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히브리어성경

[신약히브리어성경말씀 마태복음] 복음을 선포하는 세례 요한(마 3:1-4)

베들레헴 2022. 4. 12.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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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3장에서는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복음을 외치고 있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선포합니다. 예수님을 세례 요한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서 예언한 바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면서 광야에서 복음을 외치고 있습니다.

 

복음을 선포하는 세례 요한(마 3:1-4)

 

1. 자기수양(自己修養)(1-4)

• 3:1  그 때에 세례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가로되 

세례요한이 광야에 오래 있었다. 누가복음 1:80에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들에 있으니라”고 하였다. 세례요한이 광야에서 오랫동안 자기 수양을 한 것 같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 사명을 가지고 태어났다. 백성들이 회개하고 예수님께로 돌아오도록 그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하는 중요한 사명이 요한에게 있었다.

그러므로 세례요한은 자기의 책임이 막중함을 깨달아 자기 수양에 많은 힘을 기울였다. 자기의 사명과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먼저 깊은 기도를 하여야 했고, 진리를 깊이 깨달아야 했다. 예수님을 좀 머 깊이 알아야 했고, 자기 자신을 또한 깊이 알아야 했다.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기 위해서 세례요한이 광야에서 오랫동안 자기 수양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님께 대한 자기의 사명을 깊이 깨달은 사람은 자기의 평안을 구하거나 안일주의에 빠질 수가 없다. 어떠한 고난이 와도 기쁜 마음으로 참고 견디면서 자기의 사명을 바로 감당하기 위해서 모든 준비를 하고 자신을 만들어 가야 한다. 모세도 자기의 사명을 깊이 깨달았기 때문에 애굽의 모든 재물과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는 지위와 명예와 영광을 다 내어버리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하나님의 백성과 같이 고난받기를 즐거워하였다(히 11:24-25 참조). 모세가 자기 사명을 착수하기 전에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동안 많은 수양을 쌓고 준비를 하였다.

세례요한이 광야에 나가 있는 생활도 모세가 미디안 광야에서 자기 수양을 쌓은 것과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세례요한이 제사장의 아들로서 좋은 대접을 받고 육신의 평안을 누릴 수 있었으나, 그것들을 다 내어버리고 광야에 나가서 자기 수양을 한 것은 우리 성도가 깊이 본받아야 할 점이다.

이기선 목사님은 세례요한의 생활을 기안취고(棄安取苦), 즉 평안을 버리고 고난을 취하는 생활이라고 말했다.  우리 성도도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올바로 감당하기 위하여 세례요한과 같은 길을 걸어가야 한다. 광야와 같이 고요한 세계에 깊이 들어가 영적 수입을 많이 얻어야 한다. 수입이 많이 있어야 많은 지출을 할 수가 있다. 수입은 별로 없이 지출만 하면 얼마 못 가서 껍데기만 남는다. 교역자나 성도가 기도를 많이 하고  많은 성경 연구와 많은 깨달음이 있어야, 마귀와 싸워 이길 수 있는 능력이 나오고, 양떼를 인도할 만한 힘도 나온다. 하나님의 일을 하려면 먼저 준비가 필요하다.

자기를 수양하는 과정이 없이 하나님의 일만 하겠다고 날뛰는 것은, 수입은 없이 지출만 하겠다는 것과 같다. 교역자들이 수입은 없이 지출만 하다 보면 나중에는 밑천이 떨어져 자연히 인본주의 수단과 방법이 나오게 된다. 교역자가 성경을 바르게 깨달아 영권으로 가르쳐야 한다. 그러나 성경을 바로 깨닫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도행전 14:22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란을 겪어야 할 것이라”라고 하였다. 많은 고난과 많은 연단을 겪어야 성경이 깨달아지고 말씀대로 자기 인격이 만들어져 나아가는 것이다. 실제로 호랑이가 나온 것을 보고 와서 호랑이가 나왔다고 말하는 사람과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와서 호랑이가 나왔다고 말하는 사람과는 차이가 있다고 이기선 목사님이 항상 말씀하셨다.

하나님 말씀을 자기가 실제로 깨달아 그 말씀대로 자기 인격이 만들어져서 전하는 것과 남에게 듣기만 해 가지고 전하는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교역자가 성경을 듣고 배운 다음에 자기가 실제로 그 세계에 들어가 영적인 체험을 하고 자기가 그 말씀대로 만들어져서 복음을 전해야 양떼들의 참 양식이 된다.

• 3:2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였으니

세례요한의 첫마디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고 하였다. 천국이 가까왔다는 것은 복음이 가까왔다는 뜻이며, 하나님의 나라가 임박하였다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시므로 하나님이 세상에 찾아오신 것(임마누엘)을 말한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죄를 대속하여 주시고 하늘나라의 모든 은혜와 진리를 주어서 구원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할 때가 가까왔다는 뜻이다. 그러나 천국에 참여하려면 죄를 회개하여야 한다. 죄를 가지고는 구원 운동에 참여하지 못한다.

우리 성도가 날마다 회개하여 죄를 벗어버리고 세상으로 향하였던 마음을 온전히 돌이켜서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여 그 말씀대로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때부터 천국 운동이 시작되는 것이다.

• 3:3  저는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하였느니라

이사야 40:3의 말씀을 인용한 것이다. 세례요한은 자신을 가리켜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하였다(요1:23 참조).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세례요한에게 가서 “네가 누구냐”라고 물어볼 때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라고 밝히 말하였다. 그러면 “네가 엘리야냐”고 물을 때에도 “나는 아니라”고 대답하였다.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고 할 때에도 “아니라”라고 분명히 대답하면서 “나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하였다(마 5:37).

세례요한과 같이 아닌 것은 아니라고 밝히 말해야 한다. 아닌데도 불구하고 가만히 있으면 죄를 짓게 된다.  세례요한은 자기를 밝히 알고 자기 이상의 대접을 받지 않았다.

성도는 자신과 자신의 위치를 밝히 알아야 한다. “네가 그 선지자냐?” 할 때에 세례요한이 가만히 있으면 예수님의 대접을 받게 되고 하나님의 일에 큰 방해가 되므로 하나님이 귀히 쓸 수 없다. 아닌 것을 “아니다”라고 하여야 하나님의 마음에 꼭 맞게 되고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사람이 자기 분수 이상의 대접이 올 때에 그것을 물리치지 않으면 하나님께 쓰임 받지 못한다. 아닌데도 아니라고 말하지 않는 것은 속에 엉큼한 욕심이 있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은 자기 분수에 지나치도록 대접받기를 좋아한다. 세례요한은 자기 위치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인 것을 바로 깨달았다. 소리는 말씀을 나타내고 없어지는 것이다.  말씀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으나 소리는 말씀만 나타내고 없어진다.

말씀은 예수님이시므로, 세례요한은 말씀이신 예수님만 나타내어 놓고 자기는 없어진다. 이것이 소리의 위치이다. 예수만 나타내어 놓고 자기는 없어진다고 하면 그 종이야말로 하나님이 참으로 만족할만한 종이다. 소리의 위치에 있는 세례요한을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귀하게 쓰셨다. 예수님도 세례요한을 여자가 낳은 자 중 가장 큰 자라고 하시며 귀히 여기셨다.  하늘나라에서도 영광스러운 자리에 앉히어 놓았을 것이다.

소리의 위치에 서서 말씀만 나타내어 놓고 자신은 사라져 버리는 사람이 하나님의 귀한 종이다. 말씀만 나타내고 자신은 사라져 버리면 말씀만 권위가 있게 되고 말씀만 힘 있게 전파되어 나아가게 된다. 말씀을 나타낸 다음에 자기가 나타나면 그 말씀이 가려진다. 우리는 소리의 위치에서 말씀만 흥왕 하게 하고, 자신은 이 복음운동을 위해 희생당하고 이용당하는 자리에 있어야 한다. 자기는 낮아지고 멸시와 천대를 받더라도 오직 말씀 하나만 잘 전파되면 좋다는 정신을 가지고 나아가야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실 수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봉사하고, 자기를 나타내지 않는 성도가 귀한 성도이다. 그러한 사람은 어디서나 필요한 것이다.

• 3:4  이 요한은 약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

요한의 의복은 약대 털옷이요,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다.  요한은 의식 (衣食)에 제재를 받지 않는 생활을 하였다. 세례요한이 자기 직무를 감당하는 데 있어서 적당한 음식과 의복을 취하였다고 볼 수 있다. 약대 털옷은 광야 생활에 적당한 옷이다. 밤에는 입은 채로 자면 한편은 이불이 되고 한편은 요가 된다. 기도하고 일어나서 먼지가 묻었으면 털면 된다. 누구나 자기 직무에 적당한 옷을 입는 것이 좋다. 우리 성도는 자기 분수에 적당하고 아담한 옷을 입어야 한다. 성도는 의식(衣食)에 제재를 받지 않고 의식을 초월하여 살아가야 한다.

사도바울은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라고 하였다(빌 4:11-12 참조). 특히 교역자는 의식 문제에 얽매이면 하나님의 참 종이 될 수 없다.

하나님께서 풍부한 가운데 주시면 풍부한 가운데서 믿음을 지키고 궁핍한 가운데 두시면 궁핍한 가운데서 믿음을 지켜 물질에 구애받지 않는 생활을 하여야 한다. 예수 믿는 사람이 모두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풍부하든 가난하든 마음을 물질에 빼앗기지 않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며, 하나님만 따라가고 하나님으로 기뻐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

이기선 목사님은 교역자의 의식에 대하여 중등(보통)으로 취하면 좋다고 말씀하신다. 의복이 너무 고급이고 화려하면 복음을 전하는데 방해가 된다. 세례요한은 광야에서 자연스럽게 메뚜기를 잡아먹고 들에 있는 꿀(석청:야생꿀)을 취하여 먹었다. 이것이 의식에 제재를 받지 않는 생활이요, 의식을 초월한 생활이다. 메뚜기와 석청은 광야에서 얻기 쉬운 음식들이다. 교역자가 의식주를 위해서 많은 시간과 노력을 허비하지 않고 또 남에게 누(累)를 끼치지 않는 생활을 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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