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하나님 말씀

[고린도후서 성경 좋은 말씀] 기쁨으로 하는 헌금(고후 9:1-15)

베들레헴 2023. 4. 25.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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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9장에서는 헌금의 태도와 유익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 성도가 하나님 앞에서 헌금을 할 때 자원하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헌금을 할 때 하나님이 재물의 복을 허락해 주신다. 

 

기쁨으로 하는 헌금(고후 9:1-15)

 

[1-2] 성도를 섬기는 일에 대하여 내가 너희에게 쓸 필요가 없나니 이는 내가 너희의 원함을 앎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마게도냐인들에게 아가야에서는 일년 전부터 예비하였다 자랑하였는데 과연 너희 열심이 퍽 많은 사람들을 격동시켰느니라.

헌금의 용도는 성도를 섬기는 일을 위해서다. 그것은 전도자 후원과 구제를 가리킨다. 여기에 구제란 교회 안의 물질적으로 어려운 성도를 위한 구제를 가리킨다. 아가야 지방에 있는 고린도교회가 1년 전부터 구제헌금을 준비하였다는 바울의 자랑이 마게도냐 교인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선한 열심은 다른 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준다. 물론 감동치 않는 자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감동을 받아 선한 결심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다른 이의 선한 행위를 본받을 줄 아는 자가 되어야 한다.

[3-5] 그런데 이 형제들을 보낸 것은 이 일에 너희를 위한 우리의 자랑이 헛되지 않고 내 말한 것같이 준비하게 하려 함이라. 혹 마게도냐인들이 나와 함께 가서 너희의 준비치 아니한 것을 보면 너희는 고사하고 우리가 이 믿던 것에 부끄러움을 당할까 두려워하노라. 이러므로 내가 이 형제들로 먼저 너희에게 가서 너희의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케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였노니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

바울이 디도와 다른 두 형제를 고린도에 먼저 보낸 것은 그들이 1년 전에 작정한 헌금을 준비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만일 그들이 그것을 준비하지 않는다면, 바울이 마게도냐인들과 함께 고린도에 갈 때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이다. 여기에 헌금의 한 원리가 나타나 있다. 그것은 헌금은 미리 준비해야 된다는 것이다. ‘억지라는 원어(플레오넥시아) 탐심이라는 뜻이다. 사람이 헌금할 때 탐심의 영향을 받으면 아까운 마음이 들고 억지로 하는 헌금이 된다는 뜻이다. 헌금은 미리 준비해야 하고 억지로 해서는 안 된다.

[6-7]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바울은 헌금을 심는 일에 비유했다.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두는 자연의 이치와 같이, 헌금도 그렇다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헌금을 많이 낼수록 복되다는 사실을 안다면, 우리는 헌금을 최선을 다해 준비할 것이고, 억지로, 아까운 마음으로 내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 또 하나의 중요한 헌금의 정신이 제시된다. 그것은, 헌금은 하나님께서 마음에 주신 선한 결심대로 즐거운 마음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는 헌금은 헌금답지 못하고 복된 헌금이 되지 못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러한 헌금을 받으실 정도로 천하신 분이 아니시다. 그는 우리의 최선의 것, 우리의 최상의 것을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시다.

즐겨내는 자가 되려면 하나님께서 온 세상의 주인이심을 인정해야 한다. 이 세상의 모든 것, 나의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바치는 데 어찌 인색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겠는가? 우리의 것을 누구에게 준다고 생각할 때 인색한 마음이 생길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소유를 우리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 세상에서 우리의 것이란 실상 없다. 이 세상 만물의 참된 소유자는 이 세상을 홀로 만드신 하나님뿐이시기 때문이다. 시편 24:1,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역대상 29장에 보면, 다윗은 성전 건축을 위해 자신과 온 백성이 바친 헌금과 헌물에 대하여 하나님께 이렇게 말했다: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나와 나의 백성이 무엇이관대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이 모든 물건이 다 주의 손에서 왔사오니 다 주의 것이니이다” (대상 29:11, 14, 16). 이것이 바른 생각이다.

더욱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와 멸망에서 구원하신 것을 깨닫는다면 우리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라는 것을 더 느끼게 될 것이다. 내가 거듭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재물이 뭐 그리 대단한 것인가? 그것으로 내가 나의 죄를 씻을 수 있었는가? 그것으로 내가 영생을 살 수 있었는가? 그것으로 내가 천국 들어갈 자격을 얻을 수 있었는가? 나의 돈은 나의 세상 생활을 위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복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그것도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도록 내게 주신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의 일부분을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에 어찌 인색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은 마땅히 기쁨과 즐거움으로 드려야 할 일이다.

[8-9]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한 바 저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께서는 충만한 하나님이시다. 그는 그의 충만한 은혜를 우리에게 넘치게 주셔서 우리로 선한 일에 풍성한 자가 되게 하신다. 또한 선행과 구제는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행하는 일이므로 의()이다. 선행과 구제에 힘쓰는 사람은 의로운 자이다. 이제 하나님의 은혜를 넘치게 받는 자들은 다른 이들에게 많은 선을 행하고 가난한 형제들을 너그러이 돌아보는 자가 될 것이며 되어야 한다. 그것은 구원받은 자들이 맺어야 할 의롭고 선한 열매이다.

[10]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옛날 영어성경은 심는 자에게 씨를 주시는 이가 먹을 양식을 주실 뿐 아니라 너희 심을 것을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라고 번역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시는 돈은 두 가지 용도가 있다. 하나는 먹을 양식이고 다른 하나는 심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먹을 양식을 풍성히 주시는 분이시다. 그는 물질적으로 부요하신 분이시다. 그는 또한 우리에게 심을 것도 풍성하게 주신다. 그것은 전도와 구제를 위한 헌금을 가리킨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적 복으로 먹고 살며 필요한 것을 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전도와 구제를 위해 사용해야 한다.

[11-12] 너희가 모든 일에 부요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저희로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 이 봉사의 직무가 성도들의 부족한 것만 보충할 뿐 아니라 사람들의 하나님께 드리는 많은 감사를 인하여 넘쳤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범사에 풍성함을 주셔서 우리로 헌금도 풍성하게 할 수 있게 하시며, 그 헌금을 통해 하나님께 풍성한 감사가 돌려지게 하신다. 특정한 대상을 위해 바쳐지는 후한 구제 헌금은 가난한 성도의 부족을 보충할 뿐만 아니라, 구제받는 자로 하여금 하나님께 많은 감사를 드리게 만든다. 이것은 하나님께 큰 영광이 된다. 우리도 풍성한 구제 헌금을 통해 그것을 받는 자들이 하나님께 많은 감사를 올리게 되어야 할 것이다.

[13] 이 직무로 증거를 삼아 너희의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히 믿고 복종하는 것과 저희와 모든 사람을 섬기는 너희의 후한 연보를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헌금에 대한 또 하나의 중요한 원리는, 헌금이 헌금하는 성도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히 믿고 복종하는 증거가 된다는 사실이다. 선한 행위는 진실한 믿음의 증거이다. 입으로는 순종을 말해도 마음으로 순종치 않는 자는 참으로 의와 선을 행할 수 없다. 이 세상이 장차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을 알고 자신의 소망을 이 세상이 아니고 내세(來世)에 두는 자가 아니고서는 물질 사랑과 탐심을 참으로 버릴 수 없을 것이다. 세상과 돈과 재물을 정말 버린 자만이 전도와 구제를 위해 후한 헌금을 즐거이 드릴 수 있을 것이다. 또 이렇게 즐거이 드리는 후한 연보는 하나님을 믿는 참된 믿음의 표가 된다.

[14-15] 또 저희가 너희를 위하여 간구하며 하나님의 너희에게 주신 지극한 은혜를 인하여 너희를 사모하느니라.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헌금은 하나님의 은혜의 열매이며 증거이다. 우리는 성도의 헌금을 통해 헌금한 그에게 주신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본다. 즐거이 드리는 후한 헌금은 그것을 보는 이, 그 일을 듣는 이로 하여금 오 주여 나에게도 그런 은혜, 그런 믿음, 그런 사랑을 주소서!’라는 사모하는 마음을 일으킨다. 돈 귀한 줄은 누구나 다 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풍성한 헌금을 즐거이 할 자는 없다. 하나님의 은혜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고 측량할 수 없다. 하나님의 그 놀라운 은혜가 땅 위에 곳곳에서 나타났고 지금도 나타난다.

8장처럼 본장도 헌금에 대해 교훈한다. 첫째로, 헌금은 미리 준비해야 헌금답다. 둘째로, 헌금은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내지 말고 즐거운 마음으로 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즐겨 내는 자를 기뻐하신다. 셋째로, 헌금은 우리에게 의가 된다. 그것은 의의 열매이다. 넷째로, 하나님께서 주신 재물은 두 가지 용도를 위한 것인데, 하나는 먹을 양식이며 다른 하나는 심을 씨이다. 먹을 양식은 먹을 수 있지만, 궁핍해도 심을 씨는 먹지 않고 심어야 한다. 다섯째로, 헌금은 헌금하는 자의 진실한 믿음과 순종의 증거이다. 여섯째로, 헌금은 하나님의 은혜의 증거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자가 아니면 결코 풍성한 헌금을 할 수 없다.

[갈라디아서 헬라어 원어성경] 예수님과 죽고 살아난 성도의 구원(갈 2: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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