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론을 통한 유다 백성 심판 예언(사 5:13-30)
이사야 5장은 유다 백성의 죄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백성들이 악을 선하다고 말하며 선을 악하다고 합니다. 흑암으로 광명을 삼고 광명으로 흑암을 삼고 있습니다. 이런 자들은 화가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뇌물을 받고 악인을 의롭다 하고 의인에게서 공의를 빼앗고 있습니다. 이런 자들도 심판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이방인을 통해서 유다 백성을 심판한다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바벨론 민족을 통해서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무너뜨렸고 유다 백성을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성 경: [사5:13] 라켄 갈라 암미 미빌리 다아트 우키보도 미테 라아브 바하모노 치헤 차마
이러므로 나의 백성이...사로잡힐 것이요...주릴 것이요...목마를 것이며 - 현재의 열락(悅樂)에 대조되는 미래의 고통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바, "화 있을진저 너희 이제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눅 6:25)와 일치한다. 본절에 나오는 '귀한 자'는 문자적으로는 '그들의 영광'이니, 백성들로부터 높임을 받는 자, 즉 사회의 지도급 인사를 말하며, '무리'는 그들과 함께 죄악에 참여한 자들을 가리킨다. 예언 성취의 확실성을 나타내기 위해 과거 시제로 묘사된 '사로잡힘'과 '굶주림'과 '목마름'은 그들의 '무지함'으로부터 연유된 것이다. 이때 그 무지는 단순한 지식의 결핍이 아니라 여호와의 일에 대한 악의적인 무관심(12절)이라고 할 것이다.
성 경: [사5:14] 라켄 히리히바 쉬올 나피샤흐 우파아라 피하 리빌리 호크 비야라드 하다라흐 바하모나흐 우쉬오나흐 비알레즈 바흐
음부가 그 욕망을 크게 내어 한량없이 그 입을 벌린즉 - 히브리어 원문을 보면, 13절과 마찬가지로 '이러므로'(라켄)라는 접속사로 시작한다. 이는 앞절에 묘사된 징벌의 결과, 이들이 어느 정도까지 몰락할 것인가를 생생하게 나타내기 위함이다. 뒤따르는 동사들 역시 13절과 마찬가지로 과거 시제로 쓰여서 예언 성취의 확실함을 더해주고 있다. 선지자에 의하면, 음부는 탐욕스러운 괴물과 같아서 끝없는 욕망으로 한껏 입을 벌려 죄인들을 삼킨다(합 2:5). 삼켜질 대상들이 뒤에 열거된다.
그들의 호와로움과...그 중에서 연락(宴樂)하는 자 - '그들의 호와로움'(하다라)은 직역하면 '그녀의 장식'이니, 곧 예루살렘의 허영을 가리킨다. 이와 더불어 '소란스러운 무리'(하모나)와 그들이 내뿜는 '모든 소음'(쉐오나), 그리고 '환락'(알레즈)들이 넓게 열린 음부의 입으로 빨려 들어갈 것이다. 이는 사악한 자들의 아름다움이 음부에서 소멸하여 그 거처조차 없어진다고 한 고라 자손의 노래(시 49:14)를 연상시킨다(Delitzsch).
성 경: [사5:15] 바이샤흐 아담 바이쉬팔 이쉬 비에네 기보힘 티쉬팔리나
성 경: [사5:16] 바이기바 아도나이 치바오트 바미쉬파트 비하엘 하카도쉬 니키다쉬 비치다카
이러한 징벌의 결과로 이루어질 궁극적인 미래의 모습이 두 개의 대립 개념-인간은 낮아지고(15절) 여호와는 높임을 받는다(16절)-으로 제시된다. 이러한 주제는 2장에서부터 계속 발전된 것이다.
공평하므로 높임을 받으시며...의로우시므로 거룩하다 함을 받으시리니 - 만군의 여호와, 즉 거룩하신 하나님은 공평과 의 가운에서 당신을 가장 잘 드러내시며, 당신이 높임을 받으시는 것도 바로 공평과 의 가운데서이다. 만약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대로 일찍이 공평과 의 가운데서 행하였더라면 그 모습을 통하여 하나님이 온 세계에 거룩하신 분으로 높임을 받으실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러한 기대와는 정반대로 공평과 의 대신 포학과 부르짖음으로 응수할 뿐이었다(7절). 이에 하나님은 비뚤어진 모든 것을 제자리에 돌려놓는 심판의 엄정함과 죄를 척결하시는 의로움을 통해서 교만의 극치에까지 높아진 이스라엘을 죽음의 아가리 속으로 던지시며(14절), 마침내 당신 자신을 온 세계에 거룩하신 분으로 친히 증거 하시려는 것이다.
성 경: [사5:17] 비라우 키바심 키다비람 비하리보트 메힘 가림 요켈루
그 때에는 어린 양들이 자기 초장(草場)에 있는 것같이 먹을 것이요 - 본문은 주석가들에 따라 그 해석이 크게 둘로 나뉜다. (1) 약속으로 보는 경우: '어린 양들(의인)이 살진 자들(부유한 죄인)의 소유를 대신 차지하게 될 것이다'(Targum, Calvin, Vitringa). (2) 경고로 보는 경우: '거룩한 땅이 이방인들의 수중에 넘어가게 될 것이다'(Gill), 혹은 '부자의 소유가 가난한 자의 수중에 넘어가게 될 것이다'(Hendewerk), 혹은 '땅 그 자체가 파멸될 것이다'(Michaelis, Lowth). 문맥상 후자의 해석이 더 바람직하다.
성 경: [사5:18] 호이 모쉬케 헤아온 비하빌레 하샤비 비카아보트 하아갈라 하타아
거짓으로 끈을 삼아 죄악을 끌며...화 있을진저 - 세 번째 화는 여호와의 행하심을 믿지 아니하므로(12절) 오히려 대담하고 뻔뻔하게 불법을 저지르는 사람들에 대한 것이다. 선지자는 이들을 굵은 밧줄로 마차를 끄는 모습에 비유한다. '거짓의 끈'은 죄인들이 그들의 죄악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는 교묘한 궤변이나 그릇된 노리를 가리킨다(Vitringa, Calvin). '끈다'로 번역된 '마솨크'는 그 외에 '견고하게 하다'는 뜻도 내포하고 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본문의 의미는 자명하다. 즉, 거짓된 지식과 언변으로 진실을 왜곡하고 불법을 합법화시킴으로써 악을 행함에 있어서 더욱 대담해진다는 것이다. 그 행위의 대담함과 그 논리의 견고함은 후반부의 '수레 줄'에서 한층 강화된 비유적 표현으로 반복된다. '수레 줄' 즉 마차의 밧줄은 그들이 무시하고 조롱하는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서만 끊어지게 될 것이다.
성 경: [사5:19] 하오미림 이마헤르 야히샤 마아세후 리마안 니리에 비티키라브 비타보아 에차트 키도쉬 이스라엘 비네다아
그들이 이르기를 그는 그 일을 속속히 이루어 우리로 보게 할 것이며 - 이들이 앞절에 묘사된 것과 같은 행위를 할 수 있었던 배후에는 '하나님의 심판은 결코 임하지 않는다'는 완악한 신념이 깔려 있다. 그들은 오히려 이렇게 말한다: '제발 하나님으로 하여금 지체치 말고 신속하게 움직이게 하여 우리 눈으로 그가 행하신다고 아득한 옛날부터 약속해 오신 그 심판을 보게 하라. 그는 다름 아닌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이니 약속한 것을 반드시 지킬 것 아니냐?' 이런 조롱은 최고의 불신앙에서 나오는 것이니, 이미 죄악으로 굳어져버린 그들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느껴질 리가 없다.
성 경: [사5:20] 호이 하오미림 라라 토브 비라토브 라 사밈 호세크 리오르 비오르 리호세크 사밈 마르 리마토크 우마토크 리마르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화 있을진저 - 네 번째 화는 도덕을 파괴하고 가치 전도(顚倒)에 앞장서는 사람들에 대한 것이다. 자기의 잘못을 감추고 오히려 범죄를 합리화하기 위해 채택된 거짓 논리 하에서는 선과 악의 구별은 철폐될 수밖에 없다. 이들에게는 선과 악을 규정한 객관적, 초월적인 규범이 더 이상 존재치 않으며, 있다면 언제나 선한 그들의 행위밖에 없다. 이러한 범죄는 지도자들에게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고질적인 질병들이다. 혹자는 본문을 23절과 관련하여 불의한 사법부에 적용시키나(Gesenius, Hitzig), 유다 지도자 일반의 범죄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광명'과 '단 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상징하며(시 19:8, 10), '흑암'(시 112:4;잠 2:13;전 2:13;마 6:23) '쓴 것'(민 5:18;신 32:32;렘 2:19;4:18;약 3:11)은 악의 상징어로 쓰인다.
성 경: [사5:21] 호이 하카밈 비에네헴 비네게드 피네헴 니보님
스스로 지혜롭다 하며...화 있을 진저 - 다섯 번째 화는 자기 자신을 지혜자로 자처하는 교만한 사람들에 대한 것이다. 자기중심적 논리의 귀결은 언제나 교만이며, 교만은 악의 완성이다. 교만한 사람은 자기 위의 다른 권위를 인정치 않는다. 따라서 어떠한 훈계나 경고도 그에게는 들리지 않으며 교만은 이런 자기 폐쇄성을 그 특질로 삼는다(잠 1:7;12:1). 그러나 성경에 의하면, 이들은 어리석음의 전형일뿐이다. 참된 지혜는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데서 주어진다(잠 1:7;3:5;9:10). 한편, 본문에 언급된 '지혜'와 '명철'은 위대한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필수적인 덕목들로 간주되었다(11:2;창 41:39;삼상 16:18).
성 경: [사5:22] 호이 기보림 리쉬토트 야인 비아니세 하일 리미소크 세카르
성 경: [사5:23] 마치디케 라샤 에케브 쇼하드 비치디카트 차디킴 야시루 미메누
여섯 번째이자 마지막 화는 술에 젖은 불의한 재판관에 대한 것이다. 그는 여기서 범죄한 유다 지도자들의 한 전형으로 그려졌다.
포도주를 마시기에 용감하며 독주를 빚기에 유력한 그들은 - 선지자의 어조는 풍자적이다. 선지자는 그들을 용감하고 힘이 넘치는 사람이라 부른다. 그러나 그 용감함은 의를 위한 것이 아니라 기껏해야 포도주를 마시기 위한 것이며, 그 유력함은 공평을 위한 것이 아니라 기껏해야 독주를 빚기 위한 것이다.
성 경: [사5:24] 가켄 케에콜 카쉬 리숀 에쉬 바하샤쉬 레하바 이리페 샤리샴 카마크 이흐예 우피리함 카아바크 야알레 키 마아수 에트 토라트 아도나이 치바오트 비에트 이미라트 카도쉬 이스라엘 니에추
'이로 인하여'(라켄)라는 접속사에 유도되는 형벌 내용은 앞의 네 가지 화(18, 20, 21, 22절)에 대한 것이다. 자기중심적 아집에 사로잡혀 선악을 혼동하고 어떠한 훈계도 거부한 채 교묘한 논리를 내세워 스스로를 정당화하기에 바쁜 유다 지도자들은, 당장은 권세가 있고 힘 있어 보일지 모르나 선지자의 눈에는 연약하기 그지없는 풀 같고 나무 같은 존재에 불과하다(벧전 1:24). 불 같은 하나님의 심판 앞에 그들은 마치 땅 속에서 썩어가는 뿌리와 먼지 되어 바람에 흩날리는 꽃처럼 그렇게 허무하게 소멸되고 말 것이다.
그들이 만군의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며...멸시하였음이라 - 그들은 실수에 의해서 한두 가지 잘못을 저지른 것이 아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율법'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의 말씀' 자체를 무시하고 적대했다. 말하자면 그들의 범죄는 총체적이다.
성 경: [사5:25] 알 켄 하라 아프 아도나이 비암모 바예트 야도 알라이브 바야케후 바이리기주 헤하림 바티히 니빌라탐 카수하 비케레브 후초트 비콜 조트 로 샤브 아포 비오드 야도 니투야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노를 발하시고 - 본문은 몇몇 주석가들이 주장하는 대로(Alexander, Calvin, Leupold) 과거에 내려진 하나님의 형벌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단정할 수 없다. 여기 쓰인 동사들은 예언적 과거 시제로서 임박한 미래의 확실함을 강조하고 있다. 선지자는 24절에 시적으로 묘사된 하나님의 심판이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을 통해서 임할 것인지를 말하려 한다. 본문을 직역하면 '여호와의 분노가 그 백성들 안에서 불탈 것이며'이다. '분노'로 번역된 '아프'는 본래는 '(숨쉬는) 콧구멍'을 의미하는데, 화가 극에 달하여 숨을 거칠게 몰아쉬는 모습에서 연유하여 '분노'란 뜻을 갖게 된 것이다.
산들은 진종하며 - 본문을 과거로 해석하는 이들은 이 말이 웃시야 왕 시대에 일어난 지진(암 1:1)을 가리키는 것으로 본다(Leupold). 그러나 이 말은 여호와의 분노와 심판의 격력함을 나타내는 비유 언어로, 바로 앞에 나오는 '손을 들어 그들을 치신지라'는 표현과 연관된 것이다(Delitzsch).
성 경: [사5:26] 비나사 네스 라고임 메라호크 비샤라크 로 미키체 하아레츠 비힌네 미헤라 칼 야보
먼 나라들을 불러 땅 끝에서부터 오게 하실 것이라 - 앗수르(혹은 바벨론) 군대의 침공을 가리킨다. '먼 나라'라는 표현은 신 28:49 이하를 염두에 둔 것이다. 이들은 땅 끝에서 사는 것으로 간주되었으니(39:3), 당시 사람들에게 유브라데 강은 땅 끝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슥 9:10 참조).
보라 그들이 빨리 달려 올 것이로되 - 먼 곳에서부터 점차 가까이 달려오는 그들의 모습이 히브리어 원문에는 '보라'라는 감탄사에 이어 두 개의 부사로 집약되고 있다:'빠르게'(메하라)와 '날렵하게'(칼).
성 경: [사5:27] 에인 아예프 비에인 코셀 보 로 야눔 비로 이샨 비로 니피타흐 에조르 할라차이브 비로 니타크 시로크 니알라이브
그들의 허리띠는 풀리지 아니하며 그들의 신들메는 끊어지지 아니하며 - 혹자는 이 구절이 밤에 휴식을 취할 때에도 허리띠와 신발 끈을 풀어놓지 않을 만큼 전쟁에 임하는 각오가 대단하다는 식으로 해석한다(Henderson, Delitzsch). 그러나 '끊어지다'(니타크)는 동사에서 알 수 있듯이, 이것은 행진에 방해를 주는 어떤 일도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에 기본적인 군사 장비를 철저하게 점검했음을 말하는 것이다(Leupold).
성 경: [사5:28] 아세르 히차이브 쉬누님 비콜 카쉬토타이브 디리코트 파리소트 수사이브 카차르 네히샤부 비갈리길라이브 카수파
그들의 살은 날카롭고 모든 활은 당기어졌으며 - 상황은 점점 더 급박해진다. 질서 정연하게 대오(隊伍)를 지어 먼 곳으로부터 달려온 그들은 이제 유다를 향한 모든 전쟁 준비를 다 끝마쳤다. 고대에서 가장 중요한 전쟁 무기로 꼽히는 화살과 병거들은 출전의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다. 이미 목표물을 향해 활은 '당기어졌다'(데루코트). 이는 직역하면 '활을 발로 밟았다'이다. 고대인들이 전쟁에서 사용했던 강궁(强弓)은 활이 너무 커서 발로 밟아야만 구부릴 수 있었다(대상 5:18;시 7:13;11:2).
성 경: [사5:29] 쉬아가 로 칼라비 비샤아그 이쉬아그 카키피림 비이니홈 비요헤즈 테레프 비야필리트 비에인 마칠
그 부르짖는 것은 암사자 같을 것이요...건질 자가 없으리로다 - 함성과 더불어 드디어 전쟁은 시작된다. 고대인의 전쟁은 함성과 함께 시작되었다(시 74:4;렘 2:15). 선지자의 귀에 그 소리는 마치 암사자와 어린 사자의 포효소리로 들린다. '어린 사자'로 번역된 히브리어 '케피림'은 젖을 떼고 어미에게서 독립하여 스스로 먹이를 잡을 줄 아는 젊은 사자를 가리킨다. '부르짖음'과 '소리 지름'에 다 같이 사용된 '솨아그'는 사자가 먹이를 찾을 때의 포효소리를 뜻한다.
성 경: [사5:30] 비이니홈 알라이브 바욤 하후 키나하마트 얌 비니바트 라아레츠 비힌네 호세크 차르 바오르 하샤크 바아리페하
사람이 그 땅을 바라보면 흑암과 고난이 있고...어두우리라 - 위아래를 둘러보아도 도피할 데도, 도움을 청할 데도 없다(Leupold). '바라보다'로 번역된 '나바트'는 '기대를 품고 바라보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땅을 바라봄'은 '하늘을 바라봄'과 대조되는 시적 표현이다(8:22). 보이는 것은 입을 벌리고 있는 어두움과 고통뿐이다. 위를 쳐다보아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이처럼 고통과 결부된 흑암은 이스라엘의 절망을 표상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이야말로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는'(20절) 이들에게 참으로 적절한 심판 아닌가!
[예레미야 2장 히브리어 강해말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들이지 않는 유다 백성(렘 2:2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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