의 기록자를 모세가 아닌 '가나안 땅의 거주자, 또는 가나안을 정복한 후대의 이스라엘인에 의한 편집'이라는 그들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는 학설이다.

3) '오늘날과 같다'는 말에 대한 반대 해석

모세의 저작설을 부인하는 자들은 '오늘날과 같다'는 표현을 '후대의 저자가 신명기의 사건이 자신들이 처한 상황과 동일함을 발견하고 기록한 표현'으로 해석, 신명기의 후기 편집설에 대한 강력한 증거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신명기의 나타난 여섯 번의 표현 모두를 모세가 40년 광야 생활을 회고하는 당시의 상황과 부합시켜 볼 때 이러한 표현은 40년 광야 생활을 회고하는 당시의 상황과 부합시켜 볼 때 오히려 이러한 표현은 40년 광야 생활을 마친 모세가 자신과 이스라엘의 생애를 되돌아보면서 40년 전에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주셨던 축복의 약속이 지금까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는 것을 깨닫고 감사하는 모세의 모습과 너무나도 잘 일치됨을 발견할 수 있다. 2:30절의 '오늘날과 같다'라는 말씀은 시혼을 정복하는 일이 모세의 임종 시까지 계속됨을 뜻하며, 4:20절의 '오늘날과 같다'는 말은 이스라엘이 받았던 축복의 약속이 끊이지 않고 계속됨을 가리키는 등 신명기에 나타난 여섯 번의 모든 경우가 이스라엘이 겪었던 40년 광야 생활의 연속성과 계약의 연속성에 관한 말씀이다. 그러므로 '오늘날과 같다'라는 표현이 후대의 자작설에 대한 증거라는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는 학설이다.

3. 모세의 저작에 대한 성경적 증거

신명기가 모세의 저작임을 밝히는 성경적 증거는 매우 많은 곳에 산재되어 있으며 그러한 증거들은 모두 신명기가 모세의 저작임을 부인할 수 없는 결정적인 증거들이다. 신명기 자체의 증거-신명기의 모세 저작에 대한 성경의 첫 번째 증거는 신명기 스스로의 자증이다. 즉 신명기에는 분명히 '이는 모세가 이스라엘 무리에게 선포한 말씀'이라고 증거 하여 모세의 저작에 대한 불필요한 논쟁을 금하였던 것이다(참조, 1:1; 4:44; 29:1; 31:9, 24). 예수님의 증거-예수님 역시 신명기를 분명한 모세의 글로 인정하심으로 신명기의 모세 저작설에 대한 확실한 판결을 내리셨다(참조, 7:10; 눅 20:28). 신약의 증거-신명기를 인용한 신약은 신명기를 모세의 율법, 또는 모세의 글로 증거 하였다(참조, 행 3:22; 10:19; 고전 9:9). 여호수아의 증거-신명기의 저자가 모세라는 사실은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에 의해서도 증거 되었는데 모세를 가장 가까이서 모시고 받들었던 그는 신명기에 대해 '모세가 자신에게 명한 글'이라고 증거 하였다(참조, 수 1:7) 구약의 다른 부분의 증거-구약성경의 다른 부분들 역시 신명기를 모세의 글로 인정하였다(참조, 3:4; 왕상 2:3; 3:2; 1:7; 103:7; 9:11; 4:4).

4. 저작설에 대한 결론

오경의 저자는 모세이다. 예수님 역시 신명기의 저자가 모세임을 증거 하셨다. 따라서 신명기의 저자가 모세임을 거부하거나 후기의 편집설을 주장한다면 종국에는 참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지적 무능이나 불완전함을 주장하며 인정하고 마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그러므로 신명기에 대한 모세의 저작설은 성경의 증거 그대로 증거 되어야 하며 또한 지켜져야 한다.

II. 이스라엘의 40년 광야 여정

신명기는 오경의 결론적인 책이다. 오경의 결론을 내리는 사건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그중 한 가지가 출애굽에서 시작한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이 모압 평지에서 가나안으로의 입성을 준비함으로 광야 생활의 종지부를 찍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신명기 연구에 앞서 그들이 지나온 광야 여정과 그 각각의 장소에서 일어났었던 독특한 사건들을 정리해 보는 것도 신명기 연구와 오경 전체에 대한 연구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게 될 것이며 이제 이러한 목적 하에서 이스라엘의 40년 광야 생활을 총 정리해 보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라 하겠다.

1. 애굽에서 가나안까지의 일반적인 경로

원래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나아가는 일반적인 행로는 세 가지였다. 그 첫째는 고센을 거쳐 블레셋 사람들의 땅을 통과하여 지중해를 끼고 북상하는 길이었으며, 둘째는 고센 지방에서 숙곳을 우편으로 바라보며 술 광야의 중심부를 통과하여 가나안의 중앙 부분을 통과하는 길이었고, 셋째는 ''(On)을 출발하여 수에즈만의 북단을 거쳐 시내 반도의 중앙부를 통과 아카바만으로 직행하는 길이었다. 이 중에서 세 번째 길, 즉 시내 반도를 통과하는 길은 애굽 사람들이 시내 반도에서부터 '동광석'을 얻어 들일 목적으로 개설한 일종의 산업 도로였다. 한편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향하는 가장 가까운 길은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가는 길'이었으나 그 길은 곳곳에 애굽 군대가 배치되어 있는 길이었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그 길로 인도하시지 않고 '숙곳'쪽으로 남하시켰다(참조, 13:17). 이러한 하나님의 인도는 비록 행로에 약간의 어려움은 따르겠지만 애굽 군대의 추적으로부터 이스라엘을 보호하시기 위한 것이었고,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이러한 세 가지의 경로를 모두 피하여 광야로 인도하셔서 그들의 첫 야영지를 '광야 끝 에담'에 정하게 하셨다.

2. '에담'으로부터 '시내산'까지

'에담'을 출발한 이스라엘은 바로와 그 군대가 홍해에 수장되는 하나님의 기적 속에 홍해를 건넌 후 '마라''엘림', 그리고 '신 광야''르비임'을 통과하여 그들의 첫 번째 정착지인 시내 광야에 도착하였다.

이러한 첫 번째 여행에서 일어났던 여러 가지 사건 중 제일 먼저 생각할 수 있는 사건은 홍해에서의 기적적인 구원이다. 홍해를 건넌 곳에 대해서는 '갈대 바다', '쓴 호수', '수에즈만의 위쪽 부분'의 여러 가지 학설이 있으나, 이 중에서 성경의 여러 가지 묘사와 가장 정확하게 일치하는 장소는 '수에즈만의 위쪽 부분'이라는 학설이다(홍해의 도하 장소에 대한 보다 자세한 언급은 본서 출애굽기의 서론 중 '홍해에 관한 고찰' 부분을 참조할 것). 다음으로 그들이 도착한 곳은 '마라'였다. 거기서 이스라엘은 쓴 물 때문에 여호와께 원망하였으나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쓴 물을 달게 하심으로 이스라엘의 갈증을 해결하여 주셨다(참조, 15:22-26). 하지만 '마라'는 이러한 하나님의 은총과는 달리 이스라엘이 최초로 원망을 시작함으로 그들의 불행스러운 미래를 예견하게 하는 곳이기도 하였다.

시내산까지의 여행 중 기억해야 할 만한 세 번째 사건은 '신 광야'에서 이루어졌다. 즉 이스라엘이 음식으로 인해 또다시 하나님께 원망을 늘어놓자 그들의 불평을 들으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하늘의 양식인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리셨는데 만나는 이후로 그들의 40년 광야 생활 동안 안식일을 제외하고는 단 하루도 어김없이 내리심으로(참조, 16), 후에 인류를 위해 자신의 몸을 제공하신 영원한 양식,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상징하는 예표가 되었다(참조, 6:32-35). '신 광야'를 떠난 이스라엘이 최초로 전쟁을 치른 장소가 바로 '르비딤'이었다(참조, 17:8-16). 하지만 르비딤에서 기억해야 할 또 다른 한 가지 사건이 있으니 그것은 반석에서 물이 나게 한 기적적인 사건이었다(참조, 17:1-7). 즉 이스라엘이 르비딤에 도착한 후 물이 없어 또다시 하나님께 원망을 털어놓자 하나님은 이번에도 긍휼을 베풀어 그들에게 반석으로 물을 공급하셨고, 후에 아말렉과의 싸움에서도 그들을 기적적인 역사로 보호하여 주셨던 것이다.

시내산까지의 여정 중에서 기억해야 할 마지막 사건은 시내 광야에서의 일이다. 이곳에서는 약 13개월 동안 체류하면서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수여받았고(그중 대표적인 율법은 십계명임) 성막을 건축하였으나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반한 최초의 구체적 범죄도 시행되었으니 그것은 금송아지 우상의 사건이었다(참조, 32). 그리하여 비로소 하나님은 진노하셨고, 그들을 모두 멸하려 하셨으나 그의 긍휼로 인하여 이스라엘 광야 여정은 계속될 수 있었던 것이다.

3. '시내산'에서부터 '가데스 바네아'까지

율법을 받고 성막을 건축한 '시내산'을 출발한 이스라엘의 두 번째 여정은 '다베라''기브롯 핫다아와' 그리고 '하세롯''에시온 게벨'을 거쳐 그들의 두 번째 정착지인 '가데스 바네아'에 도착하였다. 이러한 그들의 두 번째 여정은 '이스라엘의 불평''하나님과의 진노'의 연속으로서 이스라엘이 보인 불신앙의 정점은 그들이 첫 번째 정탐꾼을 보낸 가데스 바네아에서의 사건이었다. 이제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을 장소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다베라'-여호와의 불이 임한 곳(11:1-3).

비록 금송아지 사건으로 하나님께 범죄 하여 삼천 명 가량 죽은 비극이 있었지만 시내 광야에서의 이스라엘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교제 관계를 유지하여 그들의 정성 어린 충성과 헌신으로 성막이 완성되고 성막과 레위인, 그리고 성결에 관한 모든 법률을 수여받으므로 축복과 기쁨의 생활이 계속되었었다. 그러나 그러한 기쁨의 생활을 뒤로하고 가나안을 향해 다시금 광야 생활이 시작되자 그들의 불평은 다시 시작되었고, 그러한 불평이 '다베라'에 이르자 드디어 표면으로 노출되어 나타났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진노의 불'을 보내어 그들의 진 끝을 사르게 하셨으나 모세의 중재 기도로 자신의 진노를 돌이키셨다.

그런데 이러한 '다베라에서의 사건'에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사실은 시내산까지의 하나님과는 달리 '다베라'에서부터는 이스라엘의 불평에 대한 즉각적인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났다는 점이며, 그 불평의 정도에 따라 하나님의 진노 역사 사람의 생명까지도 상하게 하는 형벌과 그렇지 않은 형벌로 나누어 심판하셨다는 점이다. 이렇듯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죄악에 대해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신 이유는 '다베라'에서부터의 여정은 그들이 지켜야 할 성결의 법이 주어진 후였기 때문이다.

2) '기브롯 핫다아와'-탐욕의 백성들을 장사한 곳(11:4-35)

한 번 시작된 이스라엘의 불평은 그 도를 더해 가서 그들의 불평은 이제 점점 구체화되었고 악랄해져 갔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동시에 탐욕으로 원망하던 자들에게는 그 고기를 먹지도 못한 채 죽음을 당하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실감하게 하였다. 이러한 사건으로 인해 그들의 광야 여정은 점점 더 무가운 발걸음으로 변해가기만 하였다.

3) '하세롯'-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여 미리암이 문둥병에 걸린 곳(민 12:1-16).

지금까지의 불평은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양식으로 인한 불평이었으며, 그 대상도 모세가 아닌 하나님이었고 불평한 자들 역시 이스라엘 전체였다. 그러나 '하세롯'에서의 불평은 그 성격이 매우 독특한 것이었다. 즉 불평의 원인부터 그 성격이 지금까지의 불평과는 매우 특이하여 양식으로 인한 불평이 아니라 '모세의 권위에 대한 불평'이었고, 그 대상도 하나님이 아닌 '모세'였으며, 불평하는 자도 이스라엘 전체가 아닌 모세의 형제들인 '미리암과 아론'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불평의 특징은 그들의 불평이 단순한 의식주의 문제에서 '권세와 권위로 확장'되었음을 뜻하며,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그들의 불평과 도전에 대해 미리암의 문둥병 사건과 하나님의 직접적인 선언으로 일축해 버리셨다.

4) '가데스 바네아'-첫 번째 정탐을 실시한 불행의 장소(13:1-20:21).

하세롯을 떠난 이스라엘은 '에시온 게벨'을 거쳐(참조, 33:35, 36). 그들이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땅 '가데스 바네아'에 이르렀다. 이곳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불신앙의 절정을 이루었던 곳으로 가난으로의 정탐과 고라의 반역, 아론의 싹 난 지팡이, 붉은 암송아지의 제사, 그리고 모세의 범죄가 이루어진 장소였다. 이 중에서 '가나안의 정탐과 불신앙적인 보고를 인한 이스라엘의 불행한 결과''아론의 싹 난 지팡이를 통해 아론의 직위를 확실하게 하신 하나님의 역사', 그리고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 불신앙' 등이 가장 기억해야 할 만한 사건들이었다. 이렇듯 '가데스 바네아'는 이스라엘의 불신앙과 하나님의 진노가 교차되었던 불행의 장소였다.

4. '가데스 바네아'에서 '모압평지'까지

불평과 그로 인한 하나님의 진노로 말미암은 불행의 땅 '가데스 바네아'를 떠난 이스라엘은 '에시온 게벨'로 되돌아온 후 '부논'을 거쳐 '아바림'을 통과 '느보산' 옆 모압 평지에 진 침으로 그들의 40년 광야 생활을 마감한다. 이러한 그들의 세 번째 여정에 대한 특징은 한 마디로 가나안 입성을 위한 준비 과정이었는데 그 준비 과정은 다음의 세 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1) 가나안 입성을 위한 첫 번째 준비-'세대교체'

가나안 땅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은 대부분 축복의 말씀이었다. 그러나 여러 가지 불평과, 하나님을 향한 불신앙의 절정인 '가데스 바네아'에서의 죄악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가나안 땅을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는 하나님의 저주를 임하게 하였으니 그것은 애굽에서 나온 자 중에서 이십 세 이상 계수함을 입은 자는 '여호수아''갈렙'만을 제외하고 모두 광야에서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저주였다. '가데스 바네아'에서부터 '모압 평지'에 이르는 이스라엘의 세 번째 광야 여정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저주가 실현되는 기간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하나씩 둘씩 쓰러져 갔고, 이스라엘 최초의 대제사장이었던 모세의 형 '아론' 역시 '호르산'에서 죽었으며(참조, 20:22-29), '모세' 자신도 '느보산'에서 요단 강 건너편의 가나안 땅을 바라보며 여호와께로 소천되므로(참조, 34:1-8) 가나안 땅으로의 입성을 위한 '세대교체'는 완벽하게 이루어졌던 것이다.

2) 가나안 입성을 위한 두 번째 준비-새로운 세대를 위한 율법의 재 강조

'가데스 바네아'에서부터 '모압 평지'까지의 여정을 통한 이스라엘의 두 번째 준비는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도 하나님의 법을 잊지 않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율법의 재 강조'였다. 신명기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는 율법의 재 강조는 '시내산'에서 주어진 최초의 율법 수령자들이 40년 광야 생활에서 모두 죽게 됨에 따라 그들의 율법 준수에 대한 개념이 약해질 수밖에 없었으므로 '새로운 세대'를 위한 율법의 재 강조가 필요했고, 그러한 작업이 가나안 입성 직전에 이루어졌던 것이다. 이러한 율법의 재 강조와 함께 그들은 두 번째 인구 조사, 즉 새로운 세대의 인구 조사를 실시함으로 광야 40년 동안 그들이 겪었던 여러 가지 일들과 그로 인한 자신들의 변화된 모습을 새로이 깨달아 하나님만을 향한 경외심으로 가득한 채 드디어 가나안 입성을 눈앞에 두게 되었던 것이다.

3) 가나안 입성을 위한 세 번째 준비-가나안 주변 부족들에 대한 정복과 가나안 땅의 분배

'가데스 바네아'로부터 '모압 평지'까지의 세 번째 여정은 '이스라엘의 광야 전쟁 기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전쟁이 많았다. 사실 이스라엘은 출애굽 하여 '가데스 바네아'에 이르기까지 오직 '아말렉'과 단 한 번의 전투만 치렀을 뿐(참조, 17:8-16) 그 이후에는 단 한 번도 전투를 치르지 않았다. 그러나 '가데스 바네아를 출발한 이스라엘은 '아랏'과의 전투를 시작으로 하여(참조, 21:1-3) '시혼'''의 정복(참조, 21:10-35). 그리고 '미디안을 정복'(참조, 31:1-54)하기까지 많은 전투를 치르며 가나안 지경까지 전진해 나갔던 것이다. 이렇듯 많은 전투를 치르며 요단 평지까지 이른 이스라엘은 '가나안 정복을 위한 지시'(참조, 33:50-56) '가나안 땅의 분할을 위한 지시'(참조, 34:1-36:13) 받음으로써 '가나안 입성'을 위한 모든 준비를 끝마쳤다.

5. 이스라엘의 광야 여정에 대한 결론

이스라엘의 40년 광야 여정에 대한 정확한 경로를 알 수가 없다. 왜냐하면 '가데스 바네아'외에는 그들이 머물렀던 장소들의 정확한 위치를 알 수가 없고, 그들이 가나안까지 나아갔을 것으로 추정한 본문의 노정 역시 중간에 많은 장소들이 생략되거나 삽입된 것이기 때문이다(참조, 33:1-49). 그러므로 우리가 추정해 낼 수 있는 이스라엘의 광야 여정은 단지 출애굽기와 민수기에 기록되어 있는 기록에 의존할 수밖에 없으며, 그러한 기록에 의존하여 만들어지는 '이스라엘의 광야 여정 지도나 도표' 역시 하나의 추측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나 그러한 이스라엘의 광야 여정이 불투명한 장소를 추정하여 그려낸 것이라 해도 크게 실망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출애굽기와 민수기에 나타난 그들의 광야 여정만으로도 우리에게 말씀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은 충분히 계시되고 보여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광야 여정을 연구하는 우리의 자세는 그 정확한 위치와 경로에 대한 추적보다도 그들의 광야 여정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며, 구원의 도는 어떠한 것인가를 연구하고자 하는 자세이다. 이제 이러한 전제 하에서 그들이 여행했던 경로에 대한 도표와 지도를 작성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위의 도표는 출애굽기와 민수기의 내용에 따른 도표로서 이것이 이스라엘 40년 방랑 생활의 도표이다. 그러나 이것이 그들이 여행한 전부라고 볼 수는 없다. 위의 도표 사이사이에는 좀 더 많은 경유지와 정착지가 있으나(참조, 33), 대부분의 장소에서는 특이할 만한 사건이 없었으므로 위의 도표에 의한 추정 경로를 생각하여도 그리 크게 문제 되지는 않는다.

[신약 히브리어 요한복음] 예수님과 성부 하나님의 일체성(요 8:21-30)

 

[신약 히브리어 요한복음] 예수님과 성부 하나님의 일체성(요 8:21-30)

신약 히브리어 요한복음 강해 말씀은 예수님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인간이며 완전한 하나님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이

bethlehem123.tistory.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