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2장에서는 바로의 딸인 공주가 모세를 양자로 삼아서 양육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할 자로 선택했다. 하나님은 모세를 애굽의 왕궁에서 자라게 하여 세상 지식과 요게벳으로부터 신앙교육을 받았다.
바로 왕의 딸이 모세를 양자로 삼음(출 2:1-10)
모세의 출생과 구출(1-10)
• 2:1 레위 족속 중 한 사람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장가들었더니
레위 족속 중 한 사람은 모세의 아버지인 아므람을 가리킨다(6:20). 그가 역시 레위 여자인 요게벳에게 장가들어 부부가 되었다.
• 2:2 그 여자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아 그 준수함을 보고 그를 석달을 숨겼더니
아므람과 요게벳 사이에 아들이 태어났다. 이 아들은 장차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출할 모세였다.
준수함을 보고 그를 석달을 숨겼더니 하나님께서 특별히 그 아이를 귀히 쓰시려고 신령한 은혜를 주셔서 성령의 역사가 그 아이에게 있었으므로 모세의 부모가 믿음으로 그것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애굽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그 아이를 석 달 동안이나 숨겨서 길렀다. 이는 모세의 부모가 왕의 명령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하는 신앙의 행위였다. 사도행전7:20에는 “그 때에 모세가 났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 그 부친의 집에서 석 달을 길리우더니”라고 했다. 모세는 사람이 보기에도 아름답고 준수하였으며 하나님 보시기에도 아름다운 자였다. 이는 성령께서 그 아이와 함께 하셨기 때문이다.
비록 어린 아이라 할지라도 성령께서 함께 하시면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 기도할 때나 예배 시간에 조용히 하고 아주 기뻐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출생한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라도 성령의 역사가 있으면 그 역사가 그 어린아이의 태도에 나타난다. 모세는 태어나면서부터 성령이 함께 하셨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 아름답고 준수하였다. 그러므로 성령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아이를 강에 빠뜨려 죽이는 것은 하나님의 사람을 죽이는 결과가 되므로 그 부모가 믿음을 써서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많고 석 달 동안이나 숨겨서 기른 것이다. 이것은 마치 기생 라합이 여리고 성에 들어온 정탐꾼을 숨겨서 보호해 준 것과 같다.
• 2:3 더 숨길 수 없이 되매 그를 위하여 갈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고 아이를 거기 담아 하숫가 갈대 사이에 두고
더 숨길 수 없이 되매 석달이 지난 다음에는 아이의 울음소리도 커지고, 그 아이를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되었다. 만일 숨긴 것이 드러나게 되면 그 어린아이의 생명과 자기들의 생명도 위태하므로 모세의 부모가 다른 대책을 강구하였다. 모세의 부모는 항상 하나님의 뜻을 순종해 나가기 위해, 최선의 방법을 강구한 것이다. 도중에 포기하거나 좌절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갈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고 모세의 부모가 갈대로 상자를 만들고 역청과 나무 진을 칠했다. 역청은 석유에서 나오는 코울타르(Coal tar)와 비슷한 종류라고 한다. 물에 잘 뜨도록 가벼운 갈 상자를 만들었고, 역청을 칠하여 갈 상자에 물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방수 처리를 했다. 어떤 사람은 이 갈 상자를 노아의 방주에 비유하는데 그것은 옳지 않다. 노아의 방주는 하나님께서 만들도록 시켰고, 모세의 부모가 갈 상자를 만든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 없었다. 또한 노아의 방주는 구원의 방주의 상징이지만 갈 상자는 그렇지 않다.
성도들이 자녀들을 기를 때에도 자녀들을 세상(강물)에 내어 보내되 그 강물에 빠지지 않도록 하나님의 전신 갑주로 무장을 시키고, 그 후에 그 아이를 돌보고 단속해야겠다(엡6:10 참조).
아이를 거기 담아 하숫가 갈대 사이에 두고 모세를 갈 상자에 담아 나일 강가의 갈대 사이에 두었다. 이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 다음 하나님의 뜻에 맡긴 것이다. 우리도 모세의 부모와 같이 하나님의 주권적 구원의 역사와 섭리를 믿고, 인간의 모든 지혜와 노력을 다 쏟아(일심 정력을 다 기울여) 최선을 다한 다음 하나님께 다 맡기는 신앙을 배워야 한다.
• 2:4 그 누이가 어떻게 되는 것을 알려고 멀리 섰더니
그 누이 미리암이 그 갈 상자에 넣은 아이가 어떻게 되는 것을 알고자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다. 갈 상자에 담긴 모세가 나일 강변에서 며칠 동안 있었는지도 모른다. 만일 그렇다면 미리암은 그동안에 어머니의 젖을 비밀히 날라다 먹이며 강 쪽에서 계속 지켜보면서 동태를 살피고 있었을 것이다.
• 2:5-6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하수로 내려오고 시녀들은 하숫가에 거닐 때에 그가 갈대 사이의 상자를 보고 시녀를 보내어 가져다가 열고 그 아이를 보니 아이가 우는지라 그가 불쌍히 여겨 가로되 이는 히브리 사람의 아이로다
때 마침 바로의 딸인 공주가 목욕하러 그 곳으로 내려왔다가 갈 상자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는 하나님께서 섭리하셔서 그의 발걸음을 인도하신 것이다. 잠언 20:24에 “사람의 걸음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나니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으랴”라고 하였다. 모세의 부모는 공주가 그곳에 목욕하러 올 것을 미리 알고 그곳에 상자를 갖다 놓은 것은 아니다. 생사를 주장하시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믿음으로 행할 때에 하나님께서 맞아떨어지도록 한 것이다. 사람이 모든 일을 할 때 빈틈없이 잘 계획한다고 해서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이루어지도록 일해 주셔야 된다. 그러므로 성도는 항상 모든 욕심을 버리고 매사에 믿음으로 자기의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그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나가면 하나님께서 선하신 뜻대로 이루어 주실 것이다.
그가 불쌍히 여겨 가로되 공주가 시녀들을 보내어 상자를 가져다가 열어보니 아이가 울고 있었다. 공주가 울고 있는 아이를 볼 때 불쌍한 마음이 생겼다. 이것도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공주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주셨다. 또, 공주로 하여금 잘 생기고 아름다운 아이를 버려서 죽게 하지 않고 자기의 아들로 삼고자하는 마음을 갖도록 하나님께서 역사하셨다.
• 2:7 그 누이가 바로의 딸에게 이르되 내가 가서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를 불러다가 당신을 위하여 이 아이를 젖 먹이게 하리이까
모세의 누이가 하나님께서 주신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를 잃지 않고 재빨리 나가서 “그 아이를 위하여 유모를 구해 드릴까요?” 하고 지혜롭게 말하였다. 오늘날 성도들도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를 잃지 말고 즉시 순종하여 하나님의 구원 운동에 이바지해 나가야 한다.
• 2:8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가라 그 소녀가 가서 아이의 어미를 불러오니
그에게 이르되 가라 아이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진 공주가 울고 있는 아이에게 필요한 젖을 먹여 그 생명을 살리고자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모세의 누이 미리암이 유모를 불러다 주겠다하므로 쾌히 승낙한 것이다. 공주의 승락이 떨어지자 미리암은 급히 가서 모세의 어머니(요게벳)를 불러다가 유모로 소개하였다.
• 2:9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이 아이를 데려다가 나를 위하여 젖을 먹이라 내가 그 삯을 주리라 여인이 아이를 데려다가 젖을 먹이더니
내가 그 삯을 주리라 이제는 모세의 어머니가 모세를 데려다가 자유롭게 젖을 먹이고 기를 수 있게 되었다. 그뿐 아니라 삯까지 받으면서 기르게 되었다. 그 후 젖 뗄 때에 모세를 바로의 궁으로 데려다 기르게 되었다. 죽이고자 하는 왕의 궁정에서 모세가 자라나게 되었으니 하나님의 섭리하심과 지혜는 측량치 못하고 헤아릴 수 없다.
• 2:10 그 아이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가니 그의 아들이 되니라 그가 그 이름을 모세라 하여 가로되 이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내었음이라 하였더라
바로와 딸에게로 데려가니 몇 살쯤 되어서 갔는지 확실히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옛날에는 다섯 살 혹은 여섯 살까지도 모유를 먹인 것으로 보아 대 여섯 살쯤 되어서 데려갔거나 혹은 그 이상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모세는 친어머니(요게벳)에게 하나님을 섬기는 도(道)와 그가 히브리 사람이라는 것과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살 것이 아니라 가나안 땅으로 가서 살아야 된다는 것을 배웠을 것이다. 또한 애굽의 모든 풍속 습관에 젖지 않도록 벌써 신앙사상을 잘 무장시켜 놓았을 것이다.
그 이름을 모세라 하여 모세의 뜻은 물에서 건져내었다는 뜻이다. 바로의 딸이 모세의 이름을 잘 지었다. 하나님께서 바로의 딸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모세라는 이름을 짓게 하여 장차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려고 이렇게 역사하신 것이다. 모세가 자기 이름을 부를 때마다 자기 이름의 뜻을 되새겨 보고 자기가 왜 물에서 건져 낸 바 되었는가를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은 이스라엘 백성인 것과 바로 왕의 학정으로 죽을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건져내어 주신 것을 늘 잊지 않고 기억했을 것이며, 또 반드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건져내어 가나안으로 인도하실 것을 믿고 자기의 위치와 사명감을 늘 깨달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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