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랏 산에 노아의 방주가 정착(창 8:1-12)
창세기 8장에서는 노아의 방주가 아라랏 산에 정착하게 됩니다. 노아는 방주 안에서 홍수로 인하여 멸망당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홍수로 심판할 때 노아의 8 가족은 구원받았습니다. 방주가 구원선입니다. 40일 동안 내린 비가 이제 그쳤습니다. 방주는 상자에 불과한 배입니다. 동력 장치가 없습니다. 스스로 갈 수 없는 배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방주를 아라랏 산에 정착시켰습니다. 우리도 방주와 같은 교회에서 주님을 섬기면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성 경: [창8:1] 바이지코르 엘로힘 에트 노아흐 비에트 콜 하하야 비에트 콜 하베헴마 아세르 이토 바테바 바야아베르 엘로힘 루아흐 알 하아레츠 바야쇼쿠 하마임
권념하사(자카르) - '기억하다', '새기다'의 뜻(9:15 ; 욥 14:13). 이는 평상시에는 잊고 있다가 갑자기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마음 속 깊이 새기고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느 5:19 ; 시 25:7). 즉 하나님께서는 홍수가 계속되는 동안에도 방주 안의 생명들을 늘 잊지 않으시고 보호하셨다는 뜻이다. 또한 이는 이들을 위해 행하실 다음 단계의 일까지 미리 생각하고 계셨음을 뜻한다. 와우접속사 칼 능동태 동사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홍수 심판 중에서도 노아 방주에 있는 모든 사람과 가축들을 기억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기억하면서 보호하고 있다. 구원받은 백성을 지키시고 보호한다.
바람으로... 물이 감하였고 - 바람에 의한 물의 증발 작용뿐 아니라 바람에 의해 물이 바다로 쓸려 내려간 작용까지 병행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홍수 대심판에는 비와 함께 지하수의 범람, 해일 등도 수반되었기 때문이다<7:11>. 이처럼 홍수를 발생시킨 것도 하나님의 초자연적 역사였듯이 심판을 끝내고 땅을 본래대로 회복시킨 것도 하나님의 단독적, 초자연적인 역사였는데 이는 온 우주의 운행을 주관하시는 그분의 권능을 잘 드러내 준다(시 19:4).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우주 만물을 통치하는 분이다. 하나님이 바람으로 물이 줄어들게 하셨다. 하나님의 능력을 엿볼 수 있다.
바람 (루아흐) - '영'이나 '기운'을 의미하기도 한다<6:3>. 그러므로 혹자(Rupertus)는 이를 태양열로, 그리고 혹자(Theodort, Ambrose)는 하나님의 입김, 또는 성령 등으로 보기도 한다. 70인 역도 '영'(靈)이란 뜻의 (프뉴마)로 번역했다. 그러나 (1) 태양력에 의해선 물을 한쪽으로 쏠리게 할 수 없고 (2) 물을 감소시키는 사역을 성령이 주도하셨다고 보기에도 힘드므로 여기선 문자 그대로의 '바람'(wind)으로 보아야 한다. 하나님이 홍해 사건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동풍을 불게 하셔서 바다가 갈라지게 하셨다. 하나님이 바람을 불어서 물이 줄게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성 경: [창8:2] 바이사키루 마이이노트 테홈 바아리보트 하샤마임 바이칼레 하게셈 민 하샤마임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 - 땅 속에 있는 샘들의 물이 모두 터져 나왔다. 하나님이 심판을 그치니 이런 샘들의 물이 막혔다. 그런데 심판의 종결을 이야기하면서 이에 대해 다시 언급하고 있는 까닭은 홍수의 원인이 없어졌음을 상기시키므로 심판이 완전히 끝났음을 강조하기 위함이다<7:11>. 하늘의 창문이 닫혔다고 했는데 칼라라는 동사다. 니팔 수동태를 사용하고 있다. 물론 깊음의 샘들이 막힌 것도 수동태다. 하나님에 의해서 막히고 그쳤다는 것을 말한다.
성 경: [창8:3] 바야쉬부 하마임 메알 하아레츠 할로크 바쇼브 바야히시루 하마임 미케체 하미쉼 우메아트 욤
물러가고 점점 물러가서 - 문자적 의미는 '가며 되돌아가고'이다. 이는 마치 썰물 때처럼 물이 지속적, 점진적으로 감소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성경에는 이처럼 동일한 말 내지는 비슷한 말을 반복 또는 중복하여 그 뜻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같은 표현법을 중언법(重言法)이라 한다(26:5 ; 시 21:1 ; 전 1:2). 물이 물러가는데 슈브라는 동사를 사용했다. 물이 점점 빠지고 있는 모습을 말한다.
일백 오십 일 후에 감하고 - 홍수가 시작된지 제 150일째에 최고 수위에 달했던 물(7:24)이 그날 이후부터는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심판을 멈추시니 물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성 경: [창8:4] 바타나흐 하테바 바호데쉬 하쉬비이 비쉬비아 아사르 욤 라호데쉬 알 하레 아라라트
칠 월 곧 그 달 십 칠 일 - 홍수가 시작된 날이 2월 17일(7:11)이었으며, 물이 빠지기 시작한 날이 150일 후 부터였으니 이 날은 물이 감소되기 시작한 지 하루나 이틀째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한 달을 30일로 잡을 때 2월 17일부터 7월 17일 사이는 150일이 되기 때문이다.
아라랏 산에 머물렀으며 - 왕하 19:37 ; 사 37:38 ; 렘 51:27 등을 참조할 때 성경이 증거해 주는 아라랏(Ararat)은 일종의 지역(region)으로서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계곡 상단에 위치한 아르메니아(Armenia) 지역인 것 같다. 실로 이곳은 옛 대륙의 중심지로서 홍수 후 노아의 후손들이 세계 각국으로 퍼져 나가기에 매우 적합하였다. 아라라트라는 단어는 아라르라는 동사에서 유래했다. 아라르는 저주하다라는 뜻이다. 구속사 관점에서 보면 아라랏산에 방주가 멈추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의도가 숨겨 있다. 방주는 구속자이신 예수님을 상징한다. 이 산에서 저주받고 방주 안에 있는 노아의 가족이 살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약에서는 갈보리 산 위의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못 박혀 죽고 선택받은 자가 살아난 것을 의미한다.
성 경: [창8:5] 비하마임 하이우 할로크 비하소르 아드 하호데쉬 하아시리 바아시리 비에하드 라호데쉬 니리우 라세 헤하림
물이 점점 감하여 - 직역하면 '물이 가고 감소하여'(the waters were going and falling). 하루가 다르게 빨리 물이 감소되고 있음을 표현한 구절이다. 아라랏 산의 높이를 해발 5, 100m로 잡을 경우, 홍수 최고 수위는 약 5, 107m가 되니(7:20) 이를 걷힌 기간인 164일(13절)로 나누면 실제로 홍수 수위는 하루 평균 3. 1m 정도씩이나 낮아졌음을 알 수 있다. 물이 감소하고 있는데 원문을 보면 부정사를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계속해서 물이 줄어들고 있는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다.
시 월 곧 그 달 일 일 - 홍수 발생 224일째이다.
성 경: [창8:6] 바이히 미케츠 아리바임 욤 바이피타흐 노아흐 에트 할론 하테바 아세르 아사
방주에 지은 창 - 채광과 통풍을 위해 방주 측면에 설치해 놓았던 창을 의미한다<6:16>. 본절 이하에 의하면 이 창은 쉽게 여닫을 수 있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창을 만들었는데 아사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이것은 만들어진 물체에서 새롭게 만들어진 것을 나타낸다. 방주가 만들어져 있고 그 방주에 창문을 만들었다.
성 경: [창8:7] 바이샬라흐 에트 하오레브 바예체 야초 바쇼브 아드 이보세트 하마임 메알 하아레츠
날아 왕래하였더라 - 직역하면 '앞으로 나아갔다 되돌아왔다'(going forth and returning). 그러나 이는 방주 안으로 되돌아왔다는 뜻이 아니라 방주 주변을 배회하면서 앉을 곳을 찾아 날아다녔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노아는 이 까마귀를 재차 방주 밖으로 내놓았을 것이다(8절). 까마귀는 썩은 고기를 먹으러 젖은 땅에도 앉은 새였으니 굳이 방주 안으로 되돌아갈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노아가 까마귀를 방주에서 내어 놓았는데 샬라흐 보내다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 문법을 보니 피엘 강조능동이다. 이것의 해석은 까마귀를 노아가 강압적으로 물이 감한 여부를 알고자 내어 놓았다는 의미다. 땅에 물이 있으니 까마귀가 방주로 왔다 갔다 했다.
성 경: [창8:8] 바이샬라흐 에트 하요나 메이토 리르오트 하칼루 하마임 메알 피네 하아다마
비둘기 - '평화'의 상징인 이 새는 귀소성(歸巢性)이 강하여 옛날부터 통신 수단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노아가 까마귀 다음으로 이 새를 택한 것은 이러한 성질에 의거, 물이 감한 증거물을 갖고서 방주 안으로 돌아오기를 기대했기 때문인 듯하다(11절). 노아가 비둘기를 내어 놓은 것도 샬라흐이다. 피엘 강조능동 동사를 사용하고 있다. 물이 감한 여부를 비둘기를 통해서 알고자 강압적으로 내어 보냈다.
성 경: [창8:9] 비로 마치아 하요나 마노아흐 리카프 라길라흐 바타샤브 엘라이브 엘 하테바 키 마임 알 피네 콜 하아레츠 바이쉴라흐 야도 바이카헤하 바야베 오타흐 엘라이브 엘 하테바
온 지면에 물이 있으므로 - 비둘기는 마른 땅에만 앉는 특성이 있다. 그리고 주로 평지나 골짜기에서 생활한다. 당시에 땅은 물이 채 빠지지 않았었고 물이 빠진 고대 지역 역시 미처 건조되지 않은 상태였기에 비둘기는 앉을 자리를 찾지 못하고 곧 노아에게 돌아온 듯하다.
접족할 곳을 찾지 못하고(로 마츠아 마노아흐 레카프 라겔라) - '카프'(발바닥)와 '레겔'(발)이란 유사 단어가 중복된 중언법이다<3절>. 그리고 '마노아흐'는 '휴식처', '안식처'란 뜻이다. 따라서 이는 '발바닥만이라도 착지시킬 수 있는 마땅한 휴식처를 발견치 못했다'는 강한 의미가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영원을 사모하는 우리 성도들은 썩어져 가는 세상 열락(悅樂)에서 안식과 기쁨을 찾을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정결한 말씀과 그의 온전하신 뜻 가운데서 참된 소망을 찾을 수 있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히브리 단어로는 전혀 발견하지 못하고 접촉할 곳을 찾지 못했다는 의미다. 비둘기가 방주 밖으로 어쩔 수 없이 나갔지만 물이 감하지 않아서 다시 방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손을 내밀어 - 어느 한 곳에도 발 딛지 못하고 온종일 날갯짓하느라 지친 비둘기에게 노아가 내민 손바닥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포근한 안식처이자 기쁨의 근원이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 땅에서 수고하고 지친 성도들에게 역시 그보다 더한 최종적이고도 영원한 안식처가 약속되어 있는데 그것은 곧 천국이다(마 5:10). 그러나 이러한 영광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주어진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끝까지 감당해야 하니(롬 8:17) 우리는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히 6:12).
성 경: [창8:10] 바야할 오드 쉬비아트 야밈 아헤림 바요세프 샬라흐 에트 하요나 민 하테바
또 칠일을 기다려 - 이처럼 노아가 칠일을 주기로 하여 새를 방주 밖으로 내보낸 것(12절)은 (1) 그가 방주 안에서도 하나님의 천지 창조 사역을 기념하는 안식일(2:1-3)을 엄숙히 지켰음을 시사한다. (2) 또 당시에도 한 주간은 오늘날과 같이 칠 일로 이루어져 있음을 증거해 준다. (3) 그리고 이 같은 사실에서 우리는 노아가 한 주간을 무의미하게 그리고 지루하게 보내지 아니하고 믿음과 기도와 인내로써 여호와를 앙망하면서 보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우리들에게 교훈을 주는 바가 큰데 곧 성도는 자신의 삶이 어떠한 상황에 이르렀는지 간에 그에 개의치 말고 항상 하나님을 바라며 그를 경외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후 4:7-10). 노아가 칠일을 기다렸다가 다시 비둘기를 내보냈다. 여기에서도 피엘 강조능동을 사용하고 있으니 강압적으로 내보내 물이 감한 여부를 알고자 했다. 노아의 강한 의지를 알 수 있다.
성 경: [창8:11] 바타보 엘라이브 하요나 리에트 에레브 비힌네 알레 자이트 타라프 비피하 바예다 노아흐 키 칼루 하마임 메알 하아레츠
저녁 때에 - 성경에서 이 단어는 가끔 소망이 사라지고 절망만이 남은 암울한 상태를 상징한다(렘 6:4 ; 겔 24:18). 여기서도 비둘기가 저녁에 돌아왔다는 것은 기다림에 지쳐 더 이상 기대를 걸 수 없는 시점에 홀연히 나타났다는 의미를 지닌다. 그러므로 비둘기가 갖고 온 희망의 증표는 노아에게 더욱더 큰 기쁨을 안겨다 주었을 것이다.
감람 새 잎사귀 - 여기서 '새'(new)로 번역된 히브리어 '타라프'는 '뜯어내다', '찢어내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는 물에 떠다니던 감람나무 잎을 물고 온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감람나무는 사시사철 푸르름을 자랑하는데 비록 물속에서도 생명력을 유지하기는 하나 수표면(水表面) 위, 저지대에서 주로 생성한다. 그러므로 비둘기가 이 나무 잎사귀를 물고 온 것은 땅에 물이 많이 감소되었다는 충분한 증거물이 된다. 한편 홍수로 말미암아 모든 생물이 멸절된 중에(7:22) 이처럼 푸르른 생명체가 소성하고 있다는 것은 (1)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끝났음과 이제 새 시대가 도래케 되었음을 알려 주며(9:8-19) (2) 사망 권세를 물리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을 예표 해 준다. 홍수 심판이 끝나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마지막 종말이 되면 심판이 있다. 주님이 재림하면 심판이 일어나게 되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게 된다.
성 경: [창8:12] 바이야헬 오드 쉬비아트 야밈 아헤림 바이샬라흐 에트 하요나 비로 야시파 슈브 엘라이브
또(오드) - '반복하다'는 뜻, 8, 10절에 이어 이 단어가 거듭 사용된 것은 노아가 물이 줄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한 주일을 보냈음을 강조해 준다<10절>.
다시는 그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더라 - 귀소 본능이 강한 새임에도 불구하고<8절> 비둘기가 이처럼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은(1) 비둘기가 마른땅에서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정착했음과 (2) 노아로 하여금 땅에서 물이 완전히 물러갔음을 깨닫도록 배후에서 동물의 본성에서까지도 제어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게 해 준다. 한편 본장에서 강한 체질의 까마귀가 감당 못할 일을 연약하고 온유한 비둘기가 완수한 것은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는 하나님의 복음 사역을 상기시켜 준다(고전 1:27 ; 고후 11:8-10). 따라서 성도들은 자신과 같이 미련하고 연약한 자를 불러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자랑하되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하여야 할 것이다(고전 1:31). 돌아오지 않았는데 히브리 단어 로를 사용하고 있다. 강한 부정으로서 비둘기가 다시 방주에서 나갔다가 절대 방주로 돌아오지 않았음을 말한다. 노아는 이것을 보고 물이 땅에서 물러갔음을 인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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