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하나님 말씀

[예레미야애가 3장 복음 성경말씀] 하나님께 호소함(애 3:42-54)

베들레헴 2022. 12. 15.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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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애가 3장에서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호소한다. 예루살렘이 멸망하는 모습을 보면서 선지자는 괴로워하고 있다. 하나님이 선지자를 보내서 회개할 기회를 주셨는데도 유다 백성이 회개하지 않았으니 징계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께 호소할 수밖에 없다. 예루살렘의 멸망이 너무나 처참하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있는 예레미야의 마음이 어떠한지를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께 호소함(애 3:42-54)

 

불평 없는 우리 자신을 꾸짖는 것보다도 불평으로 인하여 우리 자신을 꾸짖는 것이 더욱 쉽다. 예언자는 마치 그가 2장의 앞부분에서 그의 불평(원망) 때문에 자신에 대하여 언급한 것처럼 살아 있는 사람은 원망을 해서는 안 된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비 온 뒤에 구름이 다시 돌아오고, 상처에는 다시 피가 흐른다. 큰 고통이 고난 받는 영혼에게 중용을 이루기 위하여 취하여지지 않으면 안 된다.

Ⅰ. 그들은 그들의 괴로움 중에서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고백한다(42절). "우리가 범죄하고 패역" 하였나이다. 우리가 고난에 처할 때는 우리가 죄를 범한 때문에 우리 위에 무거운 짐을 올려놓으신 하나님을 정당하다고 시인하는 적합하다. 죄는 범죄를 부르고 범죄는 패역을 부르니 너는 그것을 잘못 부르지 말라. 이것은 그들이 그들의 행위를 찾고, 시험해 본 결과이다. 그들이 그들의 행위를 조사하면 할수록 그들이 더욱 그러한 것을 발견하였다. 

Ⅱ. 그들은 그들이 눌리고 있는 고통에 대하여 불평한다. 그것에는 하나님께 대한 비난이 없지 아니할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모방하여서는 안 되고, 날카로운 판단 아래서 항상 그분을 높게 친절하게 생각하고 말하여야 한다.

1. 그들은 하나님의 불쾌해 하심과 그들에게 대한 하나님의 불쾌하심의 표정에 대하여 불평한다. 그들은 회개하였다(42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께서는 사하지 아니하셨다." 그들은 죄 용서에 대한 보증과 위로를 갖지 못하였다. 죄로 인하여 그들에게 임한 심판은 옮겨지지 아니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죄를 용서받았다고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것이 잘못이었다. 이 잘못이 하나님의 백성들의 영혼이 버림을 당하고 불안해 있을 때 범하는 일반적인 잘못이다. 그들의 경우는 참으로 가련하였다. 그러나 "당신은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셨나이다(43절)" 하고 그들은 불평하는 것이다. 그들의 적들은 그들을 학대하고 살육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가장 나쁜 것이 아니다. 그들은 다만 하나님의 손안에 있는 기구일 따름이었다. "우리는 당신이 우리를 보호하고 구원해 주시기를 기대하였지만 당신은 우리를 군축하시고 살육하셨나이다." 그들은 그들과 하나님 사이에는 칸막이 벽이 있다고 불평한다. 그리고 그것은

(1) 그들에게 내려오는 하나님의 은혜를 가린다. 그들에게 내려오는 하나님의 은혜의 광선은 이스라엘의 아름다움이었었다. 그러나 지금은 "진노로 스스로 가리시고, 그래서 우리의 영광은 숨어 버리고 없어졌나이다. 이제 하나님은 우리에게 진노하시고,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이전에 생각되었던 것같이 빛나는 백성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또는 "당신은 우리를 매장된 사람이 덮이고 잊어 버려지는 것처럼 가리셨나이다."

(2) 그것은 그들의 기도가 하나님께로 올라가는 것을 가린다(44절). "주께서 구름으로 스스로 가리니" 그것은 하나님이 성전을 점유하셨던 그 빛난 구름과 같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예배자들을 그에게로 가깝게 이끌게 하였던 구름이었다. 이 구름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강제로 멀리 서게 하였던 시내산에 내린 구름과 같은 것이다. "이 구름은 대단히 두껍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가 그 속에서 사라져 버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기도는 상달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들어주시는 분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주의할 것은 시련이 길어지면 기도하는 사람들에게까지도 때때로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 계시는가 안 계시는가 하고 의심하도록 시험이 들어온다. 그들은 항상 하나님은 계시고, 기도를 들으신다고 믿었던 것이다.

2. 그들은 그들을 지배하고 있는 이웃의 모욕과 꾸지람과 치욕에 대하여 불평한다(45절). "당신은 우리를 2층에서 쓰레기 더미에 내 던져진 진개와 폐물처럼 만드셨나이다." 사도 바울은 사도들의 고난에 대하여 설명하는 중에 이것을 언급한다(고전 4:13).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같이 되었도다." "우리는 열방 가운데서 모든 사람에게 폐물 또는 찌꺼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람 중 가장 천한 자로서 구경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맛 잃은 소금과 같이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우리의 적들이 우리를 향하여 입을 크게 벌리고(46절) 우리를 삼키기 위하여, 우리를 비난하기 위하여, 또는 그들은 우리의 희락이라고 비소하여 말하기 위하여 우는 사자와 같이 입을 크게 벌렸습니다." 이 불평들은 우리가 앞에서 해설한 것이다(2:15, 16). 저급하고, 심술궂은 사람들이 존귀한 사람들이 깊은 비탄에 빠졌을 때 계속 헐뜯고 지껄여대는 것은 보통 있는 일이라는 것에 유의하자. 그러나 그들은 죄로 인하여 이것을 자초하였다. 만일 그들이 그들 자신을 수치스럽게 만들지 아니했다면 그들의 적들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여호와를 버렸으므로 여호와도 그들을 버려 사람들이 그들을 버림받은" 은(銀)이라고 불렀다.

3. 그들은 그들의 적들이 행한 비통스러운 파괴에 대하여 불평한다(47절). "두려움과 함정이 우리에게 임하였도다. 적들은 공포로 우리를 두렵게 할 뿐 아니라, 술책으로 우리를 이기고, 우리에게 대하여 복병을 놓아서 우리를 놀라게 한다. 그리고는 잔해와 멸망만이 있을 뿐이요, 나의 성읍의 모든 여자들(51절) 곧 내 백성의 딸의 파멸만 있을 따름이었도다" (48절). 그들의 얼마는 덫에 걸린 새처럼 적들의 먹이가 되어 추적을 받았다. 사람들이 "쫓았다" (52절). 숲에서 숲으로 쫓겨 기진맥진 하여진 "새와 같이" 사울이 다윗을 "새와 같이" 사냥하듯이 "나의 대적이 된 자가 나를 심히 쫓도다." 이렇게 그들의 박해자들의 증오는 쉼이 없고, 또한 아무 이유도 없이 그렇게 하였다. 그들은 아무런 자극을 받지 아니하고도 "무고히" 그들을 박해하였다. 하나님은 의로우시다 할지라도 그들은 의롭지 아니하였다. 다윗은 때때로 "무고히 그를 미워하는 자" 들로 인하여 불평한다. 또한 그리스도와 교회의 적들도 이러하다(요 15:25). 그들의 적들은 그들이 완전히 멸망하기까지 그들을 추적하였다(53절). "그들이 내 생명을 끊으려고 나를 구덩이에 넣고," 그들은 밀폐되고 어두운 감옥에 그들의 포로를 감금하였다. 그곳은 말하자면 그들이 산 자의 땅에서부터 베어짐을 당한 곳이요, 또는 나라와 왕국이 침몰되고, 그들의 생명과 존재가 사라진 곳이요, 말하자면 저들이 그들을 "구덩이"와 무덤에 "던지고" , "그 위에 돌을 던진 곳이라." 이와 같이 그들은 "무덤 문에 돌을 굴려" 막곤 했던 것이다. 그들은 유대민족을 죽여 매장되어 부활의 가능성이 없는 것의 상징으로 생각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이 에스겔은 "죽고 마른 뼈들이 가득한 골짜기"의 환상 가운데서 그것을 보았다. 그들의 파멸은 죽은 자의 매장에 비교될 뿐 아니라, 산 사람이 물속에 침몰된 것에 비교되었다. 그는 물속에서 산 사람이 되기를 바랄 수는 없는 것이다(54절). 고난의 "물이 내 머리에 넘치나이다." 대홍수가 그들을 완전히 이기고 압도하였다. 갈대아 군들이 "물의 쏟아짐" 같이 일시에 그들을 습격하고, 그 물은 그들의 "머리 위에" 넘칠 만큼 대단히 높이 솟아올랐다. 그들은 걸어서 건널 수 없다. 헤엄칠 수도 없었다. 그러므로 피할 수 없이 침몰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유의할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고난은 때로 그들이 믿음을 위한 발판을 발견할 수도 없고, 어떤 위로를 받을 만한 기대를 가지고 물 위에 그들의 머리를 내어 밀 수도 없을 정도로 그들을 압도한다는 것이다.

4. 그러므로 그들은 과도한 그들의 슬픔과 공포에 대하여 불평한다.

(1) 고난 받은 교회는 눈물 속에 빠지고 예언자는 그 교회 때문에 운다(48,49절). "내 눈에 눈물이 시내처럼 흐르도다." 그들은 그렇게 많이 울었다. 내 눈에 "흐르는 눈물이 그치지 아니하고 쉬지 아니함이여." 그들의 울음은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그들의 정신적 고통은 완화됨이 없었다. 극단적인 심신의 불안은 계속되고, 좀 더 나은 날이 없었다. 고통은 더 추가되었으니(51절) 곧 "내 눈이 내 심령을 상하게 하는도다. 내 눈이 보는 것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는도다. 내가 성읍과 마을의 잔해를 보면 볼수록 나는 더욱 슬퍼지는도다. 내가 어느 방면을 본다 할지라도, 나의 성읍의 모든 여자를 인하여, 어미 성읍인 예루살렘에 비하면 딸들과 같았던 근처의 모든 성읍을 보는 것까지도 내 슬픔을 새롭게 할 뿐이로다."

오! 우는, "내 눈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도다." 슬픔을 토해내는 것이 평안케 해 주는 대신에 오히려 슬픔을 증가시키고, 더욱 격앙시킨다. "오, 내 눈이 내 영혼을 녹이도다." 내 영혼이 울며 세월을 보낸다. "내 눈이 슬픔으로 인하여 쇠약하여질 뿐 아니라 내 영혼과 내 생명이 슬픔으로 쇠잔하여진다" (시 31:9, 10). 크고 오랜 슬픔은 그 영혼(정신)을 지쳐 버리게 하여 많은 노인뿐 아니라 많은 청년들까지도 무덤으로 내려가게 한다. 예언자는 "나는 나의 성읍이 모든 땅들보다도 더욱 운다(난외주에는 그렇게 표현하였다) 고했다." 그는 다정다감한 여성들보다도 더 슬퍼하였던 것이다.

(2) 교회는 슬픔뿐만 아니라 보다 더 지독한 공포에 압도된다. 그리고 모든 것은 멸절된 것으로 포기한다(53절). "내가 스스로 이르기를 이제는 멸절되었다 하도다. 나는 파멸되었고, 복구할 희망이 보이지 않으며 나는 죽은 자와 같다." 일반적으로 버림받은 사람들은 그들이 아주 멸절된 것으로 스스로 생각하게 되는 시험에 빠진다는 것에 주의하자(시 31:22; 요 2:4).

5. 이 슬픈 불평의 호소 속에 여기 하나의 위로의 말이 있다. 이 말로 말미암아 그들의 경우는 그들이 불평했던 것처럼 모든 것이 그렇게 심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나타난다. 우리는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살피시고, 돌아보시기까지 이렇게 계속 울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다음을 암시한다.

(1) 고통 가운데 있는 그들을 주목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그들의 모든 불평을 시정하는데 효과적일 것이라고 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만일 우리의 고통에 무관심하던 것처럼 지금은 구름으로 자기를 가리신 하나님께서 빛을 비추신다면 모든 것은 잘될 것이다. 만일 그가 우리를 살피시면 우리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시 80:19; 단 9:17). 이 경우와 같이 나쁜 사태도 하늘로부터 은혜로운 살피심이 있으면 모든 것이 바로 될 것이다.

(2) 그들은 적어도 하나님이 그들을 은혜롭게 살피시고, 그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대하였었다. 아니 그들은 그것을 그의 뜻이 승인하신 것으로 여기었다. "그가 다투시기는 하지만, 비록 우리가 그의 다투심을 받을 만하기는 하지만 영원히 다투지는 아니하실 것이다."

(3) 그들이 울기를 계속하고, 기다리기를 계속하는 동안 그들은 하나님 이외의 어떤 다른 손으로부터 경감되거나 구원받기를 기대하지도 아니하였고 또 그렇게 하지도 아니하였다. 은혜의 회복 이외의 다른 아무것도 그들을 위로할 수 없을 것이고 그가 살피시기까지 그들의 눈에서 눈물을 씻어 줄 자가 없을 것이다. 지금 시내같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그들의 눈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시기까지 그들의 주 하나님을 기다릴 것이다(시 132:2).

[예레미야 히브리어 성경 강해] 신실하지 못한 유다 백성에게 내릴 심판(렘 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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