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히브리어성경

[히브리어 신약성경 야고보서강해] 복음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믿음(약 1:19-27)

베들레헴 2022. 4. 21.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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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1장에서 야고보 사도는 복음 말씀을 들었다면 실천해야 할 것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말씀을 듣고 생활에 실천할 때 온전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씀합니다. 야고보 사도는 행함으로 구원받는 것에 대해서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백성이 행함으로 성화 구원을 이루어가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대로 행함으로 온전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복음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믿음(약 1:19-27)

 

도를 받는 자가 되라(19-21)

• 1:19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며 성내기도 더디하라

듣기는 속히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에 있어서 속히 하라는 것이다. 이 말씀을 갈망하고 사모하여 이 도를 받기에 힘을 써서 자기 자신의 문제와 모든 문제를 이 말씀으로 해결하며 자신의 생명을 삼아 나아가야 한다.

말하기는 더디 하며 발표하는 일은 더디 하라는 것이다. 잘못 발표하여 많은 사람이 그 영향을 받아 해독을 입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때 그 책임은 가르친 사람에게 있다.

그러므로 성경을 해석할 때는 확실하고 진리의 원리원칙에 맞게 하여야 된다. 확실치 않은 것을 말하며, 잘못 가르치면 하나님의 심판대에서 큰 심판을 받게 된다. 남을 가르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가 먼저 가르침을 받아 자기 자신을 만드는 것이다. 자기가 먼저 이 도를 학습하여 도의 사람이 되려고 하지 않고 남을 가르치려고만 하는 사람은 자신의 진보가 없고 나중에는 버림을 받게 된다(고전 9:26-27 참조).

성내는 것과 분노하는 것은 다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 성내는 것은 벌써 시험에 넘어간 것이다. 성전 때는 기도가 안된다. 하나님의 사람은 온유하고 화평하여야 된다. 제 마음대로 안된다고 하여 성내지 말며 남이 잘못할 때에도 성내지 말고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시기를 기다려야 된다. 제가 하겠다는 생각과 조급한 마음으로 하는 것은 다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시기를 끝까지 참고 견디어야 한다.

성내기도 더디 하라 함은 성도가 성을 내지 않아야 되겠지만 부지중에 실수하여 성이 나도 해가 질 때까지 품지 말라는 것이다(엡 4:26). 할 수 있는 대로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케 하여야 된다. 아무리 성낼 일이 있어도 성을 내지 말고 참고 견디어 나아가야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져 나아간다.

또한 성내기를 더디 하라는 것은 무슨 일이나 감정으로 하지 말라는 뜻이다. 즉, "다시는 상종치 않는다"는 식의 감정으로 하면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직장에서 윗사람에게 책망을 받았다고 즉석에서 사표를 내고 다른 직장으로 옳기는 것과 같이 기분이나 감정에 의하여 모든 일을 처리해서는 안된다. 모든 일을 신중히 생각하여 원리에 맞도록 바로 처리하여야 된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 옳은 것이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가 자기를 은 삼십에 쏟고 잡으러 오는 무리와 함께 왔을 때 "친구여! 네 할 일을 하라"라고 하셨다(마 26:50).

이와 같이 예수님은 모든 일을 감정적으로 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불쌍히 여기셨다. 사도 요한에게는 감정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성격이 있었다. 사마리아를 지나실 때 그들이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으니까 하늘에서 불을 내리게 하여 달라고 하였다(눅 9:51-56). 이것은 감정적인 말이다. 주님을 영접하지 않는 것은 벼락을 받아도 마땅하지만 그렇게 감정적으로 벼락을 내린다면 의로운 일이 못된다. 주님을 영접하지 아니한 그 자체가 벌써 벼락을 받은 것이고 또 앞으로도 형벌받을 날이 올 것인데, 구태여 "벼락 맞아라"하고 감정적으로 저주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도리어 그런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축복해 주어야 된다.

• 1:20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성내는 자체가 벌써 마귀의 충동을 받은 것이므로 하나님의 의를 이를 수 없으며 아무리 옳은 일이라 할지라도 성나서 감정적으로 하면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지지 못한다. 하나님의 의는 오직 성령의 감동으로 온유하고 화평하게 사랑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 1:21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 버리고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 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

우리 속에는 넘치는 악독이 있다. 이것을 내어 버리는 데 힘을 써야 된다. 사람의 속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음란, 도적질, 살인, 간음, 탐욕, 악독, 속임, 음탕, 흘기는 눈, 훼방, 교만, 광패 등이라고 하였다(막 7:21-22).

속에 있는 더러운 것이 넘쳐서 밖으로 홀러 나오므로 넘치는 악이라고 하였다. 이와 같은 더러운 것과 악한 것이 우리 속에 자리잡지 못하도록 매일매일 쉬지 않고 내어버리는 데 있어서 먼저 자기 자신의 죄악을 제거하고 또 자기 자신의 문제부터 해결하려고 노력하여 야 된다.

타락된 사람은 다른 사람의 문제만 해결하려고 한다. 이것은 믿음에 선 것이 아니다. 마치 바리새인들이 다른 사람은 가르치면서 자기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고, 도적질 하지 말라 하면서도 자기는 도적질 하는 것과 같다(롬 2:19-24).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 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킨다. 믿는 자는 도가 벌써 마음에 심기워져 있는데 이들로 하여금 더욱더 많은 도를 받아 나아가라고 권함이다. 이 도는 온유한 마음을 가져야 받을 수 있으며 목이 곧고 완악하고 교만한 자는 받을 수없다. 회개하여 자기 생각, 자기 지식, 자기주장을 버리고 온유한 마음으로 이 도를 간절히 사모하는 자라야 받을 수 있으며 또 이 양식을 꿀보다 더 달게, 금보다 더 귀하게 여기게 된다.

온유는 온유로써 통한다. 말씀은 온유한 것인데 마음이 강퍅하고 뻣뻣하면 말씀이 튕겨 나오며 생명이 없게 된다. 상한 심령을 가지면 마음이 온유하여진다. 자기가 죄인 중에 괴수인 줄 알고 자기를 부인하여 무(無) 요 공(空)이 된 자가 온유한 자이다. 주린 자가 먹을 것을 찾음과 같이 은유한 마음으로 사모하고 애쓰고 찾아야 이 도를 받을 수 있다. 주리를 목마를 때에 음식을 맛있게 먹고 잘 소화시켜 피와 살이 되고 힘이 됨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도 이 말씀을 사모하여 어떻게 하면 한마디 얻어먹을 수 있을까 하고 주리고 목말라 허덕일 때에 말씀 하나를 얻으면 금덩이보다 더 귀하게 받고 꿀보다 더 달게 먹어 소화가 잘 되어 자기에게 생명이 되는 것이다.

 

도를 행하는 자가 되라(22-27)

• 1:22-24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누구든지 도를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양이 어떠한 것을 곧 잊어 버리거니와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면 자신을 속이는 자이다. 거울을 볼 때 자기의 얼굴이 드러났지만 거울을 떠나면 곧 잊어버리게 됨과 같이 성경 말씀을 들을 때는 자기의 정체가 적나라하게 다 드러나 내가 부족하구나 내가 이렇게 믿어야 되겠구나 하고서도 나가서 살 때는 말씀을 떠나 제 마음대로 행하니 아무 소용이 없다.

이런 식으로 아무리 오래 믿어도 아무것도 되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거울을 볼 때 얼굴에 무엇이 묻었으면 닦아야 함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자기 자신의 정체가 드러날 때 자기의 결점을 발견하여 고치고 죄에서 떠나야 된다. 또한 깨달은 하나님의 말씀은 잘 간직하여 그대로 자식이 걸어가야 한다.

자신이 그 도에 거하지 못하면 자기의 생명이 되지 못한다. 우리는 과거에 일곱 번 넘어졌어도 다시 한번 일어서야 한다. 진리의 말씀을 비추어 줄 때 이전에는 못하였지만 지금은 이 말씀을 붙들고 일어서서 거기에 거하며 그대로 행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만능으로 붙들어 주신다. 이것이 산 믿음인 것이다.

• 1:25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은, ① 영이 자유하는 법칙이다. ② 영이 빛과 산 생명으로 자유로이 살아 나아가며 전진하고 향상하는 세계의 법칙이다. ③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해방시켜 주신 복음이다.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그것이 좋으므로 그대로 살게 된다. 그리하면 복을 받는다. 전깃불을 본 사람은 등잔불을 버리고 전기를 가설할 생각이 든다. 좋은 것을 보았으므로 그대로 그것을 가지고 살려고 한다.

자유의 맛을 본 사람은 그 자유의 세계를 좋아하여 거기에 들어가려고 애를 쓴다. 천국은 침노를 당한다고 하였다(마 11:12). 천국을 본 사람은 침노하지 않을 수 없어 기어이 들어가려고 애를 쓴다. 그리하면 마침내 들어가게 된다. 예를 들면 깊은 산중에 살던 사람이 서울에 올라와 문화 시설을 보고 나서는 서울에 살 결심을 하고 시골의 모든 것을 팔아서 기어코 서울에 올라오는 것과 같다. 우리도 자유하게 하는 율법을 들여다보려면 영이 열려야 된다. 영이 열려야 그 세계를 들여다보며 그 세계의 자유를 알게 된다. 그 세계는 영이 평안하고 아무 제재나 두려움이 없고 생명과 평화가 가득 찬 아름다운 빛의 세계요, 무한히 향상하고 전진하는 영의 세계이다. 이 세계를 들여다보고 나면 기어이 그곳에 들어갈 마음이 생겨 흠모하게 되고, 사모하게 되고, 그 세계에서 살려고 노력하게 되어 마침내 들어가게 된다. 이것이 실행하는 자이다.

요한복음 8:32에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고 하였다. 복된 진리의 말씀을 붙들고 그 안에서 영으로 살려고 노력하므로 마침내 진리 가운데 들어가 그 진리대로 인격이 만들어지고 영이 자라나서 복을 받게 된다.

• 1:26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 것이라

경건이란 신앙생활 면을 말한다. 여기에서는 하나님을 스스로 잘 믿고 잘 섬긴다고 생각하고 있는 자로 외부적 행위 면에서 어느 정도 경건한 태도를 가지고 있는 자를 가리킨다. 이 사람은 자기가 참으로 하나님을 잘 믿는 줄 알고 있다. 그러나 혀를 함부로 놀리는 까닭에 그 경건이 헛되게 된다.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이런 사람은 말을 함부로 하는 자이니, 자기의 잘하는 것을 말하고, 남을 정죄하는 말을 하며, 스스로 잘 믿는 것처럼 말하는 것을 가리킨다. 또 자기를 자랑하고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이다.

자기 마음을 속이면 자기 속에 있는 죄악과 싸우지 않는 자로서 자기 눈 속의 들보를 보지 못하는 자이다. 자기 마음속 깊이 옛사람의 부패성이 있는데 이것을 깨닫고 자기가 죄인인 것을 알아 탄식하지 아니하고 외부적으로 몇 가지 잘한 것을 가지고 자기를 자랑하고 남을 폄론하는 일을 거침없이 하면 자기 마음을 속이고 외식하는 자가 된다.

베드로전서 3:10-11에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라고 하였다. 참으로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야 된다. 말에게 재갈을 물려서 함부로 입을 벌리지 못하게 함과 같이 사람의 입술에 재갈을 물려서 함부로 입을 벌리지 못하게 하여야 된다. 신자가 함부로 입을 여는 것은 신앙을 버리는 것이다. 이 입으로 은혜가 다 새어 나가 자신이 손해를 보고 남에게도 해독을 주게 된다. 또 말을 많이 하면 실수가 많다고 하였다(잠 10:19). 그러므로 필요한 말만 하여야 된다.

• 1: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란 우리를 구속하여 주시고 사랑하여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라는 뜻이다. 구원을 받은 감격에 넘치고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달아 하나님 앞에서 사는 생활이 신본주의 신앙이다.

사람 앞에서만 사는 생활은 인본주의 신앙이다. 사람 앞에 옳게 보이려고 하여서는 안되며 하나님 앞에서 바로 살려고 하는 것이 바른 경건이며 바른 신앙이다. 사람은 얼마든지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만은 못 속인다. 사람 앞에서는 의인으로 나타날 수 있어도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므로 속일 수가 없다. 주일에 장사하고 일하고, 십일조를 잘라먹고도 예배당에 나와 사람 앞에서는 면면스럽게 다닐 수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책망과 형벌을 받는다. 또 탐심을 품고 하는 것을 사람은 모르고 속지만 하나님께서는 다 아신다. 하나님 앞에서 참된 경건은 말에 있는 것이 아니요 마음에 있고, 말을 조심하는 데 있으며 고아나 과부를 환난 중에 돌아보는 데 있다. 곧 사람을 사랑하는 데 있다. 교회에서는 무의무탁한 60세 이상의 과부를 등록시켜 돌아보아야 하며(딤전 5:9), 또 고아를 돌아보아야 된다.

또 속화된 세상에 물들지 않는 사람이 참된 경건의 신앙을 가진 사람이다. 세상이 극도로 타락되고 사람들이 방탕하여도 신자들은 방탕하여서는 안된다. 또한 교역자는 양 떼를 바로 기르고, 양 떼들을 이 진리의 길로 바로 이끌고, 세상을 이기며, 속화된 세상에서 떠나야 된다. 또 주님을 위하여 희생하려 할 뿐만 아니라 희생하는 생활을 하여야 된다. 이방과 이스라엘을 유브라데 강으로 갈라놓음과 같이(수 1:4) 세상과 교회, 세인과 친국 백성은 갈라놓아야 된다. 서로 십자가에 못 박으려 하므로 같이 가려고 하여도 갈 수 없다(갈 6:14). 그러나 말세 때는 유브라데 강이 마른다고 하였다(계 16:12). 세상과 교회와의 경계선이 없어져서 세상이 교회에 들어와 세상과 교회를 구분할 수 없도록 혼돈하게 한다. 그러므로 말세에는 세상에 물들지 않음이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것은 힘든 것이다. 그러나 싸워서 이겨야 된다. 세상은 짐승이요(계 13:1), 음녀라고 하였다(계 17:1). 인본주의 세상 문화는 음녀와 같이 아름답게 단장하여 성도를 미혹하고 세상에 속화되게 하려고 한다. 이것이 모두 마귀의 미혹하는 역사이다. 여기에 미혹되지 않고 광야의 길을 걸어가면서(계 12:14) 신앙을 지킴이 세상에 물들지 아니하는 것이다. 이러한 생활이 참된 경건이며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을 찾으신다.

[신약 히브리어 성경 히브리서] 구원을 하찮게 보지 말라(히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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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2장에서는 내가 구원받은 것을 소홀히 여기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주심으로 받은 구원입니다. 이 구원은 너무나 값진 것입니다.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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