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히브리어성경

[신약히브리어 성경강해 골로새서] 복음으로 성장하는 성도의 믿음(골 1:1-8)

베들레헴 2021. 11. 20.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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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로새서 1장에서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예수님께 감사한다고 말합니다. 골로새 성도들의 믿음과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골로새 성도들은 복음 말씀을 듣고 믿음이 성장해 나갔습니다. 거룩한 성화의 열매를 맺으면서 살았습니다. 우리도 구원받은 것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복음 말씀을 통해서 날마다 하나님 앞에 나가는 성화의 삶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복음으로 성장하는 성도의 믿음(골 1:1-8)

 

• 1: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사도 바울이 사도 된 것은 사람의 뜻이나 사람에 의해서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으로 된 것이다.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된 일뿐이어야 참된 일꾼이다.

형제 디모데 바울이 디모데를 믿음의 아들이라고도 하였다(딤전1:2 참조). 디모데는 바울의 전도로 예수를 믿게 되었고(행 16:1 참조), 바울을 아버지와 같이 받들어 나가면서 충성되이 섬겼다. 바울이 그를 아들같이 사랑하며 양육하였으나 그를 형제라고 한 것을 보면 그의 겸손과 디모데를 존중히 여기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 1:2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 곧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형제들에게 편지하노니 우리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 예수 믿는 사람을 성도라고 말했다. 성도가 “구별된 자”라는 뜻이다. 성도는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고(고전3:16 참조),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어 하나님이 사용하는 그릇이 되었기 때문에 구별된 자이다.

신실한 형제들 성도를 신실한 형제라고 한 것은 그 인격 전체가 신실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그 말씀과 중생한 영혼은 다 신실하다. 그러므로 참으로 믿는 사람은 신실하지 않을 수 없고 선한 양심을 쓰는 사람은 신실을 떠날 수가 없다. 성도가 신실하지 못하면 벌써 믿음을 버린 것이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언제나 신실해야 한다.

마태복음 5장 산상수훈 예수님 말씀

아버지 하나님 신자가 물과 성령으로 중생할 때에 하나님의 생명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다. 신자는 또 양자의 영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롬 8:15, 갈 4:6 참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평강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온다(요1:16 참조). “은혜”는 하나님이 거저 준 것으로서 구속에 대한 모든 선물이다.  창세 전에 우리를 택한 것과, 독생자를 보내주신 것과, 우리 죄를 위해서 주님이 피 흘려주신 것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신 것과, 영원한 영광의 나라로 데려가는 것 등이 은혜이다. 이 은혜의 내용이 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성도가 성경말씀을 받아 가지는 것이 곧 은혜를 받는 것이다. 사람들이 일시적인 감동이나, 위안, 기쁨, 흥분된 감정을 은혜인 줄로 아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성경말씀 속으로 들어가지 않는 것은 참된 은혜가 아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받지 아니하고 은혜만 받겠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참된 은혜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는 구속의 진리를 깨닫고 그것을 받아 가지는 것이다.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그 선물을 받아 누리며 하나님과 교통 하며 영으로 사는 생활을 해야 한다.

평강은 은혜 속에서 산 결과이다. 성도가 은혜 속에서 살게 되면 하나님이 주시는 하늘의 평강이 넘치게 된다. 이 세상은 환난 풍파가 많은 곳이지만 은혜 속에서 사는 사람은 언제나 그 심령이 하나님의 평강을 누릴 수가 있다. 참된 평강은 물질이나 인간의 사랑과 같은 세상적인 것에 있는 것이 아니다. 솔로몬 왕은 세상의 권세와 부귀영화를 다 누리며 자기가 원하는 모든 것을 해보았으나 거기에 평강이 없으며 다 헛된 것이요, 고생뿐이라고 했다(전 2:3-11 참조).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살 때에는 초막이나 궁궐이나 참된 평강과 행복이 있다. 어린아이가 어머니의 품속을 떠나서는 행복을 찾지 못하고 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없음과 같이 성도가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서 참된 행복과 평강을 누릴 수는 없다.

• 1:3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

골로새교회 교인들의 신앙이 너무 좋기 때문에 바울이 그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려고 하면 감사부터 나오게 되었다. 교역자가 어느 교회나 개인을 위하여 기도해 주려고 할 때에 감사가 나온다면 참으로 복 받은 교회요 복 받는 성도이다. 그러나 반대로 걱정부터 나온다면 그 교회나 성도는 큰 문제이다.

• 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음이요

바울이 하나님께 감사한 이유는 골로새교회가 믿음과 사랑과 하늘에 쌓아 둔 소망(5절 참조)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골로새 교인들은 믿음이 좋고, 사랑이 풍성하고, 소망을 하늘에 쌓아둔 신앙을 가졌다. 데살로니가 교회에도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가 있었다(살전1:3 참조).

참된 신앙에는 행함(역사)이 따르고, 참된 사랑에는 수고가, 참된 소망에는 인내가 있어야 된다. 야고보2:22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라고 하였다. 생명 있는 믿음에는 역사가 있고 힘이 있어서 실행이 따르게 된다. 참된 사랑은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하며 수고하는 것도 즐거움으로 하게 된다. 우리가 먼저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그다음에 성도를 사랑해야 한다. 고전 16:22에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지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라고 하였다.  성도가 사랑을 받으려고만 하지 말고 먼저 남을 사랑하려고 하여야 한다.

[출애굽기 오늘 말씀] 바로 왕의 딸이 모세를 양자로 삼음(출 2:1-10)

마태 7:12에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고 하였다. 우리 성도가 남에게 사랑을 받고 싶으면 우리가 먼저 남을 사랑해야 한다. 상대방에게 사랑이 없다고 하지 말고 자기가 먼저 그 사람을 사랑하면 그 사람에게 사랑이 많아지고 그 사랑이 자기에게 돌아온다.

• 1:5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둔 소망을 인함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벧전1:4에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라고 하였다.  우리의 소망은 이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고 천국에 있다.

이 소망은 견고하여 도적 맞을 염려가 없고, 동록이 생기지도 않는다.

로마 5:3-4에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라고 하였다. “소망을 이룬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간다는 뜻이다. 우리 성도의 소망은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 가는 것이다. 이 소망을 가진 자는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는데 그 이유는 환난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연단을 낳고, 연단은 소망을 이루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나가는 방법이며 하늘에 소망을 쌓는 생활이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룬 것은 영원 부동하고, 영원불변하고, 영원불멸할 것이다. 성도가 환난이 들어올 때에 말씀을 붙들고 참아야 연단이 되고 연단이 되어야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진다. 또 이것은 하늘에 쌓아진 것이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룬 정도에 따라 하늘에서 상금을 받고 기업에 참여하게 된다.

예전에 한국일보 기사에서 여러 목사들이 부모의 제사 문제에 대하여 말한 것을 필자가 읽어보았다. 그 목사들이 말하기를 성도가 부모의 제삿날에 부모를 공경하는 마음으로 부모의 사진과 음식을 차려 놓고 절하는 것은 죄가 아니기 때문에 괜찮다고 하였다.

이것은 신사참배 바람보다 더 큰바람이다. 전에는 성도가 조상의 제사를 하지 않으려고 순교를 당하고 심한 핍박을 받았는데 오늘날 제사해도 된다고 말하는 것은 성경을 내어버리는 것이요 믿음에서 떠난 것이다. 신사 참배 때에는 일본 정권에 눌려 강압적으로 하였으나 지금은 가르쳐 꾀어 미혹을 시켜서 우상을 섬기도록 만들고 있다.

십계명의 제 이 계명에 우상은 섬기지도 말고 절하지도 말며, 만들지도 말라고 하였다. 강제로라도 절하면 안 된다. 살아 있는 부모는 마땅히 섬겨야 하되 부모가 세상을 떠난 다음에는 그 시체에다 절을 해도 죄가 된다. 왜냐하면 시체는 인격이 아니기 때문이다. 추도예배하는 것이나 제삿날에 음식을 차려 놓고 절하는 것은 우상을 섬기는 것이요 죄이다. 인격이 아닌 것에 절을 하면 그것이 우상이 된다.

• 1:6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 도다

[레위기 전체 요약말씀] 레위기 7장 제사의 기본 절차(레 7:1-38)

복음을 듣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것이 중요하며 깨닫지 못하면 망한다(호4:6,14). 물고기가 물에서 살면서도 물의 혜택을 깨닫지 못하고, 사람이 공기 속에서 살면서도 공기의 혜택을 깨닫지 못한다.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의 바닷속에 살면서 그 은혜를 깨닫지 못하는 때가 많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시고, 그 피로 우리를 죄 가운데서 구속해 주신 그 사랑과 은혜를 깊이 깨달아야겠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와 복이 아니면 주시지 않는다(롬 8:32 참조).

시편 49:20에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라고 하였다. 우리가 다 멸망할 자들인데 하나님이 구원하사 존귀에 처하도록 만들어 주신 그 은혜를 깨닫지 못한다면 우리가 짐승과 다를 바가 없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참으로 깨닫기만 하면 항상 감사와 감격이 넘칠 것이다. 우리가 깊은 진리의 말씀을 깨닫는 것이 은혜이다.  또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으면 모든 사건이 전부 은혜이다. 여러 가지 환난과 가시도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것이다.

바울에게 가시를 준 것도 은혜라고 하였다.  바울이 그것을 깨닫기 전에는 그 가시를 없애달라고 세 번이나 특별히 기도하였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은혜로 그것을 주었으니 족한 줄로 알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바울이 그 가시가 은혜인 줄 깨닫고는 크게 기뻐하였다(고후 12:7-11 참조).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곡식은 자라나야 열매를 맺으나 성도의 인격은 열매를 맺어야 자라난다. 성도가 어떤 열매를 맺어야겠는가? 믿음을 지킨 열매, 사랑을 한 열매, 소망으로 참은 열매를 맺어야 한다.  열매를 맺는 것은 산 증거이다. 죽은 것은 열매를 맺을 수 없고 자라날 수도 없다. 산 믿음을 가진 성도는 믿음을 쓰므로 믿음의 역사가 나타난다. 그것이 곧 믿음의 열매이며 그 열매가 맺힐 때마다 영혼이 조금씩 자라난다.

예를 들면 아브라함이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간 것과 백세 때에 이삭을 받은 것과 그 이삭을 번제로 바치고자 한 것 등이 믿음의 열매이다. 성도가 연보 하는 것도 믿음의 열매라고 하였다(빌 4:17 참조).

믿음으로 힘써 연보하면 그 신앙 인격이 자라난다. 성도는 또 사랑의 열매를 맺혀야 영혼이 점점 자라난다.  원수도 사랑하고, 자기에게 손해를 주는 사람도 사랑하며,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할 때에 영혼이 조금씩 자라난다.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을 때에도 자기를 죽이는 그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었다. 이것이 원수를 사랑하는 사랑의 열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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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성도가 소망의 열매를 맺어야 영혼이 자라난다. 소망으로 모든 것을 잘 참고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는 것이 소망의 열매이다.

열매 없는 나무는 찍어 불에 던진다고 하였고(마 3:10 참조), 예수님께서도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다(마 21:19 참조).

• 1:7  이와 같이 우리와 함께 종된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 너희가 배웠나니 그는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군이요

에바브라는 본래 골로새 교인들을 가르친 사람이다(골 4:12 참조).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혔기 때문에 골로새 교인들이 그를 바울에게 보내었다(몬 1:24 참조). 이 에바브라는 에바브로디도(빌 2:25)와는 다른 사람이다.  에바브라가 바울에게 와서 골로새 교회의 모든 사정을 말해 주므로 그 형편을 알고 난 뒤에는 바울이 그 교회를 위해서 매일 기도해 주고 그 교인들을 사랑하였다(9절 참조). 골로새 교인들도 바울이 감옥에 갇힌 소식을 듣고 바울을 사랑하여 사모하고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아끼지 않았다. 바울과 골로새 교인들 간에는 서로 보지 못하였으나 소식을 들어 알고 이렇게 신앙적인 교제와 영적인 교제를 하였다.

에바브라에게 너희가 배웠나니 골로새 교인들이 에바브라를 통하여 바른 진리를 배웠다는 뜻이다. 그 시대에 여러 가지 미혹을 시키는 주장이 많이 있었다. 철학 사상이 교회 안에 들어와서 교인들을 미혹하였고(골 2:8), 월삭과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는 율법주의와(2:16), 천사 숭배(2:18) 및 금욕주의(2:21)가 교인들을 미혹시켰다. 그러므로 바울이 그들에게 에바브라에게서 배운 바른 진리를 굳게 지키라고 권면하였다.

딤후 3:14에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라고 하였다. 이것은 디모데가 사도 바울에게 배운 따른 진리를 굳게 붙잡으라는 말이다. 딤후 3:13에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라고 하였다. 피차 속이고 속는 세대에 너는 바울에게서 배운 바른 진리에 굳게 서 있으라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2:25에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라고 하였다. 너희에게 있는 바른 교훈(진리)을 말한다. 굳게 잡아 일생 동안 굳게 지키고 그것을 전파하여 후손들도 바른 진리 안에서 살도록 해야 한다.

• 1:8  성령 안에서 너희 사랑을 우리에게 고한 자니라

에바브라가 성령 안에서 골로새 교회의 사랑을 바울과 디모데에게 말해 주었다. 바울이 골로새 교인들을 한 번도 보지 못했으나 에바브라가 교회의 형편과 교인들의 신앙 상태를 자세히 말해주므로 잘 알게 되었다.

[신약 히브리어 강해 빌립보서] 성도를 위한 바울의 중보기도(빌 1:1-11)

 

[신약히브리어 강해 빌립보서] 성도를 위한 바울의 중보기도(빌 1:1-11)

빌립보서 1장에서 바울은 빌립보 성도를 위해서 중보기도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간구할 때마다 성도를 위해서 기쁨으로 간구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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