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삼서 1장에서 사도 요한은 가이오에게 편지를 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가이오의 신앙과 믿음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말을 듣고 요한은 마음에 흡족해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 안에서 행해야 합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300년 동안 동행했습니다. 우리도 주님과 함께 동행하면서 거룩한 성화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가이오에게 편지는 요한(요삼 1:1-4)
1절 호 프레스뷔테로스 가이오 토 아가페토 혼 에고 아가포 엔 알레데이아
성 경: [요삼1:1]
주제1: [진리와 사랑 안에 거하라]
주제2: [인사말]
장로는 사랑하는 가이오...편지하노라. - 사도 요한의 세 번째 편지는 매우 개인적인 것으로(Barker) 수신자 가이오에 대한 깊은 애정과 관심이 글 전반에서 발견된다(Barker, Smalley). 이 편지는 바울이 빌레몬에게 보냈던 것과 성격상 유사하다(Wilder, Smalley). 요한은 본절에서 자신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장로'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다. '장로'는 사제나 감독처럼, 일정 지역에서 영향 있는 지도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직임을 나타내는 듯하다(Stott, Smalley). 한편 수신자인 '가이오'는 당시에 흔한 이름이었으며(Barker, Stott, Smalley, Wilder, Lenski) 그 뜻은 '기쁨', '환희'이다. 가이오라는 이름은 세 사람에게서 발견된다. (1) 바울이 세례를 주고, 후에 데살로니가의 첫 감독이 되었다고 전해지는 고린도의 가이오(롬 16:23; 고전 1:14). (2) 바울의 동역자로 데살로니가와 아리스다고 그리고 에베소에서 고난을 같이 한 마게도냐의 가이오(행 19:29). (3) 바울의 마지막 선교 여행에서 그리스로부터 마게도냐를 지나 드로아까지 동행한 더베의 가이오(행 20:4). 4세기 경의 사도적 관행(Apostolical Constitutions)에 보면(vii. 46. 9). 이 세 번째 가이오가 나중에 요한 사도에 의해서 버가모의 첫 감독으로 임명된 것으로 보아 이 가이오가 본서의 수신자인 듯하다(Barker, Stott, Smalley).
곧 나의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 '나의'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고'는 1인칭 대명사로 흔히 생략되기 쉬우나 본절에서는 강조되어 표현되고 있다. 이는 가이오에 대한 요한의 개인적인 사랑이 돈독함을 시사한다(Barker, Smalley). '참으로'의 헬라어 '엔 알레데이아'는 문자적으로 '진리 안에서'라는 의미로 가이오에 대한 요한의 사랑이 '진리 안에서' 혹은 '진리로' 행하는 사랑임을 시사한다(Stott, Lenski, Smalley).
2절 아가페테 페리 판톤 유코마이 세 유오두스다이 카이 휘기아이네인 카도스 유오두타이 수 헤 프쉬케
성 경: [요삼1:2]
주제1: [진리와 사랑 안에 거하라]
주제2: [인사말]
사랑하는 자여...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 요한은 관습적인 기원의 양식을 통해서 다시 한번 가이오를 향한 그의 개인적이고도 따뜻한 마음을 전한다(Smalley, Stott, Barker). '잘 되고'로 번역된 헬라어 '유오두스다이'는 '유'('잘')와 '호도스'('길')가 합성된 '유오도오'('여행을 잘하게 하다', '번영하다')에서 유래된 것으로, 문자적으로는 '좋은 길로 인도됨', '좋은 여행을 함'이란 의미를 가지나 은유적으로는 '번영하다', '성공하다'의 뜻을 가진다. 요한은 가이오의 만사가 번영하기를 간절히 기원하고 있다(Stott, Lenski, Smalley). 한편 '강건하기를'의 헬라어 '휘기아이네인'은 누가의 경우 튼튼하고 정상적인 사람을 묘사할 때 사용하고(눅 5:31; 7:10; 15:27) 바울의 경우에는 건전한 가르침에 사용했다(딤전 1:10; 6:3, Stott, Lenski, Smalley).
네 영혼이 잘 됨같이. - '영혼'으로 번역된 헬라어 '헤 프쉬케'는 그리스도 안에서 얻게 된 영적인 생명을 가리킨다(요 10:11; 요일 3:16, Wengst, Small - ey). 요한이 가이오의 영적인 상태와 육신적인 상태를 비교하여 육신의 형통함과 강건함을 기원하는 것으로 보아 가이오의 영적 상태는 염려할 상태가 아니었던 듯하다(Barker).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들의 영적인 상태와 육신의 형통함이나 강건함은 한 편으로 치우칠 문제가 아니라 균형(均衡)을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Barker, Lenski).
3절 에카렌 가르 리안 에르코메논 아델폰 카이 마르튀룬톤 수 테 알레데이아 카도스 쉬 엔 알레데이아 페리파테이스
성 경: [요삼1:3]
주제1: [진리와 사랑 안에 거하라]
주제2: [인사말]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거하되. - 본문은 초대 교회들 사이에 2세기까지 활발히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그리스도인들의 왕래에 대해 암시하고 있다. 이것은 사회 환경의 변화나 여러 모양의 압력과 핍박으로 인한 불가피한 왕래뿐만 아니라 서로의 격려를 통해 신앙을 굳게 세우게 하기 위한 능동적인 왕래를 내포한다(Barker, Smalley). '형제들'의 헬라어 '아델폰'은 그리스도인 목회자를 지칭하기도 하며(요일 3:14, Smalley) 초대교회 성도들을 가리키기도 했다(살전 1:4; 2:1, 14,17). 본절의 '아델폰'은 선교 사역을 위해 여행하면서 교회에 문제가 있을 경우 특별히 방문하기도 하던 사역자인 듯하다(Barker, Smalley).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 형제들이 요한에게 가이오에 대하여 전하여 준 것은 가이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것이었다. 가이오가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을 요한이 크게 기뻐한 것은 당시 가이오가 진정한 복음인 진리를 반대하는 거짓 교사들의 온갖 위협에도 불구하고 의연하게 복음을 지킬 뿐만 아니라 복음 안에서 행하였기 때문이다(Barker, Westcott). 가이오가 하나님의 진리인 복음을 고수하며 그 안에서 행한 행위는 '사랑'으로 표현되었다(6절, Smalley). 이러한 진리에 대한 고백과 고수 그리고 사랑의 표현은 상호 보완적인 것으로 그리스도인들이 갖추어야 할 성품이다(요이 1:1,3,4, Stott). 한편 '행한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페리파테이스'는 현재 시상으로, 가이오가 항상 진리 안에서, 진리와 더불어 사랑을 표현하면서 살고 있음을 시사한다(Smalley, Wilder).
4절 메이조테란 투톤 우크 에코 카란 히나 아쿠오 타 에마 테크나 엔 알레데이아 페리파툰타
성 경: [요삼1:4]
주제1: [진리와 사랑 안에 거하라]
주제2: [가이오에 대한 칭찬과 권면]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 '자녀들'은 요한이 목회의 대상으로 느끼는 모든 그리스도인을 가리키지는 않는다(Barker). 오히려 요한이 자녀들에 대한 부모의 관심과 사랑으로 영육 간에 돌보아 왔던 대상들을 가리키는 듯하다(고전 4:14-16; 갈 4:19; 빌 2:22; 살전 2:11; 요일 2:1, Stott, Smalley). 왜냐하면 '자녀들'앞에 사용된 소유 대명사 '에마'('나의')가 저자 요한과 자녀들의 상당히 오래되고 깊은 친분 관계를 암시하기 때문이다(Stott, Barker, Lenski, Wilder, Westcott). 한편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표현은 요한 이, 삼서 외에는 신약성경에서 크게 강조되지 않는다. 요한 이서와 삼서에서 '진리'가 특히 강조되는 것은 요한의 공동체가 당면한 위기 즉 진리인 복음을 곡해하고 거짓된 교리를 전파하던 거짓 교사들의 횡포에 대항하기 위함이다(Stott). 요한은 '진리'를 강조하면서 이 '진리'를 '행함'과 철저히 연관시키고 있다(요일 1:6,7; 2:11; 요이 1:4,6). 이는 진리를 알 뿐 아니라 그 진리대로 행해야 함을 시사한다(Smalley, Stott).
더 즐거움이 없도다. - 개역성경에는 본문이 본절의 마지막 부분에 기록되어 있으나 헬라어 본문에는 본절의 서두에 기록되어 있어 가이오에 대한 소식을 들은 것이 요한에게 가장 큰 기쁨이었음을 강조한다. '더'에 해당하는 헬라어 '메이조테란'은 이중 비교급으로 요한이 가이오의 소식 즉 가이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소식을 다른 어떤 소식보다 훨씬 더 기뻐하고 있음을 시사한다(Smalley, Lenski). 한편 '즐거움'의 헬라어 '카란'이 일부 사본에서 '카린'('은사', '은총')으로 기록되어 있어서(Codex Vaticanus), 혹자는 이를 인정하나(Vulgate, Westcott, Hort) 이는 필경사의 실수일 가능성이 높다(Stott).
[요한이서 헬라어 원어 강해설교] 진리를 아는 자를 축복함(요이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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