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히브리어성경

[신약 히브리어 성경 사도행전] 마가 다락방에 모인 120명의 성도(행 1:12-20)

베들레헴 2022. 3. 30. 12:31
반응형

사도행전 1장에서는 마가 다락방에 120명의 신실한 성도들이 모여 기도하는데 힘을 썼습니다. 가룟 유다의 죽음을 회고하면서 신실한 믿음을 가져야 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우리도 가룟 유다의 신앙을 버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신실한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마가 다락방에 모인 120명의 성도(행 1:12-20)

 

기도에 전력을 다함(12-14)

 

• 1:12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와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예수님이 감람산에서 승천하셨다 (눅19:29 참조).  누가 24:50-51에는 예수님께서 베다니에서 올리우셨다고 하였다. 이 두 곳은 같은 곳이다.  왜냐하면 감람산 남쪽 기슭에 베다니가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다음 제자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예수님이 승천하셨으므로 모든 것이 끝났다 하지 아니하고, 제자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기도하기를 힘쓴 것을 보면 희망이 있다.  제자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면 언제 잡혀 죽을지 모르는 형편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순종하기 위하여 결사 각오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 그 당시에는 안식일에 먼길을 가지 못하도록 규례로 정해져 있었다. 감람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도 갈 수 있는 길이었다.

• 1:13-14  들어가 저희 유하는 다락에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저희 유하는 다락은 마가요한의 다락방이다.  마가요한의 다락방은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성찬예식을 거행하시던 방이다(눅22:12 참조).  제자들도 마가요한의 다락방을 집회 장소로 사용하였다. 사도 시대에는 개인의 집을 예배당으로 사용한 예가 많다(몬1:1-2, 고전16:19, 골4:15 참조).  전도하여 교인들이 생기면 적당한 가정집에서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였다.  자기집 다락방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장소로 사용되었다고 하면 참으로 귀한 일이다.  마가요한의 가정이 하나님을 위해 이렇게 바치는 생활을 하므로 마가요한이 복을 많이 받았다.  하나님 앞에 바친 사람은 자신과 그 자손이 많은 복을 받는다.

딤후4:11에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고 하였다.  바울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마가요한이 유익한 존재라고 하였다.  베드로, 요한, 야고보(요한의 형), 안드레(베드로 동생), 빌립, 도마, 바돌로매,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열심당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룟유다가 아님)가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하고 있었다.  또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도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고 있었다.  칼빈은 이 여자들을 “사도들의 부인이다”라고 하였으나(주. 칼빈 저 사도행전 I p53 신교출판사) 근거가 없다.  이 여자들은 갈릴리에서부터 예수님을 따라온 여자들이다(마27:55-56, 눅24:10 참조).

막달라 마리아와 같은 여자들은 예수님을 따라 다니는데 항상 선봉이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 그곳에 갔었고 예수님의 무덤에도 다른 사람보다 먼저 찾아갔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승천하신 다음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할 때에도 이 여자들이 참석했을 것이다.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도 120명과 더불어 같이 기도하였다.  천주교에서는 마리아를 우상화하여 경배의 대상으로 섬기고 있으나 이것은 아주 잘못된 것이다.  마태13:55에는 분명히 예수님의 형제들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데 천주교에서는 마리아가 예수님 한 분만 낳고 동정을 지켰다고 주장하고 있다.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제자들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 전심으로 기도했다.  제자들은 기도를 안할래야 안 할 수 없고 힘을 안 쓸래야  안 쓸 수 없었다.  예루살렘은 예수님을 잡아죽인 무리들이 예수교를 박멸하려고 성도들을 다 잡아 죽이려고 하는 살벌한 곳이었다.

그러므로 제자들이 생명을 내어놓고 힘써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결사적인 기도를 시키려고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신 것이다.  우리에게 여러 가지 환난과 시험이 많이 들어오는 것은 우리에게 참된 기도를 하게 하여 생명의 세계에 들어가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환난이 올 때에 넘어지지 말고 기도로 이겨 나가야 한다.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는 말은 기도를 전문적으로 했다는 뜻이다.  평소에도 기도를 많이 해야 하고 특별히 기도해야 할 만한 일이 생겼을 때에는 더욱 힘써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  힘써 기도해야 할 처지에 놓였으면 다른 일은 제쳐놓고 힘써 기도해야 한다.  힘써 기도하지 않으면 마귀에게 지게 된다.  마귀를 이길 수 있는 힘이 기도에서 나온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오순절까지 열흘 동안 힘써 기도하였다.

그 동안 여러 가지 시험이 많이 있었겠지만 제자들이 잘 참고 끝까지 기도했다.  참고 끝까지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 주간 동안 작정하고 산에 기도하러 가면 도중에 집에 돌아가야 할 만한 일이 생긴다.  무슨 급한 소식이 오기도 하고, 기도가 전혀 되지 않기 때문에 차라리 집에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어오기도 한다.  그러할 때에도 기한 전에는 기도를 중단하고 돌아가면 안 된다.   끝까지 기한을 채워서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도한 시간이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서 하나님의 능력이 입히워지는 정도가 다르다.  성도들이 시간이 없어서 기도하지 못한다고 말하지만 기도할 시간이 없는 것은 다른 일에 시간을 다 빼앗겼기 때문이다.

기도하는 시간을 첫째로 생각하면 기도할 시간이 많다.  초저녁에 일찍 자고 새벽에 일찍 일어나면 기도할 시간이 많다.  또 저녁에 일찍 집에 돌아와서 기도해도 된다.  밤늦게까지 T.V 구경하고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기 때문에 기도할 시간이 없는 것이다.  다니엘은 다리오왕 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굴에 던져 넣는다는 금령이 내려 졌음을 알고도 하루 세 번씩 기도했다.  다니엘이 생명을 내어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기도를 했기 때문에 능력 있는 사람이 되었다.

마귀는 성도에게서 다른 것보다도 기도하는 시간을 빼앗아 가려고 한다.  이용도 목사 서간집에 보면 “마귀는 우리의 신앙이나 열심을 빼앗으려고 하지 아니하고, 다만 기도하는 시간을 빼앗으려고 한다”고 하였다.  기도하는 시간을 빼앗으면 신앙도 열심도 봉사도 다 빼앗은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성도가 기도하지 아니하면 마귀를 이길 수 없다(막9:29 참조).

유다의 죽음에 대한 성경적 해결(15-20)

• 1:15-17  모인 무리의 수가 한 일 백 이십 명이나 되더라 그 때에 베드로가 그 형제 가운데 일어서서 가로되 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의탁하사 예수 잡는 자들을 지로한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 이 사람이 본래 우리 수 가운데 참여하여 이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라

가룟 유다가 목매어 죽은 일에 대하여 문제가 생겼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의 열 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인데 왜 그렇게 되었을까?  예수님은 왜 가룟 유다를 제자로 택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고 그것이 문제가 되었다.  마음속에 의심이 들어오고 의아한 생각이 들어오면 기도가 잘 안 된다.   그러할 때에는 성경으로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베드로가 일어나 가룟 유다의 사건이 성경대로 되었다고 증거했다.

• 1:18-19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차가 다 흘러나온지라 이 일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게 되어 본방언에 그 밭을 이르되 아겔다마라 하니 이는 피밭이라는 뜻이라)

예수님을 배반하고 무죄한 피를 판 가룟 유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저주스러운 죽음을 당했다. 가룟 유다가 목매어 죽으려고 나무에 매달렸다가 끈이 끊어져 배가 터지고 창자가 흘러 나와 비참하게 죽었다.  이 일에 대하여 베드로는 시편에 기록한 대로 된 것이라고 증거하였다.  시편69:25에 “저희 거처로 황폐하게 하시며 그 장막에 거하는 자가 없게 하소서”라고 하였다.  이것은 하나님을 반대하고 하나님의 구원 운동을 방해하는 자는 저주받아 망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팔아먹은 가룟 유다가 저주를 받아 멸망하게 된 것이 당연하다.

우리 성도들에게 무슨 사건이 생기면 성경대로 해석하고, 성경대로 처리해 나가야 한다.  예수님이 가룟 유다를 제자로 택한 이유는 다음 몇 가지가 있다.

① 교역자 중에도 불택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하려고,

② 불택자도 하나님의 구원 운동에 이용되는 것을 알게 하려고,

③ 택자와 불택자를 추수 때까지 함께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하려고,

④ 성경을 응하게 하기 위하여(시편 41:9참조).

⑤ 범죄자의 말로가 비참하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가룟 유다는 불택자인 것을 아시면서도 제자로 택한 것이다.  불택자도 하나님의 구원운동에 이용하는 것은  비계(日語 :아시바리)와 같은 것이다.  집 지을 때는 비계를 이용해서 건축 재료도 운반하고 작업도 하지만 집을 다 지은 다음에는 그 비계(아시바리)는 치워버린다.  가룟 유다가 목매어 죽은 것을  보면 그가 예수님을 팔아먹고 나서 양심에 가책을 느끼고 괴로워한 것은 사실이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 때에는 돈을 받아 잘 살려고 하였으나 그 돈을 쓰지도 못하고 괴로워하면서 죽었다.  가룟 유다가 목을 매었다가 끈이 끊어져 곤두박질하고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왔으니 예수님을 팔아먹은 범죄자의 말로는 참으로 비참하다.  예수님을 팔아먹고 믿음을 팔아먹은 결과는  비참한 것이다.  교회를 팔아먹고 구원운동에 손해를 주면 가룟 유다처럼 비참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머리요 교회는 몸이기 때문에 교회에 손해를 주면 예수님께 손해를 준 것이 되고, 교회를 팔아먹으면 예수님을 팔아먹은 것이 된다.  예수님을 팔아먹고 구원운동에 손해를 주면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받게 된다.

• 1:20  시편에 기록하였으되 그의 거처로 황폐하게 하시며 거기 거하는 자가 없게 하소서 하였고 또 일렀으되 그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 하였도다

그의 거처로 황폐하게 하시며 예수님을 팔아먹고 하나님의 구원운동을 방해한 자는 그 집이 저주를 받아서 망하게 된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먹고 예수님을 잡아죽이는데 동참했기 때문에 유다의 집이 저주를 받아서 망하게 되었다.  구원운동을 방해하면 저주를 받아 반드시 그 집이 망하게 된다.  그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 유다의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된다는 것을 말한다.  예수님에게 손해 주고 교회에 손해를 준 사람은 하나님이 그 직분을 빼앗아 다른 사람에게 주신다.  교역자가 교회에 손해를 주게 되면 하나님이 그 종을 쓰시지 않는다.  그러므로 교역자가 교인들에게 배척을 받고 쫓겨나도 하나님의 교회에는 절대로 손해를 주지 않도록 해야 한다.  교역자가 교인들에게 배척받으면 조용히 다른 곳으로 가면 된다.  우리 성도는 언제든지 하나님의 교회에 손해 줄까봐 벌벌 떨어야 한다. 자기가 낮아지고 멸시를 받더라도 교회에 상처를 입히지 않고 구원운동에 손해 주지 않도록 해야 한다.

[신약 히브리어 성경 요한복음] 예수님의 세례식 장면(요 1:19-34)

 

[신약 히브리어 성경 요한복음] 예수님의 세례식 장면(요 1:19-34)

요한복음 1장에서는 세례 요한이 사역을 시작하게 됩니다.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은 예수님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을 때에 하늘에서 성령님이 비둘기같이 임했고 성부 하

bethlehem123.tistory.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