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1장에서 사도 요한은 알파와 오메가 되시는 예수님에 대해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선택한 백성들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었습니다. 예수님으로 시작해서 예수님으로 끝나는 인생이 구원받은 인생입니다. 예수님은 구름 타고 이 땅에 다시 재림하신다고 했습니다. 주님이 재림하실 때 각 사람의 눈이 예수님을 본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찌른 자도 보고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애곡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았으니 재림하실 예수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믿음을 준비하고 기름을 준비해서 주님을 맞이해야 합니다.
알파와 오메가이신 예수님(계 1:4-8)
• 1:4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그 보좌 앞에 일곱 영과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는 신약시대의 모든 교회를 대표한다. 신약시대의 교회들이 아시아 일곱 교회의 형편과 비슷하다.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 하나님께서 현재 성도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시고 계시는데 그 하나님께서 전부터 성도의 구원을 예정하시고 계획하셨으며 장래에도 성도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실 것이다. 또 그 하나님께서 장차 오셔서 세상을 심판하시고 성도들에게 행한 대로 갚아 주실 것이다.
“보좌 앞에 일곱 영”은 하나님의 보좌를 위해서 성령이 역사하시는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보좌는 하나님의 왕국을 가리키는데 천국 건설을 위하여 성령께서 완전한 감동과 능력과 완전한 역사를 하시는 것이다. 일곱 영은 성령을 말한다. “일곱”은 완전수이며 완전하신 성령이라는 뜻이다.
성령께서는 지금도 성도가 어디서 어떠한 형편에 처해 있든 완전한 감동을 시켜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나아가려고 하시는 것이다. 성령께서는 계시지 않는 곳이 없고 전면에 걸쳐 완전한 감동으로 성도를 감화시켜 하늘나라를 건설해 나아가신다. 그러면 왜 성도가 성령의 감동을 받지 못하는가? 성도가 교만하기 때문에 감동을 받지 못한다. 베드로전서 5:5에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라고 하였다. 사울이 겸손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감동을 시켜서 은혜를 베풀어 주셨고 하나님의 종으로 쓰셨다. 그러나 사울이 교만해졌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감동을 시키셔도 감동을 받지 못했다. 그러므로 사울은 자기 힘으로 무엇이나 해결하려고 하였고 하나님께 바로 하겠다는 마음이 없이 자기가 이스라엘 나라를 유지해 보려고 거기에만 열중하였다. 이스라엘은 신약시대의 교회인데 교회 부흥에만 열중하면서 하나님 앞에 바르게 하겠다는 생각이 없는 사람은 사울과 같은 처지에 있는 것이다. 사울은 마지막에 아무리 기도해도 교만하여 하나님의 감동을 받지 못하므로 신접한 여인을 찾아가서 물어보았다. 그 후 믿음이 타락한 사울은 마침내 길보아산에서 비참하게 죽고 말았다(삼상 28:4-14. 31:1-6). 성도가 종의 위치에 있지 않을 때에는 성령의 감동을 받지 못한다. 사도 요한과 같이 종의 위치에 있으면 성령의 감동을 충만히 받게 된다. 그러나 자신이 높아지고 주인이 되어 있으면 성령께서 아무리 감동을 시켜도 감동을 받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성도는 항상 종의 위치를 잘 지켜 성령의 감동을 받는 자리에 있어야 한다.
마음속에 죄가 있으면 성령의 감동을 받지 못한다. 죄가 있으면 그 죄가 하나님과 성도 사이를 가로막아서 성도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하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받지 못한다. 그러므로 힘써 죄를 회개하며 깨끗한 심령을 가지고 십자가를 지고 끝까지 예수님만 따라갈 때에 성령의 감동을 받을 수 있다. 성령께서는 언제나 성도와 함께 계시고 또 어떠한 일에나 역사하여 감동시키고 계시므로 성도가 항상 성령의 감동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걸어가기를 힘써야 한다. 어떤 사람은 “성령이여 오시옵소서”라고 기도하는 사람도 있으나 그것은 잘 깨닫지 못한 것이다. 성령은 이미 성도의 마음속에 계시고 또 천지에 충만하며 계시지 않은 곳이 없다. 그러므로 성도는 성령의 감동을 받으려고 기도하며 힘을 쓸 것뿐이다. 성도가 신령한 길을 걷지 못하고 육에 속하여 있으면 성령의 감동을 받지 못한다. 고린도전서 2:13-14에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 함이니라”라고 하였다.
성령의 감동을 충만하게 받으려면 예수와 함께 자기가 죽어 무(無)요, 공(空)이 되어야 한다. 자기가 조금이라도 살아 있으면 하나님 나라 일하는데 독소가 된다. 자기(자아)가 죽으면 어린아이와 같이 온유하고 순진하게 되어 하나님을 순종할 마음이 생기고 순종하면 성령의 감동을 받게 된다(행 5:32). 순종한 만큼 성령 감동이 커진다. 전적으로 다 순종하였을 때에는 성령의 감동이 충만하고 진리가 충만하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면서 성령 충만을 받으려는 것은 연료 없이 불을 피우려는 것 같다.
하나님께서 성령의 감동을 주시는 목적은 성도를 위하여서가 아니고 하나님의 나라가 잘 되게 하려는데 있다. 하나님의 보좌를 중심 하여 그 앞에서 감동을 시키시는 성령님은 결국 하나님 보좌(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성도들을 구원하고 감동을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가 항상 하나님 나라를 중심 하여 살고 모든 것을 하나님 나라가 잘 되도록 하여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감동을 주신다.
성도가 성령의 감동을 받으려면?
◎ 겸손하여야 한다.
◎ 자기를 부인하고 종의 위치에 서 있어야 한다
◎ 죄를 회개하고 깨끗한 심령을 가져야 한다.
◎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야 한다,
• 1:5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충성된 증인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데, 예수님께서 선지자의 역할을 다 감당하신 것을 말한다(요 1:17-18 참조). 예수님께서 충성된 증인으로서 하나님과 진리를 나타내시고 진리를 친히 몸으로 다 이루시고 죽기까지 하나님 앞에 복종하시었다.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이것은 예수님의 부활을 가리키는데 예수님께서 제사장의 역할을 다 했다는 뜻이다.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것은 예수님께서 왕의 직무를 다하신 것을 가리킨다. 그리스도는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살아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시어 모든 것을 다 주관하시고 지배하시고 계신다.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께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가장 존귀한 자로 높여 주셨다. 세상 나라에서 높아지는 것과 하늘나라에서 높아지는 것과는 방법이 다르다. 세상 나라에서는 남을 누르고 자기가 그 위에 올라가야 머리가 되는데 하늘나라에서는 자기가 낮아져서 하나님께 복종한 사람이 큰 자가 된다. 그리스도께서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셨으나 싸워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복종하여 된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종살이는 하지 않고 높아지려고만 하여 서로 싸우고 시기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복종하면서 자기를 부인하며 십자가를 지고 끝까지 예수를 따르는 자가 하늘나라에서 큰 자가 된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나 인간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능욕과 멸시와 천대를 받으시면서도 대신 위협하거나 욕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참으시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임금들의 머리가 되도록 만들어 주셨다. 이것은 성도들이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면 그 권세와 존귀를 받게 된다는 것을 모범적으로 가르쳐 준 것이다.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하나님의 은혜와 영적 평강이 성도에게 있기를 원하는 것이다. 영적 평강은 영혼이 잘 될 때에 하나님이 은혜로 주시는 평강이며 영혼이 잘 되면 범사에도 잘 된다. 성령의 감동으로 말씀을 받아 순종하고 나아가면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풍성하여진다. 성령은 말씀을 통하여 역사하시기 때문에 말씀이 없는 것은 참된 은혜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다면 일시적인 감동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알맹이가 없고 껍데기뿐이다. 말씀으로 감동을 받아야 영이 자라나고 신앙의 열매가 맺혀 나아가는 것이다. 말씀도 점점 더 깊은 진리의 말씀을 받아 순종하도록 힘써야 한다. 어렸을 때에는 젖으로 먹었으나 자라나면 단단한 음식을 먹어야 한다. 성도의 신앙이 조금 더 자라나면 그만큼 단단한 말씀을 받아먹어야 영이 더욱 자라나고 강건하여진다. 집을 건축할 때에도 재료가 단단하여야 집이 견고하다. 판자로 지은 집은 태풍만 불어도 넘어간다. 그러나 철근 콘크리트로 건축하면 튼튼하고, 철골(아이빔)로 건축하면 더욱 튼튼하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단단한 말씀을 받아서 순종하여야 영이 자라나고 영적 성전을 견고하게 건축하여 나아갈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초보적인 것부터 높은 단계에까지 계단이 있는 데, 영이 자라날수록 높은 계단의 말씀을 받아먹어야 한다 초보적 단계와 말씀은 알기도 쉽고 감동도 쉽게 받고 지키기도 쉽다. 그러나 초보적인 말씀만 받아먹으면 영이 자라나지 못한다. 영이 자라나서 신령한 성전을 건축해 나가려면 점점 깊은 진리의 말씀을 받아 그 말씀대로 순종해야 한다. 그것은 고난이 많고 힘이 들고 많은 수고와 희생이 따르게 된다. 그렇다고 하여 영적 성전은 건축하지 않고 도리어 그 진리(재료)를 팔아먹고 평안히 지내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 것이다. 영적 성전을 삼층까지 지었으면 사층 지을 재료를 받아 계속하여지어 나아가야 한다. 사층 지을 재료들을 다 팔아먹으면 편안하고 힘은 안 들지만 성전이 건축되지 못하므로 하나님 앞에 가서 책망을 받게 되는 것이다. 현재에는 고난을 당하더라도 장차 나타날 영광을 위하여 계속하여 영적 성전을 건축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 1:5下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 성도들을 죄에서 해방시켜 주신 것은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이다. 죄 값으로 마땅히 죽어야 할 우리를 대신하여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 값을 모두 치러 주셨고 우리는 죄에서 해방되었다. 예수께서 우리의 형벌을 대신 받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법정에서 정죄의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도는 과거 현재 미래의 죄에서 완전히 해방된 것이다.
또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 죽기까지 복종하여 신구약 성경 다 지키시고 완전한 의를 이루어 그 의(義)를 성도에게 입혀 주신 것이다. 성도가 법적으로는 죄에서 해방이 되었으나 아직도 육체의 소욕(육체의 부패성)이 남아 있어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5:17에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다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성도가 육체의 부패성을 점점 제거해 나가는 일을 계속하여야 한다. 육체의 부패성을 제하고 성령의 완전한 감동을 받게 하시려고 성도에게 능력을 입혀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 자신이 성령께 완전히 복종하여 영적 성전을 계속하여 건축해 나가면 점점 성령의 감동이 충만하여지게 된다.
• 1:6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우리 성도는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위하여 존재한다.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된 것이다. 하나님을 위하는 일은 거룩한 것이고 가치 있는 것이다. 여호수아 5:13-15에 보면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에 가까이 왔을 때에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 서 있는 것 보았다. 그때 여호수아가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대적을 위하느냐”라고 물어보았다. 그때 그 사람이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장관으로 이제 왔느니라”라고 대답하였다. “여호와의 군대장관”이라는 말은 나는 하나님을 위하는 사람이지 너를 위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구속하여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구속받은 성도가 자기를 위하여 산다는 것은 큰 죄요, 악이다. 하나님을 위하여 살면 결과는 자기도 위하게 될 것이고 자기를 위하여 살면 결과는 하나님의 대적이 되어 마지막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망하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위하는 것만 영원히 자기를 위하는 것이 된다. 성도가 무슨 일을 할 때에 하나님을 위하여 하는가 아니면 자기를 위하여 하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자기를 위하여 하고 있다면 그것은 다 심판의 대상이요 하나님과는 상관이 없는 것이다.
성도가 언제든지 하나님을 위하는 자리에 서 있어야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시고 복을 받게 된다. 하나님을 위하는 정신이 중요한 것이다.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성도를 하나님의 “나라”로 삼으신 것은 믿는 사람들 속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성도들을 주님의 피 값으로 사서 하늘나라의 백성으로 삼아 놓으시고 그들을 통치하시며 영원한 거처로 삼으셨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은 다 “하나님의 나라”가 되었다. 그리스도가 왕이 되어 성도 가운데 계시고 성도는 하나님의 기업이 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가 하나님의 인도와 통치를 받아 하나님만 위하고 하나님만 섬기는 생활을 하여야 마땅하다.
우리 성도를 “제사장”으로 삼으신 것은 성도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돌려야 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 성도들을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친히 속죄 제물이 되어주셨으니 우리도 자신을 하나님 앞에 산 제사로 드려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속죄 제물이 되신 것을 믿고 우리 몸을 또 하나님 앞에 신령한 산 제물로 드려야 한다. 영적 예배는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는 것이다(롬 12:1).
우리 몸을 산 제사로 드리기 위하여서는 먼저 신령한 세계를 찾아야 한다. 우리의 영이 성령과 합작하여 신령한 세계를 찾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옳은 뜻을 찾아서 몸을 거기에 복종시키어야 한다. 이 일을 위해서는 자기 육신은 제물로 바쳐지는 희생이 있어야 되며 이것이 산 제사이다. 자신을 하나님 앞에 산 제물로 바쳐 드리고 또 믿지 않는 다른 사람을 전도하여 그리스도에게 바쳐 드리는 제사장 직분이 성도에게 있는 것이다.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성도를 죄에서 해방하고 하나님을 위한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아 놓은 결과이다.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하나님께 돌려지도록 하기 위하여 성도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아 놓으신 것이다.
• 1:7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 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여기에는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재림하신다는 뜻이 있고 성도들의 구원 이룬 것, 즉 예수님을 중심 하여 이루어진 하나님의 나라가 예수님의 재림 때에 함께 임한다는 뜻도 있다(유 1:14 참조).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찌른 자”들이란 그리스도를 찌른 자도 해당되고 교회를 핍박한 자, 즉 하나님의 나라에 손해 준 자도 해당된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요 교회는 그의 몸이기 때문이다(엡 1:22-23) 그리스로의 나라(구원 운동)에 조금이라도 손해를 준 사람은 신자이든 불신자이든 예수님 재림 시에 그대로 나타나므로 애곡 하게 된다. 우리의 몸은 우리의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것이다. 자기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것은 곧 그리스도의 나라가 이루어져 가는 것이므로 자기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데 손상을 입히는 것도 그리스도를 찌르고 상처를 입혀 손해 주는 것이 된다. 자기가 입힌 상처가 그날에는 숨김없이 나타나고 거기에 대한 심판을 반드시 받게 된다. 그러므로 그날에 그들이 애곡 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날에는 자기가 순종하여 이룬 것도 그대로 나타나고 자기가 상처를 준 것도 그대로 드러난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나라 운동에 협력하고 도와주고 받들어 주며, 자기의 구원을 이루어 나아가면서 하나님께 이용당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여 나아가야 한다. 성도가 세상 일 때문에 자신의 구원을 이루지 못하고 하나님 나라 건설에 지장을 초래한다면 그 결과가 주님의 재림하실 때에 는 가차 없이 나타날 것이다. 참으로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 1:8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알파(A)는 헬라어의 첫 문자이고 오메가(Ω)는 맨 마지막 문자이다. 그러므로 “처음과 나중”이라는 뜻이며 하나님의 영원성을 잘 나타낸 말이다.
이제도 있고 하나님께서 성도의 구원 운동을 현재에 이루어 나가시고 계신다.
전에도 있었고 하나님께서 전에도 하나님의 나라와 우리 구원 운동을 예정하시고 계획하시고 설계하셨다. 하나님께서 장래에도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나가실 것이다.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나님의 나라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 나아가시기 때문에 절대로 중단되는 법이 없고 실패가 없다. 마귀가 아무리 강한 힘으로 대적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일은 실패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구원 운동은 전에도, 지금도, 장래에도 하나님께서 친히 만능으로 이루어 나아가시는 것이다.
[유다서 신약 히브리어 성경말씀] 천사장 미가엘의 변론(유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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