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43장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는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서 말씀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지 않으면 바벨론에서 해방될 수가 없다. 전에는 여호와 하나님께 죄를 지었지만 하나님은 기억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나님이 용서했기 때문이다. 성도의 죄도 예수님의 피로 덮어주셨기 때문에 더 이상 기억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의 구속자 여호와 하나님(사 43:14-28)
14-21절, 새 일을 행하심
[14절] 너희의 구속자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여호와가 말하노라. . . .
이사야는 말한다. “너희의 구속자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위하여 내가 바벨론에 보내어 모든 갈대아 사람으로 자기들의 연락(宴樂)하던 배를 타고 도망하여 내려가게 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너희의 구속자(救贖者)이시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여호와”라고 부르신다. 하나님은 ‘여호와’ 즉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스스로 계신 자이시다. 그 분만 참 하나님이시다. 그는 이스라엘을 구속(救贖)하신 구주이시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곧 피조 세계를 초월해 계신 엄위하신 하나님이시다. 또 하나님의 섭리는 그의 백성을 위한 구원 섭리이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백성을 위해 누구를 바벨론에 보내셨다는 것인가? 메대 파사의 군대들을 보내셨다는 뜻일 것이다. 모든 갈대아 사람들은 이전에 배들 속에서 술을 마시고 춤추며 즐겼었으나, 그들이 멸망할 때 그들은 도망자들처럼 배들을 타고 도망할 것이다.
[15절]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자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 . . .
하나님께서는 다시,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자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 왕이니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다시 자신이 ‘여호와’이시며 ‘그들의 거룩한 자’이심을 강조하신다. 하나님은 과연 영원자존자이시다. 또 그는 모든 피조세계를 초월해 계신 엄위하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또 자신을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 왕’이라고 부르신다. 온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또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야곱을 택하심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시작시킨 자이시다. 또 그는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그 백성을 친히 다스리시고 원수들을 멸하시고 자기 백성을 지키시고 구원하신다. 이스라엘의 원수는 바벨론 나라이었다. 오늘날 우리의 원수는 사탄과 악령들이다.
[16-18절] 바다 가운데 길을, 큰 물 가운데 첩경을 내고 병거와 . . . .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바다 가운데 길을, 큰 물 가운데 첩경을 내고 병거와 말과 군대의 용사를 이끌어 내어서 그들로 일시에 엎드러져 일지[일어나지] 못하고 소멸하기를 꺼져가는 등불[심지] 같게 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등불’이라는 원어(피쉬타)는 ‘심지’ (BDB, NASB, NIV) 혹은 ‘아마포 심지’라는 뜻이다(KB).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 하나님께서 홍해에서 애굽 왕 바로의 병거들을 멸하신 사건을 가리키는 것 같다. 출애굽기 14:28은 그때 상황을 전하기를, “물이 다시 흘러 병거들과 기병들을 덮되 그들의 뒤를 쫓아 바다에 들어간 바로의 군대를 다 덮고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더라”고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경험할 새 일이 너무 크기 때문에 출애굽 때의 하나님의 크신 구원의 일 조차도 잊어버리라는 뜻이라고 보인다.
[19-20절]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 . .
이사야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장차 들짐승 곧 시랑[승냥이]과 및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들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나의 택한 자로 마시게 할 것임이라.”
하나님께서 행하실 새 일이란 14절에서 말씀한 대로 바벨론 나라를 패망시키는 일이 첫째요, 이스라엘을 회복시키는 일이 둘째이다. 광야에 길을 내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을 바벨론 포로생활로부터 돌아오게 하는 것, 곧 포로귀환을 암시한다. 또 광야에 물들과 사막에 강들을 내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심령의 회복을 암시하는 것 같다. 이스라엘은 죄와 징벌로 인해 심령이 메말라지고 목말라졌을 것이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생수를 주시고 기쁨과 위로와 소망을 주시고 진리의 지식과 깨달음, 영적인 위로와 만족을 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광야에 물들과 사막에 강들을 내어 그 백성이 마시게 하실 것이며 들짐승들도 하나님을 공경할 것이다. 들짐승은 이방인들을 가리킬지도 모르며, 그렇다면 이 구절은 이방인의 구원을 암시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말미암아 이방세계에 구원이 선포되었고 이방인들이 교회 안으로 충만히 들어왔다.
[21절]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창조하신 목적을 다시 말씀하신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새 일을 행하시는 목적이기도 하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과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동일한데, 그것은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을 찬송케 하기 위하여이다. 에베소서 1:6, 12, 14도 비슷하게 우리의 구원의 목적이 하나님을 찬송케 하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우리를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하심에 대해]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를 구속하심에 대해]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중생 곧 성령으로 인치심에 대해]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알자. 우리 하나님께서는 여호와이시다. 여호와는 ‘영원자존자’라는 뜻이다. 그는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스스로 계신 자이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온 우주와 세상,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창조하셨고 우리 인간을 창조하셨다. 그는 모든 피조세계로부터 초월해 계신 거룩하시고 엄위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는 온 세상을 보존하시고 통치하신다. 그는 창조자와 섭리자이신 것이다. 그는 우리의 구원자이시며 왕이시다. 그는 살아계신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이 하나님을 알자.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아는 것이 구원이며 영생이다(요 17:3).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새 일을 알자. 하나님께서는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새 일’은 바벨론 나라를 패망시키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바벨론의 포로생활로부터 구원하시는 일이다. 그것은 불가능하게 보이는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불가능이 없다. 그는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것은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는 것과 같다. 그것은 영육의 구원을 암시한다. 또 들짐승도 하나님을 공경할 것이라는 말씀은 이방인의 구원을 암시하는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새 일을 행하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와 죽음과 사탄의 권세에서 해방되었다. 하나님의 구원사역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택하신 모든 사람들은 하나도 남김 없이 다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그 세계적 구원의 일을 알자.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시고 구원하신 목적을 깨닫고 그 창조와 구원의 목적대로 살아가자. 그 목적은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을 찬송하기 위하여 사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온 세상의 창조자와 섭리자이심을 인정하고 그를 경외하고 찬송하고 섬기며 그의 율법과 계명대로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고 진실한 도덕적 삶을 사는 것이다. 우리가 경건하고 도덕적인 삶을 살 때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만, 그렇지 못할 때 하나님께 욕을 돌리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멀리하고 하나님만 믿고 소망하며 그의 계명대로, 즉 성경 교훈대로 의와 사랑과 선행을 실천하자.
22-28절, 이스라엘의 죄를 도말하심
[22-24절] 그러나 야곱아, 너는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고 . . . .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또 말씀하신다. “그러나 야곱아, 너는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고 이스라엘아, 너는 나를 괴로워하였으며 네 번제의 양을 내게로 가져오지 아니하였고 네 제물로 나를 공경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나’라는 말은, 이스라엘 백성이 앞절에 증거한 하나님의 인간 창조의 목적과 동떨어지고 하나님께서 과거에 베푸셨던 많은 은혜와 구원을 저버렸음을 가리킨다. 그들은 하나님을 부르지 않았다. ‘하나님을 부른다’는 말은 예배와 찬송과 기도의 행위를 가리킨다(창 4:26). 그들은 하나님께 형식적 예배를 드렸는지는 몰라도 진심의 예배를 드리지는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을 괴로워하였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을 부담으로 여겼다. 그들은 진심으로 죄를 회개하거나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 참 신앙은 하나님을 섬기는 즐거움이 있다. 시편 19:10, “[하나님의 말씀은]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시편 119:103,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 찬송가 82장,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되시며 나의 생명이 되신 주.” 찬송가 85장, “구주를 생각만 해도 내 맘이 좋거든.” 찬송가 482, “내 기도하는 그 시간 그때가 가장 즐겁다.”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나는 예물로 인하여 너를 수고롭게 아니하였고 유향으로 인하여 너를 괴롭게 아니하였거늘 너는 나를 위하여 돈으로 향품을 사지 아니하며 희생의 기름으로 나를 흡족케 아니하고 네 죄 짐으로 나를 수고롭게 하며 네 죄악으로 나를 괴롭게 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예물을 강요하지 않으셨다. 헌금은 믿음과 자원함으로 드리는 것이어야지 강요해서 드려서는 무의미하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 돈을 드려 하나님을 섬기려 하지 않았고, 오히려 범죄함으로 하나님을 괴롭게 하였다. 그들의 불경건과 부도덕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과 너무 거리가 멀고 하나님의 기대와 너무 거리가 멀고 하나님의 크신 은혜에 심히 배반하는 일이며 배은망덕한 일이었다.
[25절]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 . . .
하나님께서는 또,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회복의 근거를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그들의 허물과 죄를 도말하신다. ‘도말한다’는 원어(마카 ה)는 ‘지운다, 씻는다’는 뜻이다. 이스라엘의 죄를 깨끗이 지우고 깨끗이 씻는 것은 그들의 행위에 근거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긍휼에 근거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신다.
이와 같이, 우리의 구원도 우리의 행위에 근거하거나 우리의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代贖)에 근거한다. 디모데후서 1: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이것은 구약성경에 이미 예언된 바이었다. 다니엘 9:24,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7일)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永贖)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 스가랴 3:9,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 여호수아 앞에 세운 돌을 보라. 한 돌에 일곱 눈이 있느니라. 내가 새길 것을 새기며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하리라.”
이 예언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 사역으로 이루어졌다. 히브리서 10:10, 12, 14,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또 주께서 죄를 씻으심은 다시 기억함이 없을 정도로 완전한 씻음이다. 죄는 자신의 기억 속에 남아 있을 수 있고 그에게 피해를 입은 자의 기억 속에 남아 있을 수 있으나, 하나님의 기억 속에서는 완전히 지우겠다고 말씀하셨다! 얼마나 은혜로운 처분이신지! 미가 7:19도, “다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고 말하였다.
[26-28절] 너는 나로 기억이 나게 하고 서로 변론하자. 너는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너는 나로 기억이 나게 하고 서로 변론하자. 너는 네 일을 말하여 의를 나타내라. 네 시조가 범죄하였고 너의 교사들이 나를 배역하였나니 그러므로 내가 성소의 어른들로 욕을 보게 하며 야곱으로 저주를 입게 하며 이스라엘로 비방거리가 되게 하리라[하였노라](원문, KJV).”
실상,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의 의를 나타낼 것이 없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 반대로 심히 죄악되었다. 하나님께서도 그것을 아신다. ‘네 시조’는 야곱을 가리킬 것이다. 야곱의 아들들은 결국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형성하였다. ‘너의 교사들’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 곧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을 가리킬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께 배반하고 범죄하였고 백성은 그들을 따랐다. 지도자의 사상과 인격과 삶은 일반 백성에게 큰 영향을 준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징벌하셨다. 그는 성소의 어른들로 욕을 당하게 하셨고 야곱으로 저주를 입게 하셨고 이스라엘 백성으로 비방거리가 되게 하셨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안에 거하자. 하나님께서는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다(25절).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씻으시는 구주이시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씻으셨다. 우리는 우리의 행위로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했으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로, 즉 그가 십자가의 죽음으로 이루신 완전한 의 때문에 그를 믿음으로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 우리의 의는 이것뿐 예수의 피밖에 없다!
로마서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로마서 9:30-32,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의를 좇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의의 법을 좇아간 이스라엘은 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어찌 그러하뇨? 이는 저희가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함이라. 부딪힐 돌에 부딪혔느니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참 평안과 담대함을 얻는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만 진심으로 섬기자. 우리는 하나님을 형식적으로 섬기지 말고 진심으로 섬기자. 죄에서 떠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며 하나님을 진심으로 섬기자.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찬송하고 기도하는 것이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임을 인식하자.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하나님의 율법 중에 가장 중요한 말씀을 선포하였다. 신명기 6:4-5,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우리는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마태복음 16:24-25,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로마서 12: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그러면 우리는 기쁨을 얻을 것이다.
[욥기 히브리어성경말씀] 욥이 하나님의 전능성에 대해서 주장(욥 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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