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하나님 말씀

[열왕기하 히브리어 강해설교] 엘리사의 여호람 동맹군의 승리 예언(왕하 3:13-20)

베들레헴 2022. 12. 4.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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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3장에서는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에게 말했다. 여호사밧 때문에 이스라엘 왕에게 말한다고 했다. 엘리사는 여호람과 여호사밧 동맹군이 전쟁에서 승리할 것을 예언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파라고 했다. 하나님이 모압 사람을 당신의 손에 넘긴다고 했다. 성도는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승리한다. 우리가 하는 일에 하나님의 도움이 절실하다. 인간의 힘으로 일을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일을 해야 한다.

 

엘리사의 여호람 동맹군의 승리 예언(왕하 3:13-20)

 

성 경: [왕하3:13] 바요메르 엘리샤 엘 멜렉크 이스라엘 마 리 바라크 레크 엘 니비에 아비카 비엘 니비에 임메카 바요메르 로 멜렉크 이스라엘 알 키 카라 아도나이 리쉴로세트 하밀라킴 하엘레 라테트 오탐 비야드 모아브

󰃨 내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 '당신은 왜 그러한 것을 내게 묻습니까?' 혹은 '당신은 하나님의 선지자를 버렸기 때문에 선지자와는 상관을 안 하지 않습니까?'라는 뜻을 반영한 말이다(Lange). 본절에서 엘리사가 자기를 찾아온 여호람 왕에게 이와 같이 꾸짖은 데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1) 비록 여호람이 바알 신상을 제거하기는 했으나 당시 바알의 제사장들이 여전히 아무 제재를 받지 않고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10:19). 이에 대한 근거는 바알 종교를 이스라엘 전역에 퍼뜨린 장본인인 그의 어머니 이세벨이 아직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9:30, Pulpit Commentnary). (2) 개혁운동을 전개시킴에 있어서 너무도 미온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여호람에게 자신의 이기적인 사욕을 버리고 진정한 개혁 의지를 갖고 일을 추진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만일 엘리사의 이러한 책망을 여호람 왕이 충심으로 받아들이고 진실로 여호와께로 돌아왔다면 그는 피살되지도 않았을 것이며 오므리 왕가가 그렇게 비참하게 멸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9:6-9)

󰃨 당신의 부친의 선지자들과 당신의 모친의 선지자들에게로 - 이것은 여호람과 그 부모의 우상 숭배를 꾸짖는 엘리사의 대담한 말이다. 즉 엘리사는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는 일에 조언을 해준 아합의 사백 명의 선지자들(왕상 22:6)과 이세벨이 섬기는 바알 선지자들(10:19)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그래서 본절은 곧 '그 선지자들에게는 당신이 요구할 권리가 있지만 나에게는 없습니다'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한편 본절은 왕 앞에서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불의를 책망하는 선지자의 의연한 모습이 돋보인다. 즉 엘리사는 여호람 왕의 면전에서 악에 대한 거룩한 분노를 발했던 것이다(Matthew Henry, Vol. , p.721).

성 경: [왕하3:14] 바요메르 엘리샤 하이 아도나이 치바오트 아세르 아마디티 리파나이브 키 룰레 피네 예호샤파트 멜렉크 예후다 아니 노세 임 아비트 엘레카 비임 에르에카

󰃨 내가 섬기는 - 히브리어 '아마드티 레파나우'를 번역한 말로서 '내가...의 얼굴을 향해 서다'란 뜻이다. 이는 하나님 앞에 서서 예배드리며 봉사하던 사실에서 연유한 용어로써 엘리사가 하나님의 종이자 대사(大使)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나타낸다(왕상 17:1;18:15).

󰃨 여호사밧의 낯을 봄이 아니면 - 이 말은 하나님께서 여호사밧이 행한 선한 일을 기억하고 계시기 때문에 도와준다는 말이다(Keil & Delitzsch). 참으로 여호사밧이 산당과 우상을 제거하고 선지자들과 레위인들을 세워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친 선행이 있기 때문에(대하 17:3-9) 그것을 주께서 기억하고 계셔서 자비를 베푸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호사밧에게도 흠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즉 길르앗 라못에서 악한 왕 아합을 도운 일이나(대하 19:2), 오빌로 가는 배들을 건조하기 위해 아하시야와 결탁한 일(대하 20:36;왕상 22:48), 그리고 본장에도 나타나 있듯이 하나님의 허락이 없는 모압 원정에 참예하여 우상을 숭배하는 여호람과 에돔 왕과 동맹하는 일 등은 결코 선한 일일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과거에 행한 여호사밧의 선행을 기억하시고 끝까지 구원을 베푸시는 것이다(대하 19:1-3). 한편 엘리사의 이러한 태도는 12절 말씀과 더불어 파숫꾼이 행해야 하는 바른 모습을 보인 것으로 모든 사역자에게 있어서 귀감이 된다(2:7).

성 경: [왕하3:15] 비아타 키후 리 미나겐 비하야 키나겐 하미나겐 바테히 알라이브 야드 아도나이

󰃨 거문고 탈 자 - 이 말은 정확하게 번역하기는 힘들지만 일반적으로 '제반 현악기를 연주하는 자'로 옮기는 것이 적합하다. 이러한 번역상의 어려움은 이 말을 '수금 뜯는 사람'(공동 번역), '악사'(KJV, RSV), '하프 연주가'(NIV)등으로 다양하게 번역된 역본들을 통해서 알 수 있다.

󰃨 거문고를 탈 때에 여호와께서 엘리사를 감동하시니 - 본절에서 거문고 소리를 통해 여호와께서 엘리사를 감동시킨 사건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엘리사가 여호람으로 인해 흥분했던 자신의 마음을 진정시키며 신적 감응을 잘 받기 위한 상태인 무아경에 잠기기 위한 수단으로 보는 해석이 있다(G. Rawilnson, PulpitCommetary, Keil & Delitzsch). 둘째는 고대 선지자들 뿐만 아니라 아라비아에서도(The Interpreter's Bible, Vol. , p. 200) 예언을 할 때 운율을 맞추기 위해 악기를 사용했는데(Bleek), 엘리사의 경우도 이와 동일하다는 것이다(B hr). 전자의 해석을 지지하는 근거로는 사울을 위해 다윗이 수금을 탔을 때 악신이 떠나갔던 일(삼상 16:23)과 사울이 사무엘에게 기름 부음을 받고 블레셋 성읍으로 들어갈 때 비파와 소고와 수금을 앞세운 선지자의 무리를 만난 후 여호와의 신이 크게 임하였던 사건(삼상 10:5) 등을 그 예로 든다. 그리고 후자와 같은 해석은 성경 다른 곳에서는 전혀 언급한 일이 없다. 따라서 전자의 해석이 더 타당한 것 같다. 더욱이 거문고를 타는 자가 거문고를 탈 때 선지자 엘리사뿐만 아니라 세 왕과 곤경에 시달린 병사들의 시선이 한 데로 집중되었기 때문에 신적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아주 용이하였을 것이다. 한편 '선지자의 생도들' 사이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일이 신적 감응을 잘 받아들이기 위한 방법으로 중요했다는 사실이 다시 증명되었다(삼상 10:5;대상 25:1-3). 거문고의 소리는 선지자들의 동요를 잠잠케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게 하였다. 이것으로 미루어 엘리사는 전형적인 '예언자의 아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예언을 준비하는 방법으로 거문고와 피리 소리를 사용했던 것이다. 그러한 점에 있어서 엘리사는 그의 선생 엘리야와 다르다. 왜냐하면 엘리야는 돌발적이고 직접적인 예언을 했으며, 금욕적이며 독자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성 경: [왕하3:16] 바요메르 코 아마르 아도나이 아사 하나할 하제 게빔 게빔

󰃨 골짜기 - 본절의 골짜기는 모압 남쪽에 있는 제렛(Zered), 즉 지금의 와디 엘 헤사(Wadi el Hesa)라고 하는데(Wycliffe) 그곳은 붉은 사석(沙石)이 깔려 있어서 때로는 온 골짜기가 붉게 보인다고 한다.

󰃨 개천 - 히브리어 '게빔'을 번역한 말로 이는 '물을 모아 두는 웅덩이'를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골짜기로 물이 흘러내려 이 웅덩이들에 가득 고일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러한 일은 있는 것을 없게 하시고 없는 것도 있게 하시는(4:17) 하나님의 능력에 비추어 볼 때 충분히 가능한 것이다.

성 경: [왕하3:17] 키 코 아마르 아도나이 로 티리우 루아흐 비로 티리우 게셈 비하나할 하후 이말레 마임 우쉬티템 아템 우미키네켐 우비헤미티켐

󰃨 바람도...비도 보지 못하되...물이 가득하여 - 근동 지역에서 비는 대개 바람과 함께 동반한다. 더욱이 본절의 바람이란 강한 폭풍우를 가리키는 듯하다. 그런데 바람도, 비도 없이 골짜기의 물을 채운다는 것은 실제적으로 불가능한 것으로 이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이 수행하는 전쟁은 오직 배후에 역사하시는 여호와의 권능이 임할 때만 승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보여준다. 이는 오늘날 성도들의 영적인 투쟁 역시 성령의 도우심 없이는 결코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6:10-20). 한편 본절의 육축은 군대의 식량용 동물을, 짐승은 사람 및 군수품 운반용을 말한다(Keil & Delitzsch, Pulpit Commentary). 그리고 16, 17절과 18절에서 엘리사가 받은 예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파라는 것, (2) 바람이나 비를 보지 않고도 골짜기에 물이 가득하리라는 것, (3) 모압 원정이 성공을 하게 된다는 것(18,19)등이다. 실로 첫째, 둘째 예언은 다음날 아침 소제를 드릴 때에 성취되었다(20). 이때에 가득한 물은 에돔 동편 산악지대에 내린 비로써 이스라엘 진영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육안으로는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Keil). 셋째 예언은 모압의 공격에 대해 이스라엘군이 반격할 때에 이루어졌다(24, 25). 이처럼 하나님의 능력은 먼 곳의 기상 조건과 지형 조건을 다 아실뿐만 아니라 이를 초월하시고 주장하시는 것이다.

성 경: [왕하3:19] 비히키템 콜 이르 미비차르 비콜 이르 미비호르 비콜 에츠 토브 타필루 비콜 마이이네 마임 티시토무 비콜 하헬리카 하토바 타키이부 바아바님

󰃨 모든 좋은 나무를 베고 - 좋은 나무를 베라는 명령은 과실나무를 베지 못하도록 한 신 20:19, 20에서의 규례와 서로 상충되고 있는데 이것은 이상하게 볼 필요가 없다. 여기에 대해서 카일(Keil)은 모압인들이 이스라엘 땅을 침범하여 으례껏 이와 같은 일을 저질렀기 때문에 엘리사는 의도적으로 신명기에서와 같은 자비를 베풀 필요가 없어서 그렇게 예언했다고 한다. 그러나 신명기의 과실수 벌목 금지에 대한 명령을 여기에 적용시킬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신명기의 율법은 당시, 아직까지 가나안 땅의 첫 소산을 거두기 이전이므로 병사들의 양식을 위한 필요성에 의해 명령되었던 것이기 때문이다(T. R. Hobbs). 한편 침범한 적의 땅에서 과목(果木)을 베어버리는 일은 당시 전쟁 후에 행해지는 보편적인 일인데, 특히 앗수르나 애굽에 의해 이런 일이 널리 행해졌었다(Pulpit Commentary).

󰃨 모든 샘을 메우고 - 샘이나 우물을 메우는 것은 고대 근동 지방의 전쟁 시에는 으례껏 보복조치로 행해졌다(26:18), 흔히 마을이 샘을 중심으로 세워져 있던 당시에 '샘을 메운다'는 사실은 그 마을 전체에 치명적인 타격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본절에 언급된 샘은 히브리어 '아인'의 번역으로서 연못이나 우물과는 달리 산에서부터 천연적으로 흘러 들어오는 샘물을 가리킨다. 그래서 이 샘은 생활용수의 근원이 되었다.

󰃨 돌로 모든 좋은 밭을 헐리이다 - 문자적으로는 '좋은 땅 모두를 비탄에 잠기게 하라'는 말인데 이 문맥은 70인 역(LXX)에서 농사에 큰 타격을 주기 위해 '밭에 돌을 던지다'는 뜻으로 번역되어 있다. 여기서 '헐리이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케이브'로서 때때로 심적으로나 육적으로 '고통을 주다'라는 의미로 해석된다(WordBiblical Commentary). 또한 이것은 땅을 황폐케 한다는 뜻의 시적인 표현으로서 땅에 대한 의인화인데(Keil & Delitzsch) 23:10과 욜 1:10등에서 유사한 용례를 발견할 수 있다. 한편 요단 강 주변에서 개간할 때는 돌이 많기 때문에 돌을 한쪽으로 치워놓는다. 그래서 땅을 망칠 때는 다시 밭 주변에 있는 돌무더기를 헤쳐 놓으면 되었던 것이다(Pulpit Commentnary).

성 경: [왕하3:20] 바예히 바보케르 카알로트 하민하 비힌네 마임 바임 미데레크 에돔 바티말레 하아레츠 에트 하마임

󰃨 아침에 미쳐 소제 드릴 때에 - '소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민하'로 소제뿐 아니라 '하나님께 바치는 모든 종류의 제물'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 말이 다른 역본들에 의해서는 '제사'(공동 번역), '제물'(RSV, NIV, Living Bible)로 번역되었다. 한편 유대 전승에 따르면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매일 아침과 저녁 두 번씩 하나님께 제물을 드렸다고 한다(대하 8:13). 이렇게 규칙적으로 제사를 드리던 습관이 포로 시대나 신약 시대에는 기도하는 습관으로 이어진 것 같다(6:10;행 3:1). 그래서 예수께서도 주로 새벽 미명에 기도하셨다(1:35). 한편 아침 제사드리는 시간과 에돔 서편에서부터 물이 흘러 내려오기 시작한 시간이 일치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것은 여호와의 구원이 매일 드리는 제사와 깊은 연관성이 있음을 보여 준다(Keil).

[여호수아 3장 강해 설교말씀] 요단 강을 건널 준비(수 3:1-6)

 

[여호수아 3장 강해 설교말씀] 요단 강을 건널 준비(수 3:1-6)

여호수아 3장에서는 여호수아 군대가 요단강을 도하하기 위해서 준비하고 있다. 요단강을 건너면 가나안 땅이다.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백성들은 뒤에서 따랐다. 천국에 가는 길은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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